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관통로, 중국의 관문도시 따통(大同)
따통시는 산시(山西)성 북부, 만리장성이 이중으로 겹쳐 있는 내장성(內長城)과 외장성(外長城)의 중간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그만큼 중국 역사상 방어의 요충지였다. 또한 중국 역사문화의 고도(古都)라 할 수 있는데, 가장 큰 매력은 중국 3대 석굴중의 하나인 윈깡(云岡)석굴이다. 산업도시인 따통은 석탄 먼지로 덮여 있어 도시 자체는 그리 큰 매력은 없으나 역사적 관점으로 볼 때 의미 있는 곳이다. 지리적인 위치로 말미암아 중국 북부의 정치, 경제, 군사, 문화, 불교의 중심지로서 오랜 세월 번영을 누렸다. 북위(北魏)의 수도, 요(遼)와 금(金)의 제2의 수도 서경으로, 명(明) ․ 청(淸)의 군사적 요충지였던 따통은, 명말 청초에 상업으로 전성기를 맞이하기도 했으며, ‘차와 말의 길(車馬之路)’ 이라고 불려지기도 했다.
인구와 행정구역
전체 인구는 284만 8천 명이고, 그 중 농업인구가 60%이다. 한족이 99%이고, 멍구족, 만족, 후이족, 짱족, 먀오족, 조선족 등 소수민족이 있다. 행정구역은 크게 4개의 구인 성구(城區), 광구(鑛區), 남교(南郊), 신영(新營)과 7개의 현(대동현, 천진현, 양고현, 혼원현, 영구현, 광영현, 좌우현)으로 구성된다.
지리
따통은 평균 해발이 1,056m 정도로 황토고원에 위치하고 중부는 하천분지이며, 동부는 토석산으로 이루어져 있다. 산시성 북부와 서부, 내몽고 자치구에 접해 있다. 전체 지형이 남북은 높고 중간은 낮은데 서북 산악, 동남 산악의 양대 산악으로 이루어져 있다. 주위에는 30여 개의 크고 작은 화산군(火山群)이 자리잡고 있기도 하다.
기후와 교통
온대 대륙성 계절풍기후로 연평균 기온 6.8℃이다. 겨울이 길고 한랭건조하며 여름철은 짧고 온열기후로 강수량이 많다. 봄과 가을은 시원하고 상쾌한 편이다. 사계절이 분명하고 낮과 밤의 온도차가 현저하다. 연평균 강수량은 400㎜ 정도이며 7~9월 3개월 동안에 집중적으로 내린다. 황토고원 동부와 태행산맥이 교차하는 지대에 있어 지형이 복잡하고 다양하기 때문에 다종다변의 기후를 형성하고 있다. 따통은 징빠오(京包)선을 비롯한 여러 철도의 중심지이며 동으로는 베이징(北京)과 380㎞ 거리에 인접해 있고, 내몽고, 산시, 허베이 등과 철로 및 여러 도로들로 연결되어 있어 경제유통의 중요한 맥의 역할을 하고 있다.
역사
역사적으로 중국의 ‘북방의 열쇠’라 할 만큼 군사적으로 중요한 곳이었다. 따통은 지금까지 2,230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 원래 중국 북방 흉노족의 땅이었고, 역사 속의 등장도 이들과의 전쟁과 함께 시작되었다. 진(秦)대와 삼국시대에는 평성현으로 일컬어졌고, 양진(兩晉) 시대에는 선비족이 점령하여 다스렸다. 이를 계기로 따통은 중국 북방의 정치, 경제, 문화 중심이 되었다. 이후 1500년 간 따통은 북위(北魏)의 수도로 오랜 기간 동안 북방의 중심도시로 자리 잡았다. 명 ․ 청대에는 군사적 요충지로, 명말 청초에는 상업도시로 전성기를 맞기도 했다.
교육 ․ 문화 ․ 경제
산시성 제2의 도시인 따통은 교육, 문화, 행정, 경제, 관광의 중심도시 역할을 하고 있다. 윈중(云中)대학을 비롯한 고등교육 기관과 각종 문화 시설을 갖추고 있다. 따통의 경제적 기반은 관광과 석탄 중심의 광업인데, 관광 자원은 단연 윈깡석굴이 으뜸이다. 북위시대 460년 경부터 조각된 크고 작은 5만이 넘는 불상을 보기 위해 세계 각국에서 관광객들이 모여 들고 있다. 그 외에도 선화사, 구룡벽, 흥국사, 고루(古樓) 등 불교 명승지와 당대(唐代) 건축물 청진사 등이 있다. 따통은 또한 중국 공업산업의 에너지원이라 할 수 있다. 전국 석탄매장량에 있어 큰 위치를 차지하는 석탄 도시이다. 광산자원이 풍부하고 종류가 다양하여 시멘트 산업을 비롯한 광공업 발전의 기반을 갖추고 있고, 또 토지가 비옥하여 농업이 발달하였으며 농업자원도 풍부하다. 지금은 성(省)직할시로 산시 북부의 행정 중심도시이자 내몽고 지역의 관문도시로서 경제무역 상 큰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종교 및 기독교 상황
윈강석굴의 명성 만큼이나 따통은 불교문화가 지금까지 큰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북방 민족의 거친 기질과 섞여서 독특한 성향을 띠고 있다. 기독교는 1886년 영국선교회의 선교사가 들어오면서 시작되었다. 교회가 세워지고 복음과 함께 질병치료, 금연운동, 편물, 방직기술 등을 가르치며 정착되어 가다가, 1900년 의화단 사건으로 선교사들은 순교 당하고 교회는 파괴되었다. 그 후 스웨덴 선교사들을 비롯한 여러 선교사들이 들어와 다시 교회를 세웠다. 차이스자오(柴市角)교회(東堂)를 중심으로 병원(首善醫院)과 학교(民德小學, 간호직업학교) 등을 세우며 복음을 확장하고 여러 지방에 교회를 세워 나갔다.
그러다가 공산화된 후 삼자(三自)로 바뀌었다가, 문화혁명 때에는 차이스자오교회마저 불도저로 흔적도 없이 뭉개버렸다. 지금까지 따통에는 교회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최근 허름한 상가 건물 안에 작은 예배당이 허난과 베이징에서 들어온 전도자들에 의해 세워진 것으로 알려졌다. 정확한 수는 알 수 없지만 가정교회도 활발히 세워지는 등, 춥고 어두운 이 땅에서도 복음은 점차적으로 확장되어 가고 있다.
* 기도제목
1. 따통에 있는 교회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하며, 이 교회를 통하여 복음을 듣고 구원받는 자가 많아지도록
2. 역사적으로 어두운 영들이 덮고 있는 그 땅을 향하여 나아가는 헌신된 사역자들이 많이 일어나고 보내어 주시기를
3. 베이징에서 가까운 거리이므로 베이징에 있는 여러 선교단체의 관심이 그 땅에도 미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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