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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호세아[Hosea]

수호천사1 2018. 1. 20. 15:40

호세아[Hosea]

 

 

(호 1:1-9) “1.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가 이어 유다 왕이 된 시대 곧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이 이스라엘 왕이 된 시대에 브에리의 아들 호세아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라 2. ○여호와께서 처음 호세아에게 말씀하실 때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가서 음란한 여자를 맞이하여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 이 나라가 여호와를 떠나 크게 음란함이니라 하시니 3. 이에 그가 가서 디블라임의 딸 고멜을 맞이하였더니 고멜이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매 4.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그의 이름을 이스르엘이라 하라 조금 후에 내가 이스르엘의 피를 예후의 집에 갚으며 이스라엘 족속의 나라를 폐할 것임이니라 5. 그 날에 내가 이스르엘 골짜기에서 이스라엘의 활을 꺾으리라 하시니라 6. 고멜이 또 임신하여 딸을 낳으매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그의 이름을 로루하마라 하라 내가 다시는 이스라엘 족속을 긍휼히 여겨서 용서하지 않을 것임이니라 7. 그러나 내가 유다 족속을 긍휼히 여겨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로 구원하겠고 활과 칼이나 전쟁이나 말과 마병으로 구원하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8. 고멜이 로루하마를 젖뗀 후에 또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매 9.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의 이름을 로암미라 하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요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지 아니할 것임이니라”

 

 

그 이름은 ‘여호와는 구원하신다.’는 뜻으로 B.C. 8세기경 북이스라엘 여로보암 2세(B.C.786-746년) 때 선지자이며. 그때 유다 왕은 웃시야, 요담, 아하스 그리고 히스기야(B.C.715-686년) 왕입니다. 그는 아모스 선지자와 동시대 사람으로 약 40여 년 간 활동했습니다.

 

호세아는 하나님의 명령으로 고멜이라는 여자와 결혼을 하였습니다. 고멜은 '음란한 여자'인데 그는 매춘부였거나, 행실이 나뿐 여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호세아와 결혼하고 자식을 세 명이나 낳았습니다. 첫째는 장남 이스르엘 둘째는 로루하마('용서하지 않는다.')와 셋째 아들은 로암미('내 백성이 아니다.)라는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하지만 또 그 못된 버릇이 나타납니다. 자식을 셋이나 낳은 여자가 집을 나갑니다. 그때 호세아는 아내의 몸값을 지불하고 다시 데려와서 가정을 이루었습니다. 호세아서는 우상숭배는 일종의 '매춘'이며 하나님을 배신하는 짓이라고 말합니다. 이스라엘이 '남편' 되시는 하나님에게 돌아오지 않으면 심판이 있을 것을 호소합니다. 과연 호세아의 시대가 지난 뒤 얼마 못 가서 이스라엘은 앗수르에게 정복되고 나라가 망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호세아아의 가정사를 살펴봅니다.

 

1. 결혼으로 불행해진 사람

 

하나님이 호세아에게 결혼을 명합니다. 얼마나 신나는 일입니까. 그런데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호세아는 결혼을 한 후 아내 고멜을 통해서 자식 셋을 낳기는 하였지만 그의 결혼생활은 불행했습니다. 그의 아내 고멜은 행실이 불량한 여자로써 집을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호세아는 아내를 찾으려 가는 것입니다. 이것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1. 여호와께서 나에게 이르셨다. "너는 정부와 놀아난 네 아내를 찾아가 다시 사랑해 주어라." 2. 나는 은 약 170그램과 보리 18말을 주고 아내를 사서 데리고 온 후 3.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내 아내니, 다른 남자와 어울려 불의한 관계를 맺지 말고 들어앉아 있으시오. 그렇게 오래 지낸 뒤에야 당신과 한 자리에 들리다.“[현대인성경]

 

많은 사람들이 결혼을 하면 행복이 올 것이라고 생각해서 결혼을 합니다. 그래서 많은 희생을 치르고, 결혼을 합니다. 그런데 알아야 할 것은 결혼 자체가 자연히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이 아닙니다. 결혼을 통해서 만들어 지는 가정은 분명히 하나님의 뜻이지만 이 결혼이나, 부부가 된다거나, 혹은 자식을 낳았다는 것 자체가 행복을 자동으로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여러분 교회에 나오는 것은 새로운 삶의 출발점이 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교회에 나오기만 하면 무조건 잘된다. 좋다. 이런 것은 아닙니다. 이런 원리는 인간이 추구하는 모든 것에 적용됩니다. 그러면 호세아는 결혼을 했는데 왜 불행한 것입니까. 그것은 고멜이란 여성의 방탕한 생활 때문입니다. 그는 집을 뛰쳐나가서 다른 남자를 만났고, 또 어떤 때는 술과 웃음을 파는 곳에 가있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근본적으로 사람이 바로 되지 않으면, 결혼이 문제가 아니라, 왕이 되고 왕비가 되어도 불행하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운전사와 결혼한 삼성의 이건희 회장의 장녀 이부진 사장이 왜 남편 임우재 씨와 이혼을 하려고 합니까. 돈입니까. 명예입니까. 아닙니다. 사람입니다. 사람이 만족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면 불행한 것입니다. 호세아서 하나님이 무엇을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인가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호 6:6) “6.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원하는 것은 돈이 아닙니다. 시간을 바라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을 원하시고, 여러분 자신을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사람에게 있습니다. 492년 3월 31일, 스페인이 유대인을 추방합니다. 5만 가구에 25만 명이 정설이지만 그보다 훨씬 더 되어서 80만 명이다라고하기도 합니다. 당시 유대인이 가장 많이 살던 곳이 바로 스페인이었습니다. 그들은 ‘금과 은, 화폐를 비롯해 국가가 정하는 품목은 반출을 금지한다.’는 부칙으로 유대인들의 재산을 빼앗아 습니다. 그런데 스페인은 부자가 되었습니까. 관료 의사 상인 지식인이 해야 하는 일을 할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가장 심각한 큰 문제는 전문 인력 부족. 유대인이 맡아온 행정과 상업을 대신할 인력이 없는 것입니다. 반면 유대인이 이주한 네덜란드, 영국, 독일 등은 차례로 패권국가로 올라섰습니다. 유대인이 유럽에 퍼지면서 근대 자본주의도 싹텄습니다. 어음교환소, 환어음, 무기명 채권, 수표 등이 모두 유대인의 발명품입니다. 영국 중앙은행도 유대 거상들의 투자로 설립됐었습니다. 사람입니다.

 

유대인은 세계 인구의 0.2%에 불과하나, 상업과 금융은 물론 학문과 과학기술, 예술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프로이트, 아인슈타인, 쇼팽, 채플린 등이 모두 유대인으로 노벨상 수상자의 20%를 차지합니다. 세계 자본가와 혁명가 양 진영은 모두 유대인입니다. 로스차일드, 듀폰, 소로스와 마르크스, 레닌, 트로츠키, 로자 룩셈부르크가 모두 유대인입니다. 흔히 유대인은 5가지로 세계를 지배한다고 합니다. 석유, 금융, 식량, 미디어 그리고 미국 정부입니다. 요즘 미국 대선을 보세요. 유대인 로비단체인 미국·이스라엘 공공정책위원회(AIPAC)에 양당 대선주자가 앞 다퉈 참석합니다. 트럼프는 “나보다 친이스라엘적인 사람은 없다”고 합니다. 힐러리 클린턴은 “이스라엘 안보는 타협 불가”라고 못 박았습니다. 사람의 영향력입니다. 땅이 넓고, 인구가 아무리 많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입니다.

 

지금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지식이던, 문화이던, 예술이던, 경제이던, 행복한 가정이던 모든 것이 사람이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좋은 사람이 되고, 지혜롭고,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확실한 신앙을 가진 사람이 있어야 행복이 있는 것입니다. 고멜이란 한 여성이 만드는 불행은 생각보다 컸습니다. 그녀는 호세아의 믿음과 사랑을 끝없이 시험합니다. 호세아는 아내가 집을 나간 후 세 아이들을 돌봅니다. 또 그 정부(情夫)와 달아난 아내를 찾아서 길을 떠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죄인을 찾아오신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미가6장 “6절-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 높이 계시는 하나님께 경배할까? 내가 불에 태워 바칠 번제물로 일 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 7.내가 수천 마리의 숫양이나 강물처럼 많은 감람기름을 가지고 간다면 여호와께서 기뻐하실까? 내 허물과 영혼의 죄를 위해 내 몸의 열매인 맏아들을 바칠까? 8.사람들아, 여호와께서 선한 것이 무엇인지 너희에게 보이셨다. 그가 너희에게 요구하는 것은 옳은 일을 행하며 한결같은 사랑을 보이고 겸손한 마음으로 너희 하나님과 교제하며 사는 것이다.

 

사람이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결혼을 해도 불행합니다. 교회에 나오기만 해서도 안 됩니다. 공부를 하고 돈을 번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좋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 자신의 실체를 발견하고 바른 믿음을 갖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2. 결혼을 명하신 하나님

 

그런데 이런 위험천만하고 불행한 결혼을 호세아가 왜 합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하라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슨 말입니까. 이 말은 결혼이 우리 개인에게 반드시 좋은 것만 아니며, 반드시 좋은 배우자를 만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것은 불행입니다. 요즈음 같으면 이 고멜 같은 여자는 당장 이혼을 당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이혼 한다고 또 행복한 사람을 만나는가 하는 것입니다. 미국에서도 부자가 되려면 이혼을 하지 말라, 라는 말이 있을 정도입니다. 재산의 50%는 줘야하고, 양육권부터 여러 가지 문제가 따라옵니다. 이것은 여전히 또 다른 문제를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즈음 사람들은 결혼을 계산적으로 하게 되니까, 결혼 연령은 점점 늦어집니다. 그러다가 독신이 많아 졌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결혼을 하라는 것입니다. 설사 호세아 같은 만남이 있어도 그것 때문에 결혼을 하지 마라라고 하지 않습니다. 도대체 왜 이런 결혼을 말리지 않으시고 하라고 하시는 것입니까. 호세아와 고멜은 결혼 후 둘 사이에 자식을 셋 낳았습니다. 그 후에 그 자식들의 인생은 다 불행하고 파탄을 가져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 후손들 가운데서 상상할 수 없는 큰 인물이 나오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딱 맞는 상대와 결혼이 어디에 있습니까. 어딘가는 부족하고 문제가 있으니까. 결혼을 통해서 서로 빗어지고, 성숙되어 가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완전한 남성도, 완전한 여성도 없습니다. 행복한 결혼이나 불행한 결혼이 별도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호세아와 같은 가정도 하나님은 인정을 하시고 계시면서, 바람난 고멜 같은 아내도 사랑을 해야 한다는 것을 호세아를 통해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아픔이 있고,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기도가 있고, 슬픈 노래가 있습니다. 이 시련은 아름다운 사람들을 만듭니다. 그렇다고 해서 여러분들이 시련의 주인공 호세아가 되라는 말은 결코 아닙니다. 태양의 후예라는 드라마가 끝이 났습니다. 거기에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내 몸에 있던 총상 기억합니까. 군인은 늘 상 수의를 입고 산다. 이름 모를 전선에서 조국을 위해 죽어갈 때 그 자리가 무덤이 되고 군복이 수위가 된다. 매 순간 명예로워라'라고 했습니다.“ 라는 말입니다. 이런 사람에 의해서 나라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군인 뿐 아니라. 우리 모두가 그렇게 살아야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그렇습니다. 집안에서 문제가 없으면, 밖에 문제가 있고, 금전적인 문제가 없다 싶으면 인간관계에 문제가 옵니다. 모든 것이 잘 되었다 싶으면 이제는 건강에 이상이 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삶은 어디에 있던지 누구를 만났던지 열심히 사랑하며 사는 것이지 관계를 깨트리고, 도망가고,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의사가 감기 환자를 만나면 몇 마디 해주고 처방전 써주면 되지만 때로는 응급실에서 전화가 오면 밤에 잠을 자다가 피 묻은 환자의 옷을 벗기고, 죽이느냐, 살리느냐의 수술을 하는 것을 피할 수 없는 것처럼 우리 인생에 있어서 사람을 만나는 것도 그렇습니다. 누가 되었던 우리는 만나야 하고, 도움을 주고받는 것이 인생입니다. 그런 중에서 역사도 일어나고 신앙도 깊어지고 눈물의 의미도 알아가는 것이 인생이요, 삶입니다. 좋고 나뿐 것이 없습니다. 소화를 시키면 다 좋은 것이 인생이지만 소화를 시키지 못하면 재벌의 딸을 며느리 삼고, 대통령의 사위가 되어도 불행입니다. 이런 인간의 긴장과 실존을 호세아서는 보여 주고 있습니다.

 

옛날에 동독이 공산화 되고 독일 베를린 장벽이 생기기 전 270만 명의 동독 사람들이 자유를 찾아 서독 쪽으로 넘어 왔습니다. 그런데 정반대인 동쪽으로 가는 한 가족이 있었습니다. 서독 사람인 ‘호르스트 카스너’(Horst Kasner) 목사와 그 가족입니다. 이 사람은 다 넘어와서 동독에 목회자가 없다는 소식을 접한 것입니다. 많은 영혼들이 방치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카스너 목사는 서독 함부르크에서 낳은 6주가 된 애기를 안고, 정한 교회도 없는 동독으로 갔습니다. 그는 편한 생활을 포기하고, 목회자 없는 공산치하로 들어가기로 마음먹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당시 아버지의 품에 안겨 동쪽으로 갔던 45일 된 어린 애기가 아버지의 신앙적인 영향을 받으며 자랐습니다. 세월이 많이 흘렀습니다.

 

주님의 뜻대로 살겠다고 시대를 역행했던 그 목사님의 딸이 지금 통일 독일을 이끌고 있는 ‘앙겔라 메르켈’(Angela Merkel) 총리입니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 2013년 9월 독일 총선에서 그녀가 이끄는 기독교정당연합이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면서 3선에 성공했습니다. 그녀는 옛 동독 지역인 우커마르크 교회 카스너 목사님의 따님입니다. 재산도, 명예도, 편안함도 아닙니다. 바른 정신을 가진 사람이면 된다는 것입니다. 너무 직장, 돈, 학교, 외모를 따지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인간의 아름다운 승리는 그런 것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것에 집착하는 사람을 축복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가정을 이루고, 결혼을 할 때 좋은 것이 반드시 좋은 것이 아니며, 나뿐 것이 반드시 나뿐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중요한 한 것은 나와 상대가 어떤 것을 가진 사람인가에 하는데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나와 너는 어떤 사람들인가 하는 질문입니다. 돈과 세상을 쫓고 신앙도 없고 진실도 없는 세속적인 사람이라면 박사면 뭐하고, 재벌 2세라면 어떻다는 것입니까. 사람도 모르고, 하나님도 모르고, 고생도 모르는 사람은 사람이 아닙니다. 여러분 이 질문에 예라고 대답할 수 있으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딸이 메르켈 총리는 못될지 몰라도, 하나님의 딸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배우자를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마십시오. 좋다 나쁘다 평가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언제 우리를 점수를 매긴 적이 있습니까. 있는 그대로 나를 받으셨던 하나님이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내 마음을 다하며 사는 것입니다. 내 사랑하는 사람이 도망을 가고, 가출을 하면 어떻게 합니까, 라고 묻지 마십시오.

 

호세아는 정부(情夫)와 도망갔다가 술집에 팔려 간 아내 고멜을 “은(銀) 약 170그램과 보리 18말을 주고 사서 데리고 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마음이요. 예수님의 정신입니다. 이런 사랑이 있기에 우리들이 이 세상에 지금도 살아 있는 것입니다. 그런 저런 꼴 안보겠다고 다 정리를 했다면 나나 여러분들 중에서 이 자리에 없을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저는 초등학교 2-3학년 때 아버지 때문에, 우는 어머니를 많이 보았습니다. 그때 우리 어머니가 나도 내 살길을 찾겠다고 우리 5남매를 버리고 나가버렸다면 오늘 내가 여기에 있을 수 없습니다. 이런 사연은 따져들어 가보면 우리 모두의 삶속에 있을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그 어머니를 고통으로 빠트린 내 아버지가 없었다면 여기 내가 또 없었을 것입니다. 그 어머니가 우리 5 남매를 데리고, 얼마나 피 눈물 나는 삶을 살았겠습니까. 아버지도, 그 세월도 다 흘러간 옛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모든 것이 지나 놓고 보면 잠시 잠간입니다. 어머니는 아직도 살아 계십니다. 모든 것을 다 참고 견디고, 용서하고, 자신에 지워진 짐을 졌기 때문에 내 어머니가 훌륭하고 이 땅의 어머니들이 위대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내 어머니 뿐 아니라 이 땅을 사는 호세아 같은 아버지들을 위해서 상급을 준비하시고, 기다리십니다. 그런 사람은 역사를 만든 인물들입니다.

 

3. 짝사랑의 고통과 비극

 

그런데 이상한 일이지 않습니까. 호세아 같이 좋은 남자를 버리고 왜 고멜은 외간 남자를 만나고 가출을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생의 수수께끼입니다. 호세아는 끝없이 고멜을 용서하고 사랑했습니다. 남편이 아니라, 하나님처럼 그를 품었던 비운의 남성이었습니다. 고멜을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좋은 사람을 멀리하고, 나뿐 사람을 만나는 것입니다. 사랑을 외면하고, 불륜으로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죄입니다. 먹지 말라고 하면 먹어보고 싶고, 하지 말라면 기어이 해보고 싶은 그런 인간의 마음 말입니다. 손바닥도 마주 처야 소리가 나는 법인데 허공을 휘젓는 손은 측은하고 불쌍합니다. 이것이 오늘 짝사랑으로 가슴 아픈 호세의 모습이요. 하나님의 모습이요, 이 시대의 모습입니다.

 

그렇게 부모가 좋은데 그 부모를 멀리하고, 밤거리를 돌아다니는 아이들이 그렇습니다. 그렇게 아내가 착하고 성실한데 , 그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우는 남자들이 그렇습니다. 남편은 일과 가정 밖에 모르는데, 불평불만하고, 밖으로 돌아다니며 일을 만드는 여자들이 그렇습니다. 이것은 다 짝 사랑의 비극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80-90년을 사용할 수 있는 몸을 주셨습니다. 영원한 것을 사모하는 마음도 주었습니다. 아름다움 음악을 듣는 귀와 먹고 살 수 있는 양식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당신의 생명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고, 십자가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받는 이 햇빛, 마시는 공기, 밟고 다니는 이 길과 아름다운 산천을 공짜로 주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고 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신 양심을 버리고 제 마음대로 삽니다. 이것이 현대판 고멜이요, 짝사랑의 비극이 아닙니까.

 

예수님은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 같이 내가 내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 (마23:37) 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가르쳐 주시고, 말씀 해주시고, 병을 고처 주셨으나 그들은 외면했습니다. 듣기 싫다고 귀를 막았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예수님도 짝사랑의 주인공입니다. 성령은 우리를 진리로 인도하시고, 말씀을 깨닫게 하시고, 우리를 위로하십니다. 그러나 인간은 어떻게든지 도망가려고만 합니다. “엡4장-”30절-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치 심을 받았느니라” 성령이 근심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도 짝 사랑입니다. 하나님도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건만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 도다” (사1:2-) 하십니다. 하나님도 짝사랑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삐딱하게 나가는 것은 어린 아이들 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어른들도 삐딱하게 나갑니다. 집에 늦게 들어옵니다. 괜히 화를 냅니다. 못살겠다고 바가지를 끓습니다. 백안시하고, 천대하고, 우습게 여기고 존경하지 않습니다. 아내가 남편을 그렇게 대하고, 남편이 아내에게 그렇게 대하고, 자식이 어머니 아버지에게 그렇게 대합니다. 신자들이 하나님께 그렇게 대합니다. 감사하지 않습니다. 무릎을 꿇고 기도한지가 언제인지 생각도 나지 않습니다. 여러분 미신 잡신 귀신들을 섬기는 사람들 보세요. 이슬람교도들이 하루에 다섯 번씩 엉덩이를 들고 엎드려서 기도하는 것을 보세요. 그들은 자신들의 신 알라를 위해서 자폭해서 죽겠다고 나서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왕의 왕이요,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 아버지께 우리는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이사야1:2-9절) 짝사랑의 비극을 우리는 호세아를 통해서 봅니다. 호세아는 인간을 찾아오시는 하나님의 모습입니다. 그럼에도 여러분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 마음은 어디에 있습니까.

 

결론

 

요즘 ‘카카오택시’가 부쩍 늘었습니다. 스마트폰 덕분에 승객과 기사 간에 편리해 졌습니다. 이전에는 큰길까지 나가서 택시를 잡아야 했지만 이제는 손님이 있는 곳까지 찾아옵니다. 그런데 한 택시기사는 “몇 번 카카오택시 서비스를 써보니 20, 30대 여자 손님은 피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여자들이 호출하기를 누르고 화장을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보통 근처에 있는 기사가 배정을 받아 오기 때문에 호출하기 버튼을 누른 후 2, 3분이면 집 앞에 도착한답니다. 하도 사람이 안 나와 전화를 걸면 “지금 나가요” 하면 그로부터 5분 10분 걸리고 “조금만 기다리세요.” 하면 10분 이상을 기다리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전화 너머로 머리 말리는 드라이어 소리가 들리는데 ‘기다리라’는 말만 반복하면 기사들도 화가 난다”고 말합니다.

 

나온 손님에게 늦었다고 항의하기도 어려운 것이, 이용객은 자신이 탄 택시의 기사를 별점으로 평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불친절이 누적이 되면 택시 기사를 못하는 것입니다. 이전에는 담배냄새가 차 있어도 참고가야 했지만 이제는 “냄새 때문에 불쾌감을 느꼈다”는 의견도 보낼 수 있습니다. 점수 매기기입니다. 그러다 보니 기사 노릇 하기가 아주 어려워집니다. 그런데 요즈음 택시들도 최근 무기를 받았습니다. 고객 점수 매기기입니다. 서 있다는 장소까지 갔더니, 다른 택시를 타고 가버리는 경우나, 술 먹고 토한 뒤 수고비도 없이 내려버린다든지, 장시간 기사를 대기시키는 이용객에게 기사가 점수를 매기는 것입니다.

 

‘다시는 이 손님 받고 싶지 않다’는 내용이 계속 쌓이면 그 이용객은 다음에 아무리 호출하기를 눌러도 택시가 오지 않는 것입니다. 그 사람에 대한 정보를 택시들이 공유해서 기피하기 때문. 혹시 여러분 중에 이상하게 택시가 배정이 안 된다. 여기면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앞으로는 인공지능(AI)이 발달하면 서비스를 하는 사람과 받는 사람에 대한 모든 정보를 종합적으로 수집, 판단해 ‘좋은 사람’부터 ‘나쁜 사람’까지 다섯 개짜리 별표로 구분할 것입니다. 그러면 당신은 우리 식당에서 혹은 호텔에서 받지 않습니다. 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들 안심하세요. 교회는 여러분들을 언제든지 받습니다. 하나님이 만약에 너는 너무 나를 우습게 여기지 그래서 너에게서 내 성령을 거두기로 했다고 하신다던 지 너는 참석만 하지 정성이 도무지 없는 예배자이다. 라면 어떻겠습니까. 그러나 안심하세요. 하나님은 그렇게 하시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런 하나님의 사랑과 인내를 시험하는 사람은 정말 나뿐 사람이요 현대판 고멜이 아닐까요. 하나님은 오늘 호세아처럼 그의 신부를 찾으십니다.

 

▲조영호 목사

출처 : 은혜동산 JESUS - KOREA
글쓴이 : 임마,누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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