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

[스크랩] 설교, “하나님에 관한 것 아닌 하나님의 말씀 선포”

수호천사1 2016. 12. 21. 23:27

설교, “하나님에 관한 것 아닌 하나님의 말씀 선포”

 

 

한국교회의 목회자와 교인들은 가히 설교의 홍수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목회자들은 주일예배, 수요예배, 금요기도회, 새벽예배, 그리고 각종 심방 시 설교 등 일주일에 기본적으로 10여회의 설교를 해야 한다. 이 모든 설교를 준비하고 목회사역을 감당하기에는 벅찰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어떤 설교는 중요하고 어떤 설교는 대충하고 할 수 없다. 교인들은 목회자를 평가하는데 있어서 설교를 중요하게 꼽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목회자가 제일 많이 신경 쓰이는 부분이 바로 설교이다. 반면, 교인들도 그 만큼의 설교를 듣는다. 강단마다, 그리고 인터넷상에, 기독교방송에서도 많은 설교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러나 홍수 속에서는 마실 물이 없다는 말이 있듯이 교인들은 늘 말씀을 갈급해하고 부족함을 느낀다. 설교를 통해 그 넘치는 은혜를 맛보고 누릴 수 없을까. 

 

설교로부터 시작된 교회

설교는 기독교의 핵심이다. 교회는 설교의 결과로 시작되었고, 교회는 언제나 말씀 선포를 가장 중요한 사명으로 여겨왔다. 예수님의 사역으로부터 시작하여 오늘 이 시대에 이르기 까지 성경적인 메시지가 설교자에 의해 선포되어 왔다. 설교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 하나님으로부터 부름을 받았고, 이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무엇보다도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야 하는 막중한 책무를 가진다.

 

한국교회에 대한 비판 가운데 하나는 강단에서 선포되는 말씀이 성경적인 메시지가 아니라 잡다한 소리(?)라고 하는 비판이 있다. 즉 강단에 하나님은 간데없고 설교자의 목소리만 왕성하다는 것이다.

정장복 교수는 한국교회의 설교자들이 자신의 생각이나 주장을 하나님의 계시인 것처럼 확대하는 비도적적인 문제를 회중을 현혹시키는 무서운 범죄행위라고 간주하였다. 이는 설교 강단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거룩한 장소가 되어야 함을 강조하는 것이다. 청중은 교회의 강단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증거 되기를 갈망하고 있다. 그들은 세상의 난무하는 소리를 들으러온 것이 아니라, 영원하시며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위해 나온 것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설교자의 역할은 그가 진정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은 하나님의 종이요, 하나님의 메신저로서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마땅히 전해야 할 것이다.

 

설교는 종말론적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설교자는 설교를 통해 사람들 앞에 삶과 죽음의 갈림길을 제시하고 죽음을 넘어 역사하시는 생명의 하나님을 받아들이도록 결단을 촉구하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어떤 일보다도 가장 위험천만한 것이 설교사역이라 할 수 있다.

 

설교자는 ‘신학자’

독일의 신학자 틸리케(Helmut Thielicke)는 현대설교의 문제를 신학과 설교의 이원성 즉, 설교가 신학과 접목되지 않는 문제를 들었다. 설교에서 신학의 위치는 중요하다. 신학은 교회의 복음 선포를 감시한다. 설교자는 본문 안에서, 본문으로써, 본문에 신실하게 말씀을 전할 의무가 있다.

 

신학의 추구는 설교를 향한 것이다. 주석가가 본문의 당시의 의미를 말해주면, 조직신학자는 그 본문이 가진 역사적, 교리적, 철학적 상황의 의미를 말해주고, 설교자는 특정한 시간과 상황과 사람들에게 의미를 전달하도록 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대다수의 기독교인들은 그 마지막 형태인 설교 안에서 신학을 만난다. 그렇기 때문에 설교자는 신학자가 되어야 한다.

설교자가 신학자가 되지 않는다면 본문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토대로 성경적 설교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설교자, 말씀의 메신저

설교자들은 때때로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것을 전하고자 하는 유혹을 받는다. 그 결과 설교가 때로는 정치연설, 교양강좌, 종교 강연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진정한 설교는 하나님의 현존하심을 전달하는 것이다. 바우만(Daniel Baumann)은 “신실한 설교는 사람들을 거룩하신 하나님의 현존에로 인도해 줄 것이다…설교자는 그 설교의 그늘 밑으로 사라지고 그리스도의 인격이 그 설교를 지배하시게 하며, 하나님의 현존을 중개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진정 하나님께 부름 받은 설교자라면 그를 부르신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손상하지 않고 아름답고 정확하게 운반하는 일을 생명처럼 여겨야 할 것이다.

 

이 시대의 설교자는 단순히 보고자나 진술자가 아니며 또한 자신을 선포하는 자가 아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메시지를 전하는 사람이다. 설교자는 자기의 생각이나 주장, 또는 그의 지식을 설교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 그의 설교는 그를 보내신 자의 권위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바울의 고백(고전1:23)과 같이 자기 자신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자신이 택하신 설교자라고 하는 인간을 통하여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설교라는 매체를 통하여 인간을 만나신다. 설교는 하나님에 관한 말씀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의 선포이다. 그러므로 설교자는 하나님의 대행자, 곧 전령자이다. 설교자는 정확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받기 위하여 신학자요 성경해석자가 되어야 한다. 설교자는 자신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신적인 권위의 말씀을 전하는 통로인 것이다.

 

교회성장적 설교 지양돼야

교회성장적 실용주의에 빠져있는 설교자들은 사람들에게 세상의 성공을 위한 지혜나 대중인기 문화 컨텐츠나 심리학을 사용하면 청중들이 편안함을 느끼고 교회에 잘 정착할 수 있게 된다고 믿고 있다.

오늘날 한국교회 목회자들 사이에는 전통적인 설교만 가지고는 교회성장을 이룰 수가 없다고 하는 시각이 팽배하다. 이러한 생각을 가진 설교자들은 청중들의 체감적 필요에 맞추어 성경을 해석할 것을 유혹받기도하고, 청중들의 요구에 맞추기 위해 다양한 방법들을 동원해 활용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실용주의 원리를 설교에 적용시켜, 설교의 목적을 사람들을 모이게 하는 것에 두고 거기에 우선적인 관점을 두는 것은 위험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설교는 교회성장을 위한 수단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교회성장은 설교의 결과이다. 설교는 하나님께서 인류의 역사 가운데 끊임없이 펼쳐온 구속의 말씀을 선포하기 위하여 교회와 설교자에게 주어진 명령이다. 하나님은 부름 받은 설교자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할 것을 분부하셨지 교회성장을 이루기 위해 설교할 것을 명하지 않으셨다. 강단에서 선포되는 말씀이 심령을 살리는 생명력을 가질 때,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는 그와 함께 일어날 것이고, 이를 통하여 교회가 세워지고 결과적으로 교회가 성장하는 것이 성경적인 교회성장의 방법이다.

 

설교는 어떤 인간적인 교훈이나, 세상에 만연하는 사상, 혹은 설교자의 개인적인 사견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자체와 그 분의 뜻을 전달하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의 본질을 읽어낼 수 있는 신학적 안목이 필요하다. 또한 한국교회에 만연해 있는 기복주의적 신앙에 기초한 인간 성공적인 철학을 가르치는 틀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메시지의 전령자라는 자신의 역할과 사명을 바로 회복해야 할 것이다.  

 

 

미래목회포럼(대표 김인환 감독)이 지난해 개최했던 ‘설교, 이렇게 하라’는 주제로 열린 세미나에 목회자들이 설교에 큰 관심을 갖고 강의를 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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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은혜동산 JESUS - KOREA
글쓴이 : 죤.웨슬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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