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해석
I. 성경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우리는 감정이 중요한 시대를 살고 있다. 탈이념을 표방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출현은 개인의 개성에 힘을 실어주었고, 절대 진리가 아닌 다양성의 영역에 관심을 기울이게 했다. 이는 또한 기독교에도 깊이 침투하였는데, 오늘날 사람들에게 성경 묵상에 대해 질문을 하면 대개 ‘나의 마음에 와 닿는 구절 또는 말씀을 통해 은혜 받았다’ 이야기한다. 그것이 주님이 의도하신 의미와 상관이 없을지라도 내가 생각하는 말씀, 내가 원하는 의미라면 그것이 곧 진리가 되어버린다. 물론, 성경은 주님의 살아있는 말씀이기 때문에 감정의 영역을 건드려 우리의 삶을 변화 시키는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주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개성 또한 귀히 여겨져야 마땅하다. 하지만, 성경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 그 출발점이 조금은 잘못돼 있어 보인다.
성경을 해석하는데 있어 우리가 먼저 가져야할 태도는 이 진리의 출처가 인간이 아닌 하나님이심을 인지하는 것이다. 성경의 저자이신 하나님께서(딤후3:16) 인간 저자를 통해 말씀을 기록하신 의도가 무엇인지에 대한 접근이 선행되어지지 않는다면, 성경은 내가 원하는 메시지로 전락해버린다.
결국, 성경 해석은 말씀의 권위(성령님께서 조명하신 무오한 진리)를 인정하느냐 인정하지 않느냐의 갈림길에서 그 방향과 열매가 결정된다. 과거 신실한 초대교부에서 종교개혁을 이끌었던 믿음의 선배들이 하나같이 주장했던 것이 바로 말씀의 권위라는 사실을 기억하길 바란다. 그리고, 이 권위가 우리 인간에게 있지 않음을 인정한다면, 성경 말씀이 전달하고자 하는 의도와 의미가 나의 마음에 와 닿지 않더라도 본래 주께서 말씀하신 진리는 진리로 항상 존재해왔다는 사실을 또한 인정해야한다.
“해석”을 지칭하는 두가지 용어가 있는데, 하나는 “Exegesis, 자기 생각을 내려놓고 글 속에 나타난 저자의 의도를 파악하여 해석한다는 뜻” 이고, 다른 하나는 “Eisegesis, 자기 생각을 집어 넣어 저자의 의도를 파악하여 재해석한다는 뜻– 자기 해석” 이다. 주님의 권위와 말씀의 권위를 인정했던 신실한 성경학자들이 Exegesis에 온 정신을 쏟아 성경을 해석했던 과거와는 달리, 포스트모더니즘의 도래는 Eisegesis가 그 자리를 대체하도록 조장하여, 저자의 의도에 우리의 생각을 집어넣는 것이야말로(의미의 재생산) 살아있는 말씀을 받는 새로운 그리고 온전한 길이라 주장한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우리의 마음과 생각은 본래 진리를 양산해낼 수 없는, 즉 죄로 물들어 타락한 불완전한 존재라는 것을 말이다 (롬3:9-18). 그리고, 우리의 마음은 때로 우리를 속이고 죄를 용인하며 합리화를 조장한다.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받은 백성일지라도 말이다. 물론, 구원 받은 백성은 성령하나님으로 인치심 받아 마음이 새롭게 된 자임이(엡1:13) 분명하다. 하지만, 이 말씀이 우리의 죄가 없어져 마음이 완전하게 됐다는 뜻(영지주의자들의 주장, 이단 사상)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을 믿음으로 죄 없음의 신분(롬3;28; 6:6-7법정용어)이 된 우리가 이제 비로소 죄의 권세에서 벗어나 하나님을 닮아 갈 수 있는 존재로 거듭 났다는 뜻이다 (요한3:3-5, 벧전1:14-16). 그렇기 때문에, 성경은 믿는 우리에게 마음을 새롭게 하라고 반복적으로 명령한다(롬12:2).
그렇다면, 우리는 선택해야한다. 나의 마음을 충족시키기 위해 말씀을 묵상하고 해석할 것인가(권위가 내게 있는 관점에서)? 아니면, 항상 있어왔던 주님의 진리를 보석을 발견하 듯 캐내어 그 말씀이 때로는 내게 쓸지라도 기꺼이 순종할 것인가(권위가 하나님께 있는 관점에서)? 당신의 선택에 의해 신앙의 방향과 열매가 결정된다는 것을 명심하길 바란다.
II. 성경해석을 위한 조건
마스터스 신학교의 해석학 담당인 “브래드 클라슨” 교수의 강의를 바탕으로 필자가 생각하는 성경 해석의 필수적 조건에 대해 기술해 보겠다.
성경을 주님의 살아있는 말씀으로 인정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왜냐하면, 죄가 없으신 완전한 하나님께서 죄가 있는 불완전한 인간 저자를 통해 무오한 말씀을 완성케 하셨다는 것은 우리의 이해를 넘어서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성경을 이해하기 위한 이론들이 신학자들 사이에서 지속적으로 고안 그리고 발전되어 왔고, 해석의 기술적 접근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다양한 각도에서 말씀을 올바로 해석하는 것은 정말 중요한 것이지만, 이 말씀을 해석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선행 되어져야 할 것이 있다.
1. 믿음으로 거듭남
인도의 비폭력 독립 주의자였던 간디는 성경을 통해 큰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특히 마태복음 5장에 나온 산상수훈의 가르침은 그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하는데, 그러한 영향에도 불구하고 간디는 예수 그리스도를 위대한 성인 중 한 명으로 인정할 뿐이었다. 이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읽지만 성경을 좋은 가르침이나 도덕 지침서 정도로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때로는 처세술이나 자기 계발서 같은 용도로 사용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에 대해 사도 바울은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 고 분명하게 이야기 한다 (고전3:14).
성경은 성령님의 영감(Inspiration, 계시의 영역)으로 기록된 살아있는 말씀이다 (딤후3:16). 이는 성경의 저자이신 성령님의 조명하심(Illumination, 도우심의 영역)이 없다면, 인간 스스로는 절대 이 말씀을 진리로 받아들일 수도, 진정한 의미를 이해할 수도 없다는 뜻이다. 물론, 성령님의 조명하심을 주님의 영감, 즉 계시로 잘못 오해하여 어떠한 기적적인 은사를 받아야만 성경을 깨달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자들도 있지만(극단적 은사주의), 여기서 말하는 성령님의 조명 하심은 오히려 우리의 구원-거듭남과 관련이 있다. 그렇다면, 거듭남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이에 대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길,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네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요한3:5–6).예수님의 가르침에 의하면, 육에 속한 자(거듭나지 아니한 자)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고, 영으로 난 자, 즉 성령으로 거듭난 자만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과 연결된 것으로써, 이 십자가 사건을 믿게 된 자에게 성령께서 오시어 그를 죄인에서 의인으로 변화시키시고(엡1:13; 롬8:9), 아버지 하나님의 자녀로 도장을 찍어 주시는 사건이 바로 거듭남이다 (롬8:15). 이는 단회적 사건이며(구원과 성령님의 내주 하심은 같은 사건), 신자에게 두번의 영적 거듭남(구원 – 성화와는 다른 개념)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성령님으로 기름 부음을 받은 자(고후1:21-22), 곧 믿음으로 거듭난 백성은 예수 그리스도를 대제사장(히9:11)으로 모시는 제사장(베전2:5, 9)의 신분이 되었음을 성경은 확증한다.
결국, 성령님의 영감(Inspiration)으로 기록된 성경은 성령님으로 다시 태어난 자만이 진리를 진리로 받아 들일 수 있다. 그 이유는 거듭난 신자에게만 성령님이 계심으로 주님의 조명하심(Illumination)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믿는 자라고 해서 저절로 올바른 해석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모두가 성경을 제대로 해석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게 되었음에는 틀림이 없다 (골3:10, 요일2:20, 27). 이는 오늘날 어떤 특별한 은사자에게만 주어지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잘못된 가르침과는 상반된 성경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2. 삶의 거룩함
성령님의 조명하심 아래 있게 된 자(거듭난 자)에게 올바른 성경 해석을 위해 필요한 두번째 조건은 바로 삶의 거룩함이다. “거룩”은 오직 주님 한 분만 소유할 수 있는 속성이지만, 죄가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다시 태어난 그리스도인 또한 삶의 거룩을 이룰 수 있다 (벧전1:13-16). 그리고, 올바른 성경 해석을 위해서는 먼저 삶의 거룩이 뒷받침 되어야 하는데, 이에 대해 클라슨 교수는 “성경 해석을 하는데 성령님의 도우심은 필수적이다. 따라서, 만약 당신이 성령님의 조명하심을 경험하고 싶다면, 지속적으로 성령님의 말씀(성경)에 근거한 거룩한 삶을 이뤄가야 하고 유지해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 고 말한다. 사도 바울 또한 그의 서신서에서,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원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라고 말하며 (엡4:30), 성령을 따라 행함으로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않는 영적 원리를 가르쳐 주고 있다 (갈5:16). “성령을 따라 행함”으로 “성령 충만”해진다는 것이 때로는 어떠한 추상적인 느낌이나 감정에 도취한 상태로 잘못 오해할 수 있는데, 오히려 사도 바울은 말씀을 이해한 상태, 즉 말씀으로 충만해진 상태를 성령 충만 하다고 표현한다 (엡5:17-18). 이는 곧 거룩함과 연결되어 올바른 성경해석의 순환 고리를 만들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말씀의 저자이신 성령님의 조명하심과 성령 충만 그리고 성경 해석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리고, 전에 기술했던 것처럼, 우리의 거듭남이 저절로 올바른 영적해석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말씀을 올바로 해석하는데 성령님의 조명하심의 인도를 얻기 위해서는 영적 순결함에 항상 머무르려 노력해야한다. 우리의 성화(거룩한 삶) 또한 주님의 은혜로 시작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롬8:29–30), 믿는 자에게 의지적 순종 곧 거룩한 삶의 추구는 필수적 요건이며, 성경 해석의 중요한 열쇠이다 (빌2:12).
3. 기도
마지막으로 성경을 올바로 해석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기도해야 한다. 기도는 영적인 호흡으로써, 자신의 생각을 주님의 뜻에 맞추는 거룩한 예배이다. 기도는 믿는 자에게 주신 특권이며, 주님과 친밀한 관계를 만드는데 필수적 요소이다. 존 맥아더 목사는 이에 대해, “우리의 가장 큰 필요는 바로 지금 그분과 끊임없는 교제를 하는 것이다. 기도보다 더 큰 교제의 표현이나 경험은 없다” 고 말한다. 그리고, 기도는 나의 연약함을 발견케 하고 주님의 전지전능하심을 찬양하게 하며, 나의 죄를 깨닫고 주님의 거룩을 사모케 한다. 곧 기도는 유한한 자녀가 무한하신 아버지의 능력에 자신을 내 맡김으로 그 분의 능력을 힘입게 되는 놀라운 영적 소통의 장인 것이다. 성경 해석의 궁극적 목표가 주님의 뜻을 재해석 하는 것(Eisegesis, 해석자에게 초점)이 아닌, 주님의 뜻 그 자체를 아는 것(Exegesis, 저자에게 초점)이기 때문에, 우리는 말씀을 묵상하기에 앞서 항상 기도로 주께 나아가야 한다. 우리가 기도할 때에 주님은 우리에게 지혜를 허락하시어 눈을 밝게 해주실 것이며(엡1:16–17), 기도를 통해 말씀을 공부할 때에(사행6:4) 온전한 방향으로 인도하실 것이다. 시편 기자의 고백처럼, 주의 말씀을 가르쳐 달라고 간구해야 함은(시편119:12) 그 기도 가운데 주님은 분명 응답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마태7:7–11).
결론
올바른 성경 해석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죄를 사함 받아 성령님으로 인치심을 받은 백성, 즉 아버지와 화목하게 된 영적 자녀(거듭난 백성)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하지만, 우리는 지속적인 기도와 거룩함을 통해 바른 성경 해석을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그렇게 됐을 때에 비로소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의 조명하심을 통해 건강한 성경 해석의 열매가 맺히게 될 것이다.
III. 성경해석에 대한 실제적 접근(1)
성경을 어떻게 해석하는지에 대해 살펴보려고 한다. 하지만,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 “성경의 적용”은 “성경 해석”과 분리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 말이 다소 이상하게 들릴지는 모르겠다. 성경 해석에 있어서 적용이 중요하게 여겨지기 때문이다. 물론, 필자도 적용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의미가 무엇인지를 먼저 파악하여 하나의 진리를 도출하는 과정이 해석의 단계라면, 이 과정을 통해 뽑아낸 하나의 진리를 가지고 여러 교훈을 얻을 수 있는 단계가 적용이기 때문에, 해석의 과정에 적용이 삽입될 수 없다. 이 말은 즉, 해석의 단계에서 도출된 하나의 진리를 통해 그 진리를 기반으로 여러 가지의 적용점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뜻이다. 이는 주께서 의도하신 의미를 알아가는 단계인 해석을 충실히 해야만 올바른 적용을 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해석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필자가 생각하는 건강한 성경해석법은 문자적 성경 해석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가끔 문자주의적 성경 해석(문자 그대로 받아들여 적용, 위험한 해석)으로 오해되기도 하는데, 문자적 성경해석이란, 성령의 감동으로 인간 저자에 의해 기술된 성경은 사람의 언어로 주신 책이기 때문에 우리가 보통의 글을 이해하는 방법과 같이 – 시는 시적으로, 역사는 역사적으로, 예언서는 예언적 연구로, 편지는 편지형식으로 – 해석하는 관점으로써, 저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중심 메시지를 파악하는 것이다. 우리가 문자적으로 해석해야 하는 이유는 성경을 기술했던 저자에게 있었던 성령의 감동(계시의 영역)이 지금의 우리에게는 더이상 없기 때문이다. 이 말을 다시 설명하자면, 성경의 마지막 책인 요한 계시록의 완성이후로는 더 이상의 계시는 없고, 오직 성령의 조명하심(도우심의 영역)만이 있기 때문에 객관적 진리를 도출하기 위한 다양한 각도로의 접근(문자적 해석)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의 저자가 처해있던 당시의 상황과 수신자의 상태 그리고 문화적, 지리적 상황들을 고려하여 성경을 해석할 때 주님의 의도를 더욱 명확히 알 수 있는 것은 매우 당연한 이치이다.
성경의 이러한 여러가지 상황(역사적, 언어적)을 문맥이라는 단어로 압축할 수 있는데, 문맥(Context)이란, “con-함께” 와 “textus-일정한 방향으로 통일성 있게 짜여진”의 합성어이다. 즉, 문맥이란 역사적인것과 언어적인것의 두가지 측면을 가리킨다. 역사적인 측면은 성경의 저자와 수신자가 살았던 시대 배경을 말하는 것으로써, 당시의 언어, 지리, 문화, 사회적 환경을 지칭한다. 그리고, 언어적인 측면은 성경에 쓰여진 문자들의 관계성 또는 연결성을 말한다.
성경을 해석하는데 문맥이 중요한 이유는 아까도 이야기 했듯이 성경이 인간의 언어로 된 책으로써 역사적 배경과 언어적인 구조의 연결성에 대한 이해가 성경 해석을 더욱 명확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성경 해석학 학자인 “월터 카이저”는 이렇게 말한다. “훌륭한 성서 해석의 과정은 전체 문맥을 고려하여 얻어진 구체적인 상황들을 열거함으로 이루어지는데, 만약 해석자가 어떤 한 문장을 해석하는데 있어서 그 문장이 담고있는 의미의 시작점과 그 의미가 발전하는 양식 또는 유형을 파악하지 못한 채 그저 복잡하기만한 세부사항들을 제시한다면 그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그렇다면, 문맥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에 대해 4가지로 설명하기를 원한다.
1. 성경의 역사적 상황을 파악하기
각 책의 역사적인 상황들을 – 저자, 수신자, 쓰여진 연대, 시대 배경 등 – 성경을 읽기 전, 주석 성경이나 성경 사전 또는 역사적 자료들을 통해 미리 살펴본다면 저자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가 더욱 선명하게 보일 것이다.
2. 성경이 쓰여진 순서 파악하기
각 책의 연대 순서를 파악함으로 역사적으로 먼저 쓰여진 성경과 나중에 쓰여진 성경이 어떠한 관계를 맺고 있는지 더 잘 이해할 수 있고, 하나님께서 각 성경의 저자들을 통해 기록하신 말씀의 뜻 즉, 주님의 의도를 더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사도바울이 쓴 서신서의 순서를 이해하면 그가 전한 복음과 가르침의 세부사항들 그리고 그 관계성들을 더 명확히 알 수 있다. 특히, 우리가 각 성경을 해석할 때, 주님께서 각 책의 저자들과 수신자들에게 어떤 계시를 주셨는지 그리고 다음에는 어떻게 그 계시가 연결되는지를 아는데 연대 순서가 매우 중요하다. 말씀이 완성되기 전, 초기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주님께서 일시적으로 사도들에게 주신 표적과 기사를
행하는 은사(병 고침, 귀신 쫓는 등의 은사, 사행 14:3, 16:18)가 나중에는 그친 점(딤전5:23) (능력이 그친 게 아니라 은사가 그침)을 알 수 있는 이유는 연대기적인 순서를 통해(역사적 해석) 주님의 뜻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3. 성경이 쓰여진 중심 목적 찾기 (반복적으로 성경을 읽음)
성경을 반복적으로 읽음을 통해(한 책을 정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중심 목적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1) 먼저, 아래와 같은 질문을 던져라.
-저자가 이 성경을 쓴 이유가 무엇인가?
-그 당시의 상황 또는 문제점이 무엇인가?
-저자가 수신자에게 바라고 부탁하는 내용이 무엇인가?
2) 그 다음은 책의 장르 파악하라.
-권면하는 책 : 저자가 수신자에게 가르치는 교리, 책망, 실질적 적용을 파악.
-역사적인 책 : 저자가 기술하는 역사적 사실들, 그가 선택한 자료들, 그 방식 등을 통해 파악.
– 시적인 책 : 저자가 사용한 비유, 은유 등의 기법을 이해함으로 그 의미를 파악.
3) 성경에서 반복되는 컨셉, 단어, 구절, 교리 등을 통해 목적을 발견하라.
-예를 들어, 요한 일서를 보면 반복적으로 나오는 단어와 컨셉 및 교리는 “사귐,” “사랑,” “형제 사랑,” “어둠,” “적그리스도의 영,” “죄,” “예수 그리스도,” “영생” 등이다. 이를 통해, 사도 요한이 이 편지를 쓴 목적은 “적그리스도의 영(영지주의)에 대한 위험성을 알리고, 믿는 자들에게 형제 사랑의 원천이신 예수그리스도 안에 계속 거하도록 권면하기 위함”임을 알 수 있다.
4. 근접(전후)한 문맥 파악하기
성경에서 저자가 기술한 가장 최소 단위의 주제(논리)를 파악하는 것으로써, 이 주제의 최소단위를 문단(문장의 조합)이라고 부른다. 근접한 문맥을 파악하는 핵심이 바로 이 문단인데, 그 이유는 각각의 문단 안에 저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논리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 문단, 즉 주제를 파악하는데 있어 직전의 문맥과 직후의 문맥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리고, 문맥을 잘 파악하기 위해서는 접속사(특히, “그러나”와 “그러므로”)나 주제의 변화(각 문단의), 시간 또는 장소의 변화, 글의 문법적인 변화(주어, 동사, 목적어)등을 통해 좀 더 명확히 이해할 수 있다.
결론
이처럼, 성경해석은 결코 쉬운 작업은 아니다. 그리고, 때로는 이 작업이 많은 시간을 요구할 때도 있을 것이다. 바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이것이 어쩌면 현실적으로 불가능해보일 수 있겠지만,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믿음의 신실한 선배들은 이 시간을 결코 타협하지 않았다. 그리고, 주님의 뜻을 알고자 기꺼이 자신의 시간을 바칠 때, 주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어 그분의 거룩으로 조금씩 이끄신다는 사실을 명심하기를 바란다. 나의 뜻이 아닌 주님의 뜻을 알아갈 때 말이다.
IV. 성경해석에 대한 실제적 접근(2) (갈라디아서 1:6-9)
성경 해석의 방법을 가지고 실제적인 해석을 할 차례이다. 사도 바울이 쓴 “갈라디아서”를 살펴볼 예정인데, 도입부인 1장6절 에서9절을 같이 보기를 원하다.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을 내가 이상하게 여기노라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가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갈1:6-9).
역사적 문맥 파악하기
먼저, 우리가 알아야 할 사실은 이 편지가 약 2000년 전에 쓰여졌다는 점이다. 이는, 그 당시의 시대 배경과 저자와 수신자의 상태를 고려하지 않고, 곧바로 지금 우리의 상황으로 끌어들여 해석하려 한다면, 성경의 문맥이 제공하는 중요한 포인트들을 놓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저자가 이 글을 쓴 데에는 분명한 목적과 이유가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먼저 그 당시 상황을 이해하려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글의 인사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저자는 사도 바울이다. 이는 글에서 저자 본인을 사도 바울이라 명시하는 것(1:1-3)과 그의 필체, 그리고 여러 초대 교부들의 증언을 통해 확증된다. 그리고, 서신서 제목만 보더라도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수신자가 “갈라디아” 지역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는데, “갈라디아”는 그 당시 로마의 속주(Province)로써, 바울이 1차 전도여행 중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웠던 곳을 가리킨다. 이는 사도행전13-14장에 나오는 루스드라, 더베, 이고니온, 비시디아 안디옥을 지칭한다. 그리고, 바울이 1차 전도 여행을 떠났을 당시는 AD 47-49이었고 , 갈라디아서를 기록했던 때는 AD 50-51정도로 추정됨을 통해, 교회를 세운지 2-4년 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바울이 편지를 보낸 데에는 갈라디아 교회에 어떠한 일 또는 문제가 있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이 당시 갈라디아 지역에는 유대주의자(율법주의자)들이 복음을 변질 시켜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닌, “믿음과 할례를 받아야만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가르쳤다. 이는 바울이 처음에 전했던 순수한 복음(믿음으로만 구원)을 다른 복음(행위 구원)으로 바꾸려는 이단적 행위였기 때문에, 이 소식을 들은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한다.
성경의 중심 목적 찾기
역사적인 배경을 파악했다면, 이제 성경을 반복적으로 읽을 차례이다. 서신서는 권면하는 책으로써 대개 저자가 수신자에게 책망과 훈계, 교리에 대한 가르침, 그리고 실질적 적용점을 이야기 할 것이기 때문에 이를 염두해 두고 읽으면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읽을 때에는 갈라디아서 1장부터 6장까지 반복적으로 읽은 뒤, 바울이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수신자에게 무엇을 전하려고 했는지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이러한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세워진 지 2-4년 밖에 되지 않은 교회들에게 바울이 편지를 보낸 이유가 무엇일까?”
“다른 복음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갈라디아 교인들에 대한 바울의 어투가 조금은 강해 보이는데, 갈라디아 교인들이 무엇을 잘못한 것일까?”
“갈라디아 교인들이 처한 상황은 무엇이며, 바울이 그들에게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바울이 결국 말하고자 하는 중심 메시지는 무엇일까?”
“바울의 강한 훈계는 주님의 사랑(십자가 복음)과 어떠한 관계가 있는 것일까?”
이러한 질문을 던졌다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단어, 컨셉이나 교리를 살펴보길 바란다.
이를 살펴보면, “복음,” “다른 복음,” “사람이 의롭게 되는 방법,” “거짓 가르침 또는 교리,”
“믿음,” “율법의 행위,” “예수 그리스도,” “상속자-유업을 이을 자,” “아들,” “육체의 열매,” “성령의 열매,” “할례,” “십자가” 등이 있다.
종합해보면, 사도 바울은 다른 복음 – 율법의 행위(믿음+할례)를 통해 구원을 얻는다는 교리 – 에 빠진 갈라디아 교인들을 책망하고, 처음 들었던 순수한 복음(예수님의 대속을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음)에 머물러 있음으로 육체의 일을 쫓지 말고, 성령님을 따라 선한 열매를 맺으라 권면하는 서신서 임을 알 수 있다.
문맥 파악하기 (언어적인 접근)
오늘 본문인 갈라디아서 1:6-9은 1:1-5과 1:10-24사이에 있는데, 이를 3개의 문맥 또는 문단(주제의 최소 단위)이라 이야기할 수 있다 (해석자의 관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 1장6-9절을 감싸고 있는 앞 문단(1:1-5)은 바울의 정체성과 인사말이고, 뒷 문단(1:10-24)은 바울이 전한 복음의 출처와 그의 회심, 그리고 예루살렘 회의(AD 49, 갈2)까지 그가 했던 사역에 대한 이야기이다. 앞 문단에서의 바울의 따뜻했던 인사(1:2-3)가 6절에서 갑자기 강한 어조로 바뀌는 것을 볼 때, 갈라디아 교인이 처한 상황이 굉장히 급박하고, 심각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뒷 문단에서 바울이 피력하는 진짜 복음(2:10-12)의 출처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는 점을 통해 “다른 복음”은 인간에게서 온 사상(진리가 아닌) 임을 알 수 있다.
해석하기
6절에,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을 내가 이상하게 여기노라.” 바울은 이 구절에서 갈라디아 교인들에 대해 의아한(놀란) 심정을 표현한다. 복음을 들은지 얼마되지 않아(2-4년) 아버지의 뜻인 “그리스도의 은혜”를 속히 떠난 것과 동시에 다른 복음인 율법 주의에 빠진 점에 대해서 말이다. 해석을 더욱 분명하게 하기 위해, 다른 복음의 특징을 더 파악해보자. 역사를 통해 먼저 살펴본 “다른 복음”은 문맥을 통해 더욱 확실해 진다.
6절에서 보면, “다른 복음”이 “그리스도의 은혜”와 상충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성경에서 말하는 “그리스도의 은혜”란, 구원이 인간의 공로가 아닌 주님의 주권(십자가의 은혜)으로 말미암는 선물이기 때문에, 다른 복음(율법 주의, 믿음+할례)은 그 와 반대로 구원의 출처가 하나님이 아닌 인간의 공로, 즉 그 주권이 인간에게서 오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7절에서 “어떤 사람들”이 전한 “다른 복음”은 믿는 자를 교란시키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는 특징을 보여준다. 여기서 “어떤 자”는 “우리-사도들”와 대치되는 자들로써, 다른 복음을 전한 율법 교사들을 지칭한다. 그들이 전한 다른 복음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배격하는 것이었는데, 결국 다른 복음인 율법 주의(믿음+할례=구원)는 십자가의 도가 아닐 뿐만 아니라, 신자의 영적 성장을 저해하는 악한 사상 임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바울은 8절에서 “우리-사도들”나 “천사”라 할지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했던 복음이 아닌 거짓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 것이라 강하게 이야기 한다. 저자가 사용한 가정법은 명시된 내용에 대한 반대 사실을 강조하는 것으로써, “우리”나 “천사”는 결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며(율법주의가 진리라고 주장), 9절에서 또한 너희가 받은 것, 즉 우리가 전했던 복음이 진짜 복음 임을 강조하는데 이는 바울이 전에도 이야기 했고 지금도 반복해서 이야기 하는 이유이다.
즉, 바울은 그리스도의 복음(믿음으로 구원)을 속히 떠나 다른 복음(율법 의식-할례-을 행함으로 구원)에 빠진 갈라디아 교인을 질책 하므로, 우리가 전했던 복음이 진짜 복음이며, 그들(거짓 교사)의 교리는 결국 저주를 받을 악한 것임을 강조한다. 그 이유는 바울이 전한 복음은 주님께로 부터 온, 즉 주님의 뜻으로 말미암은 순수한 복음이었지만, 율법 주의자들이 전한 복음은 인간에게서 온 거짓 사상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사상은 믿는 자들을 미혹하여 율법의 멍에를 다시 지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구원 받았음에도 행위로 구원을 얻는 것처럼 속임), 바울은 이를 매우 심각하게 다루었다. 다음 문맥인 1장 10 – 24절에서, 바울은 주님과 복음에 대한 자신의 생각, 그리고 자신이 전한 복음의 출처를 정확히 밝힘으로 앞에 말한 것들을 더욱 분명하게 한다.
적용
위의 과정을 통해, “다른 복음”의 정체와 그 심각성에 대해 조금은 더 명확해 졌으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다른 복음”이 지금의 이단 사상인 신천지나 여호와의 증인이 아닌 “유대주의- 율법주의” 였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는 우리가 말씀에 대한 적용을 하는데 좀 더 명확한 방향을 제시해주기 때문이다.
필자는 위의 해석에 대해 이렇게 적용하려고 한다 (적용은 해석을 근거로 다양하게 접근할 수 있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죄 된 인간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이 아닌, 완전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온 진리 이기 때문에 이 복음의 완전성은 결코 인간의 행위로 더하거나 뺄 수 없다. 복음은 복음 스러운 율법 주의와 완전히 다르며, 이 다른 복음은 믿는 자의 영적 생활을 피폐하게 하는 교리이기 때문에, 순수한 복음을 매일 나 스스로에게 전해야겠다. 나의 구원이 나의 행위가 아닌 오직 그분의 은혜로 말미암았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잘못 오해하여 주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고 도덕적인 타락을 용인할 수 있는데, 항상 깨어 있어 주를 사랑하므로 주님의 말씀에 더욱 순종 해야겠다. 이를 위해 매일 말씀과 기도로 주님과 친밀한 교제를 하여 주께서 주신 복음을 믿지 않는 영혼과 복음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영혼들에게 지속적으로 전해야겠다. 먼저는 가까운 가족들과 지인들, 그리고 알게 될 모든 이들에게 이 복음은 당신을 속박하는 율법주의가 아닌 주님의 완전한 사랑이라는 것과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는다는 것을 말이다.
결론
지금까지 문맥을 통해 성경을 해석하는 방법과 적용에 대해 살펴 보았다. 이러한 방법이 때로는 지식적인 접근으로 느껴져 말씀의 저자이신 성령님을 의지하지 않는 것으로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그분의 말씀을 올바로 분별하기 위한 노력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말씀 드리고 싶다. 그리고,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성경 해석의 원천이 우리의 지적 능력이 아닌 성령님의 조명하심이기 때문에 항상 겸손한 자세를 가지고 기도로 주께 나아가야함을 잊지 말아야 하겠다.
http://gracetokorea.org/2018/06/06/성경-해석에-대한-실제적-접근-iiii-갈라디아서-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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