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기적을 베푸시는 목적
<자료 1>
엘리사의 기적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징계하시는 뜻으로 나타낸 것들입니다. 기적은 그들에게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바르게 돌아오라고 재촉하시는 일입니다. 엘리사는 백성과 왕에게 하나님의 진노하심이 이것이다 하면서 회개를 재촉하였습니다.
지금 금방도 우리가 기근을 보았는데 엘리사는 엘리야의 후계자답게 그 무서운 기근과 같은 것들이 다 하나님의 진노요 징계로서 회개를 재촉하시는 일인 것을 나타냈습니다.
또 하나 생각할 것은 하나님께서 엘리사의 기적을 통해 왕과 백성에게 여호와의 건져내 주심을 보여 주시면서 하나님의 뜻이 어떤 것인가를 일러주셨다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 백성을 완전히 버려두시지 아니하시고 엘리사의 기적으로 대적의 잔혹과 공격에서 늘 구출하시고 또 주변에 있는 다른 조그마한 나라들의 간교한 힘에서도 건져내 주셨습니다.
예를 들면 오늘 우리가 열왕기하 6:8-13에서 읽은 대로 수리아의 전략에 대해서 미리 다 알게 해주신 이것이 기적적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그 대적의 손에서 건져내 주시려고 그렇게 한 것입니다. 그리고 열왕기하 6:24-33에 있는 성을 포위함으로 생긴 인조(人造) 기근은 결국 여호와께서 그들을 징계하시사 깨닫게 하시려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거기서도 건지셨습니다.
또 우리가 전에 열왕기하 3:4-27에서, 이스라엘 왕이 유다 왕 여호사밧 및 에돔 왕과 더불어 연합군을 형성하여 모압 왕 메사를 치러 갔다가 물이 없어서 고통을 당하였는데, 그 위험 앞에서 물이 넉넉히 생기게 된 그런 기적이 있었던 것을 우리가 보았습니다.
엘리사의 기적은 이스라엘 백성과 그 국가에만 대규모로 미친 것이 아니라 엘리사의 주변에 있는 선지자의 생도들과 같은 가까운 사람들 또 친절하게 해준 수넴 여자 등 이런 사람들의 어려움 앞에서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보여주시는 데 나타났습니다. 심지어 적국인 아람군대의 사람들에게까지 나타내 보였습니다. 그들의 눈을 멀게 하여 포로가 된 상태에서 도륙해 버릴 수도 있었지만 다시 눈을 뜨게 해서 먹을 것을 주어 본국으로 돌려보낸 일도 있었습니다.
엘리사의 기적 가운데에는 없어서 가난하고 또 괴로운 사람들의 어려운 것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긍휼히 여기신 것들이 있습니다. 수넴 여자의 아들을 살려 주신 것도 그렇고 과부 된 선지자 생도의 아내의 빚을 갚도록 해준 것도 그렇고 선지자의 생도들이 먹을 국에서 독을 제거해 준 것도 그렇고 보리떡 스무 개로 100명을 먹인 일 또 물에 잠긴 도끼를 건져낸 일들에서 그 사람들을 측은히 여겨 어려움을 돌보아 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 금방 우리가 잠깐 이야기했지만 나아만은 이스라엘 나라를 항상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제일 강한 적국인 수리아 군대의 사령관이었습니다. 그가 악한 병에 걸려서 제가 알고 있는 모든 신들한테 낫기를 구하였겠고 모든 의약도 썼겠지만 어떻게 할 길이 없게 되었을 때, 그는 자기 집에 있는 히브리의 계집아이의 말을 통해 이스라엘의 여호와 하나님의 성호를 듣고서 여호와의 긍휼을 얻기를 위하여 멀리 이스라엘까지 와서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를 찾았던 것입니다.
엘리사는 그의 간절한 심정을 알고 나아만에게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나타냈습니다. 나아만의 국가가 이스라엘을 괴롭히고 있었으므로 그가 나아서 건강하게 활동을 하면 또 얼마나 많은 폐해를 끼칠 것인가 족히 생각할 만하지만 그를 거절하지 않았습니다.
말하자면 적성 국가의 군대 장관이라는 것에 대해서 별로 일일이 비판하거나 따지거나 않았습니다. 오직 육신이 불치의 무서운 병 가운데 썩어져 가는 것을 이스라엘의 여호와 하나님은 불쌍히 여기신다는 것을 알려 주기 위하여 그를 한 사람의 적자(赤子)로 대한 것입니다.
그의 중심이 그저 희미한 믿음이나마 가지고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찾아왔는데 그 연약한 믿음을 보강시키기 위해 일부러 만나 주지도 않고 요단 강에 가서 일곱 번 씻으라고만 하였습니다. 나아만은 처음에 거기에 대해서 반동을 일으키듯이 “참, 그렇게 하려면 다메섹에는 그보다 더 좋은 강이 있지 않은가?”하는 소리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그보다 어려운 것을 하라고 해도 하였을 터인데 왜 이렇게 쉬운 일을 하라고 하는데 그렇게 하시지 않고 거기에 대해서 비판만 하십니까?”라고 권고하자 환연히 깨닫고서 요단 강에 가서 일곱 번 목욕을 하고 다 낫게 되었습니다. 이리하여 병도 나을 뿐만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참 하나님이신 것을 알고 ‘이제부터는 내가 달리 누구를 섬길 수가 없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 섬기겠다’ 작정하고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기는 사람을 향하여 하나님의 사람인 선지자 엘리사도 역시 불쌍히 여기고 그에게 필요한 것들을 베풀어 주는 그런 거룩한 심정을 보인 것입니다.
모든 기적에는 목적이 있습니다. 기적의 목적은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와 통치권과 영광을 드러내어 세상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불공의(不公義)나 포악이나 서로 남을 지배하고 탄압하려고 하는 것들을 막아내고 물리쳐 주는 데 있습니다.
그러나 기적은 사람들의 악을 막고 물리치고 깨닫게 하는 데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마귀 곧 사단과 그 국권이 가지고 있는 불의와 악과 속임과 비참한 것이 사람에게 가져다주는 것에서 바로 돌아오게 하려는 뜻이 또한 있는 것입니다.
예컨대 이스라엘 전 사회나 전 국민이 완고하고 암매해서 하나님의 바른 도리를 받지 않고 바알과 아세라 같은 흑암의 세력을 섬기는 현실에서 기적을 통해 그 본성을 폭로시켜 깨닫게 하고 죄악의 길에 빠진 사람으로 하여금 바른 데로 돌아오게 하는데 기적의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엘리사의 기적들은 그러한 기본적인 성격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러한 의와 자비는 기적들을 행하신 우리 주님의 심정에 가까웠습니다.
김홍전 목사/『이스라엘 열왕의 역사(II)』 p.314-317 에서
<자료 2>
기적의 목적은 무엇인가?
기적만을 구하는 세대를 악하다는 예수님의 말씀은 단순한 책망이 아닙니다. 오직 자신만을 위하는 삶에서 돌아서서 더 깊은 은혜의 세계로 가자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왜 기적을 행하셨는지, 그 기적의 목적을 잘 알아야 합니다.
일차적인 목적은, 도탄에 빠진 사람들을 도와주기 위함입니다.
두려움에 떨고 있는 사람들, 굶주린 사람들, 병에 걸려 죽어 가는 사람들을 살리기 위하여 기적을 베푸십니다. 욕심에 따라 기적을 구하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거절하셨습니다.
사람들이 외칩니다. “욕심이 아니에요. 정말 죽을 것 같아요” 하지만 되돌아보면 하나님께서 도탄에서 수도 없이 건져주셨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 나는 언제나 원점으로 돌아갔고, 변화되지 않았습니다.
두 번째 목적은, 기적을 통하여 하나님의 하시는 일이 무엇인지 드러내기 위함입니다.
눈 먼 사람을 보고 제자들이, 저 사람의 눈이 먼 것은 부모의 죄냐, 본인의 죄로 인함이냐고 묻자 예수님께서 대답하십니다.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요 9:3)
도사가 공중부양의 합니다. 제갈량이 동풍을 불러 적군을 물리칩니다. 주식과 집값이 올라 내가 떼돈을 법니다. 하나님의 하시는 일이 아닙니다. 이런 것들은 힘자랑에 불과하고, 남이야 어찌 되든 내 이득을 위함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기적은 언제나 생명의 일입니다. 몸을 살려 하나님의 마음을 읽게 하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하여 영혼을 살리는 일입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입니다.
세 번째 목적은, 기적을 통하여 우리로 하여금 믿음을 갖게 하기 위함입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제일 첫 번째 기적은,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바꾸신 기적입니다. 그런데 광야에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실 때에 돌멩이를 떡으로 만들라는 사탄의 주문은 단호히 거절하셨습니다.
돌을 떡으로 만드는 것이나 물을 포도주로 만드는 것이나 별로 차이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사탄의 제안은 거절하신 이유는 아무리 기적을 일으켜도 사탄은 믿음이 생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가나의 혼인 잔치 기적은 이런 말씀으로 끝납니다. “그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요 2:11) 기적의 목적은 바로 우리로 하여금 더 굳건한 믿음을 갖게 하기 위함입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누가복음 11:27-28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하실 때에 무리 중에서 한 여자가 음성을 높여 가로되, 당신을 밴 태와 당신을 먹인 젖이 복이 있도소이다 하니, 예수께서 가라사대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 하시니라.”
벙어리를 온전케 하는 기적을 베풀자, 한 여인이 예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음을 가르쳐 주십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 말씀을 듣고 지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것이 곧 순종입니다.
순종. 너무나 아름답고 가장 귀한 말입니다. 그런데 이 단어를 사용하든데 늘 주저주저합니다. 너무나 오용되었기 때문입니다. 목사가 어떤 일을 시킵니다. 순종해야 합니다. 목사는 하나님의 종으로 그의 말에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으로 변질시켰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뜻을 하나님의 뜻으로 너무나 많이 포장하였기 때문입니다.
blog.daum.net/hn919191/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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