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기독교

[스크랩] 삼자애국운동의 성격과 주요 사상

수호천사1 2008. 10. 27. 22:33

삼자애국운동의 성격과 주요 사상

 

 

1) 성격

 

삼자 애국운동은 집권 중국 공산당의 종교 정책을 수행하기 위해 만들어진 "애국적 종교조직"이다. 때문에 중국에는 공식적으로 교파가 삼자 교회하나뿐이다. 삼자교회는 흔히 알려진 것처럼 중국정부의 어용교회는 아니다.6 다만 중국정부의 통제를 받기로 합의가 되어 있는 교회로, 예배 및 신앙 정신의 자유는 허락 받았지만, 전도 활동의 자유가 없는 교회이다. 공개 교회란 삼자교회로 대부분 기독교 삼자 애국운동위원회에 가입되어 있는 교회인데 공개 교회에는 삼자교회 외에도 정부의 허가를 받은 도 다른 교회들을 포함한다. 이들은 1940년 이후에 종교집회 장소를 등록하는 과정에서 일부 교회들이 합법적이고 공개적인 활동을 할 수 있는 교회를 정부에 등록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은 삼자애국운동 조직에 참여하기를 거부했다.

 

삼자애국운동은 삼자를 기초로 삼아 이루어져 있는데, 여기서의 삼자란 자치, 자양 자전의 약자이지만 1930년대의 중국 교회의 자립 운동과는 현저한 차이가 있기 때문에 이 운동의 성격은 철저하게 교회 혁신 운동과 반제국주의 운동, 애국 운동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즉, 삼자애국운동은 20세기초인 20-30년대부터 시작되었지만 중화인민공화국 설립 이후 성격이 바뀌어 새로운 운동으로 전개된다. 이것은 공산당 정권의 통제로 실시되다가 문화대혁명이 시작되자 모든 삼자교회는 문을 닫는다. 그러다가 70년대 초 중국과 미국이 수교하면서 서양사절단을 배려해 다시 열게 되었다. 삼자교회는 중앙 정부의 통제와 탄압 정책 하에 어렵게 작은 공간을 확보할 수 있었고, 이러한 교회들 안에서 그리스도인들은 공개적으로 예배와 정상 종교활동을 할 수 있었다. 정부측 삼자애국 운동을 이끌어나가고 있는 삼자교회의 지도자들은 법률에 합당한 종교활동을 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정부측의 통제는 받는다 하더라도 그 안에서 삼자교회측은 이 합법적으로 공간을 늘리기에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삼자애국운동의 정치적인 성격으로 인해 이 운동에 저항한 사람도 많았는데 이들은 반혁명분자로 낙인 찍혀 대부분 1955년과 1958년의 두 차례에 걸쳐 토옥되었다.

2) 사상

 

① 자치-자신들이 주체가 되어 이끌어 가며

 

② 자양-자신이 신자와 목회자들을 길러낸다.7

 

경제적 자립은 1940년대 이후부터 중국개신교가 당면한 가장 절실한 문제중의 하나였다. 이 현실에 대응하기 위해서 중국 교회는 기관들과 교회가 교육 의료 사회 사업 등을 통해서 최선을 다했으나 결국 이렇게 하자면 외국의 자금에 의존하는 길 밖에 없었다. 특히 농촌교회는 상황이 심각했는데 이렇게 되니 중국교회는 외국의 선교단체에 손을 벌릴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일반 불신자는 혜택을 받을 수 없었고 교회에 등록한 자들의 일부만이 도움을 받았고 이렇게 되니 교회는 중국인민들과 거리가 점점 더 멀어져 중국인들의 의식 속에 교회가 외국의 것으로 인식되었다. 대체로 개신교는 나라의 어려움을 빌미 삼어서 선교사에 붙어서 밥벌이를 하고 있다는 인상을 중국 지성인들에게 주었고 교회에 출석하는 이유가 쌀을 구하기 위한 방편으로까지 전락하는 경우도 허다했다.

 

또 다른 문제로는 외국 선교회가 중국에 심어준 교파주의의 병페였다. 본국 교회나 산교회가 자기 교파의 세력을 확장하기 위해서 중국 안에서까지 교파주의를 깊이 심어주었다.결국 외국선교사의 선교 목적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심는 일에 열을 올리기보다는 자기 교파의 수적 확산들의 국가나 인민들에게 봉사하기 이전에 외국 선교회에 충성해야 했다.

 

이런 방식으로 외국의 지원에 의존한 중국 교회는 점점 더 외국적인 것이 되어갔고, 민족의 문제와는 점점 더 멀어져 갔다.

 

1950년 '티엔' 펭(천풍) -> 삼자교회의 공식 잡지 의 한 사설은 이에 대한 위기의식을 말하면서 이제 중국교회가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는 길은 자립의 길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경제적 자립을 이룩하려는 새로운 중국 교회에 있어서 다음의 4가지 어려움이 장애물로 떠올랐다. 첫째는 중국의 형편을 고려하지 않은 교회건물 건축의 난립과 운영에 대한 경험 미숙이다. 둘째는 자신들의 호구지책도 어려운 재난이다. 섯째는 교언들의 자립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다. 십일조 정신이 제대로 시행되지 못했고 자기의 책임분량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 이것은 역시 선교부의 경제원조 때문이였다.

 

결국 교회의 자양과 자치 노력은 사회주의 국가 건설과 연결될 수밖에 없었다. 교인들은 시화주의 사회가 제대로 발전될 때에 경제적인 빈곤이 없어진다고 믿고 생산적인 노동에 참여하는 운동을 벌였다. 사회주의에 대한 지지는 중국개신교가 모든 경제적 문제에 대해서 새로운 전망을 발전시켰음을 의미한다. 즉 자치, 자양의 중국 교회는 중국 전 인민과 함께하는 교회의 모습으로 바뀌어진 것이다. 이제는 더 이상 자신들을 교회 밖의 인민들과 구별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그들과 공동보조를 취하면서 사회주의 사회의 건설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된 것이다.

 

③ 자전-스스로 복음을 전한다.

 

자치나 자양이 49년 이후 새로운 중국에서의 교회 상을 모색했다면 자전은 신학적 문제를 제시했다고 말할 수 있다. 기독교의 복음이 새로운 중국의 상황 속에서 어떻게 하면 중국적인 것으로 이해되고 해석될 수 있는가가 문제인 것이다. 이제까지의 복음증거가 외국선교사에 의하여 외국식으로 이루졌고 패권주의에 유리하도록 전달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진짜 중국인민들을 위한 복음 증거, 즉 자전은 따라서 삼자 애국운동의 핵심적 내용을 담고 있다.

 

이것은 기독교가 중국인민들을 위한 전도로 이루어져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자전의 출발점은 중국의 혁명적 운동 안에서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 기독교의 증거나 공감대를 찾는 결단에 있다. 이것은 과거의 증거와 개념이 다른데 과거의 증거란, 사람들을 기독교 울타리 안으로 끌어오는 것을 의미했다. 울타리밖에 있는 양들은 빨리 구원하여 울타리 안으로 이끌어오는 행위가 복음 증거요 전도였다. 그러나 자전에서는 그와 반대로 예수께서 하신 말씀, 즉 "내게는 이 우리 안에 있지 않은 다른 양들도 있다. 나는 그 양들도 데려와야 한다. 따라서 이미 교회 안에 들어와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 말고 교회 밖에 있는 중국인민들 모두를 하나님의 백성들로 이해한다. 이런 상황 속에서 중국 기독교는 더 이상 중국 전체와 구별된 서양의 한 분파가 되어서는 안되며 어디까지나 중국 전체를 위해 존재해야 한다. 따라서 복음은 300만 명의 것만이 되어서는 안되고 전체 인민의 것이어야 한다는 관점에서 이해하는 것이 자전이다. 즉, 누가 설교 하냐에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구의 이익을 위해 그 설교가 공헌하는가에 있다.

이렇게 삼자란 자치, 자양 자전의 약자이지만 1930년대의 중국 교회의 자립 운동과는 현저한 차이가 있기 때문에 이 운동의 성격은 철저하게 교회 혁신 운동과 반제국주의 운동, 애국 운동을 의미한다. 이상의 원칙 속에서 기독교인들은 사회주의 사회 건설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기독교의 신앙을 증거 할 수 있음을 구체적인 실천 속에서 터득하게 되었다. 다른 인민들이 사회건설을 위해서 주일에 공장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을 때 자신은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공장의 일을 그만두고 빠져 나와서 교회에 나가야 하는가? 혁명 이전의 신앙 증거에서는 어떤 일이 있어도 교회에 출석하는 것이 신앙의 순수성을 지키는 것이었다. 그러나 자전을 통해 일터에서 머물러 일하면서 신앙을 증거함으로써 믿지 않는 다른 동료들과 구별되지 않은 채 더 나은 사회 건설을 위해 일하게 되는 것이다. 공자에서는 모범 노동자가 되는 것, 학교에서는 모범 학생이 되는 것, 농장에서는 모범 농부가 되는 것이 참 기독교의 증거라고 말한다.

이와 같이 삼자 운동은 중화인민공화국의 종교 정책을 위한 운동이었으므로, 교회는 예배나 기독교의 본질을 탐구하는 등 인간의 내면적인 일체의 종교활동을 하기에 어려움이 있다. 특히 유물론에 기독교의 본질이 회석되어 그 흔적조차 찾아 볼 수 없게 되고 말았다.

출처 : MyLoveCh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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