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기독교

[스크랩] 전문인 선교의 입장에서 본 중국 교회의 건설적인 미래상 (김태연)

수호천사1 2008. 10. 8. 15:13

전문인 선교의 입장에서 본 중국 교회의 건설적인 미래상

 

 

서론

 

  필자는 2008년 중국의 모습을 조망하면서 중국 교회를 통하여 동남아시아와 중동으로 복음을 전하러 떠나가는 새로운 모습의 중국 전문인 선교를 생각해 본다. 따라서 이 글은 한국인들에 의한 중국에서의 선교의 방법만을 이야기하는 민족적 편협주의에서 벗어나서 한국의 전문인 선교의 방법을 중국 교회와 중국 선교단체에 직간접적으로 소개하고 더불어 잘되기를 원하는 심정으로 쓰는 것이다. 중국 교회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도 있지만 건설적으로 컨설팅을 하는 입장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고 중국의 진실된 무명의 전도자에게도 그 수고를 칭찬하면서도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중국 교회에 하고 싶은 말

 

  중국의 신학은 정광훈의 신학이 주도적인 것을 알 수 있다. 필자가 18년 전에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할 때에 우리 신학교에 와서 예배 시간에 특강을 하신 정광훈 주교의 메시지는 보수적인 신앙의 입장에서 보면 힘이 없어 보였다. 복음의 핵심인 빌립보서 3장 10-12절의 내용이 빠진 것이었고 빌립보서 2장 5-9절까지의 자기비하의 교리를 실천하지 못하는 것이 중국의 삼자신학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2003년 현재에 이르러서 정광훈의 신학을 보면서 권리의 양도 및 제한(limitation)을 통한 사역을 하셨던 예수님의 정신을 배우기만 한다면 중국 기독교는 한국 그 다음 주자로서 성령의 불을 받아서 세계선교의 마지막 주자로 쓰임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이신득의를 부인하고 이애득의(사랑으로 의롭게 됨)을 주장하고 있다고 하는데, 우리는 이신득의가 자신의 의(self-righteousness)가 아닌 하나님의 의(the righteousness of God)라고 하는 차원에서 진리를 고수해야 하기에 이애득의를 이야기하는 것은 아직도 하나님의 사랑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기적인 신학자의 변명일 뿐이다. 정광훈을 누가 진정으로 존경을 하겠는가를 스스로 생각을 했다면 하나님의 자리에 본인이 들어가지 않고  차리리 중국의 바울이라고 칭찬을 받는 왕명도를 집어넣어야 더욱 크리스천들에게 칭찬을 받을 터인데 거기까지 미치지는 못한 것이 이상하다.

 

  무슨 이유로 성경의 겉장과 마지막 장을 남기고 다 부인하는 자유주의 신학을 주장하는가? 우리가 노자의 도덕경의 첫 장과 마지막 장만을 남기고 다 부인하면 중국인들은 마음이 기쁠 것인가? 상식이 통하는 광대심을 가지고 성경을 접하고 선교사들을 대해야 중국은 복을 받는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복이라고 하는 것은 ‘도복’이라고 하는 부적을 차에 달고 다녀야 받는 것이 아니라 피를 흘리다(bleed)에서 온 복(blessing)의 의미를 바로 알아서 중국교회가 희생을 통해서 북한, 동남아시아, 중동 등 영적으로 작은 나라들에 복음을 증거하는 역할을 할 때 하나님이 중국에 진정으로 복을 주시리라 믿어야 할 것이다.

 

  금릉신학교의 왕애명 교수는 신학개조운동을 한다고 하는데, 개조한다고 해서 개조가 되는 것도 아니고 성령의 역사로 하나님이 축복을 주셔야 새로운 피조물(고후5:17)이 되기 때문에 전문인 자원운동을 해야 한다고 제안하고 싶다. 전문인 자원운동이라고 하는 것은 중국의 크리스천 1억 2천만 명을  중국을 위해서 살고 싶도록 자율적인 의지에 의해서 스스로가 자신의 미래를 개척하도록 기회를 주어야지, 아직도 고자세적으로 개조를 한다고 하면서, 이미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수평적 네트워크에 의한 세계적인 사고를 하는 중국인들을 인터넷을 도청하는 것만으로는 순종하게 할 수 없다.

 

  그리고 전택민이 말하는 종교다원주의도 그렇다. ‘모든 종교와 모든 민족의 신은 같은 하나님이다’라고 하는 것은 부분적인 진리이다. 우리는 배타주의적인 입장을 취하지만 전문인 선교를 하는 입장에서는 포용주의의 입장을 취하게 된다. 그런데 종교다원주의라고 하는 중국인들이 자신의 입장만 고수하게 되면 하나님 대신에 이(reason)로 대치하여 생명력을 잃게 할 뿐만 아니라, 기독교를 여러 종교 가운데 하나로 만든다고 해서 기독교가 유일신 종교가 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유일한 종교를 믿는 기독교인들의 장점을 적극 활용해서 외화벌이를 한다든지, 이것이 기분이 나쁘면 기독교를 진정한 의미에서 인격적으로 종교개혁을 해서 누가 보더라도 중국의 교회가 이렇게 변화가 된다면 우리도 중국식 교회를 시도하고 싶다고 하는 고객감동 내지는 고객졸도를 이룰 수 있는 차원으로까지 변화가 될 때 중국은 세계 초일류강대국이 될 수가 있다고 본다.

 

  ‘삼자교회에는 구원이 없다’느니 ‘삼자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느니 하는 것은 1차원적인 구원을 말하고 있는 모양인데, 이 말은 한국의 구원파와 같은 이단시된 집단들에서나 사용하는 이분법적인 기계적인 사고를 하는 자들의 이야기이고, 우리는 전문인 선교를 하는 입장에서 움직이는 교회로서의 그리스도의 몸인 성도가 어떻게 생활 가운데 전도를 할 수 있느냐는 차원으로까지 신학논쟁을 업그레이드하는 것이 중국 교회에도 관심사가 되어야 한다고 본다. 최근에 야지 신학교에도 교리만을 가르치는 데서 벗어나서 선교학을 가르치기 시작하고, C.H.E.세미나를 C.D.E.세미나로 발전시켜서 진정한 의미에서 중국의 FELT NEEDS를 채워주면서 선교사역을 하는 것이 효과가 있는 것을 볼 때, 이제는 선교의 방법도 전문인 선교의 다양한 방법을 통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미국에서 현재 파송하는 선교사의 95%가 전문인 선교사로 알려져 있다. 이것은 지난 8년 사이에 목사 중심의 선교가 전문인 자비량중심의 선교로 패러다임의 전환을 하게 된 것을 단적으로 보여 준다. 그러므로, 중국의 삼자교회는 한국에서 파송한 목사 출신의 선교사가 엄청난 일을 하리라고 생각하여 추적하는 일로 시간을 허비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전문인 선교사들의 전략을 배워서 동남아시아와 중동에 선교사를 파송하는 일을 통해서 중화사상에 입각하여 자문화우월주의(Ethnocentrism)에 사로잡힌 중국이 2008년 전에 전 세계에 기독교에 우호적인 국가로 인정을 받는 것이, 인권 탄압을 잠시 중단하고 2008년에 달러라는 돈만 벌고 한국처럼 IMF를 당하는 하나님의 징계를 받는 국가로 바뀌는 것보다 훨씬 낫다. 좀더 긍정적으로 말하자면 국제사회에서 강성대국으로서의 이미지를 살려서 그처럼 대단한 중화사상에 입각한 선교정신을 가지고 주변의 가난한 나라들에 축복의 통로(the channel of blessing)가 되는 맏형의 나라가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혈맹지국이라고 하는 북한이 어떻게 해서라도 국가가 지도에서 없어지는 것을 막아보려고 6자회담을 수용하면서 애를 쓰고 있는 것을 본다면, 북한에 중국의 전문 직업을 가진 선교사들이 들어가서 북한이 경제적으로 살아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중국이 2008년 전에 해야 할 일이라고 본다. 

 

  필자가 중국의 어느 도시에 가니 주일 3부 예배 설교를 하기 원하면 언제든지 1,000$을 내면 설교할 수 있다고 하는 이야기를 듣고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왕서방이 번다’고 하는 말을 그대로 실천하는 것이 중국인이 아닌가 하는 기막힌 생각이 들었다. 왜 설교를 하고 사례비를 받아서 감사헌금을 드리고 와야지 마음에 상처를 주는 방법을 사용하는가? 한국의 목사가 명예욕에 빠진 자들인 줄로 착각을 하는 모양인데, 아닌 분이 더 많음을 중국 교회는 알아야 한다. 조선족 교회를 망친 책임을 중국 교회는 같이 져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중국의 삼자교회가 변하기를 원하는 것은  연목구어와 같다고 말한다. 이러한 비난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자유주의적인 선교의 방법인 자비량 전문인 선교에 기초하여 선교를 함으로써 세계의 복음주의적인 국가들로부터 인정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 굳이 재래식 방법으로 날아가려고 하지 말고, 미국이나 한국과 같이 기독교가 흥왕하는 나라들에 붙어가는 것도 한 방법임을 알고 전략을 softline으로 한번 전환해 볼 때가 되었다고 본다. 다 알고 하는 영적 게임인데 hardline만 고집하지 말고 좀더 세련된 superline을 써야 하지 않을까? 하나님이 중국에 주시고자 하시는 축복을 앞당길 수 있는 중국의 전략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중국 삼자교회의 삼자원칙도 다 중국을 살리기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중국의 공산주의 사상이 무너지고 유럽의 서구 기독교 사회주의에 대한 노선을 채택해야 중국이 앞으로 다가올 IMF에도 살 수 있다고 하는 것을 안다면, 중화사상에 기초한 삼자신학도 좀더 유연성(flexibility)을 가지고 성서적인 기초에 의거해서 변화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사도행전 18장 1-4절에 보면 사도 바울이 제3차 선교여행 당시에 재정적인 어려움을 당했을 때 장막을 깁는 일을 하면서 재정적인 자립을 시도했고, 스스로가 회당에 가서 복음을 증거하는 기회를 가진 것과 마찬가지로 중국의 교회는 1억 2천만 명의 교인을 가지고 있으며 교회의 예산을 마음만 먹으면 80%를 해외 선교에 쓸 수 있는 나라이다. 패러다임만 바꾼다면 2008년이 되기 전에 10만 명 이상의 선교사를 파송할 수 있는, 세계에서 선교사를 가장 많이 파송한 국가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숫자만 제일 많이 파송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중국인에 의한 ‘크리스천 팍스 시니카(Christian Pax Sinnica)’가 이루어지기를 소망하며 나아가야 할 것이다.

 

  중국의 삼자교회는 이미 공산당의 힘만으로는 통제 불가능할 정도로 중국이 세계 일류국가가 된다는 자신감이 있기 때문에 그 힘을 중국만을 위해서 쓰는 어리석음에 머물지 말고 중국으로부터 전래된 유교/불교를 아직도 신봉함으로써 가난하게 사는 주변의 모든 나라들에게 축복의 통로가 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미국이 비록 세속화되었으나 전세계에 축복을 나누어주는 전법을 쓰기 때문에 아직도 하나님의 복을 받고 있다고 본다. 중국이 축복을 나누어주는 나라로 된다고 해도 이제는 중국인들이 비난할 사람도 없고 오히려 큰 그릇으로 사용된다고 칭찬을 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중국에 들어와 있는 각종 선교사들을 A급, B급, C급으로 나누어 정탐하지 말고 그런 시간이 있으면 중국의 소수민족들에게도 전문인 선교사들을 통해서 저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공급하는 기술선교사들을 대폭 받아들임으로써 실리를 취하면 좋을 것이다. 우리는 전범이 아니다!

 

  필자는 정광훈의 신사상을 전문인사상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하여 제시함으로써 중국 교회와 선교사들에게 새 힘을 주고자 한다.

 

1. 하나님의 최고의 속성은 공의가 아니고 사랑이다

   하나님의 최고의 속성은 공의, 인자, 겸손의 삼위일체적인 사랑이다(미가서6:8)

 

2. 하나님의 최고의 일은 창조이지 구원이 아니다
   하나님의 총체적인 일은 창조-타락-구속-완성으로 이어지는 상관성이 있는 창조의 처음이요 마지막이다.

 

3. 성도가 부활을 믿는 것은 신앙의 세계관이 아니다. 우리는 영원히 사는 문제는 더 사고할 필요가 없다.
   당신이 만일 암으로 죽어가는 당신의 부모나 자식을 보고 있다면 영원히 사는 문제에 대해서 이렇게 막말을 하지 않을 것이다. 기독교가 유일하게 모든 종교보다 우선하는 것이 부활의 신앙인데, 이것을 아니라고 하는 것은 손바닥으로 해를 가리는 것처럼 세련된 중국인 프롤레타리아들을 배반하는 행위이다.

 

4. 성경의 일은 치료하는 것이 아니고 먹어보지 못한 것을 먹는 것이며, 생각하지 못했던     많은 것을 생각하는 것이며 해보지 못한 많은 것을 해보는 것이다.
  성경은 구속사의 흐름이고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 가운데 구속받은 자녀로서 사는 것이다. 그러므로 고난이 와도 산 순교자로 사는 것이다. 공안이 선교사들을 잡아가는 것은 오히려 선교를 더욱 열심히 할 수 있도록 헝그리 근성을 심어주는 것임을 왜 모르는가?

 

5. 사람의 본성이 악한 것이 아니고 사람에게 죄가 없다.
   사람의 본성은 원죄, 자범죄, 고범죄에 의해서 씻을 수 없는 나이테와 같은 흔적을 남기고 사는 것이고 사람에게 죄가 없다면 하나님에게 죄가 있다고 하는 것인가, 스스로 판단해 보아야 한다.

 

6. 예수가 와서 하신 말씀 중에 말세의 소식은 기독교 신앙이 아니고.........
   필자는 이렇게 험한 세상에서 세속주의와 싸워가며 공산주의자들에게 선교하는 것이  어렵다면 빨리 주님이 다시 오셔서 중국 삼자교회와 갈등을 겪을 필요도 없이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모든 것이 다 해결이 났으면 한다. 아마도 중국의 삼자교회 교인들도 속내는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다 알고 계속 성도를 핍박한다면 고범죄로 인해서 심판을 받을 줄을 알기에 겁이 나서 주님이 다시 오시는 것을 부인하는 것은 아닐까?

 

7. 교회의 사명은 전도나 간증이 아니고 윤리도덕을 높이는 것이다.
   신자의 비세속성의 원리+전신자선교사주의=전문인 선교사
에 의거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게 되면 윤리도덕을 높이지 말라고 해도 저절로 북경대학교 철학과 교수처럼 윤리도덕을 지키는 군자가 될 것이다.

 

8. 이신득의의 교리는 도덕의 무용론을 부추기는 것이다. 그래서 당연히 이애칭의로 바뀌어야 한다.
   자기 자신을 위한 사랑이 아니라면 하나님의 의를 의미하는 구원의 이론에 기초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삶으로 나가는 것을 신학자라면 가르쳐야 한다. 양자가 다 필요하지 한 가지만을 옳다고 고집하는 것은 중국인답지 못하다고 본다.

 

9. 기독교는 회개만이 유일한 길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기독교는 회개를 통한 믿음을 통해서 구원을 얻는다고 말한다. 회개를 수시로 해도 되고 먼저 해도 되고 나중에 해도 되고 구원을 받은 후에도 원죄가 유전되니까 자주 죄지을 마음이 생각이 날 때마다 회개하면 된다. 공산주의도 이제는 지구상에서 다 끝이 나가는데, 고집하지 말고 중화사상에 기초하여 언제든지 공산주의에서 벗어날 수 있는 회개의 시간을 주신 것을 굳이 없애려고 하는 것은 중국 기독교 지도자답지 못하다.

 

10. 기독교는 믿음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움을 강의해야 한다.
    교리는 단순하게 해서 중국성도들이 이해하기 쉽게 하고 그 다음에는 누리는 신앙생할을 제시해야 아름다운 신앙생활이 될 수 있다.

결론:중국 컨설팅 선교의 길을 열자

 

   한국 교회가 선교를 말할 자격이 있느냐고 외치는 김세윤 박사님의 강의가 생각이 난다. 5%는 말할 자격이 있다고 본다. 2%라는 음료수도 있는 데 5%정도의 예산은 선교비로 쓰니까 음료수보다는 낫기 때문이다. 그러나 80%의 예산을 들여서 중국의 서부대개발이나 소수민족개발에 순수한 마음으로 성육신적으로 다 주고 온다고 하면 중국인들이 어떻게 반응을 보일까?

 

  한국은 미국 다음으로 선교사를 가장 많이 보낸 나라이며 선교에 대한  노하우도 비판적 상황 화에 의해서 저마다의 교단과 교파 그리고 초대형 교회들이 선교적 해석에 기초하여 생동감 있게 진행하고 있다고 볼 때, 한국 교회가 할 수 있는 일은 중국 교회와 win-win partnership을 형성하여 중앙아시아와 티벳, 인도 그리고 중동까지 복음이 silkroad를 따라서 역으로 서진할 수 있도록 협조해야 한다고 본다. 중국은 우리가 옛날에 속방이었다고 하는 애착을 가지고 정보통신 강국으로 성장한 한국을 다시 경제적으로 지배할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지난번 월드컵의 8강에 한국이 올라갔을 때 일본은 꼬리를 내리고 한국을 칭찬한 것에 비하여 중국은 심판판정이 불공정했다고 하는 집안의 탕자와 같은 소리만 하고 있었다. 그래도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아는 선민된 chosen people(조선사람)이 중국을 도와서 세계 제1의 강대국이 되도록 하고, 그 대가로 남북통일을 선물로 받는 컨설팅 선교를 사명으로 생각한다면 지나친 꿈인가 생각해 본다. 그리고 중국도 남한의 선교사만 따라다니지 말고 북한의 탈북자들을 선교사로 훈련을 시켜서 북한으로 돌려 보내줌으로써 북한도 하나님 앞에서 자유로운 국가가 되도록 협조하면 좋을 것이다. 남한은 알고도 속아주는 심정을 가지고 중국의 서부개발이나 소수민족개발 등에 얼마든지 진출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일을 위해서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응답대로 사는 생활전도자(life-style evangelist)들을 많이 일으키는 것이 궁극적으로 한국 교회가 중국선교에 효과적으로 참여하는 길이 될 것이다. 자신의 직업 가운데 중국을 이롭게 하고 생활 가운데 예수님의 향기가 되고 그리스도의 편지가 되는 신학교육이 한국 교회에 가장 중요한 시점이다. 거품을 빼고 실속 있는 인생을 사는 것을 배우느라고 1968년에 교회에 처음 나간 이래로 2003년 까지 36년이 걸렸다. 

 

  필자는 더 이상 의미 없는 일에 시간을 드리지 않을 것이다. 지금처럼 계속하는 중국선교는 20세기의 방법이다. 21세기의 방법은 다중적인 문화를 이해하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하나님이 이끄시는 대로 컨설팅 선교를 해서 서로가 승리하는 win-win partnership을 활용하는 일일 것이다. 

세속주의여!
더이상 크리스천들을 망치게 하면 이제 죽는다!

 

글: 김태연/ 한국전문인선교 훈련원장

출처 : MyLoveChina
글쓴이 : null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