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구약

[스크랩] 아담의 위치와 역할

수호천사1 2018. 5. 9. 16:35

아담의 위치와 역할

 

 

아담이 덧입었던 원시의는 무엇입니까? 이에 대하여 조직신학에서는 기능적인 측면에서 설명하기를 하나님의 완전한 호의를 입음이며 하나님의 뜻에 합한 일들을 행하여 하나님께서 기뻐하심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설명하는 것은 원래 인간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합당하게 행하였는데 죄로 인하여 거룩한 하나님의 법에 이르러 가지 못한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왜 법을 지키지 못하였습니까? 그것은 원래적인 의와 위치를 잃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원래의 위치에로 돌아갈 수 있습니까? 법을 지킬 수 있도록 회복되면 그 자리에 돌아간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내용들은 전적으로 틀린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아담에게 주어진 은사들은 그가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하나님 앞에서 주어진 은사이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에덴적인 은사이었습니다. 그 은사는 역사의 출발점이었던 에덴에서 하나님과 동거하고 동행하는 가운데 첫 창조세계의 역사를 열고 시작하도록 주어졌던 은사이었습니다. 이처럼 아담은 하나님의 뜻을 대행하는 자로서 옛 역사와 옛 인류의 시대를 연 시작자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원시의에 대한 설명은 기능론적인 면에서의 접근보다는 아담이 범죄 하기 이전의 하나님과의 관계와 그의 위치를 따라 설명하는 것이 바를 것입니다. 범죄 하기 이전의 아담의 위치에서 원시의에 대하여 접근하는 것이 바른 방법입니다. 왜냐하면 아담에게 주어진 것들은 아담이 행해야 할 기능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의 위치와 신분 때문에 주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담에게 주어졌던 불사적인 육체의 능력이나 피조물의 완전한 상태 등은 에덴에 세워진 아담의 상태를 설명하려는 것이거나 낙원에서 완전한 행복을 나타내고자 함이 아니라 에덴에서 출발된 역사의 의미를 말하고자 함에 있습니다. 에덴은 죄가 없는 완전한 파라다이스가 아니라 아담의 일터와 삶의 현장이었습니다. 옛 역사와 옛 인류의 출발점이었습니다. 이처럼 창세기 2장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아담을 통하여 옛 역사와 옛 인류를 출발시키셨는지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행복에 대한 문제보다 인류와 역사가 어떻게 시작되었으며 그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에덴 중앙에 있는 생명나무는 역사에서 성장하고 발전되어서 역사의 종말에는 길 가운데로 흐르는 강 좌우의 생명나무에 달마다 열두 실과를 맺혀서 온 세상이 온전한 생명으로 가득하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성경은 에덴에서 시작되었던 생명이 죄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영원한 생명으로 완성되었는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에덴동산은 하나님께서 아담의 일터와 삶의 터전으로 구별하신 창조세계의 지성소이었습니다. 창조된 세계 가운데서 에덴을 아담과 함께 거주할 지성소로 구별하신 것입니다. 그런 후에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돕는 배필인 하와를 데리고 오셨습니다. 성경은 첫 사람 아담과의 언약 문제가 거론되기 전에는 하와를 등장시키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하신 말씀의 의미는 하나님께서 아담을 지칭하여 언급하신 말씀입니다. 또한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고 하신 말씀도 하와가 아니라 아담에게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이처럼 창세기 2장은 첫 사람 아담을 통한 역사의 출발에 대하여 증거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1장과 2장은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자신의 구원역사를 어떻게 출발시키고 계시는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에덴의 아담은 어떤 의미에 있어서는 행복하지 못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짝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에덴의 언약은 아담에게서 시작되어서 종결되었으며 하와는 하나님께서 아담과 체결하신 에덴언약을 언급한 이후에 등장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들은 첫 사람 아담의 존재 의의와 역할이 무엇인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처럼 에덴은 아담의 행복 여부를 말하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인 그의 위치와 역할을 증거하기 위하여 언급되고 있습니다. 아담은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하나님과 교제하고 의논하는 가운데 구원역사를 경영할 대리자로 세워졌던 것입니다.

 

창세기 2장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창조된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경작할 사람도 없어서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도 나지 아니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담에게는 돕는 배필이 없어서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지 않았으며 그에게는 선악과를 먹지 못하는 결핍도 주어졌습니다.

 

창세기 1장에서는 첫 창조가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대로 되어져서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져서 안식하셨다고 기록하고 있지만 2장은 창조세계 가운데 결핍들이 있다고 기록함을 통하여 하나님의 대리자인 아담이 역사의 출발점에 서 있음으로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2장의 여러 가지 결핍들은 역사의 시작점으로 인하여 주어졌던 결핍이었습니다.

 

이스라엘에게는 죄로 인하여 주어진 제한과 결핍이 있었습니다. 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한시적이고 임시적으로 함께 하셨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모든 것을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휘장으로 가리우시고 이스라엘을 대하셨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정한 것과 부정한 것의 구분이 주어졌습니다. 따라서 정하여 먹을 수 있는 것과 부정하여 먹을 수 없는 것의 제한이 주어졌습니다. 이처럼 모세율법의 통치 아래에 있었던 이스라엘은 모든 것을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생명의 질서가 도입된 신약시대에서는 믿음 안에서 모든 것을 먹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혼인을 금하고 식물을 폐하라 할 터이나 식물은 하나님이 지으신 바니 믿는 자들과 진리를 아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을 것이니라.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 짐이니라”(딤전 4:3-5)라고 바울 사도는 권고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성경은 인간의 행복 여부에 초점을 맞추어서 말하고 있지 않으며 먹고 마심의 문제를 통하여 생명의 완성의 문제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하나님과 교제하는 생명의 문제를 언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에덴은 옛 인류와 옛 역사의 출발점이었기 때문에 창조가 완성되었음에도 창조세계와 아담에게는 제한이 있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에덴에서 결핍은 죄로 결핍은 아니었습니다.

 

아담이 누렸던 생명은 먹으면 죽으리라는 의미로 완성되지 않은 생명이었습니다. 그가 누리는 생명은 역사 속에서 완성을 행하여 성장하고 나아갈 생명이었습니다. 그에게는 시험하는 자가 있었으며 죽음의 위협이 가해져 있었습니다. 시험하는 자로부터 주어졌던 시험은 죄로 인하여 주어졌던 것이 아니라 역사의 출발점에 세워졌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을 구조론에 의거하여 설명하면 사변화됩니다. 항상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인간을 생각하고 언급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서의 첫 사람 아담의 위치와 역할을 생각하고 아담의 존재 의의와 역할이 무엇인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지 아니하고 첫 아담의 기능이나 구조에 입각하여 이해하면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의미를 바르게 나타낼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이 말하는 인간론은 생물학적인 인간론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인간론입니다. 하나님의 대행자이며 동행자로서 인간에 대한 이야기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론은 마지막 아담이시며 보좌 우편에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기독론적인 해석이 아니면 첫 사람에 대한 형상의 문제도 설명이 불가능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입었다는 것은 어떤 구조로 변화되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 우편에 있는 본체의 형상이기 때문에 그와 하나 된 우리는 온전한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하늘에 속한 교회

 



출처 : 은혜동산 JESUS - KOREA
글쓴이 : 죤.웨슬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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