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과 "하나님 나라"가 다른가?
<천국> 혹은 <하나님의 나라>라는 말은 성도가 가장 소망스러워하는 단어이다. 사실 이 말처럼 성도에게 소중한 단어도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천국이란 말과 하나님의 나라라는 말에 대해 상고해 봄이 필요할 것이다.
개역한글성경으로 볼 때, 신약성경에는 "천국"이란 말이 37회가 나오며, "하나님의 나라"라는 말이 67회 나온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이 두 용어가 각기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 처럼 생각을 한다.
즉, <천국(kingdom of heaven>은 공간적(지상적)인 나라이고, <하나님의 나라(kingdom of God)>는 영적인 나라라는 것이다.
<말이 다르니 뜻도 다르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렇게 용어에 집착한 나머지, 각기 다른 것을 의미한다고 보는 것이 옳은 것인지 정말 숙고해 보아야 한다.
다음을 상고해 보자.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서는 서로 비슷한 비유들이 다섯가지가 나오는 데, 그 중 두 비유에서 각기 무엇이라고 표현하였는지를 보자.
우선 <씨 뿌리는 비유>를 보자(마13:1-23, 눅8:4-15)
이 비유를 마태는 "천국의 비밀"이라고 했고, 누가는 "하나님 나라의 비밀"이라고 했다.
이 말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두 제자가 각기 다른 용어를 사용했으니 마태복음에 나온 씨뿌리는 비유와 누가 복음에 말한 씨 뿌리는 비유는 서로 다른 것인가?
또 하나는 겨자씨 비유이다.(마13:31-32, 눅 13:18-19)
이 비유에서도 마태는 "천국은 마치..."라고 하였고(13:24), 누가는 "하나님의 나라를 무엇으로..."라고 하였다.(13:18)
이 역시 하나는 지상적인 나라의 비유이고, 하나는 영적인 나라의 비유라고 보아야 하는가?
이제 실제 있었던 사건을 보자.
<젊은 부자의 이야기>(마19장, 눅18장)로 흔히 알려져 있는 내용에서 두 기자는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
젊은 부자가 돌아간 뒤에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찌나 어려운지..."(마태의 기록)
"재물이 있는 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떻게 어려운지..." (누가의 기록)
그러면 여기에서 마태는 지상적인 나라를 말하고 있고, 누가는 영적인 나라를 말하고 있다고 보아야 하는가?
만일 그렇다면 마태와 누가는 서로 싸웠어야 한다. 그런데 그렇지가 않은 모양이다.
다음 말을 상고하자.
마태는 한 사건에 대하여 두 용어를 함께 사용하고 있다.
즉,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19:23)
바로 한절 건너서는;
"약대가 바늘 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 보다 쉬우니라."(19:24)
왜 마태는 한 사건을 다루면서 <천국>이라고 했다가 <하나님의 나라>라고 했다가 용어를 교환해서 사용했을까?
"천국"과 "하나님의 나라"가 같은 것임을 우리에게 일깨워주지 않는가?
신약성경에는 천국이 곧 하나님의 나라라는 인식을 심어주기에 충분한 설명이 있다.
곧, "하늘"을 "하나님" 대신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마태 21:25에 보면 예수님은 세례 요한의 세례에 대해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이 묻고 계신다.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서냐? 사람에게로서냐?"
여기서 "하늘"이란 말은 구름이 떠 다니는 무인격적 공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대신하여 사용한 말이다.
또 눅15:18절에서는 탕자가 이렇게 말하였다고 말씀하신다.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탕자가 정말 구름이 떠다니는 비인격적인 하늘에게 죄를 지었다고 말하겠는가?
아니다. 하늘이든지 우주든지 비인격적인 것에게는 죄를 지었다고 할 수 없다. 당연히 탕자가 말한 하늘은 하나님을 지칭하는 말인 것이다.
또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에게서 오셨다고 평소에 말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땐 하늘에서 오셨다고도 말씀하신다.
즉,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라고 하신 것이다. (마6:41)
이상에서 말하는 "하늘"은 두 말할 것 없이 "하나님"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천국"을 "하나님의 나라"로 말하거나, "하나님의 나라"를 "천국"이라고 말한다고 해서 하등 이상할 것이 없는 것이다.
그럼, 왜 같은 <나라>를 마태는 "천국"이라고 했으며, 누가는 "하나님의 나라"라고 했는가?
잘 아시다시피 마태는 유대인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마태복음을 썼다. 유대인들은 후기 유대문학시대(기원전 2세기-기원후 2세기 까지 나타났던 유대주의문학)를 통해 이미 <말쿠스 샤마임>즉, <하늘나라>라는 말에 익숙해 있었다.
즉, 그들은 언젠가는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개입으로 말미암아 유대민족이 이방민족들을 다 지배하는 시대가 올 것을 믿고 있었는데, 그것을 "하늘나라"라고 하였던 것이다.
마태는 그 때가 가까히 왔다는 선언으로 부터 복음을 소개하였던 것이다.
이 말은 유대인들에게 오해되어 사용되긴 했으나 이 익숙한 용어를 마태는 사용하여 메시야 시대의 도래를 알렸던 것이다.
그러나 누가는 그 용어에 익숙치 않은 헬라인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했다. 그래서 오히려 그들에게 익숙한 <신의 나라>를 용어로 선택한 것이다.
물론 선택했다는 말은 오해의 소지가 있다. 어쩌면 예수님은 두 용어를 형편에 맞게 사용하셨겠지만 아마도 더 많이 <하나님의 나라>로 말씀 하셨을 가능성이 더 크기 때문이다. 마가도 이 용어를 많이 사용한 것을 보아 그렇게 볼 수 있다.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이 잘 아는 <천국>이란 용어대신 <하나님의 나라>라는 용어를 더 선호하신 이유는 비인격적인 용어보다는 인격적인 용어로 전환하심이 더 잘못된 유대주의를 개선시킬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데 더 유리하다고 판단한 마태는 유대인들에게 익숙한 <천국>으로 대치하여 사용한 것이다.
아무튼 "하나님의 나라"는 바로 "천국"인 것이다.
이 두 용어를 각각 다른 의미를 가진 것으로 본다면, 우리는 혼란에 빠지게 된다.
만일 어떤 사람들의 말처럼 "하나님 나라"와 "천국"과 "하늘나라"가 각기 다른 것이라고 한다면 그 중에 적어도 두 나라는 영원하지 않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고, 우리도 셋중에 한 두개의 나라는 못들어갈 수도 있다는 말이 나올 수 있는 것이며, 다 들어간다고 해도 먼저는 하나님의 나라에 갔다가 다음엔 천국에 갔다가 최종적으로 하늘나라에 간다고 할 것인가?
이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나라는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하나님의 통치를 받기 시작하는 때 이미 천국, 혹은 하나님 나라를 얻은 것이 며, 시공간이 어떻게 변하든지 간에 이 나라는 영원한 것이다.
즉, 우리가 죽던지 살던지 현재적이나 미래적이나 간에 그 나라는 영원 불변한 것이다.
통치자가 바뀌는 것도 아니고, 백성의 자격이 바뀌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구태여 그 나라를 분리시킬 필요가 있을까?
우리는 성경에는 한 가지 사실에 대한 다양한 묘사들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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