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 받으러 교회 나오는가
기복신앙의 문제
누가복음16장 1-13절까지에 [불의한 청지기]에 대한 비유가 나온다.
낭비가 심하던 청지기에 대하여 주인이 해고 할 것이라는 통보를 받고 고민하다가 자신의 장래에 대하여 최선의 방책을 짜내게 되는데 주인에게 빗진 사람들을 불러서 원금에서 반절씩 탕감하여 주며 일부만 갚으라고 한다.
그런데 주인은 이러한 청지기를 칭찬하여 주는 내용이다.
이 비유는 불의한 청지기 처럼 하라는 내용이 아니라 역설적으로 교훈을 끌어 내기 위하여 말씀하셨다.
이 비유가 말하려는 내용은 불의한 청지기와 같은 모든 세상의 아들들은 자신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한다.
이와 같이 세상의 아들도 자신의 안전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는데 하물며 빛의 아들들은 존재적인 영원한 근거지를 위하여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그 일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여 해야 할 것이 아니냐라고 권고하기 위한 비유이다.
그리고 불의한 청지기가 재물을 통하여 자신의 유익을 도모 했듯이 빛의 자녀들 역시 재물을 선용하여 영과 육의 성과 유익을 도모해야 한다는 것을 교훈 하신 내용이다.
그러나 이 비유를 듣고 14절에 보면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 하는 자라 이모든 것을 비웃 거늘….]하였듯이 바리새인들은 교훈의 핵심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들의 재물에 대한 가치관과 다름에 대하여 조소한다.
여기에 대하여 예수님은 메시야 시대의 도래로 인하여 율법이 역동적인 복음으로 대체 된 것을 말씀하시고 율법의 영원성과 율법을 자신이 완성하러 오셨음을 말하신다.
복음이 있는 시대에 살면서도 복음의 대체 수단들이 활개를 치면서 복음이 사라지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 속에서 한국교회가 살아 간다.
목사가 귀신을 쫓아낸다며 교인들이 몰리고 영성 상담을 통하여 장래의 일을 말한다고 몰려간다. 그리고 교회가 복을 팔고 있다.
이 모든 것들은 복음이 아니다. 크리스챤 헤럴드에 어느 분이 기가 막힌 현장을 목격하고 올려놓은 글을 한편 소개하여 보겠다
[작년에 어떤 부흥집회에 간적이 있었다. 그 강사의 설교는 너무나 듣기 고통스러웠는데 "나는 죽을 때 부자인 채로, 날마다 원하는 것 먹으면서 병 없이 살다가 죽기 바란다"는 말을 되풀이 하고 모인 성도들에게도 따라 하도록 시키는 것이었다. 마치 성황당에 빌면서 "쌀밥과 고기국을 내려 주시고 금덩이를 내려 주소서" 하던 무속 신앙 같았다. 그 강사는 성도들이 가져온 올리브 기름에 기도를 한후 이 기름을 하나님이 축복하셨으니 이마에 바르면 큰 축복이 오며 병이 낫는다고 말했다. 모인 성도들은 그 기름이 기적의 약이라고 생각했는지 시키는 대로 이마에 바르며 소중히 들고들 갔다. 부흥강사가 아니라 약장수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기독교가 다른 종교와 다른 점은 많지만 그 중 하나는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지 우리가 좋은 일을 많이 해서 점수를 받아야 구원을 얻은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많은 다른 종교들은 "복 받기 위함"이 목표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수행도 해야 하고 덕을 쌓아야 하며 물질도 바쳐야 한다고 한다. 예수님은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았다.
물론 기독교인들도 좋은 일을 많이 행하며 헌금도 내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사업에 동참하고 주신 물질에 대한 감사이지 복을 받겠다는 단서를 붙인 것은 아니다. 아무리 우리가 노력해도 하나님의 뜻 없이 우리 스스로 구원을 취득할 수 없기 때문에, 그리고 어떠한 단서를 붙여서 믿음을 강요하는 하나님이 아니기에 크리스천들과 하나님의 관계는 서로 사랑하고 신뢰하는 사이가 되어야지 무엇을 바라는 사이가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일명 기복신앙이라고 일컬어지는 "복 받기 위한" 신앙, 성숙하지 못한 신앙이 두드러지는 경우가 아직 크리스천들 사이에 많이 있어 "과연 기복신앙이 성경적이나"하는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교회 나가고 예수님 잘 믿으면 돈도 잘 벌고 병도 낫는다"는 말은 완전히 틀린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예수님이 병을 고치는 기적을 행하셨고 구하면 주신다는 구절도 성경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돈을 많이 벌고 병이 낫는 것은 그 일로 인하여 우리가 하나님의 사역에 어떠한 형태로도 동참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주시는 것이며 또 가난하고 병이 낫지 않는 것도 하나님의 뜻이라면 하나님은 고난을 통해 무언가를 이루시는 분이다.
기복적인 신앙을 따랐는데 교회 나가고 예수님 잘 믿어도 돈벌이가 시원치 않고 병도 안 낫는다면 예수님을 원망하고 교회를 떠나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지 않은가. 그보다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에게 가장 적합한 형태로 뜻을 이루신다는 것을 믿고 그대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기복신앙은 기독교의 논조가 아니며 오로지 무속적인 사고일뿐이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잘 믿으면 부자가 되게 하시고 병을 낫게 하신다"고 한다면 가난하고 일생을 병을 지니고 살면서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하는 사람들은 그럼 축복 받지 못한 자들이란 말인가? 우리는 부자가 되고 병 없이 건강하게 살기 위해 교회를 나가고 있는 것인가?
* 사이비가 "나 사이비요"라고 결코 말하지 않는다. 그러면 누가 사이비를 구별하지 못하겠는가? 이리가 천사를 가장하는 것이다.
야고보서 5 : 5 너희가 땅에서 사치하고 연락하여 도살의 날에 너희 마음을 살지게 하였도다
요한계시록 18 : 3 ...또 땅의 왕들이 그로 더불어 음행 하였으며 땅의 상고들도 그 사치의 세력을 인하여 치부하였도다 하더라
요한계시록 18 : 7 그가 어떻게 자기를 영화롭게 하였으며 사치하였든지 그만큼 고난과 애통으로 갚아 주라 그가 마음에 말하기를 나는 여황으로 앉은 자요 과부가 아니라 결단코 애통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요한계시록 18 : 9 그와 함께 음행하고 사치하던 땅의 왕들이 그 불붙는 연기를 보고 위하여 울고 가슴을 치며
이사야 47 : 8 그러므로 사치하고 평안히 지내며 마음에 이르기를 나 뿐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도다... ...하는 자여 너는 이제 들을지어다
[빌 1:29]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
유명한 부자와 나사로의 교훈에서 말하고있듯이 이세상의 부에 대하여 집착하는 논리는 하나님의 냉혹한 심판에 대하여 견딜수 없음을 유념해야 한다.
그러므로 로마서 14:7-8절에서 성도의 삶의 기준점이 무엇인지 표현 했듯이 사나 죽으나 우리는 주의 것이로다에 촛점이 모아져야 한다. 그러면 마6:33절에서 말하는 크리스챤의 삶에서 우선주의가 무엇인지를 알고 살때 성경에서 말하는 성도의 삶은 하나님이 인정하여 주시고 축복하여 주는 것이다.
-출처: 기독넷
'유익한 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탈무드의 모든 것 (0) | 2008.09.24 |
---|---|
[스크랩] 기독교와 무당종교, 목사와 무당 (0) | 2008.09.22 |
[스크랩] 립서비스만 가득한 한국교회 (박창진) (0) | 2008.09.22 |
[스크랩] 매력 잃은 한국교회, 인간성부터 회복해야 (0) | 2008.09.22 |
[스크랩] 좋은 교회, 나쁜 교회, 이상한 교회 (진민용) (0) | 2008.09.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