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교회를 깨워라 - "복음의 땅 끝은 어디인가?"
"중국교회를
깨워라"는 제목의 이야기 글을 몇 번으로 나누어 쓰려 한다. 첫 번째로 쓰고자
하는 이야기 글은 중국교회를 깨워야 할 배경으로 "복음의 땅 끝은
어디인가?"에 대해서이다. 그리고 다음 이야기 글로 중국교회를 깨우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며, 또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쓰고자 한다.
이제
그 첫 이야기 글을 시작하자.
태초에 하나님께서는 하늘과
땅을 창조하심으로 사역을 시작하셨다. 이는 당신의 모양과 형상을 따른 사람들을
창조하기 위한 기초사역이셨다. 왜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려고 하셨을까? 하나님은
영광받기를 원하셨다. 이를 위해 하나님은 친히 사역을 시작하지 않으실 수 없었다.
영광받으시기를 원하신 것이 하나님께서 사역을 시작하신 가장 큰 원인이요, 목적이셨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사람을 만드시는 사역은
엿새동안에 완성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만드신 하늘 과 땅, 그리고 그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을 만드신 일로 대단히 만족하셨다. 따라서 성경은 하나님께서 "심히
좋아하셨다"고 증거하고 있다.
당신의 모양과 형상을
따라 사람을 만드시고 그들을 에덴동산에 머물 게 하시고 일곱째 되는 날에 하나님은
쉬셨다. 그리고 그 날을 복되게 하사 안식일로 정하셨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만드신 사람들로 하여금 안식일을 영원한 규례로 삼아 거룩하게 지킬 것을 명령하셨다.
태초의 안식일 이후로 하나님은 사역을 멈추셨는가?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태초 이래로 지금까지 일하고 계신다. 하나님께서는 졸거나 잠을 주무시지도
않으신 채 여전히 쉬지 않고 일하시고 계신다. 태초에 창조하신 첫 사람 아담과 하와가
당신의 창조적 목적을 이루지 못했기에, 그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서는 하루도 쉬지
않으시고 계속하여 일하고 계신 것이다.
하나님은 일하시되
태초부터 지금까지 일정한 질서에 의해 일하셨다. 그 질서는 하나님의 사역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원리이며, 불변의 원칙이기도 하다. 이러한 하나님의 질서는 태초
이래로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 앞으로도 하나님의 목적이 이루어지는 그날까지
결코 바뀌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하나님의 불변의 질서! 그것은
무엇인가? 태초부터 적용될 하나님의 질서는 언제나 서쪽과 관련이 있었다. 이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은 분명하고 단호하다. 동쪽에서 서쪽을 향한 하나님의 질서는
태초부터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 번도 바뀐적이 없었다고 성경과 역사는
분명하게 증거하고 있다.
이에 대한 자세한 글은 다음카페
MyLoveChina의
게시판 [080
서쪽을 향하여]에
올려진 모든 글들을 한번 읽어 볼 것을 권한다. 그러면 하나님의 질서가 어떻게 태초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성경적으로, 또는 역사적으로 변함없이 일관되게 "서쪽을
향하여" 이어지고 있는 것인지를 공감하게 될 것이라 믿는다.
흔히
그리스도인을 가르켜 '예수님께 속한 사람'이라고 한다. 예수님께 속했다는 것은
소유격에 대한 의미이다. 즉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의 소유'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소유로서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하나님의 말씀 즉, 성경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야 말로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일이 된다.
성경에 기록된 모든
말씀은 어느 한 귀절 중요하지 않은 말씀이 없다. 어느 말씀 하나도 결코 소홀히
여길 수 없는 소중한 말씀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에 기록된 수많은 말씀들
중에는 특별히 유의해야 할 예수님의 말씀이 있다. 이것을 우리는 [예수님의
지상명령(至上命令)]이라고 한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이미
내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잘 알고 있으리라 여긴다. 그렇다. 사도행전 1장8절에
기록된 말씀으로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하신 말씀이야 말로
예수님이 자기에게 속한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최고의 명령이다.
우리가
예수님의 지상명령이라고 하는 사도행전 1장8절의 말씀을 다시 한 번 묵상해 보자.
이 말씀의 진정한 의미를 묵상하려면 1장4절의 말씀부터 읽어보아야 한다. 시방 이
글을 계속하여 읽기 전에 성경을 펴서 사도행전 1장4절부터 8절의 말씀을 다시 한
번 읽어보자.
.............................
너무
잘 알고 있는 내용이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사하시려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셨다가
3일만에 부활하신 후, 이 세상에 40일을 더 머무셨다. 그리고 500여 제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승천하셨다. 예수님의 지상명령은 바로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특별히 당부하신 말씀으로, 이 세상에는 마지막 명령이기도 하다.
뭐라고
말씀하셨는가? 이 말씀은 두 가지 내용으로 분류할 수 있다. 그 첫째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는
당부요, 둘째는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땅 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되리라"는 당위성에
대한 선언이다. 전자는 조건부적인 예수님의 명령이라면, 후자는 조건의 달성으로
인해 이루어질 당연한 결과에 대한 예고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는 말씀이 조건부적이라 함은 제자들이 왜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아야 할 이유로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즉 "성령을 기다리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후자의 말씀은 전자의 조건이 달성됨으로 인해 당연하게
이루어질 결과로 성령을 받은 제자들의 삶이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예언적
선언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창조적
질서와 맥락을 같이 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것은 예수님의 증인이 되려면 먼저
성령의 충만함을 받기까지 기다려야 함이요, 성령의
충만함을 받게 되면 당연히 서쪽을 향하는 뜨거운 열망에 사로잡혀 예수님의 증인된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라는 깨달음이었다.
오늘날 교회의 역사가
동쪽에서 서쪽으로 진행되어 왔음을 부인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따라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서쪽을 향하여 복음을 증거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며 많은 이론들이
활발하게 제기되고 있다. 이로서 [서진(西進)]이라는 말이 선교에 중요한 화두가
된지 이미 오래되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사마리아까지의 방향은 누구나
쉽게 이해한다. 그렇지만 최종적인 "땅 끝"에 대한 의견은 다양하다. 비교적
많은 이들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땅 끝"을 광의적 의미를 부여하여 이해한다.
따라서 이런 이들은 "전방위적인 모든 미전도지역이 땅 끝이다"라는
논리를 펼친다.
과연 그럴까? 성경에 기록된 내용이 전방위적인
의미를 이야기하는 것일까? 오해하지 말라. '아니다'라고 부정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런 깨달음도 매우 소중하고 귀하다. 복음은 누구에게나 증거되어야 할 이유가 있다.
복음에서 소외되어도 무방한 사람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한 사람도 없다. 모두가
구원받아야 할 소중한 영혼의 소유자들이 분명하다.
그렇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질서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의 질서는 "땅 끝"을
결코 막연하게 전방위적인 의미로 나타낸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질서는
분명 어느 한 방향을 가르키고 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을 뿐이다.
따라서 지금까지 교회의 역사가, 아니 하나님의 뜻이 그 질서에 의해 진행되었음을
결코 좌시하지 말자는 데 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땅 끝"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많은 사람들이 이 말씀을 역사적인
관점으로 만 이해하려고 한다. 교회역사의 큰 흐름이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에 복음이 증거되면서, 유럽을 거쳐 대서양과 태평양을 건너 아시아의
시대가 임하였음으로 모든 것을 이해하려 한다.
물론 또 다른
이해가 있음을 알고 있다. 따라서 각자의 깨달음을 따라 "땅 끝"에 대한
많은 이론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많은 이들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예수님의
증인된 삶을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하여 자신이 깨달은 바 "땅 끝까지"
이르기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다. 참으로 아름다운 삶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땅 끝"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필요하다.
이를 위하여 가장 중요한 것은 '지구는 둥굴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일이다. 둥근 것의 끝을
아는가? 둥근 것의 끝은 어느 특정한 곳을 찍어 '여기가 끝이다'라고 어설프게 말할 수 없다.
끝은 분명히 있겠지만, 아무 곳이나 '여기가 끝이다'라는 논리는 합당하지 않다.
둥근 것의 참된 끝은 어디일까? 그것을 알 수 있는 가장 근접한 방법이
있다. 그것은 어느 한 곳에서 시작하여 일정한 방향으로 둥근 것을 한 바퀴 돌아서 처음 시작되었던 곳에 이를 때에
비로소 '끝'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둥근 것의 끝은 처음 시작했던 곳과 일치한다.
제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은채로 움직이지 않으면 그곳은 시작도 끝도 아니다. 움직임과
함께 시작과 끝을 바르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와 같은 관점으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땅
끝"을 이해하려면, 가장 먼저 복음이 처음 증거되기 시작했던 예루살렘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유대"의 지역을 알고, "사마리아" 지역을
알아야 한다. 그 후에 복음이 유럽에 증거된 배경을 알아야 하고, 대서양을 지나고
태평양을 건너 현재 복음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를 정확하게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
2008. 12. 12 (금)
글/
불꽃 石一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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