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사역은 제조인가? 분배인가?
정명호 목사(KJFM 발행인 및 편집인)
한 사람의 사역자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게 되는 내면의 투쟁이 있다. 과연 내가 이 사역에 적합한 사람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고민이다. 그것은 회피하기 위해서 핑계하는 물음이 아니다. 오히려 제대로 하고 싶은데 내가 생각하는 만큼도 이루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질책이기도 하다. 그래서 생각한다. 내가 만족하지 못하는데 누구를 만족시킬 수 있을까?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주변을 돌아보게 되고 거기에는 탁월하게 자기 사역을 감당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역자들이 늘어서 있다. 이쯤 되면 고민은 극에 달한다. 과연 이 일을 계속 해야 하나? 내가 오히려 하나님 나라를 가로막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 장벽은 생각보다 심각하고 파괴적이어서 바로 이 지점에서 뒤로 돌아서는 동역자들을 심심찮게 발견한다. 이 고비는 우리 자신에게도 여지없이 찾아온다. 사역이 지치고 힘들 때,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을 때 우리는 바로 이 장벽에 부딪힌다. 우리는 여기에서 머물러 서서 도약을 위한 변화나 결단을 취하든지, 모든 질문에 귀를 막고 머물러서든지, 아니면 뒤로 물러나 다른 길을 찾아보아야 한다. 독자 여러분은 어떤가? 혹시나 이런 질문에 고민하고 있는 동역자들이 있다면 글을 하나 소개하고자 한다. 내가 굳이 이런 주제에 대한 글을 직접 쓰는 것보다 이미 출간된 책 안에서 충분히 표현되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Warren Wiersbe 목사가 쓴 “On Being A Servant of God”이라는 책의 일부분이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겪고 있는 문제가 하나 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분배자로 부르셨는데도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제조자로 부르셨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나님만이 인간의 필요를 채울 수 있는 자원을 가지고 계신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그저 그분의 것을 받아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것뿐이다. 베드로는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행3:6)라고 말했다. 사역에 있어 우리는 모두 파산한 자이며 하나님만이 부요하시다. 바울처럼 우리도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는”(고후6:10)자이다.
그리스도께서는 5천명을 먹이셨다. 이 사건은 그리스도께서 베푸신 이적 가운데 유일하게 사복음서에 모두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마14:15-21, 막6:35-44, 눅9:12-17, 요6:1-14). 5천명이 넘는 사람들이 배고파하는 것을 보았을 때, 제자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그들은 똑같은 제안들을 했다. 하지만 그들은 사람들이 실제로 얼마나 가난한지 알지 못했다!
그들은 사람들을 집으로 돌려보냄으로써 문제를 회피하라고 예수님께 말했다. 그들의 동정심은 어디로 갔는가? 주님께서 사람들이 배고프며 따라서 그 상태로는 집을 돌아갈 수 없음을 아셨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이 제안을 거부하셨다. 우리도 사역을 하면서 하나님께서 우리가 돕기를 원하시는 사람들을 회피하고 싶은 유혹을 자주 받는다. 제자들이 이런 유혹을 느낀 것은 비단 한 번만이 아니었다(마15:21-28, 19:13-15).
빌립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먹일 양식을 살 돈이 없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그러므로 더 큰 예산이 해결책은 아니었다(대부분의 사람들은 더 많은 돈이 있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때 안드레는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점심으로 싸 온 소년을 발견했다. 하지만 이것은 그 많은 사람들의 필요를 채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것이었다. 안드레는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삽나이까?”(요6:9)라고 묻는다. 물론 대답은 “그 자체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이다. 제자들은 제조자가 되려고 애쓰고 있었다. 그들은 돈이나 음식 또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분명한 방법을 찾는 것이 그들의 책임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주님만이 “친히 어떻게 하실 것을 아셨다”(요6:6). 예수님께 필요했던 것은 제조자로서의 제자가 아니라 분배자로서의 제자였다. 예수님께서는 소년의 도시락을 취하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그것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배고픈 무리에게 나누어주라고 하셨다. 배가의 역사는 그분의 손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분배는 제자들의 손으로 이루어졌다.
일단 당신 스스로를 하나님의 부의 제조자가 아니라 분배자로 받아들여라. 그러면 섬기는 일에서 놀랍고 새로운 자유와 기쁨을 맛보게 될 것이다. 당신은 새로운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은 도전을 해결해 줄 자원이 하나님께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당신은 어떤 일을 성취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직접 제조하려고 애쓰다가 좌절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당신의 일을 축복하실 때 우쭐대고 싶은 유혹도 받지 않을 것이다. 밥 쿡(Bob Cook) 박사는 청소년 목회와 관련하여 이런 말을 들려주곤 했다. “당신이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일을 설명할 수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하고 계신 일이 아니다!” 이것은 시편 126편에 기록된 유대인들의 체험과 유사하게 들린다.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리실 때에 우리가 꿈꾸는 것 같았도다 …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대사를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1, 3절). 당신은 이적을 어떻게 설명하는가? 당신은 이적을 설명할 수 없다. 그저 받아들이고 나누며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릴 뿐이다.
하나님께서 그의 종들로 하여금 사역 중에 그분의 자원을 이용할 수 있게 하신다. 그러면 이러한 하나님의 자원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 이것을 가장 잘 요약해 주는 단어는 우리에게도 친숙한 ‘은혜’라는 단어이다.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요1:16). 여기에서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것은 해안으로 파도가 끝없이 밀려들고 있는 바다의 모습이다. 바다를 처음 보고서 울며 서 있던 가난한 여인이 생각난다. 왜 우느냐고 묻자 그녀는 “무엇인가 풍족한 것을 보니 정말 좋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당신은 은혜를 벌 수 없으며 은혜를 받을 만한 자격도 없다. 당신은 그저 은혜를 하나님의 사랑의 선물로 받으며 그것을 다른 사람들과 나눌 뿐이다. 사역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자원의 창고가 아니라 통로일 뿐이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눅6:38). 자신들이 얼마나 가난한지 아는 종들이 가장 부유해지며, 가장 많이 주는 종들이 가장 많이 받으며 따라서 줄 것이 가장 많게 된다. 이것은 하나님 나라에서는 하나의 기본적인 법이다.
우리는 “제조자의 정신”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자원, 예를 들면 경험, 훈련, 달란트, 교육 같은 것에 의존하려 한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것들을 성별하셔서 사용하실 수 있다. 그러나 이것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가로막는 장애물이 될 수 있다. 사도 바울은 능력이 뛰어나고 훈련도 많이 받은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효과적인 사역의 비밀은 하나님의 은혜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는 고린도 교회 교인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 15:10). 바울이 바울된 것과 그가 한 모든 일은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었다.
하나님의 자녀요 종인 우리는 그분의 은혜의 풍성함(엡1:7, 2:7)과 그분의 영광(엡3:16; 빌4:19)과 그분의 측량할 수 없는 풍성함(엡3:8)과 그분의 풍성하신 긍휼(엡2:4)과 그분의 지식의 부요함(롬11:33)과 그 밖의 많은 것을 의지할 수 있다.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9:8).
그러므로 우리의 섬김이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섬김이 되기 전에 우리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다. 그것은 우리가 파산한 자임을 고백하고, 우리의 섬김이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섬김이 되게 하는 데 필요한 은혜를 믿음으로 받는 것이다. 우리는 믿음을 통해 은혜로 구원을 받았다(엡 2:8-9). 마찬가지로 사역자가 되고자 할 때 우리는 믿음을 통해 은혜로 일해야 한다. 그럴 때에만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우리를 통해 역사하시며 영광을 받으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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