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기독교 영성이란 무엇인가
기독교 영성(spirituality )의 정의는 어떤 개념인가에 대해서 학자들간에 견해차는 극명하게 대립된다. 한예로, 독립교회의 목회자인 마틴 로이드 존스와 제임스 패커(성공회,성직자)의 견해 충돌이다. 로이드 존스 목사의 관점에선, wcc와 연관된 교회 안에서의 영성회복이란 절대 불가능한 것으로 여긴다. 현대에 이르러 대부분의 영성주의 운동은 제임스 패커의 관점을 동의하고 추종한다. 따라서 그들은 스스로를 일컬어 '복음주의자'로 명명한다. 제임스 패커는 타락한 제도권 교회 안에서의 영성회복이 가능하다고 믿었고,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는 불가능하다고 믿었다. 제임스 패커의 이론에 추종하는 교회들은 근대에 들어서 두 방면으로 영성회복운동을 시도하는데,,하나는 열린 예배를 통해서이며...다른 하나는 기름부음,축사. 쓴뿌리 제거(인간 속에 조상으로부터 우상숭배한 죄악이 흐르고 있다고 보는 시각) 성령세례.안수.등이다.
2. 인간학에 대한 기본적 이해
왜, 마틴 로이드 존스는, 재임스 패커 그룹의 영성회복 운동의 방법론에 있어서 탈성서적인 시도이다고 여겨 그 부류에서의 합류하기를 거부하고 탈퇴한다. 그럼 왜 이런 방식으로는 인간의 영성회복이 불가능한가? 그것은,인간론에 대한 이해부족에 바탕을 두었기 때문이다.
인간은 무엇인가? 어떤 구성요소를 가지고 있는가? 하나님께서 회복시키려는 인간은 어떤 모습이며,,왜 회복시키려고 하시는가? 인간의 본질은 죄성이다. 전적 부패,전적 타락된 모습이 인간의 실존이다.
하나님께서 '영적 사람'이라고 정의하는 바는 성령적인 인간이다...성령에 의해서 살아야 하고 "성령을 좇아 사는 우리니.."
또한 하나님의 성령을 담는 그릇이 예비되어야 한다. 이것을 새 생명이 인간 속에 생성됨을 가리킨다. "주와 합한 자는 한 영이니라,,"는 의미는 하나님의 성령과 새 생명이 생성된 인간의 영과 하나님의 영의 연합을 가리키며,,인간의 영이 하나님의 성령을 담을 수 있는 존재로 개선되었다는 의미인 것이다. 본래 하나님의 거룩한 성령과 함께 동거할 수 없었던 인간의 내면이었으나 변화되었고, 거듭난 것을 구원받은 상태라고 성경의 정의하는 것이다.
3. 하나님의 성령이 거주하시는 장소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이라고 하면 ....하나님의 성령은 어디에 거주하시는가? 마음인가? 정신인가? 이성인가? 육체인가? 강조할 필요가 없이 마음 속일 것이다.그래서 성경은 "너희 마음에 성령을 부으셨다"라고 알려 준다. 분명 하나님의 성령은 인간의 가장 깊숙한 곳인 영혼에 거주하고 계신다.. 그러면 마음이라는 존재의 위치는 어디인가? 확실한 사실은, 인간의 이성,지성, 정신,,,즉 머리 부위 근처는 아니다. "마음이 아프다는 것"과 "머리가 아프다,,"라는 표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것이다.
머리 부위에 있는 것이,,인간의 정신력,,인지력,사고 능력,,사유능력 등이다...하나님은 성령은 거기에 거주하지 아니하신다.
그러하기에 우리가 머리로 안 하나님에 대한 앎을 모두 무가치하게 여기는 것이다.
그리고 가장 혼란스러워 하는 인간의 부위가 있는데 감성,감정이라는 곳이다. 인간의 감정,감성이 선천적인 인간에게 있는가? 없는가? 감성이 풍부하여 시를 쓰고 , 그걸 곡조를 붙여 노래하기도 한다.. 이 음악을 선천적 인간이 할 수 있는 능력이 선천적 인간에게 있는가? 없는가?...당연히 모두가 있다고 동감할 것이다.
4. 하나님께서 인간을 치유하시는 원리
현대 기독교만큼 복음주의가 희석되고 왜곡 이해한 시대는 없었을 것이다. 너도 나도 '복음주의자'로 자처한다. 하지만 마틴로이드 존스 목사의 관점에선, 복음을 아예 모르는 자들이다. 왜냐하면, wcc에 의해 주최된 집회,즉 재임스 패커의 학설을 추종하는 이들이 빌리그래함을 초빙한 집회에 동참하기를 마틴 로이드 존스는 거부한 입장표명에서 그의 관점이 드러난다.
무엇이 그릇되었는가? 무엇이 탈성서적인가? 그것은, 인간 회복의 기초한 지식이 잘못된 것이다. 선천적인 인간을 회생시키는 방법은 오직 하나뿐이다. "위로부터 성령이 오시면..." 이다. 하나님의 구원,,하나님의 영성 치유는, 오직 유일하게 "위로부터 성령을 부으심"으로 시작되며 완성한다. 하지만,패커주의자는 인간자체에 이미 하나님의 성령을 담을 수 있는 존재가 되어 있다는 전제로 문제를 풀어 나가려고 시도한다. 그래서 성령을 모신 적인 없는 인간인 신자를 치유의 수술대에 올려 놓는다.
그들이 시도하는 방법은 두 방면으로 나타나는데..하나는 열광적인 찬양 집회이고..다른 하나는 기름부음,은사집외,안수,전가. 전이,,등의 방법으로서 이다.
인간,본연이 가진 특성인 감성, 감정으로 하나님의 영에 충만함을 입는 길을 추구한다. 어떤 부류는 아직 죄인간의 본질을 가진 신자들을 덫씌우기 방식으로 해결하려고 한다.
과연 완벽하게 온전히 치유될까? 불가능하다. 그러하기에 열광적인 찬양집회,,영적 능력이 신비하게 움직이는 집회에 참예한 회중이나...그 지도자에게서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죄악들이 끊이지 않는 것이다.
5. 거룩한 성령을 충만해지는 유일한 길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시다. 거룩한 분을 내 마음에 모시려면 내가 거룩한 상태로 조성되는 길 밖에 없다. 그래서..치유되었다..하나님의 평강의 영이 당신들 속에 거한다,,라고 아무리 강조하고 설득할지라도 참 평안이 없다..라고 예레미야를 통해 말씀하시는 것이다. 인간이 사망의 사망의 사슬에 매임도...흑암에 처하고 있는 이유도..마음 속에 죄가 완벽하게 청소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뵐 것임이요...라고 하였다..마음이 순결하게 ..정결하게 청소되어야만 깨끗하신 영,,거룩하신 하나님의 임재를 맛볼 수 있다.
문제는 어느 만큼 청결케 되어야 하나님의 거룩(순결,청결)하신 영을 담을 수 있느냐의 숙제만 남는다.
6. 마음이 청결시키는 하나님의 방법
성경은, "많은 잿물(인간이 만든 세척제) 여러가지 비누(인간이 만든 청결용제)로 마음의 죄악을 씻으려 할지라도 끝끝내 성취를 맛보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오직 "그의 피로싸 정결케 하였느니라...예수의 피로 깨끗케 하였느니라"라고 제시할 뿐이다. 그런데 자꾸만 덫 씌우기 방식으로 인간이 하나님의 거룩한 성령을 받으려고 시도한다. 마음 속 깊은 곳에 감추어져 있는 죄를 씻으려고 시도하기보다...안수.기름부음,성령세례.성령충만이란 이름으로 은사집회에 가면 더 충만해 질 것으로 상상한다. 인간의 사유 세계에서 나온 산물인 찬송을 더 감정적으로 열성을 냄으로써 충만해 질 것을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이 방식으로는 평생을 추구해 보라..불가능하였고, 실패하였고. 절망에만 빠질 것이다.
진실로 나의 죄를 씻기는 예수의 피 밖에 없다..
7. 어느 만큼 씻겨야 거룩한 성령으로 충만함을 입는가?
교회사의 대 각성운동을 면밀히 감찰해 보라..과연 오늘날처럼 열정적인 찬양집회..신비한 능력자들의 은사를 전이받음으로 하나님의 성령으로 충만케 되는 길을 제시하였던가? 아니다. 오직 그들은 하나님이 죄로 여기시는 것에 대한 회개에 의해 하나님의 영에 충만함을 덫 입었다. 문제의 원인은 무엇인가? 왜 그릇된 시도라고 지적하는가? 거룩한 성령을 담을 만큼,,,청결해 지지도 않았고,,,예수의 피의 효력을 믿는다고 하나,,아주 협소한 인지력을 가지고 있다. 한마디로 온전히 거룩한 영혼으로 되는 길을 모르고 있는 것이다.
선천적인 인간의 이성,감성,정신력은 전달 수단일 뿐이다. 내적인 하나님의 영이 외부로 표출되는 수단이요..내적으로 성령을 모시기 위한 방법론에 대한 이해 수단으로 유용될 뿐이다. 근본적으로는,위로부터,,즉 하나님으로부터 하나님의 뜻하심을 아는 능력이 와야 하는 것이다.
이미 위로부터 온 하나님의 거룩한 성령이 내주하는 설교자의 지각,이성,감성,정신 통해 입술로 토해낼 뿐이다. 1차 대각성운동가들,,조나단 에드워즈..2차 대 각성운동을 주도한 찰스피니...그들이 영혼을 살리고 성령으로 충만케 한 사역의 방식이 무엇인가? 그들의 설교이다...자신들에 내면에 임재하신 그리스도의 영에 대하여 그의 지성,정신력,감성으로 표현할 뿐이었던 것이다. 그들이 능력을 나눠줬는가? 그들이 안수하여 그들이 가진 충만한 성령의 능력을 전수하려고 시도하였던가?
왜, 이리도 모두들 영적 세계에 대한 분별력이 어두운지 모르겠다. 아마도 이시대가 가장 깊은 영적 암흑시대가 도래한 것이 아닌가 싶다. 악한 영이 모든 기독교 지도자의 영적 지각을 혼돈시켜 버린 것이다.
방법은 하나 밖에 없다..옛적 길,,선한 길,,즉 사도들이 외쳤던 메시지의 정수에로 돌아가는 길이다.
'십자가의 도'가 상실한 시대이다.
남은 자들의 집에서 이 여호수아 목사 http://cafe.daum.net/testimon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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