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나라' 사상의 역사적 변천과정
세례 요한과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가장 먼저 선포하신 말씀은 "천국이 가까왔느니라"이다.(마4:17 ;3:2)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 선포 뒤에 하나님의 나라가 어떠한 곳인지에 대하여 본질이나 존재를 증명하는 설명이 전혀 나타나고 있지 않다.
이는 당시의 유대인들이 '하나님 나라' 사상에 매우 친숙하고 있었음을 우리에게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유대인들은 이와같은 선포에 대하여 직접적이고 즉각적인 반응을 나타내어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기 위하여 예루살렘을 비롯하여 요단강 사방에서 나아오고 있었다. 그러나 후에 예수님께서 점차적으로 비유를 통하여서 '하나님 나라'의 본질과 특징을 설명하시는 장면이 등장한다.
이는 '하나님 나라'의 사상이 유대인들에게는 친숙한 사상이지만 예수님께서 선포하시는 '하나님 나라'와는 의미에 있어서 상이점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우리는 짐작할 수 있다. 그러면 '하나님 나라'의 사상이 어떻게 변천하여 욌는지를 역사적인 흐름에 맞추어 살펴보기로 하자.
A.구약시대의 '하나님 나라'
고대 근동의 종교의 일반적인 특징 가운데 하나는 자신들의 신을 자신들의 왕으로 인정하고 찬양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전쟁은 부족간의 전쟁인 동시에 부족 신의 세력 싸움으로 그들은 이해 하였다.이스라엘에 있어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나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대로 구약성서 가운데 '하나님 나라'라는 어휘를 발견할 수 없다. 그러나 신약성서에 나타나고 있는 '하나님 나라'의 어휘가 내포하고 있는 사상의 뿌리는 구약성서에서 출발하며, 구약성서 전체의 흐름이다. 도래하는 '하나님 나라'를 기다리는 사상은 구약성서의 신적 계시와 신앙의 대망 가운데 숨겨져 있다.
때문에 구약성서 가운데서 하나님의 종으로 부름을 받은 모든 선지자가 '하나님 나라'에 대한 개념을 가지고 있었으며 또 이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선포하고 있기에 구약성서는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다스리는 것으로 가득 차 있다. 이와같은 '하나님 나라'의 사상의 출발점은 근원적으로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사실에 근거할 수 있으나 좀 더 구체적인 출발점은 히브리 종교사상에 있어서 실현 되었던 신정정치의 이념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다른 신들을 심판하시는 분이심과동시에 지상의 왕국을 다스리시는 것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이와같은 사상이 이스라엘 역사와 함께 여러 세기를 지나는 동안에 발전하게 되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들이 '제사장 나라'와 '거룩한 백성'이 되어야 한다는 여호와의 계약을 알리어 주었으며(출19:5), 사사 기드온은 여호와만이 유일하게 이스라엘을 지배하실 수 있다는 이유를 내세워 자신에게 주어지는 통치권을 거절 하였으며(삿8:23), 사무엘의 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다른 나라와 같이 강한 왕정정치를 요구한 이스라엘 백성이 사울을 왕으로 세웠을 때, 하나님께서는 친히'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버려 이스라엘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였다'고 말씀하셨다.(삼상 8:7 ; 12:12)
이와같이 구약성서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하나님의 통치하심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나라'나 '하늘나라'라는 어휘가 구약성서 가운데 나타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는 앞에서 언급한 바와같이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하는 것을 피한 것과 같이 하나님을 주어로 사용하는 문장도 피하였기 때문이다. 둘째는 이스라엘이 신정왕국이라는 사상이 구약성서 전체에 깔려 있기에 굳이 이 어휘들을 사용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대신에 자주 사용하는 어휘는 말락야웨(Malak YHWH )인데 이는 하나님의 통치를 나타낸다. 이 통치는 이스라엘의 왕이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통치하심 (출 15:18, 민 23:21, 신 33:5, 사 43:15 )은 물론이요, 온 세상의 통치자이심을 의미하는 것이다. ( 왕하 19:15, 사 6:5, 렘 46:18, 시 29:10 ; 99:1- 4 )
이와같은 사상은 이스라엘의 실제 역사 가운데서 많은 갈등을 가져오면서 변천하게 된다. 이스라엘에 아직 왕이 있지 아니하고 청동기 시대에 있을 때 인접 국가인 불레셋은 강한 왕권과 함께 철기 문명을 가지고 있어 강한 군사력을 앞장세워 이스라엘을 자주 침략하자, 이스라엘은 이에 대응하기 위하여 당시의 선지자인 사무엘에게 강한 중앙 집권 체제인 왕정을 요구하게 되었고 사무엘은 자연히 군사적 승리로 인하여 인기가 많은 사울을 왕으로 등극 시켰다.
그러나 사울의 왕권은 과도기적인 왕권 이었으며, 다음으로 이어지는 다윗 왕조에 가서야 비로서 이스라엘의 군주체제가 확립된다. 다윗은 자신의 왕조를 확고히 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통치 사상을 국가의 부흥과 연결을 지었다. 이와같은 변천된 하나님 나라의 사상은 이스라엘이 찬란한 영광을 누릴 때에는 이와같은 사상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 들여지나 바벨론이나 그밖의 강대국에게 이스라엘이 속국이 되었을 때 그들의 왕이신 하나님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와 함께 하나님의 통치가 강대국의 압박 밑에서도 유효한 것인가? 라는 물음이 나오게 되었다.
이와같은 갈등 가운데 예언자들을 통하여 미래의 '하나님 나라' 소망이 싹텄다. 이스라엘의 통치자이신 하나님께서 미래에는 왕권을 가지고 오셔서 이스라엘을 압박하는 강대국을 물리치시고 자유를 주신다는 소망을 예언자들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었다. ( 사 24:23 ; 33:22 ; 52:7 , 습 3:15, 슥14:9 ) 미래에 오는 그 나라는 이 땅위의 역사 가운데 한 지역을 배경으로 하여 '다윗의 후손에 의하여 성취될 것이다'라고 예언자들은 선포하였다. 그러나 다윗의 후손들이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는 것을 목도한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들의 역사 가운데 다시금 그 나라가 일어날 것이라는 소망이 점차로 사라지게 되었으며 하나님 나라의 소망이 묵시문학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B.묵시문학의 '하나님 나라'
구약시대에는 '하나님 나라'나 '하늘 나라'의 어휘가 없으나 신약시대에는 이 어휘들이 아무런 거부감이 없이 친밀하게 사용되고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것은 이 어휘들이 신약시대와 구약시대의 중간기인 묵시문학 시기에 정립된 것이라고 우리는 생각할 수 있다.
포로기 이후에는 예언활동이 점차로 사라진다. 그 뒤를 이어서 묵시문학이 새롭게 등장한다. 이 묵시문학은 구약시대의 예언과 상이한 점이 많으나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왕이시다라는 사상은 지속적으로 계승하고 있다. 구약시대에서 이스라엘이 정치적, 종교적 상황이 어려움 가운데 있었지만 언젠가는 다윗의 후손 가운데 강한 힘을 소유한 절대적인 왕이 등장하여 현실에 처해 있는 정치적, 종교적 어려움들을 해결하여 하나님을 마음놓고 섬길 수 있는 나라를 이룩한다고 하는 것이 유대인의 바람이며 ,또한 그와같은 믿음을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살펴 보았다. 그러나 현실의 역사 가운데 이와같은 소망이 사라지자 예언자들의 외침은 호소력을 상실하게 되었고 백성들이 가지고 있는 '하나님 나라' 사상도 바뀌게 되었다.
즉 '하나님 나라'가 자신들의 민족 가운데 왕의 후손으로 태어나는 자를 통하여 임한다고 하는 생각에서 현실의 역사를 포기한 역사 밖에서 강권적으로 임하시는 '하나님 나라'를 기대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다윗의 왕국이 지상의 팔레스틴 지역에서 회복 되리라는 종래의 사상을 바꾸어 장차 앞으로 올 '하나님 나라'는 초자연적인 특성을 가지는데 이것은 하나님께서 직접적으로 행하시는 일이기에 현실의 역사적 발전이 아니라 갑자기 이 현실 가운데로 임하는 것이기에 현실 세계는 종말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라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생각하게 되었다.
이와같은 사상의 변화는 이전까지 이스라엘을 억압하는 강대국인 바벨론이나 이집트를 이 세대 속에서 이스라엘의 적이라고 간주하여 그들과 현실적인 투쟁을 행하던 것을 중단하게 하였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을 억압하는 강대국이 적이 아니라 강대국들을 주관하는 사단이 적이라고 판단하였고 이를 물리치는 것은 현실적인 투쟁이 아니라 영적인 투쟁에 의한 것이어야 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와같은 묵시문학에서의 '하나님 나라' 사상의 변천은 현실에 대하여 매우 부정적인 생각을 갖게 하였다. 즉 현실은 악의 세력에 의하여 지배를 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묵시문학가들은 현실에 희망을 가질 수가 없으며 지상에서의 '하나님 나라'를 건설 하기를 포기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와같은 사상이 묵시문학 전체에 일관되이 흐르며 기록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구약시대의 사상을 전통적으로 그대로 담아 이스라엘 백성의 회복과 다윗의 집이 다시금 일어날 것이라고 하는 작품도 있다.또한 이 세상에 마지막 세대의 메시야가 통치한 후에 초역사적인 메시야가 나타나 새로운 천상의 세계가 된다고 하는 과도기적인 사상을 지닌 작품도 있다.
그러나 이와같은 형태의 '하나님 나라'가 나타나고 있으나 묵시문학에 나타난 '하나님 나라'의 특징은 어떤 인간의 노력도 결코 '하나님 나라'의 도래와는 무관하다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는 오직 하나님의 계획 아래에 있는 것이다.
이와같은 묵시문학에 나타난 '하나님 나라'의 사상이 절대적으로 옳은 것은 아니다. 그 이유는 묵시문학은 이스라엘 민족이 암울한 역사의 현실 속에 있을 때 미래에 대한 밝은 소망을 주기 위하여 기록된 것이기에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신 '하나님 나라'와는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C.예수님 시대의 '하나님 나라'.
예수님이 출생할 때의 팔레스틴 지역은 매우 혼란을 겪고 있었던 곳이였다. 당시의 강대국 로마는 급기야 팔레스틴까지 그 영역을 확장하였다. 그러나 오랜 역사와 전통을 고수하고 있던 팔레스틴 지역은 쉽게 헬라의 문화에 동화되지 아니하였다. 물론 외형적인 건축물 등은 헬라화 되어 갔지만 내면적이라고 할 수 있는 의식과 가정제도에서는 자신들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었다. 여기에 로마의 융화정책이 이를 가능하게 하는데 일익을 담당하였다.헬라문화가 사유재산 제도를 기본으로 하는 개인주의적인 문화인 반면에 팔레스틴 지역의 문화는 공납제 생활양식 (a tributary model of production)의 문화로 촌락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이와같이 상이한 문화의 양식 가운데 이 지역을 통치하는 사람은 많은 갈등을 하여야 하였다. 무조건적으로 헬라문화를 이식하고자 하였던 통치자와 전통을 지키려는 유대인들 사이의 충돌이 빈번히 발생하는 사례가 있었다. 그 대표적인 예가 기원전 2 세기 초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가 무리한 개혁을 단행하다가 마카베오 형제와 그의 후계자들이 단합하여 민란을 일으킨 것이다. 또한 때로는 팔레스틴 지역의 문화를 잘 이해하여 엄청난 부를 축적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지역의 유대인들로 부터 합법성을 인정 받는 경우도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헤로데이다. 그는 무력과 공포로 통치를 하여 부를 축적하는 한편, 큰 성전을 건축하였기에 유대인들로 부터 어느 정도 합법성을 인정받았다.
이와같은 혼란의 시기에 유대인 안에서도 이 혼란에 대처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그 첫째가 엣센파 이다.이들의 지대한 관심사는 성전 정화에 있었다. 이들은 부당한 사제직에 의하여 성전이 더럽혀졌다고 단정하고 도래할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민족적 생활과 성전 생활을 떠나 공동체 생활을 하며, 기도와 성서 연구에 치중하였다. 이와같은 생활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준비라고 이들은 생각 하였다.
다음은 사두개파 사람들로 이들은 로마와의 타협을 모색하여 위기를 극복하고자 하였다. 이들은 로마에서 파견하는 관리들의 행정적인 조처들을 인정하고 지지하였다. 이들이 기다리는 '하나님 나라'는 현실 세상으로 오는 것이며,현실의 이스라엘을 통한 도래였다. 다음은 바리새파 사람들로 모세의 율법을 지켜야한다고 백성들을 가르치면서 '하나님 나라'를 기대하고 있었다.
이와같이 이 시대의 유대인들은 구약적 배경의 '하나님 나라'의 사상을 모두 가지고 있었다 . 묵시문학적 입장에서는 초자연적인 인물을 통하여 인간역사 가운데로 '하나님 나라'가 도래한다는 것이었다. 즉, 현실의 역사를 종식 시키고 전혀 다른 차원의 역사가 시작된다고 보는 것이다. 또한 유대인에게는 다윗의 후손으로 오시는 메시야에 매우 큰 관심과 희망을 표시하는 것이 당연한 일로 여겨진다. 현실의 역사를 종식 시키는 것이 아니라 개선하여 현실 안에서 '하나님 나라'를 일으키기를 유대인들은 원하고 있었다.
이 시대에는 이와같은 두 개의 사상이 양립되어 있었으며 사상적인 정리가 되지 않은 혼란의 시기였다. 예수님에 대한 유대인들의 반응을 살펴보면 이 두 가지를 모두 기대하는 모습을 보게된다. 전자의 모습을 기대하는 것은 요 7:26-27에 ,후자의 모습을 기대하는 것은 마 2:5 ; 21:9 ; 22:4 ,요 7:40 - 42 에 기록되어 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에 들어오실 때의 환호성으로 "다가오는 우리 조상,다윗의 나라에 복이 있도다." (막 11: 10) 고 외친 사실과 유대인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였기에 조롱의 어구로 십자가 위의 죄패에 "유대인의 왕"이라고 기록한 사실은 당시의 유대인들은 후자의 모습을 더 많이 기대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지금까지 '하나님 나라'에 대한 사상의 변천을 역사적인 맥락에서 살펴보았다.
이를 종합하면 '하나님 나라'의 사상은 이스라엘이 왕정이 시작되기 이전인 신정정치 시대까지 거슬려 올라간다. 이때는 '하나님 나라'라는 사상 보다는 하나님의 통치의 개념이 더욱 강조되었던 의미를 가지고 있었으며, 이 통치는 어느 한 국가만을 그 영역에 두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 모든 것을 영역으로 하는 것에 더 큰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와같은 하나님의 통치가 왕정으로 넘어오면서 이 사상이 이스라엘 국가의 이념으로 바뀌게 되었다. 이렇게 바뀐 사상은 계속하여 전통적인 사상으로 후세에 전달되었고 '하나님 나라'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국가적 강성함을 기대하게 하였다.
그러나 다윗 왕조의 몰락은 이와같은 '하나님 나라'사상에 일대의 변혁을 가져오게 하였다. 그것은 세상의 인간의 힘에 의하여 '하나님 나라'가 성취되는 것이 아님을 새롭게 인식된 것이다.
묵시문학에서는 이와같은 상황 속에서 다른 방법의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제시하고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는 국가적인 도래가 아니라, 개인적인 의로 말미암아 참여하는 것임을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구원도 국가적인 구원이 아니라 개인의 의에 의한 것임을 밝히 말하고 있다. 이 구원은 하나님의 통치가 우주적임을 밝히는 것이다.
묵시문학에서는 이방인의 구원이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다. 이와같은 사상의 변화는 이스라엘의 민족의 개념을 바꾸었다. 예수님 시대에는 정치적, 종교적,경제적인 혼란기와 함께 '하나님 나라'에 대한 사상도 혼란을 거듭하고 있던 시기였다. 전통적인 국가의 이념으로서의 '하나님 나라'를 기다리는가 하면 묵시 문학에서 새롭게 등장한 개인적인 '하나님 나라'를 기다리는 무리들이 함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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