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우리말

[스크랩] 찾아라! 한글의 미적. 경제적 가치 (차재경)

수호천사1 2008. 10. 7. 11:58



차재경 | 한글사랑운동본부 회장

 



경제적이고 빠른 의사소통 가능케 하는 한글


지난 8월 8일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에서 우리는 중국이 자신들의 역사와 문화를 얼마나 자랑스럽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었다. 종이와 화약, 나침반과 인쇄술이라는 세계적인 발명품을 자랑하는 엄청?쇼를 보았다. 그리고 그들의 한자는 유구한 중국 역사와 정신세계를 담아내는 훌륭한 글자임을 드높이는 모습도 보았다. 그러나 인쇄술은 바로 우리나라 고려가 12세기에 실질적으로 활판을 인쇄한 기록을 가지고 있으며, 한자 또한 상형문자로서 이루 다 말할 수 없이 어렵고 비과학적인 글자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간자체라는 지금의 한자는 그들의 사료에 쓰인 한자와 매우 달라진 것이 현실이다.


최근 컴퓨터가 매우 빠르게 대중화하고 정보통신 기기들이 다양하게 발명되어 우리의 한글 사용도 무궁무진한 발전을 보았다. 한글의 창제 원리가 어느 문자도 흉내 낼 수 없는 과학성을 지니고 있어서 한글을 쉽고 빠르게 접목해 쓸 수 있게 된 것이다. 인터넷 사용자들이나 휴대전화에 열광하는 ‘엄지족’이 한글을 더욱 빠르고 간편하게 표현하는 방식이 그들만의 은어가 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이는 사용 가치가 매우 한정적이고 한시적이기 때문에 크게 염려할 일은 아니다. 그러나 국제화니 세계화니 해서 외국과 문화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외국 말을 마구 쓰거나 섞어 쓰는 일은 우려할 만한 일이다. 실제로 그렇게 쓴다고 해도 의사소통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저 은근히 자기 자랑할 요량으로 쉽게 쓰는데, 이것은 대화 상대방에게 위화감을 주는 것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우리말 발전에 큰 걸림돌이 되는 것이다.


나아가 우리 사회의 자유로운 의사소통에도 장애가 되는 외국말 끼워 말하기 따위가,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맹목적으로 따라 하게 만들거나 우리말만 쓰는 사람들을 위축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것이 사회 전반적인 현상으로 받아들여진 나머지 외국어 사교육이나 어학연수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여기게 만들고, 결국엔 학교교육이나 제도권 학습까지도 외국어 교육에 열을 올리게 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한글을 아름답게 쓰고 우리말을 자연스럽게 구사하는 것이야말로 지식의 편차와 빈부의 격차를 좁히고 경제적이고 빠른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하며, 사교육을 줄이며 학교교육을 정상화하는 지름길이다.



한국인의 사고체계와 한글의 발전


한글 역사가 고작 565년이니, 다른 수많은 문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매우 나이가 어리다 할 만하다. 알파벳이나 한자는 그림으로 사람의 의사를 표현한 데서 시작해 그것이 기호화한 것으로서, 태생적으로 거기에 어떤 과학적인 체계나 규칙이 있을 수 없다. 반면 한글은 만들어질 때부터 그야말로 인체의 발음기관에서 소리가 생성되는 원리와 소릿값을 따지고, 과학적 체계와 규칙을 정하여 만든 첨단 과학의 산물이다. 이러한 특성은 바로 세종의 깊은 애민 정신이 밑바탕이 되었기 때문인데, 처음 배울 때 아주 쉽게 익힐 수 있고, 가르치기에도 어려움이 없도록 하려는 배려에서 나온 것이다. 곧 우리말에 알맞은 우리글을 만들려는 세종의 피나는 노력이 이를 가능케 한 것이다. 게다가 현대사회에 와서는 이러한 특성이 기계화와 상품화, 대량생산과 정보 제공 면에서 매우 실용적이다. 이러한 세종의 노력으로 한글이 일반 민중에게 순식간에 보급되었는데, 실록에 따르면 이미 중종 6년인 1511년 9월 2일에 채수라는 자가 지은 ≪설공찬전≫(薛公瓚傳)이라는 한글 소설이 백성들에게 널리 읽혀 이를 금서로 지정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는 한글이 세상에 반포된 지 65년밖에 되지 않은 때다. 채수는 세조 때 나서 중종 때까지 산 사람으로 세 번이나 장원급제한 수재인데 강직하기로 유명하다. 또 반포된 지 90년 뒤인 1536년에는 한글이 금석문에까지 쓰였는데, 바로 잘 알려진 서울 노원구의 ‘한글 고비’는 그해 이윤탁의 아들 이문건이 아버지 묘비에 새긴 글이다.


또 50년 뒤인 1586년에 안동 사람 이응태의 아내가 죽은 남편 무덤에 써서 묻은 한글 편지가 발견되었는데, 그 편지 글을 보면 16세기 한양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시골의 서민 아낙네가 쓴 글인데도 몹시 자연스럽고 절절하여 현대인의 글처럼 느껴진다.



원이 아버님께, 병술년 유월 초하룻날 아내가. 당신이 늘 나에게 말하기를 둘이 머리가 세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 하시더니 어찌 나를 두고 먼저 가십니까. 나와 자식은 누가 시키는 말을 들으며 어떻게 살라고 다 던지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당신은 나를 향해 마음을 어떻게 가졌으며 또 나는 당신에게 어떤 마음을 가졌던가요. 한데 누워서 나는 당신에게 늘 말하기를, “여보, 남도 우리같이 서로 어여삐 여겨 사랑할까요. 남도 우리 같을까요?” 하였습니다. 어찌 그런 일을 생각지 않고 나를 버리고 먼저 가십니까. 당신을 여의고는 아무래도 난 살 수 없어 빨리 당신에게 가고자 하니 나를 데려가십시오. 당신을 향한 마음은 이승에서 잊을 수가 없고, 아무리 해도 서러움 끝이 없으니 이 내 마음속은 어디다 두고 자식을 데리고서 당신을 그리워하며 살까 합니다. 이 내 편지를 보시고 내 꿈에 와 자세히 말씀해주세요. 내 꿈에 이 편지를 보시고 하는 말을 자세히 듣고 싶어서 이렇게 편지를 씁니다. 자세히 보시고 나에게 일러 주세요. 당신은 내가 밴 자식을 낳거든 보고 싶다고 말하더니 그리 가셨는데, 그 밴 자식이 태어나면 누구를 아버지로 삼으란 말입니까. 아무려나 내 마음 같을까요. 이런 천지에 서글픈 일이 하늘 아래 또 있을까요. 당신은 한갓 그곳에 가 있을 뿐이거니와 아무리 해도 내 마음같이 서러울까요. 가이없어 다 못 쓰고 대강만 씁니다. 이 편지를 자세히 보시고 내 꿈에 꼭 와서 자세히 말씀해주세요. 나는 내 꿈에서 당신을 볼 것을 믿어요. 몰래 꼭 보여주소서. 참으로 가이없어서 이만 적습니다.

한글 편지는 이밖에도 서민뿐만 아니라 학봉과 송강이나 현종과 숙종, 또 왕비와 그 자식들도 많이 주고받은 것이 알려졌다. 조선의 그 기나긴 한문학의 그늘에서도 한글로 글을 쓰는 일은 들불처럼 번져 편지에서 시구로, 가사에서 소설로 나아감을 볼 수 있는데, 정철(1536~1593)은 ≪성산별곡≫(1560)이 들어 있는 ≪송강가사≫에서 고유어 비중이 69.32%(≪정송강의 언어미학≫, 최호연, 1976)나 되게 우리말을 썼고, 이를 극찬한 김만중(1637~1692)은 ≪구운몽≫과 ≪사씨남정기≫를 써 한글 소설 문학의 선구자로 칭송받았다. 김만중에 와서는 한글 작품이 비평의 대상으로까지 발전했다. 김만중은 한글(훈민정음)이 우리글이며 우리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는 데 가장 적합한 문자라고 한다. 김만중은 ≪서포만필≫에 이렇게 적었다.


송강의 ≪관동별곡≫과 ≪전후 사미인가≫는 우리나라의 ‘이소’(중국 굴원이 쓴 글)이나, 그것은 한자로는 쓸 수가 없기 때문에 오직 시인들이 노래로 전하여 서로 이어받아 전해지고 또 한글로 써서 전해질 뿐이다. 어떤 사람이 칠언시로 ≪관동별곡≫을 번역하였지만, 아름답게 될 수가 없었다. 구마라습(344~413, 산스크리트어 불경을 한문으로 번역하여 중국에 전한 인도 승려 쿠마라지바의 음역)은, “인도 사람들의 풍습은 문체를 매우 사랑하는데 그들의 찬불가를 들으면 아름답기 그지없다. 이제 이것을 중국어로 번역하려니 단지 그 뜻만 전할 뿐 그 말씨는 전할 수가 없구나” 하고 안타까워했다. 이치가 정녕 그럴 것이다. 사람의 마음이 입으로 표현된 것이 말이요, 말의 가락에 있는 것이 시와 노래, 문장이다. 사방의 말이 비록 같지는 않더라도 진실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각각 그 말에 따라 가락을 맞춘다면, 다 같이 천지를 감동시키고 귀신과 통할 수가 있는 것이니 유독 중국 사람만 그런 것은 아니다. 지금 우리나라의 시문은 자기 말을 버려두고 다른 나라 말을 배워서 표현한 것이니, 설사 아주 비슷하다 하더라도 이는 단지 앵무새가 사람의 말을 하는 격이다. 여염집 골목길에서 나무꾼이나 물 긷는 아낙네들이 ‘에야디야’ 하며 서로 주고받는 노래가 비록 저속할지는 몰라도 그 참됨을 따진다면, 정녕 학사 사대부들이 말하는 시와 문장이라는 것은 비교도 되지 않는다.

우리 겨레의 찬란한 문화유산 가운데 으뜸인 이 한글은 이렇듯 많은 선조에게 사랑받으며 이어왔음을 깨닫고 좀 더 깊은 애정을 갖고 사랑해야 한다. 그리하여 모든 사람이 함께 호흡하고 세계 사람이 함께 누릴 수 있는 한글 문화상품이 계속 만들어지도록 노력해야 한다.



한글 문화상품 개발과 정책과제


세계적으로 이름을 떨친 우리 겨레의 문화상품은 셀 수 없이 많다. 고려청자와 이조백자, 거북선, 최초의 인쇄술을 보여주는 ≪무구정광대다라니경≫, 최고의 금속활자본인 ≪직지심체요절≫ 등이 그것이다. 한글은 이러한 우리의 훌륭한 문화유산 가운데서도 가장 뛰어난 면모를 갖추었다. 지식의 축적이란 인간이 끊임없이 추구하는 능력 중의 하나인데, 그 지식 축적의 기초가 바로 문자라고 할 때 우리 겨레는 우리만의 문자를 만들어 써온 겨레로서 세계사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업적을 남긴 것이다. 더욱이 그 글자가 과학적이고 고도의 철학을 담고 있으며, 쉽고 간단하여 익히기 쉬우니 인류가 남긴 산물 중에 으뜸이라 할 만하지 않은가.


지금까지는 한글의 가치를 과학적, 철학적 차원에서만 찾았다면 이제는 글자의 미적 가치와 경제적 가치를 찾을 때라 생각한다. 예술작품이나 문화상품, 생활용품들에서 한글을 아름답게 꾸미고 활용하는 일은 그 과학적 가치를 따지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일인데 그것은 많은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일이며, 좋은 이미지를 쌓아가는 일이기 때문이다.


중앙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각자 지역에 따른 문화상품을 개발하는 일은 꾸준히 추진되고 있으나, 여기에 한글 디자인, 꾸밈이 어우러질 때 그 효과는 최상이 될 것이다. 새로운 시대, 새로운 가치 창출을 위하여 한글사랑운동본부가 이끌어가는 한글 사랑의 깊은 뜻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출처 : MyLoveChina
글쓴이 : null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