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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기독교와 무당종교, 목사와 무당

수호천사1 2008. 9. 22. 02:38

기독교와 무당종교, 목사와 무당

 


세계선교역사상 우리나라와 같이 선교 1백년 남짓에 국민 25%가 기독교인으로 변한 나라가 개신교 역사상 찾아 보기 힘들다.
선교학에서 무당종교 혹은 원시 종교 성한 곳에 전도가 잘되는 것은 상식이라고 한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쉽게 전도가 되어 기독교가 퍼진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 신앙은 무당종교식 신앙과는 전혀 다르다. 그뿐만아니라 무당종교의 특징이 윤리성이 없다는 것이다. 무당종교가 어디 언제 '거짓말 하지 말라' '순결하라'라는 것을 가르치는가? 그저 이땅에서 복받고 잘먹고 잘 사는 것에나 관심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무당종교에서 신앙의 대상인 귀신의 특징은 사람이 깨우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그것을 깨우는 게 누구냐? 면은 무당인 것이다. 그리고 이일을 위하여는 복채가 필요한 것이다.

언제가부터 한국교회안에서 이와 비슷하게 신앙 생활을 하기도 하고 조장하기도하여 교회와 목사가 무당종교와 무당처럼 되어 가고 있다.

그래서 복채를 받고 기도해 주고 복을 비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중세 교회가 면죄부를 판매하면서 이를 교리화하여 면죄부를 산 헌금이 헌금 바구니에 떨어짐과 동시에 지옥에서 천국으로 조상이 이동을하고 죄가 면죄 된다는 해괴한 논리로 성도들을 타락 시켰던 논리에 대하여 루터, 칼빈등이 종교 개혁을 일으켜서 등장한 개신교가 한국땅에서는 중세 교회의 면죄부 논리가 기복 신앙으로 둔갑 되어서 부활한 것같이 되어 있다.

성도는 만인제사장으로서 누구나 하나님께 기도를 직접하고 기도응답을 받을 수 있는데 한국교회는 종교개혁이 안된 느낌이다.

그래서 아기 돌, 개업, 생일, 환갑잔치 등등에도 예배라는 이름으로 목사를 부르지만 교인들의 심정에는 복을 빌어 달라는 심리가 작용되고 있고 이에 부합한 목사는 예배적인 기도가 아닌 기복신앙적인 축복기도도 해주고 하는 것이다.

심지어 입학시험 때도 특별헌금 특별예배 등을 주관하고 복채를 받듯이 헌금을 받기도 한다.

우리나라에 무당숫자가 40만명이라고 한다. 정치인 기업인들도 무슨 일이 있으면 무당을 찾는 것이 상식 처럼 되어 있는 민족이 우리 민족이다.

그뿐만아니라 일부 기독교인 기업인들은 다니던 교회를 버리고 자신의 기업체안에 다가 교회를 만들고 목사를 회사원처럼 고용하고 회사원들을 신도 삼아 자신의 안녕을 빌고 있는 기업인들도 허다하다.

이러한 발상도 불교에서 말하는 공적에 대한 보응의 원리와 같은 기복 신앙의 발상에서 작용한 것이다.

모 인터넷 신문에 실렸던 글을 본적이 있다.

[작년에 어떤 부흥집회에 간적이 있었다. 그 강사의 설교는 너무나 듣기 고통스러웠는데 "나는 죽을 때 부자인 채로, 날마다 원하는 것 먹으면서 병 없이 살다가 죽기 바란다"는 말을 되풀이하고 모인 성도들에게도 따라 하도록 시키는 것이었다. 마치 성황당에 빌면서 "쌀밥과 고기국을 내려 주시고 금덩이를 내려 주소서" 하던 무속 신앙 같았다. 그 강사는 성도들이 가져온 올리브 기름에 기도를 한후 이 기름을 하나님이 축복하셨으니 이마에 바르면 큰 축복이 오며 병이 낫는다고 말했다. 모인 성도들은 그 기름이 기적의 약이라고 생각했는지 시키는 대로 이마에 바르며 소중히 들고들 갔다. 부흥강사가 아니라 약장수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기독교가 다른 종교와 다른 점은 많지만 그 중 하나는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지 우리가 좋은 일을 많이 해서 점수를 받아야 구원을 얻은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많은 다른 종교들은 "복 받기 위함"이 목표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수행도 해야 하고 덕을 쌓아야 하며 물질도 바쳐야 한다고 한다. 예수님은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았다.

물론 기독교인들도 좋은 일을 많이 행하며 헌금도 내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사업에 동참하고 주신 물질에 대한 감사이지 복을 받겠다는 단서를 붙인 것은 아니다. 아무리 우리가 노력해도 하나님의 뜻 없이 우리 스스로 구원을 취득할 수 없기 때문에, 그리고 어떠한 단서를 붙여서 믿음을 강요하는 하나님이 아니기에 크리스천들과 하나님의 관계는 서로 사랑하고 신뢰하는 사이가 되어야지 무엇을 바라는 사이가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일명 기복신앙이라고 일컬어지는 "복 받기 위한" 신앙, 성숙하지 못한 신앙이 두드러지는 경우가 아직 크리스천들 사이에 많이 있어 "과연 기복신앙이 성경적이나"하는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교회 나가고 예수님 잘 믿으면 돈도 잘 벌고 병도 낫는다"는 말은 완전히 틀린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예수님이 병을 고치는 기적을 행하셨고 구하면 주신다는 구절도 성경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돈을 많이 벌고 병이 낫는 것은 그 일로 인하여 우리가 하나님의 사역에 어떠한 형태로도 동참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주시는 것이며 또 가난하고 병이 낫지 않는 것도 하나님의 뜻이라면 하나님은 고난을 통해 무언가를 이루시는 분이다.

기복적인 신앙을 따랐는데 교회 나가고 예수님 잘 믿어도 돈벌이가 시원치 않고 병도 안 낫는다면 예수님을 원망하고 교회를 떠나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지 않은가. 그보다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에게 가장 적합한 형태로 뜻을 이루신다는 것을 믿고 그대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기복신앙적인 면이 두드러졌다고 해서 이단이라는 것은 아니다. 위에서 말한 그 목사의 설교는 그런 면을 빼고는 성경적 원리에 크게 벗어난다거나 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잘 믿으면 부자가 되게 하시고 병을 낫게 하신다"고 한다면 가난하고 일생을 병을 지니고 살면서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하는 사람들은 그럼 축복 받지 못한 자들이란 말인가? 우리는 부자가 되고 병 없이 건강하게 살기 위해 교회를 나가고 있는 것인가?

* 사이비가 "나 사이비요"라고 결코 말하지 않는다. 그러면 누가 사이비를 구별하지 못하겠는가? 이리가 천사를 가장하는 것이다.

야고보서 5 : 5 너희가 땅에서 사치하고 연락하여 도살의 날에 너희 마음을 살지게 하였도다

요한계시록 18 : 3 ...또 땅의 왕들이 그로 더불어 음행 하였으며 땅의 상고들도 그 사치의 세력을 인하여 치부하였도다 하더라

요한계시록 18 : 7 그가 어떻게 자기를 영화롭게 하였으며 사치하였든지 그만큼 고난과 애통으로 갚아 주라 그가 마음에 말하기를 나는 여황으로 앉은 자요 과부가 아니라 결단코 애통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요한계시록 18 : 9 그와 함께 음행하고 사치하던 땅의 왕들이 그 불붙는 연기를 보고 위하여 울고 가슴을 치며
이사야 47 : 8 그러므로 사치하고 평안히 지내며 마음에 이르기를 나 뿐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도다... ...하는 자여 너는 이제 들을지어다

[ 빌 1:29]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

 

 

- 출처: 기독넷

출처 : MyLoveCh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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