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가야 할 길
들어가며
“따라서 하세요. 뽀~포~모~포~~”
십 수 년 전, 한 마리의 병아리가 된 기분으로 중국어 학습의 길에 들어섰다. 현대 한국어 체계에 없는 권설음을 배우기 위해 혀를 말고 헛바람 소리를 내면서, 그 길의 험난함을 피부로 느꼈다. 제법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어는 내게 있어 여전히 거친 길이다. 지역에 따라 다른 발음과 표현법은 오르지 못할 산이다. 그러한 사람이 ‘중국선교사역과 사역언어’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것이 외람된 일이기는 하나, 필자의 작은 경험이 중국선교를 준비하는 분께 조금의 도움이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필을 든다.
한국에서
중국선교에 대한 부담감을 갖게 되면서, 중국어를 배워야하겠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다. 하지만 당시 개인적 상황은 중국에 들어갈 수 없는 형편이었다. 중국어는 배우고 싶고, 중국으로 갈 수는 없고, 그렇다고해서 대학에 다시 진학하여 중국어 학과에서 공부할 수도 없고... 중국어를 배울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일반 학원에 등록해보기도 하였지만, 그다지 도움을 받지 못했다. 보다 나은 방법을 찾던 중에 중국어문선교회에서 진행하는 선교언어훈련과정을 발견하였다. 훈련은 초·중급 중국어와 기본적인 사역관련 언어, 그리고 단기 현지 언어연수등으로 구성되어있다. 이 과정을 통해 중국어에 대한 틀을 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중국인 앞에 서면, 여전히 꿀먹은 벙어리였다.
당시 경기도 안산 지역에는 수 만명의 중국인이 이 모양 저 모양으로 취업하고 있었다. 우연한 기회를 통해, 한 사역자께서 개척하신 중국인 교회와 연결되었다. 매 주일마다 그 교회에 출석하면서, 중국인과 직접적인 만남을 가졌다. 소그룹 성경공부반 하나를 맡게 되었다. 첫 시간에는 내가 하고 있는 중국어를 나 자신조차 이해하지 못한 채 떠들어댔다. 중국인 형제들은 그저 내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 다음 시간부터는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고, 그옆에 공부하려는 내용을 적어놓았다. 더듬거리며 설명을 했다. 성경공부에 참가한 중국인들이 비로소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일반적으로 초임선교사들은 일반언어와 사역언어를 구분한다. 그래서 일반언어를 배운 다음, 사역언어를 배운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 접근법이 틀렸다고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언어라는 것이 두부 자르듯 구분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과 각자의 언어 환경이 있다는 점이 동시에 고려되어야한다고 본다. 요리사는 요리사 세계의 언어가 있듯, 중국선교사도 나름대로의 언어 환경 안에 있다. 그러므로 언어를 배울 때, 처음부터 사역과 연관된 언어 환경 속에서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국 내에도 훌륭한 언어 환경이 있다. 취업을 위해 한국을 찾아온 중국인들이 모인 교회 공동체가 바로 그것이다. 중국선교사로 헌신한 사람이라면, 선교지로 향하기에 앞서서 일정 기간, 한국 내 중국인 교회와 동역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은가 생각한다.
이는 비단 사역언어 습득 뿐만 아니라 중국인과 중국 사회를 이해하는 훌륭한 교육의 장을 마련해준다. 중국인 형제들과 함께 울고 웃으면서 그들에게 다가가다 보면, 어느 새인가 중국 문화를 체득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안산 공단의 조그마한 예배실 구석에서 그들과 함께 빚던 ‘쟈오즈’ 를 생각하면 지금도 입 안에 침이 돈다.
중국에서
중국에 도착하여, 모 대학 내에 있는 언어훈련 과정에 등록했다. 2년의 언어훈련 기간 중에, 중국어 문법과 표현법을 구체적으로 정리했다. 오후에는 가정교사와 함께 예습과 복습을 했다. 아마도 언어훈련 과정에 사람은 대부분 이러한 방법은 사용하고 있을 것이다.
중국에서의 언어훈련 기간 가운데 소홀히 하지 말아야할 것은 방학이다. 방학을 잘 활용하게 되면 사역언어 구사에 있어서 커다란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바로 방학 시간을 강의나 설교 사역에 투자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보강이 필요한 부분을 알게 되어, 앞으로의 공부 방향을 설정할 수 있다. 그렇지 않고, 언어훈련 기간을 일반언어 습득에만 사용할 경우, 그 기간이 끝나고 나서도 다시금 사역언어를 배우는데 또 다른 시간이 소요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파송교회는 언어훈련을 마치고 곧바로 사역에 들어가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또 다른 언어훈련 과정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하기 어렵다.
방학이 되자 중국의 이곳 저곳을 다녔다. 첫 해에는 조선족 동포로 하여금 통역을 하도록 했다. 아직 강의나 설교를 할 만큼 중국어를 구사하지 못하는 것이 주된 이유이기도 하지만, 사역언어를 배우는 또 다른 기회였기 때문이다. 한국말로 이야기를 하면, 통역자가 곧 바로 통역하여 주기에, 내가 표현하고 싶은 말이 어떻게 통역되는가를 실시간으로 체득할 수 있었다. 만약 말을 놓치면 반복하여 이야기를 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고 노력했다. 두 번째 해에는 통역자를 옆에 있게 하고, 중국어로 말하기 어려운 부분만 통역하게 했다. 물론 통역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시간이 흘러, 드디어 통역자없이 강의하는 시간이 되었다. K성에 있는 전도자 겨울훈련과정인 것으로 기억된다. 공을 들여 다니엘서를 주제로 하여 강의안을 작성했다. 신학사전과 각종 자료를 동원했다. 되도록 고급 단어를 사용하여 주요 내용을 한 마디로 이해시켜야 겠다고 생각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시간 시간 최선을 다해 강의에 임했다. 마지막 시간이 되어서 평가시험을 치뤘다. 결과가 나왔다. 평균 0점.
전도자들의 0점짜리 답안지를 들여다보며, 충격을 금치 못했다.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말인가? 지난 한 주간 목이 터져라 했던 강의는 도대체 누구를 향해 한 것인가? 전도자들의 수준이 낮아서인가? 그 노력과 수고는 다 어디로 간 것일까?
그 원인은 이러했다. 첫째, 사용했던 단어들이 전도자가 쓰는 것과 달랐고, 표현도 한국식이어서 그들이 많은 부분을 알아듣지 못했다. 둘째, 중국어에 있어서 중요한 것이 성조인데, 이를 부정확하게 발음하여 종종 다른 뜻으로 해석했다. 셋째, 간혹 알아듣는 말이 있어도 내용이 난해하여 이해할 수 없었다. 한 마디로 말해서 헛수고를 한 것이었다.
이 일을 통해 받은 중요한 교훈이 있다. 그것은 아무리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이야기해도, 대상자가 이해하지 못하거나 다르게 이해했다면, 그것은 소음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표현은 되도록 쉽게 해야 하고, 특히 단어 하나 하나의 성조를 소홀히 생각해서는 안된다. 사역을 거듭하면서, 나름대로 경험이 축척되었다. 상황에 따라 적절하고 다양하게 표현하는 방법도 체득했다. 나의 의사를 상대방에게 전하는데 그다지 큰 어려움을 느끼지 않게 되었다. ‘이정도면 되겠지’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복병은 금새 그 모습을 드러냈다. 사역언어 수준이 늘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는 안타까운 현실이 바로 그것이었다. 감옥 안에서 방 안을 빙빙 돌면서 창 밖에 날아다니는 제비를 보는 기분이었다. 입에 여러 개의 자물쇠가 채워진 것 같았다.
너무 답답했다. 그래서 문법책을 처음부터 다시 보기도 하고, 사자성어를 외어보기도 하고, 고급 중국어 책을 들여다 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에서 나오는 말은 여전히 그 수준이었다. 어느 날 문득, 자신에게 이런 질문이 던져졌다. ‘내가 중국어로 이야기하려는 내용이 무엇이지? 그 내용의 중심에 무엇이 있지?’ 마음 안에서부터 간단한 답이 흘러나왔다. ‘그것은 당연히 성경이지.’ 섬광과 같은 것이 머리 속을 지나갔다. 문제점은 사역언어의 본질인 중국어 성경과 나의 거리에 있었다는 것이다. 중국어 성경이 내 안에 잘 녹아들어가 있지 않다면, 제 아무리 공자와 맹자의 이야기들을 늘어놓는다 하더라도, 사역언어는 그저 그런 수준에 머물 수 밖에 없다는 말이다. 그 날부터 성경암송 카드를 만들었다. 그리고 한 절 한 절 암송하기 시작했다. 한편으로 아침 마다 일정량의 성경을 크게 소리내어 읽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입에 채워져 있었던 자물쇠가 하나 둘 씩 열리는 듯한 해방감을 맛보았다.
제언
언어는 소통하고자 하는 내용을 정확히 이해하고, 또 이해시키는 수단이다. 그 출발점에 발음이 있다. 발음이 정확해야 한다. ‘아버지’와 ‘이바지’가 뜻하는 바가 전혀 다른 것과 같은 이치다. 발음 습관은 해당 언어를 처음 배울 때 형성된다. 그러므로 중국어를 어디에서 처음 배우는가가 중요하다. 가장 좋은 것은 중국 땅에서 표준어를 구사하는 중국인 교수진에게 배우기 시작하는 것이다. 가장 좋지 않은 것은 한국어로 발음을 적어놓은 책을 가지고 공부를 시작하는 것이다. 사역언어도 같은 맥락을 갖는다. 사역언어는 사역 현장에서 배우는 것이 좋다. 그런데, 사역 현장이 없는 사람은 어떻게 하는가? 이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없다. 주변에서 만난 중국인에게 중국어를 사용하여 예수님을 믿으라고 말하는 것이 사역 현장이다. 그와 친구가 되고, 교제하면서 인생에 대해서, 신앙에 대해서 차근차근 설명하는 것이 사역 현장이다. 자신의 사역현장을 만들고 그 안에서 중국어가 뛰놀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에 더하여, 팀 사역이 사역언어의 발전에 큰 도움이 됨을 덧붙이고 싶다. 대부분의 팀에는 규모가 있는 사역 현장이 있다. 제직 집회, 주일학교 교사훈련, 목회자 훈련, 전도자 훈련, 신학생훈련 등 다양한 수준과 형태의 현장을 접할 수 있다. 또한, 선임 선교사들에게 사역언어에 대한 적절한 지도를 받을 수 있다. 그리고 선교사들 서로에게 도전도 받게 된다. 동료 선교사의 사역언어가 눈에 띄게 발전했을 때, 자신도 뒤쳐져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더욱 노력하게 된다.
나가며
이 글을 관심있게 읽는 분은, 아마도 필자와 같은 험난한 중국어의 길을 걷거나 앞으로 걷고자 하는 분일 것이다. 비록 사역지는 다르다 하더라도 같은 길을 걷는 분들이 있다는 것이 기쁘다. 완벽한 사역 중국어를 구사하는 분도 있을 것이나, 내게 있어서 그 길은 아직도 멀고 험하다.
그래서 강단에 서서 중국어로 강의나 설교를 할 때마다 한편으로 두렵고 한편으로 성도들에게 미안하다. 그럼에도 나의 미흡한 사역 중국어를 사용하셔서 중국의 사랑하는 영혼들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에 감격한다.
최한빈 / 중국선교사
'선교(영원한사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중국선교와 사역중국어 - 더 높은 곳을 향하여 (김란) (0) | 2008.12.14 |
---|---|
[스크랩] 선교와 중보기도 (0) | 2008.12.14 |
[스크랩] 선교사의 위기관리 기구와 위기관리 지침 (0) | 2008.12.14 |
[스크랩] 중국인 선교사 7만명 배출 실현 가능 (0) | 2008.12.14 |
[스크랩] 중국교회를 깨워라 - "복음의 땅 끝은 어디인가?" (0) | 2008.12.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