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든 선교사와 치료자
김용기 선교사 (GMP 알바니아)
오늘 알바니아에서는 좋은 세미나가 있었습니다. Counseling 에 대한 주제로 강의를 한다고 했는데 함께 참석한 게니스 전도사 왈 이제 미국에서는 상담사역보다는 “영혼 돌봄” (Soul care)이라는 사역을 한다고 합니다. 이 말을 들으며 상담과 영혼 돌봄을 비교해보니 상담이 어떠한 상태와 아픔을 겪은 후에 하는 소극적인 사역이라면 영혼 돌봄은 적극적인 개념으로 사전에 돌봄을 주는 것이라고 간략히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를 보았습니다. 아니 저와 제 아내를 생각했고 그리고 자녀들을 생각했습니다. 선교사마다 각기 환경과 경험이 다르지만 10년 넘게 타 문화에서 살면서 저희가 병들고 있다는 두려움이 전해져 옵니다. 갖가지 새로운 환경에서 당하는 어색함과 그것을 극복하려고 몸부림치며 겪는 사람들과의 주고받는 상처들로, 때로는 무자비한 언어의 폭력과 놀림들로 어떤 때에는 나도 이들처럼 될 수 없을까? 고민하며 동화되어보려는 몸부림과 수많은 좌절들, 그 속에서 저희는 병들어가고 있나 봅니다.
총과 폭탄, 도둑과 강도와 납치의 위험이 찾아온 그 때에는 오히려 담담 했건만 이제는 그런 것들이 또다시 재현될까 불안하고 죽음과 이별을 늘 생각하며 사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닙니다. 이제 그러한 위험한 순간들은 지나고 선교지도 변했습니다, 과거는 과거일 뿐 새로 오고가는 사람들에게는 아득한 옛날일이 되었고, 우리가 지나온 그 거친 세월 속에 우리도 모르게 갖게 된 갖가지 위기의식과 know-how는 더 이상 유용한 정보가 되지 못합니다.
우리는 병들었나 봅니다. 그래서 매사에 조심하고, 묻고, 절차를 중시합니다, 확인하고 또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고 순리에 따라 질서를 지키려고 합니다. 때로는 그것이 합리적인 것 보다 앞설 때도 많답니다. 언약보다 형제의 사랑과 믿음으로 모든 것이 용납되고 충동적인 결정의 방법과 한국민적(?)인 교제방법이 내게 어울리는 것 이였음 에도 우리에게는 이제 어색한 것이 되어 난처한 입장에 종종 빠져듭니다.
우리는 병들었나 봅니다. 그래서 종종 우리의 대화는 거칠고 직설적으로 보입니다. 한글의 아름다운 많은 표현들을 잃어버리고 사는데 그래서 우리의 언어에는 현지어와 영어가 종종 섞여 나오지만 그 말의 뜻을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을 못 합니다. 우리의 대화는 과거 아픈 경험적 역사 속에서 이어져 오므로 설명이 깁니다. 그래서 선교사는 말 많은 사람들로 오해 받고 늘 복음을 전하는 일에 많은 세월을 보내므로 우리의 설교는 복음적이지만 설교를 잘못하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많은 일상을 현지인과 보내고 그들의 삶의 유형과 조화를 이루려다가 우리만의 오락을 잊어가고 있습니다. 때로 너무 많은 사랑을 주어서 실패하고, 때로 너무 적게 표현해서 실패하고 마음을 열면 부담스러워하는 사람들로 인해서 상처 받고, 그래서 적게 표현하니 냉정하다 해서 상처 받으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병든 사람이 되었습니다.
저희의 자녀들은 한국에 있는 좋은 것들을 보고도 좋다고 여기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엄마, 아빠가 과거에는 생각도 못할 맛난 음식을 대해도 맛있다고 하지 않습니다. 그저 밀로 구운 빵에 버터와 두부 같은 냄새나는 치즈와 튀긴 감자가 아이들에겐 최고입니다. 때로 한국교회에 있는 또래 친구들도 부담이 됩니다. 왜냐하면 그 아이들은 말을 너무 빨리 하고 대화의 내용도 이해할 수 없는 것 들입니다. 한국의 왠 만한 아이들은 비행기 타는 것이 너무 좋은 일이지만 우리아이들은 비행기 타는 것 이 너무 싫습니다. 무엇보다도 사람들과 너무 자주 만나고 헤어집니다.
선교비는 언제나 교회행정의 최우선 동결대상이 되고 어렵사리 허입 되지만 매우 간단히 제명됩니다. 기도하겠다는 약속은 많이 듣지만 실제로는 알 수 가 없습니다. 선교사는 이렇게 저렇게 멍들고 구겨지고 깨어지며 병들어 가고 있습니다.
소망이 없어 보이는 저 한 구석에서부터 작은 불빛이 비추어집니다. 그곳에서 영광의 찬미와 광채가 조금씩 더 그 빛을 더해가고 있습니다. 선교사들은 언제나 외로운 사람들 이였나 봅니다. 그래서 주님을 더욱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순례자들이 본향을 그리워하듯 선교사는 언제나 주님을 사모합니다.
'찰스 스윈돌' 목사님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최상을 주시는 때는 홀로 있는 고독한 때이다. 그러므로 그럴 때는 잠잠히 있어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지도자의 자리에 임명하시는 자는 히말라야 정상에 선 사람처럼 희박한 공기 속에서도 평안히 숨쉬는 법을 필수적으로 배워야 한다. 홀로 있어 하나님께서 주시는 생각을 받아들이는 자리에는 하나님의 위로와 확신이 내려오며 인간들의 평가는 초라하게 그 빛을 잃는다. 거기에는 두려움 대신 믿음이 자리를 잡고, 우리의 비전이 분명해진다.'라고 하였습니다.
상처입고 병든 선교사를 안으시는 예수님의 인자하심이 언제나 저들을 감싸고 있습니다. 우리가 당하는 이 모든 것들로 우리가 병들었다면 우리의 영혼을 돌보아주실 분이 계십니다!
소극적으로 결과를 보고 상담만 하시는 분이 아니시고 적극적으로 늘 우리의 몸과 영혼을 돌보고 계시는 그분은 우리의 진정한 치료자 이십니다. 완벽한 치유를 주실 그 분을 위하여 거룩한 병이 드십시오! 위대한 시도를 하십시오!
병들 수밖에 없는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을 변화시키실 것입니다!
“내가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빌3: 12- 21절 까지를 읽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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