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한 본문이 다른 본문을 무효로 만들 수 있는가?
우리는 성경의 어떤 본문을 특별히 중요하다고 말할 때가 있다. 성경이 다 하나님의 말씀인데 특정한 본문을 더 중요하다고 말하기가 부담스러워 어떤 이들은 그 본문에는 특별히 하나님의 진리가 더 밀집되어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대체로 우리는 성경의 여러 가지 말씀 가운데 특정한 말씀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잘못된 것인가?
사람이나 상황에 따라 성경의 특정한 본문이 더 중요하게 되기도 하고 덜 중요하게 되기도 한다. 이것은 아무리 좋은 음식이라도 사람에 따라서 다른 음식보다 덜 좋은 음식이 되기도 하는 것과 비슷하다. 일반적으로는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는 말씀이 중요하다. 그러므로 일반적인 의미에서나 혹은 특정한 상황에서 성경의 어떤 본문을 특별히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하기 어렵다.
그러면 성경의 중요한 본문은 다른 본문을 무효로 만들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 신자라면 아무도 이것을 부인하지 않을 것이다. 성경의 일부를 무효로 만드는 사람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부인하는 것이므로 진정한 기독교인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런데도 우리가 여기서 이런 주제를 생각해보려고 할 수 없다. 그런데도 우리가 여기서 이런 주제를 생각해보려고 하는 것은 사람들이 실제로는 성경의 한 본문으로 다른 본문을 무효화하려고 할 때가 많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기독교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교리는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다(요3:16/롬3:21-31/갈2:20)
우리는 예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는 것이지 결코 우리의 행위를 힘입어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이와 달리 우리가 죄를 지으면 구원을 얻지 못한다는 교훈도 나온다(마7:21-23/롬8:13).
우리는 이 두 가지 교훈이 조화되어 우리를 바른 신앙생활로 이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우리가 아무리 많은 죄를 지어도 그리스도의 은혜로 다 용서받고 구원을 받는다. 그러나 동시에 구원을 받은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답게 바른 삶을 살아야 한다.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자는 "하나님의 뜻을 거부하고 죄 속에 살면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경고를 두려워하며 최선을 다해 바르게 살아야 한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은혜나 우리의 믿음을 강조하는 말씀'과 '우리의 사명이나 바른 삶을 강조하는 말씀'에 대해 유의해야 할 것은 이 두 가지 교훈이 서로 싸워서 한 교훈만 살아 남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죄를 짓지 말라"는 말씀을 읽을 때 마음속으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은혜로 모든 죄를 다 용서받고 구원받는다"는 말씀을 생각하며 "죄를 짓지 말라"는 말씀을 무시해버려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하는 것은 성경의 한 본문으로 다른 본문을 무효화하는 것이다. 만일 그렇게 하여 성경의 특정 본문을 무효로 만들기 시작하면 우리는 성경에서 진정한 하나님의 뜻을 배울 수 없다. 그리고 결국은 교회가 잘못된 길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교회 지도자들에게 더 큰 책임이 있다. 평신도들은 이런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한국교회의 지도자들 중에는 의도적이든 아니든 자신이 좋아하는 본문을 강조하며 다른 본문을 무시하거나 무효화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예를 들어, 로마서 3장 20절에는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는 말씀이 나온다. 이 말씀은 율법의 중요한 기능이 죄를 깨닫게 해주는 것이라고 가르쳐준다.
그런데 어느 설교자가 마태복음 5장 27-30절을 본문으로 설교하기 위해 본문을 읽었다.
" 또 간음치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만일 네 오른눈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마5:27-30)
그리고 설교자는 이 본문으로 다음과 같이 설교한다.
"마태복음 5장 27-30절은 우리에게 마음에 음욕을 품지 말라고 가르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여자를 한번 쳐다보기만 해도 간음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 간음한 죄인이 됩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다 죄인이라는 것을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이렇게 설교하면서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해주는 것이지 반드시 그대로 지키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라고 선포한다.
이 설교를 들은 성도들은 앞으로 마태복음 5장 27-30절을 읽을 때마다 음란한 생각을 하지 말고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교훈은 받지 못하고 자기는 죄인이므로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는 말씀만 배우게 된다. 만일 이런 식으로 성경이 가르치는 올바른 삶에 대한 교훈을 지킬 필요가 없다고 가르치면, 그런 설교를 들은 교인들은 평생 올바르게 살려는 노력은 하지 않게 된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믿으나 바르게 사는 것은 전혀 배우지 못하는 비뚤어진 신앙생활을 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유의해야 할 것은 성경의 한 본문이 다른 본문을 무효화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은 다른 본문의 근본적인 뜻을 무시하고 없앨 수 없다는 뜻이지 다른 본문을 보완하지도 못한다는 뜻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로 이제 동물의 희생제사는 드리지 않으나 제사와 관련된 법들은 지금 우리의 예배 자세를 가르쳐준다. 예수님의 산상설교도 구약의 계명을 바르게 잘 지키도록 완성하신다. 이렇게 한 본문이 다른 본문을 보완하고 완성하는 경우는 있으나 무시하고 무효화하지는 않는다.
성경의 한 본문이 다른 본문을 무효로 만들 수는 없다. 그리고 성경의 다양한 본문들은 사람과 경우에 따라 다른 중요성을 가진다. 그러므로 우리는 결코 어떤 성경 본문으로 다른 성경 본문을 무효화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그 본문은 그 나름대로 중요성을 가지고 있으며 그 본문이 우리가 치명적인 어려움에 빠졌을 때 우리를 살리는 결정적인 말씀이 될 수 도 있다.
우리는 모든 본문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하나님께서 그 말씀을 주신 이유를 생각하며 하나님의 모든 말씀으로 우리의 신앙을 균형 있고 튼튼하게 이루어나가야 한다. 특히 교회 지도자들이 이에 대한 사명을 잘 감당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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