성령,영성,기도

[스크랩] 성령을 나타내는 상징과 관습

수호천사1 2009. 4. 23. 12:00

성령을 나타내는 상징과 관습

 

 

1. 성령을 나타내는 상징


1) 불


성령은 불에다 비유할 수 있다. 이는 구원과 물세례보다 다른 차원의 체험을 의미한다.

갈라진, 쪼개진 혀 같은 불이 모인 모든 사람 위에 임하였다. (사도행전2:3)


불은 곧 정화와 정결을 의미한다. 불같은 담대함과 열심있는 마음은 성령의 기름 부으심으로 말미암아 생겨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불은 따뜻하게 불빛을 비추고 퍼지는 성질을 가지고 있으며 깨끗하게 정화시키는 기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렘20:9)


2) 비둘기


유대 전통에 의하여 창세기 1장 2절을 번역해 보면 "하나님의 신이 비둘기와 같이 수면 위에 내려 덮혔다."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제자들의 특징인 무사기함의 상징으로서 비둘기를 들어 말씀하셨다.


마태복음3장16절에서는 이렇게 말한다."하나님의 영이 비둘기처럼 그 위에 내려와 임하심을 보이시더니" 여기에서의 비둘기는 그분의 사역을 위해 주 예수님 위에 임하신 성령을 상징한다. 비둘기는 시각과 목적에 있어서 온순하고 단순함을 상징한다. 비둘기처럼 그 분 위에 임하신 하나님의 영에 의해 예수 그리스도께선 오직 하나님의 뜻에만 초점을 맞추시고 온순하고 단순하게 사역하셨다. 요한복음 1장 32절 역시 영에 대한 상징으로서 비둘기를 말한다. "내가 보매 성령이 비둘기같이 하늘로서 내려와서 그의 위에 머물렀더라" 셰례요한은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천거했을 뿐 아니라, 비둘기와 함께하는 어린 양으로 천거했다. 어린 양은 사람에게서 죄를 가져가며, 비둘기는 생명이신 하나님을 사람에게 이끌어온다 . 어린 양은 죄로 타락한 사람을 하나님께로 구속하기 위한 방편이며, 비둘기는 하나님의 영으로서 사람들에게 기름 부우시고, 하나님을 사람에게, 사람을 하나님에게로 이끌기 위해 생명으로 주며, 기름 붓는 것을 의미한다. 요한복음 1장 32절에 있는 비둘기는 생명을 주며, 거듭나게 하고, 기름을 붓고, 변화시키며, 그리스도의 몸을 건축하기 위해 실제적으로 이 땅에 임재하시고 역사하시는 성령을 상징한다.


상징으로서의 비둘기는 양순함과 부드러움과 무사기함과 온유함과 화평과 순결과 인내를 말해 준다. 시리아 사람들은 비둘기를 자연의 생명을 주는 능력의 상징으로 생각했다.


3) 여인


"어느 여자가 열 드라크마가 있는데 하나를 잃으면 등불을 켜고 집을 쓸며 부지런히 찾지 아니하겟느냐"(눅15:8) 성령에 대한 다른 상징은 잃어버린 드라크마를 찾는 섬세한 여인이다. 등불은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하며(시119:105,130) 이것을 사용하여 성령은 죄인을 회개할 수 있도록 죄인의 위치와 상태를 드러내신다.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죄인들을 위한 구속을 성취 하신 후 성령께서는 우리를 찾으시며, 아버지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게 하신다. 찾는 여인의 비유가 가리키는 것처럼 성령의 역사는 내적으로 우리의 생각을 비추고 의지와 양심과 마음 전체를 비추시어, 회개로 이끌어 가신다. 즉 성령께서는 우리의 부패한 아담의 유전된 내적 본성을(롬7:23) 비추고 드러냄으로서 회개로 이끄시며, 아버지께 다시 돌아가려는 결정을 할 수 있도록 우리 존재 깊은 곳에서 역사하신다.


4) 바람


바람은 성령의 재생의 역사를 상징한다. 그리고 바람은 신비스럽고 자주적이고 통찰력이 있고 생명을 주며 정결케 하는 역사를 나타내 주고 있다.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이러하니라"(요3:8) 바람은 호흡할 수 있는 공기를 우리에게 이끌어 온다. 바람이신 성령은 우리의 영적인 호흡을 위한 공기를 이끌어온다. 사도행전 2장에서는 성령을 급하고 강한 바람으로 나타내고 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생명의 영은 본질적으로 제자들의 영적인 존재와 삶을 위해 그들 안으로 호흡된 호흡으로 비유되었다, 주 예수님의 승천 안에서 승천 능력의 이 영은 제자들 위에 부어졌으며, 경륜적으로 제자들의 사역과 움직임을 위한 급하고 강한 바람으로 상징되었다. 요한복음 20장에서 호흡으로 상징된 이 성령은 그 영의 본질적인 방면으로서 믿는 이들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살게 하는 능력이 된다. 반면에 사도행전 2장에서 바람으로 상징된 성령은 그 영의 경륜적인 방면으로서 믿는 이들로 하여금 그분의 위임을 수행할 수 있도록 도우시는 능력이 된다. 즉 호흡으로 비유된 성령은 우리에게 생명을 위해 내적인 힘을 주시며, 바람으로 비유된 성령께서는 주의 사역을 행할 수 있도록 외적인 권위와 능력을 공급해주신다. 호흡과 바람을 통해 우리는 성령으로 온전히 정비된다.


5) 생수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마다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4:10-14) 여기 묘사된 생수는 하나님의 생명의 영(롬8:2)을 상징한 것으로서, 계시록 22장에 있는 생명수 강의 여러 흐름(롬14:30)으로 비유된 성령과 일치한다. 이 생명수는 평강과 기쁨과 위로와 의와 생명과 거룩과 사랑과 인내와 겸손의 생수로서 믿는 이들 존재 깊은 곳에서부터 흘러나온다.


성령은 가장 깨끗하고 좋은 생수의 샘이다. 그 이유는 성령은 참다운 생명의 강이기 때문이다. 이 생명의 강은 우리 영혼에 차고 넘치며 죄를 씻어 준다. 물질 세계에서 물이 하는 역할과 꼭 같은 역할을 성령의 능력은 영적 세계에서 한다. 즉 물은 깨끗게 하며 산뜻하게 하며 갈증을 해결해 주며 불모지를 옥토로 만든다. 물은 더러운 것을 깨끗게 한다. 물은 영혼을 깨끗히 씻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더하는 하나님의 은혜의 적절한 상징이 된다.


물은 육체적 생명에 필요 불가결한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성령은 영적 생명에 필요 불가결한 것이다.


"생수" 라는 말의 뜻은 무엇인가? 생수는 물통이나 늪 같은데 괴어 있는 물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생수란 언제나 생명의 증거를 지니고 있다. 만일 이 생수가 저수지에 흘려들어가서 흐름이 막혀버리고 또한 그 생수의 근원으로부터 단절되어 버리면 그 물은 이미 생수라고 할 수는 없다. 기독교인들만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수의 근원과 접촉함으로 "생수"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6) 구름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고전10:1-2)


이스라엘 자손들을 덮었던 구름은 신약에서 믿는 이들과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영을 예표한다. 신약의 믿는 이들이 그리스도를 그들의 유월절로 취한 직후 하나님의 영은 믿는 이들과 함께 그들을 인도하여 그리스도인의 경주를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오신다. 이는 마치 구름 기둥이 이스라엘 자손들과 함께 하고 그들을 인도하기 위해 왔던 것과 같다.(출13:21-33) 우리가 세례 받았을 때 우리는 성령 안에서 한 몸으로 세례 받았다.(고전12:1-32) 오늘날 교회 생활 안에서 우리 또한 구름인 성령에 의해 덮여지고 가려져 충만케 되어야 한다. 출애굽기 40장 38절에 의하면 구름 안에 불이 있다. 이것은 우리에게 성령이 드리워질 때 그분에 의해 비춤을 받는 것을 가리킨다. 성령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아는 빛을 주시는데 우리는 이 성령에 의해서 온전하게 행할 수 있다.


7) 옷


성령의 임재를 "옷 입는 것"의 형상으로 나타내는 것은 성령사역의 외적 성격을 보여주는 것이다. 능력으로 옷 입음을 통하여 성령께서 그리스도인들의 인간적인 약점을 보완해주시고 그 옷 입음이 그리스도인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을 대표하는 성도로서 공식적 예복과 같은 기능을 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성경에는 이처럼 신령한 진리를 드러내기 위하여 옷을 입히운다는 형상적 표현이 여러 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면,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엡4:24)고 한 것이나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엡6:11) 또는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신 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계19:8) 등이 그 것이다.


"내가 내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울 때까지 이성에 유하라"(눅24:47) 여기서 성령의 충만한 임재의 사역을 '옷 입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은, 그 영의 사역이 인간의 약점을 덮어주고, 하나님을 공식적으로 대표하는 표시와 권위로서의 '예복과 같은 기능을 제공해주기 때문이다.(고후5:3, 엡4:24, 계19:8) 우리가 성령의 능력을 입으려면 제복인 하나님의 영을 입을 필요가 있다. 이것은 엘리야의 겉옷으로 상징되었다.(왕하2:9,13-15) 열왕기하에서 엘리사는 엘리야가 받은 하나님의 영을 갑절로 받기 위해 엘리야의 외투를 받기 원했다. 누가복음 24장 49절에서 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위로부터 오는 거룩한 능력으로 입혀주는 의복과 같은 하나님의 성령을 말씀하셨다.


8) 인


도장을 찍은 표적은 도장의 소유자와의 관계를 나타내주며 또한 도장의 소유자에게 어떤 사물이 속해 있다는 확실한 표적이 된다. 신자들은 하나님의 소유임을 알게 된다. 다음과 같은 사실은 바울 당시의 에베소에 흔히 있었다. 어떤 상인이 항구에 가서 거기에 들어온 재목을 골라서 자기의 도장을 찍어 놓으면 그의 소유권이 확실해 진다. 후에 그는 그의 하인에게 도장을 주어 보내면서 그의 도장이 찍힌 재목을 찾아오게 한다. (딤후2:19).


에베소서 1장13절과 고린도후서1:22절에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성령으로 인치셨다고 말씀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리스도 안에서 기름을 부으셨기 때문에 그분은 성령으로 우리를 인치셨다. 성령으로 인 쳐졌다는 것은 살아있는 하나님의 인인 성령으로 표시되어 하나님의 유업과 소유가 되었음을 나타낸다.(엡1:11) 우리 안으로 들어오시는 하나님 자신이신 성령은 인으로 상징된 하나님의 형상을 우리 안에 새기심으로 우리를 그리스도의 형상 따라 변화되게 하신다. 우리 위에 하나님의 인이신 성령이 새겨질 때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과 하나님의 표를 갖게 되는 것이다.


9) 보증


보증은 보장의 개념이 포함되어 있는 것을 의미한다. (엡1:13,계7:3 참조). 성령은 신자들의 마음 속에 확신과 보장을 주신다. (롬8:16).성령은 하늘나라에서 받은 우리들이 유산의 첫 부분이요, 장차 임할 영광의 보장이시다.


고린도후서 1장 22절에선 하나님이 우리 마음에 보증으로 성령을 주셨음을 말한다. 성령의 보증은 보증이신 성령자신으로서 , 하나님이 우리의 유업이며, 그분이 기업으로 우리에게 속했다는 것을 증거하고 담보하는 것이다.


우리 안에 있는 성령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우리의 분깃이라는 보증과 계약임을 의미한다.


에베소서 1장 14절은 성령이 '우리 기업의 보증'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경륜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께 기업이며,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업이 되신다. 우리가 하나님의 소유이기 때문에 주인이신 하나님께서는 우리 위에 성령으로 인치신 것이다. 또한 하나님이 우리의 기업이기 때문에 우리는 또한 담보로서의 성령의 보증이 필요한 것이다.


10) 기름


(감람)기름은 성령에 대한 또 하나의 상징이다.(시45:7, 히1:9, 사61:1, 슥4:6) 시편45편 7절은 '하나님 곧 왕의 하나님이 즐거움의 기름으로 왕에게 부어 왕의 동료들보다 승하게 하셨나이다"라고 말한다. 즐거움의 기름은 기쁨의 기름이다. 하나님에게는 즐거움의 기름이신 성령 하나님과 함께 기름부음 받으신 성자 하나님이신 그리스도가 계신다. 이사야 61장 1절에서 그리스도께서 기름부음 받았던 그 영은 히브리서 1장 9절에 있는 즐거움의 기름이었다. 이것은 기름이 기름을 붓는 영임을 입증해 준다. 스가랴 4장에는 우리에게 등대 위에 있는 두 감람나무를 보여준다(11절). 등대의 목적은 빛을 비추는 것이지만 등대가 비추려면 감람기름이 필요하다. 계시록 1장은 교회들이 등대들임을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다. 등대로서 교회의 사역은 빛으로 비추는 것이다. 교회들이 빛을 비추어 내려면 기름으로 예표 된 성령이 필요하다. 스가랴 4장 6절은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라고 말씀하신다. 등대 좌우에 있는 두 감람나무는 기름으로써 즉 하나님의 영으로 가득찬 것을 의미한다(슥4:12)


우리는 이러한 모든 구절 등에서 감람기름은 성령의 상징이며 성령은 등대가 빛을 비추어 내기 위해 필요하다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래서 기름은 성령에 대한 가장 평범하고 친숙한 상징이라 말할 수 있다. 구약에서 기름이 의식적으로 사용되었을 때에 기름은 유용성과 풍요함과 아름다움과 생명과 변화를 나타내 주었다. 기름은 흔히 식용과 등화용과 윤활용과 약용 등으로 사용되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성령은 영혼을 위로하고 고쳐 주며 자유하게 하고 빛을 비추어 주며 힘을 주신다.


11) 일곱 등대


"계시록 4장 5절에서 그 영은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불타는 일곱 등으로 상징되었다. 하나님의 일곱 영을 말하는 일곱 등불은 칠 배로 강화된 하나님의 영의 비춤과 살핌을 상징한다. 하나님께서는 불타고 빛나고 조사하고 살피고 심판하는 일곱 등, 즉 일곱 영에 의해 이 땅을 다스리실 것이다. 여기의 일곱 등은 출애굽기 25장 37절과 스가랴 4장 2절에 있는 일곱 등대을 언급한다. 스가랴 4장에 있는 일곱 등은 하나님의 움직이심 안에 있는 하나님의 영의 비추심으로 이것은 하나님의 건축을 위한 것이다. 계시록 4장에서의 일곱 등은 하나님의 심판을 위한 것이다. 하나님이 그분의 심판을 집행하시는 동안 그분의 강화된 영은 조사하고 비추고 심판하심으로 그분의 영원한 건축을 수행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본성과 일치되지 않는 것은 그 어떤 것이라도 그 분의 불에 의해 태워져 버릴 것이다. 비록 우리가 구원받고 어느 정도 변화되었을지라도 우리의 일이 금이나 은이나 보석(고전3:15)이 아닌 나무와 풀과 짚이라면 그것은 불타버릴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가 제외된 육적이고 자기 영광만을 추구한 일은 그것이 교회 안에서 행한 것이라도 하나님에 의해 나무와 풀과 짚으로 간주되어 불태워질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이 불타는 분이라는 것을 비유한다.(신4:24,히12:29) 비록 하나님의 일곱 등인 성령이 빛 비추시고 찾고 드러내시어 하나님과 일치하지 않는 것은 불태워버릴 것이나, 그분의 뜻대로 행한 모든 것은 정화시킬 것이다. 지금도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불타는 일곱 등이신 일곱 영은 하나님의 우주적인 통치행정을 수행하시기 위해 태우며, 정화시키며, 정결케 하는 일을 하고 계신다.


12) 어린양의 일곱 눈


성경에는 성령을 하나님의 눈으로 상징하기도 하였다. "...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은 온 땅에 보내심을 입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계5:6)고 말씀하셨는데 여기서 일곱 눈은 하나님의 눈으로서 성령을 상징하는 것이다(계1:4, 4:5). 성령을 상징하는 이 눈은 성령의 무한한 지적 능력과 통찰력 그리고 지혜를 의미한다(슥3;9, 4:10). 성령은 예수님을 대신해서 예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일하신다. 그는 완전하신 하나님으로서 완전한 능력을 가지고 일하시기 때문에 일곱 눈은 온 땅에 보내심을 입은 하나님의 일곱 영으로 묘사된 것이다. 예수님의 사역은 성령을 통해서 지금도 역사 하시고 계시다. 다시 말하면 성령의 사역은 그리스도의 사역과 일체 된 사역을 행하신다는 말씀이다.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어린양이 섰는데 일찍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은 온 땅에 보내심을 입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계5:6) 구속하시는 어린양이신 예수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행정을 수행하기 위해 바라보고 주시하시는 일곱 눈을 갖고 계신다. 이 일곱 눈은 어린양의 모든 어떠하심을 성령 안에서 우리 존재 안으로 비추시어 우리로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게 하신다. 사람과 그의 눈이 하나인 것처럼 그리스도와 성령도 하나이다. 그러므로 성령이 그리스도와 분리되었다는 것은 잘못이다. 하나님의 일곱 영이 성령이며, 또한 그리스도의 눈이기 때문에 일곱 영이신 성령은 그리스도와 분리될 수 없다. 삼위일체 안에서 아들은 아버지의 체현이며, 성령은 아들의 표현과 적용이시다. 하나님의 일곱 영이신 그리스도의 일곱 눈은 하나님의 몸 된 교회의 건축을 위해 움직이시고 역사하시는 그리스도의 표현과 적용이시다. 오늘날 예수그리스도의 일곱 눈은 일곱 영으로서 우리 위에 있으며, 그로써 우리는 하나님의 몸 된 교회의 건축을 위해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아 변화 될 수 있다.


2. 성령강림절의 관습


중세 시대 어떤 교회에서는 오순절에 비둘기를 그려 놓은 원반이 천장에서 아래에 있는 회중을 향해 내려오게 하는 관습이 있었으며, 그 후에는 종종 물세례를 상징하는 것으로서 사람들 위에 장미를 던지기도 하였다. 13세기 프랑스에서는 예배 도중 흰 비둘기를 날렸고 식탁 위에 비둘기를 매달아 두는 풍습을 따르는 가정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오순절에 일어났던 것과 같이 급한 강한 바람처럼 성령님이 임하신 것을 나타내기 위해 예배 도중 트럼펫을 사용하기도 했다.

영국에서는 오순절 다음 날에 종교극이 상영되었고 “성령 강림 주일”이라는 패가 팔리기도 했다. 교회와 대학에서는 에일(ale)이라는 맥주를 만들어 팔아 빈민과 교회 건축을 위한 기금을 마련하기도 했다. 그러나 오늘의 교회에서는 이러한 관습을 특수한 지역을 벗어나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 대신 성령 강림 주일을 기점으로 하여 성령님의 임재와 그 가운데서 발생되는 새로운 경험적 신앙을 찾는 기도회나 기타의 집회가 새로운 관습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실질적으로 이 오순절 동안은 교회가 성령님의 역동적인 역사 아래서 성장하고 교회다운 모습을 갖추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이 새로운 관습으로 정착되어야 한다.

출처 : MyLoveCh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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