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자료

[스크랩] 성경만으로 충분한가?

수호천사1 2018. 2. 8. 09:13

성경만으로 충분한가? 


약 십 년 전 친구와 함께 멕시코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미국을 나갈 때와 달리 돌아오는 길은  긴 시간을 도로에서 보내야하는 답답한 상황이었습니다. 국경에 다다랐을 때 여러 갈래의 끝없는 차량 행렬 중 하나를 지루하게 따라간 끝에 드디어 우리 차례가 되었고, 운전을 하던 친구와 입국심사관이 대화를 나누는 것을 옆에서 듣게되었는데 친구는 그 짧은시간동안  복음을 전하기 위해 주제를 바꾸어 성경에 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대화 중에 친구가 말하기를 “성경에 모든것이 다 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입국심사관은 “그럼 성경에 대수학, 기하학, 화학 이런것들도 다 들어있는가?”라는 질문을 친구에게 던졌습니다. 그분의 질문에 어떠한 동기가 있었는지 다 알 수는 없었으나 친구는 당황하였고 아주 짧은시간 지속된 두 사람의 침묵을 지켜보았습니다. 비록 대화에는 참여하지 않았으나 저 역시 당황한 채로 “나에게 물었다면 어떻게 대답해야할까? 성경에는 없는데…”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지며 함께 침묵하고있었습니다.


성경에서 모든 답을 찾을 있는가?


앞에 이야기한 입국심사관처럼, 누군가 “스마트폰의 보안문제 해결, 간헐적 폭발 장애 (Intermittent explosive disorder)의 원인 파악 및 치료, 라스베가스 총기난사 사건 피의자의 동기, 우울증 환자의 자살연관성 대한 세세한 답을 성경에서 찾을 수 없으므로 성경은 우리에게 충분하지 못하다”라고 말한다면 이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하겠습니까? 반대로 누군가 “성경만으로 충분하다”라고 믿는다면  “성경이 어떤 의미에서 충분한가?”라는 또 다른 의문과 함께 우리는 이에 합당한 말을 성경 안에서  찾아 대답할 것을 예비해야 할 필요성을 느낄것입니다.

이  질문과 관련해 그리스도인들도 상담분야에서 성경에 대한 입장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 부류는 “성경만으로 충분하다” 하는 입장을 견지하는 한편 다른 이들은”성경만으로는 복잡하고 특정한 문제들을 이해하고 해결하기에 부족하다”라는 입장을 고수합니다.  “성경만으로는 부족하다”라는 이유에 대해 살펴보면  “어느 특정한 상황에서 그에 합당한 정보를 얻거나 문제해결을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성경이 충분한 답을 제시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의 가르침은 죄인에 대한 하나님의 구속사역까지만 필요한 반면, 개인의 내적갈등, 심리적 변화, 대인관계의 문제, 육신적 정신적 고통을 다루는데  심리학, 신경정신과, 새로운 과학적 연구자료  등이 성경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준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들의 삶에서 접하게 되는 여러 문제를 해결하는데 오직 성경만으로 충분합니까? 아니면 성경외에 다른 접근방법들이 필요합니까? 여러분들의 입장은 어떠합니까?


성경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


먼저 우리는 성경에 대한 올바른 시각을 갖는 것이 필요합니다. 성경은 백과사전이 아닙니다. 또한 성경은 서비스 메뉴얼과 같은 역할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세상 모든사람들을 만족시키는 맞춤형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이런 시각에서 바라본 성경은 충분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관점에서는 하나님의 인간을 향한 원대한 계획과 행하신 일들 그리고 장차 이루실 일들을 무시한 채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을 자신의 생각안에 가두어버리는 것입니다. 결국 성경이 증거하는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가지는 완전성과 충분성을 부정하고 세상의 책들과 다를 바 없이 매 년 개정판이 나오지만 끝없는 개선작업이 요구되는 책으로 전락해버리는 것입니다.

성경은 단순히 어떠한 문제해결을 위한 수단이 아닌, 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사랑과 그 분의 약속성취 그리고 다시오실 메시야를 통해 죄로인해 손상 된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온전히 회복하여 하나님이 만물의 주인이심을 깨달을 수 있도록 인도하는 책입니다. 이 성경에 대한 올바른 시각과 함께 성경의 가르침을 믿고 순종할 때, 그리스도인들은 어떠한 환경에서도 하나님을 온전히 경배하고 섬기며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하고 거룩한 삶을 이 땅에서 살아갈 수 있게되며 다시오실 그리스도께서 다스릴 영원한 나라에 소망을 가지고 미래를 바라보며 오늘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인간을 향한 원대한 계획과 실행


잠시 하나님의 인간을 향한 계획과 그 행하신 일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성경을 제외하고는 세상 그 어떤것도 하나님, 창조, 인간, 죄, 메시야, 회복에 관해 약속하고 그 일들을 하나하나 이루어가는 것을 분명히보여주지 못합니다.

창세기 1장은  하나님이 모든 만물의 창조주로서 복주시는 분임을 선포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만물을 아름답게 지으셨습니다.  그 피조물 중에서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을 받고 하나님께 찬양과 경배드리도록 창조되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선택은 자신의 욕심을 따라 갔고 하나님의 경고까지도 무시하며 불순종하였습니다. 아담과 하와의 불순종 이후로 인간은  질병, 고통, 죽음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 땅에 사는동안 그리스도인들도 이 세가지에서 온전히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성경은 그에 대한 근원적인 이유를 제시하는데 바로 인간의 “죄”라 선포하고있습니다.

사도바울은 아담의 불순종으로 인해 이 세상에 죄가 들어왔다고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로마서 5장 12절

아담으로 부터 시작 된 죄가 얼마나 심각한 상황으로 전개되는지 창세기에서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창세기 3장에서 어떻게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죄가 세상에 들어왔는지 보여줍니다. 창세기 4장에서는 인류 최초의 살인이 일어나고 6장 5절에서는 죄악이 세상에 넘쳐남을 보여주는데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로 전 지구가 물에 잠기는 대홍수의 심판을 우리는 보게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세기 11장에서 인간의 죄는 여전히 바벨탑을 쌓고 하나님의 창조 목적과 달리 그 분의 말씀에 불순종하도록 만드는 것을 보게됩니다. 이런 죄악으로 가득찬 인간이 오신 메시야를 거절하고 십자가에 못박는 사건을 신약성경에서 자세히 다루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이러한 인간의 철저히 부패하고 죄악 된 모습을 로마서 3장 10-18까지 묘사하고 있습니다.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그들의 눈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하고 자신의 욕심을 따랐던 아담과 하와의 불순종으로 인한 형벌로 육신의 죽음 그리고 영혼의 죽음을 초래하는 무시무시한 결과를 로마서 6장 23절에서 보여줍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그리스도인들의 거룩한 삶과 성경의 충분성 

   

이 세상 누구도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자신의 죄를 깨달아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자기 삶의 주인으로 모시지 않는다면 근원적인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복음을 믿고 거듭난 사람들은 “새 피조물”이 되었다고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 그리스도를 닮는 거룩한 삶을 살아가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옛사람을 벗고 “새 사람”을 입을 것을 사도바울은 말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에베소서 4장 22-24절)

그리스도인들의 삶은 이제는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구원자이신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15, 21절; 갈라디아서 2장 20절). 여기서 반드시 기억해야 할 점은 그리스도인들의 삶은 거룩해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1장 15~16절). 이는 그리스도의 어떠함을 닮아가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4장13, 15절). 하나님과 분리되었던 죄인들이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되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있습니다. 여러분이 구원받은 때를 기억해보면 성경 말씀에 나타난 사실과 약속을 믿고 따르는 것 이외에 그 어떤 것도 필요가 없었습니다. 성경 말씀만으로 충분했습니다. 또한, 성도들은 구원받은 이후에도 여전히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갑니다. 구원은 하나님께로 돌아온 자들이 영생하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시작점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은 거룩한 삶이어야 합니다. 빌립보서 1장 6절에서는 거룩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선한 일을 시작하셨고 또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루신다는 약속을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불순종하던 자로서 자신의 사욕을 좇아 살던 과거의 모습에서 벗어나 모든 행실에서 거룩한 자가 될 것을 명령받았습니다(베드로전서 1장 14-16절). 그 근거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있습니다.

거룩한 삶을 이루어가는 과정에서 그리스도인들은 동일하게 진리 되신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을 따라 살아갑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여전히 거룩한 삶을 온전히 살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죄와 싸워야 합니다. 죄와 싸워 이기는 유일한 길은 바로 예수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것으로 그분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요한복음 15장 5절).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같이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 속하지 않았습니다 (요한복음 17장 14, 16절).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면 박해가 반드시 따를 것을 디모데후서 3장 12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그리스도를 따른다는 것은 그분을 위해 고난도 받는 것임을 빌립보서 1장 29절에서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죄와 싸우며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겪게 되는 질병, 고통 (육신적, 정신적), 죽음에 대한 태도는 불신자들이 생각하고 반응하는 것과는 너무나 극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특히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시지 않는 소망 없는 자들에게 죽음의 의미는 “사망, 슬픔” 등으로 그려지지만 그리스도인들에게 죽음이란 성화의 단계를 넘어 영화로운 단계로 가는 시작이고 그리스도 안에 영원히 거하며 거듭난 자들이 다시 만날 날을 기대하는 소망을 상기시켜주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약속 안에서 믿음으로 자신들의 삶을 온전히 살 수 있도록 그리스도인들을 가르치고 인도하며 완성해가기에 충분한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23절에서 구원받은 이후 그리스도인들의 삶 또한 하나님께서 끝까지 인도하실 것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성경적 상담에서 믿고 가르치는 성경의 충분성은 시편 19편 7-8절, 디모데후서 3장 15-17절, 베드로후서 1장 3-4절을 근거로 합니다.


첫째, 시편 19편 7-8절에서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이 완전함을 증거하고있습니다.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며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시도다.”


둘째, 디모데후서 3장15-17절에서 사도바울은 성경은 구원에 이르도록 할 뿐만 아니라, 거듭난 자들에게 교훈, 책망, 바르게 함, 의로 교육하여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시는 것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셋째, 베드로후서 1장 3-4절에 약속된 하나님의 말씀에서, 사도 베드로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다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이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그리스도인들은 어떠한 어려움에서도, 어떠한 비극적인 상황에서도, 어떠한 문제를 겪을지라도, 그 문제가 애매한 고난이든, 아니면 자신의 죄로 인해 발생 된 어려움이든, 성경의 충분 성을 믿고 따르며 우리 삶의 주관자이신 예수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분 안에서 문제를 해결하고 만족하며 평안하고 쉼을 얻을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11장 28절).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반드시 해당 문제가 해결되었기 때문에 만족하고 평안하고 쉼을 얻는다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질병으로 인해 고통받는 가운데 오히려 하나님의 선하심과 온전하심을 더 깊이 배우고 인내하며 그분의 뜻에 따라 살아야 하는 환경을 주시기도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어떠한 환경에서도 기뻐하고 서로를 격려하며 소망 가운데 사는 것입니다. 문제에 대해 이렇게 반응하는 것은 세상적 관점에서 결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성경과 세상적 접근 방법 

   


사도바울의 고통

사도바울과 욥은 자신이 지은 죄로 인해 고난 겪은 것은 아니지만 그들도 아담의 후손이므로 이 세상을 사는 동안 질병, 고통, 죽음 이 세 가지에서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고린도후서 12장 7~9절에 나타난 사도바울의 육체적 고통은 하나님의 계획안에서 사용된 고난이었습니다. 결론적으로 그의 병이 낫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오히려 고통 가운데 겸손하게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분을 드러내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의 병이 회복되도록 세 번이나 간절히 구한 것을 거절하셨습니다. 10절에서 사도바울은 여전히 고통 가운데 있었지만, 오히려 기뻐했습니다. “내가 약한 그때 강함이라”라고 고백한 그의 간증은 하나님 안에 만족하고 평안하고 쉼을 얻은 것이었습니다. 그는 썩지 아니할 육신을 입게 될 날을 기대하고 있었기 때문에 고린도 성도들에게 이 진리를 가르칠 수 있었습니다. 사도바울에게는 문제해결을 위해 수술이나 정신과적 상담, 약물 과학적 지식 등이 필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만일 사도바울도 하나님의 뜻에 따르지 않고 자신의 치유되는 것만을 위해 마음의 원대로 살았다고 가정한다면 그는 세상의 방법으로 병 고침을 받으려 온갖 수고를 하였거나, 불치병이라는 진단을 받고 낙심하여 포기한 채로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중심되지 않은 삶은 결코 만족스럽고 평안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욥의 고통

욥은 테러리스트들과 자연재해로 인해 자신의 소유와 자녀들까지 잃었던 것을 보게 됩니다. 그는 “왜?”라는 질문을 하는 대신 하나님을 경배하였습니다. 이 비극의 배경에는 하나님과 사탄 사이에서 욥의 믿음을 확증하는 것이었습니다. 욥의 고난도 자신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비극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더 악화하여 육신의 질병, 아내의 비난, 친구들의 송사로 극심한 정신적 고통까지도 겪어야 했습니다.

사탄은 욥을 넘어지게 하는데 목적이 있었고 하나님은 그 일을 허락하시되 모든 것의 주권자이심을 분명히 선포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폭풍 가운데 드디어 나타나셔서 욥에게 답할 수 없는 질문들을 던지시며 끝에는 그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복을 주셨습니다. 욥의 고통과 질병은 하나님의 계획안에 반드시 지속하여야 했습니다. 이 고통에 욥은 이유도 모른 채 인내로 응답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 일의 끝에는 “하나님은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는 이시니라”라고 야고보서 5장 11절에서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계획을 모른 채, 심리학자, 의사, 과학자들이 나서서 욥이 당하는 고난의 원인과 해결책을 찾는다 할지라도 해결 불가라는 결론을 낼 수 밖에 없는 한계에 부딪히게 됩니다. 욥의 예는 성경의 충분성에 대해 우리에게 분명한 교훈을 제시합니다. 나타난 현상에만 집중하고 성경을 서비스 메뉴얼로 여기는 자세가 아닌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과 거룩한 삶을 살아가며 세상에서 겪는 다양한 일들을 하나님 보시기에 선한 방법으로 해 나가는 것을 가르쳐주고 있는 것입니다.


죄로 인한 고통

한편 시편 32편 1~5절에는 회개하지 않은 죄가 극심한 육신적 고통을 초래하는 것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육신적인 고통은 정신적인 부분에도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인들이 죄를 회개하도록 때로는 고통을 당하여 하나님을 바라보도록 인도하시기도 합니다. 여기서도 핵심은 근원적인 문제인 죄를 무시한 채, 외부에서 고통의 원인을 찾고 치료를 시도한다 할지라도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성경은 언제나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그분을 전적으로 신뢰할 것과 그리스도인이 죄와 분리된 삶을 살아야 할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한편 시편 32편 1-5절에는 회개하지 않은 죄가 극심한 육신적 고통을 초래하는 것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육신적인 고통은 정신적인 부분에도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인들이 죄를 회개하도록 때로는 고통을 당하여 하나님을 바라보도록 인도하시기도 합니다. 여기서도 핵심포인트는 근원적인 문제인 죄를 무시한채, 외부에서 고통의 원인을 찾고 치료를 시도한다 할지라도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성경은 언제나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그분을 전적으로 신뢰할 것과 그리스도 인이 죄와 분리 된 삶을 살아야할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Intermittent Explosive Disorder” (간헐적 폭발장애)

운전을 하다 보면 내 자신이 실수하기도 하고 다른 운전자들의 실수를 경험하기도 합니다. 때로는 가볍게 넘길 수 있는 실수도 있지만 심한 경우 욕설, 위협, 폭행 등이 사고를 일으켜 죽음에 이르기도 합니다. 근래에는 Road Rage (도로에서 벌어지는 운전자의 난폭 행동)에 대해 “Intermittent Explosive Disorder” (간헐적 폭발 장애) 라는 의학적 접근으로 문제의 시각이 바뀌어 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렇다면 의학적/과학적 접근방법이 올바른 원인과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생깁니다.

성경은 사람의 마음이 외부적인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장 45절에서 “선한 사람은 마음에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또한 사람의 마음 (속사람)에 대해 예레미야 17장 9절에서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마가복음 7장 21~23절에서도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적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흘기는 눈과 훼방과 교만과 광패니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외적 행위를 만들어내는 것은 마음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악한 행위는 죄입니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마음에서 시작되어 외적 행위로 드러나는 죄의 문제는 그 사람에게 전적인 책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Intermittent Explosive Disorder”(간헐적 폭발 장애)라는 의학적 문제로 관점을 바꾸는 것은 자신이 저지른 악한 행위에 대한 본인의 책임을 피해자의 관점에서 시작하여 자신이 지은 죄를 합리화하는 “장애”의 문제로 바꾸어버리는 것입니다. 마음에서 시작된 죄의 문제를 약물이나 수술로 치료할 수는 없습니다.


두뇌부검을 하면 죄를 있는가?


지난해 발생한 라스베가스 총기사건은 많은 사람을 충격에 몰아넣은 끔찍한 일이었습니다. 범행동기에 대한 단서를 찾기 위해 스탠퍼드대학교에서 범인의 시신을 인도받아 두뇌 부검을 실시한다는 뉴스 기사를 보았습니다. 육안검사로는 별다른 이상을 찾아내지 못했다며 뇌 조직을 정밀 분석해 그에게 신경학적 문제가 있었는지에 대한 연구가 뒤따를 것이라 밝혔습니다. 범인은 이미 세상을 떠났고 남아있는 시신으로 과학적 연구를 한다 하더라도 어떻게 영혼의 근본적인 문제를 찾아낼 수 있을지 의문스럽습니다.

성경은 변함없이 사람의 마음에서 시작된 죄가 원인이라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가 얻고자 했던 것이 분명 있었으나 그것을 얻지 못하여 끔찍한 범죄로 자신과 많은 사람의 생을 마감하게 만든 동기를 야고보서 4장 1-2절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부터 다툼이 어디로부터 나느냐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부터 나는 것이 아니냐 너희는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여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므로 다투고 싸우는도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닮고 그분을 경배하는 마음이 아닌 자신의 소욕을 좇아가고 자신의 욕심으로 가득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그 원하는 것을 얻지 못했을 때 온갖 악한 열매들이 외적 행동으로 드러나게 됩니다. 이것은 불신자와 그리스도인에게 동시에 적용되는 원리입니다. 그가 원한 것이 무엇이었을지, 그 영혼의 내적 갈등이 무엇이었는지 두뇌 전체를 검사한다 해도 죄의 문제를 찾을 수 없습니다.


선을 이룸

그리스도인들이 이 땅에 사는 동안 겪게되는 모든 일은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있으며 질병, 고통 (육신적, 정신적), 죽음까지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임을 기억해야합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로마서 8장 28절)

여러분 주목하십시오. 성경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병상에서 고통 가운데 죽음을 기다리는 친구를 찾아가거나, 스마트폰을 난생처음 수리하는 일을 하거나, 오작동하는 스마트폰 때문에 화가 난 고객을 진정시키는 상황에 있거나,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어린아이를 도와주는 일이나, 하나뿐인 자녀를 사고로 잃은 부모와 함께 우는 순간에도, 성경은 그리스도인들의 마음과 시선을 언제나 하나님께 향하도록 하고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모든 일에 선한 동기로 시작하여 정직하고 올바른 자세로 문제를 대할 수 있도록 인도하며 그에 대한 해결책을 찾는 과정에서도 언제나 그리스도 중심의 방법으로 교훈한다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삶을 살도록 성경은 가르치고 인도하며 온전한 사람으로 세워가기에,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그저 한 장의 답안지 역할을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닮아갈 때 마음에서 나오는 모든 생각과 외부적으로 드러나는 행동이 변화됩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어떠한 일을 하게 될 때 마음의 자세와 과정 그리고 결과는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 되고 하나님의 거룩함을 추구하지 않는 사람이 문제를 대하는 것과 결코 같을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는데 자신의 삶을 드리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6장 10절). 이 것이 성경적 해결방법입니다.

성경을 제외한 어떤 지식도 완전성, 온전케 하실 수 있는 능력, 그리고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제시하지 못합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이고 최종권위를 갖습니다. 성경적 상담에서는 성경의 충분 성을 지지하며 그리스도인들이 언제나 하나님을 경배하는 삶을 살아야 함을 가르칩니다.


전경식

출처 : 은혜동산 JESUS - KOREA
글쓴이 : 임마,누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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