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돌은 다듬지 않은 돌로 만든 제단
출 20:25 네가 내게 돌로 제단을 쌓거든 다듬은 돌로 쌓지 말라
네가 정으로 그것을 쪼면 부정하게 함이니라
兪昔根
<알이랑코리아 대표, 알이랑교회 담임목사>
최초의 예배 형태는 제물을 바치는 것이었다. 하늘 아래 제단 하나만 있으면 제사 드릴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제단은 하느님(하나님)의 이름을 기억하고 그분께 예배할 동기가 있는 곳이면 어디서나 세울 수 있었다.
그러한 장소에 세워지는 제단은 간단한 것이었으며, 화려하게 장식된 것이 아니었다. 제단은 흙으로 만든 土壇(토단)으로도 족하지만(출 20:24), 다듬지 않은 돌로 제단을 세울 수도 있었다.
출 20:25 네가 내게 돌로 제단을 쌓거든
다듬은 돌로 쌓지 말라
네가 정으로 그것을 쪼면 부정하게 함이니라
돌로 제단을 세울 경우는 반드시 자연석을 써야만 했다. 만약 연장을 대면 제단은 사람이 만든 것이 되고, 이는 제단을 부정하게 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제단은 오직 다듬지 않은 돌로 쌓아야 했다. 하느님(하나님)은 제단을 세우는 데 있어서 인공적인 요소를 철저히 배제하였다.
하느님은 당신이 창조하신 순수한 자연의 흙이나 돌로써 제단을 만들 것을 명령하셨다. 이스라엘이 여호와께 다가가는 방법은 잘 다듬어진 구조물이 아니라 흙 혹은 땅에 흔히 널려 있는 다듬지 않은 돌로써 만든 제단이었다. 왜 하느님은 그렇게 지시하셨을까?
제단을 대리석 같은 것으로 웅장하고 화려하게 건축하여 외형적 아름다움에 치중하다 보면 예배의 본 정신이 퇴색될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느님(하나님)은 제사보다 제단이 부각되는 것을 원하시지 않는다. 그래서 다듬지 않은 돌로 제단을 세울 것을 요구하신 것이다. 그런데 제단에 대한 규례는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하느님은 이어서 다음과 같이 분부하셨다:
26 너는 층계로 내 제단에 오르지 말라
네 하체가 그 위에서 드러날까 함이니라
하느님(하나님)은 제단을 세울 때 층계를 놓지 말라고 명하셨다. 즉 제단에 계단이 있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토단이든, 돌단이든 여호와의 제단은 계단이 없어야 했다. 왜 하느님은 제단에 층계를 놓지 말라고 명하셨을까? 그 까닭이 26절 하반절에 기록되어 있다.
“네 하체가 그 위에서 드러날까 함이니라.”
통으로 늘어뜨려 입은 옷은 발을 들 때에 하체가 드러날 염려가 있었다. ‘하체’(히, 에르와)는 ’벌거벗음‘, ‘나체’의 의미이며, 구약시대에 종교 의식상 부정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그런데 이것은 표면상의 이유다. 이면에 또하나의 목적이 있다. 만약 층계로 제단에 오를 정도면 제단을 높고 거대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 높은 제단에 올라가기 위해 ‘계단’이라는 인공적 시설이 필요한 것이다. 결국 여기서도 하느님은 제단을 단순하게 만들 것을 재차 요구하신 것이다. 제단을 높고 휘황찬란하게 건축하는 것은 하느님의 뜻이 아니다.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이 돌로 제단을 만들 때는 두 가지 규례를 지켜야 했다. 첫째, 다듬지 않은 돌로 만들라. 즉 연장을 대지 아니한 자연석으로 제단을 세워야 했다. 둘째, 층계를 놓지 말라. 즉 제단에 계단이 있으면 아니 되었다. 그리하여 돌제단은 계단이 없는 구조로서 자연석을 사용하여 세워야 했다. 이것이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하느님(하나님)을 섬길 때 지켜야 할 제단에 대한 규례였다.
그런데 하느님을 공경하던 우리 “알이랑민족”의 조상들은 성경의 첫 장도 기록되지 않았던 아득한 옛날에 이미 이상의 규례를 따라 돌로 제단을 만들어서 하느님을 섬겼다. 바로 그것이 '고인돌'이다. 고인돌은 "다듬지 않은 돌로 축조한 계단 없는 제단"이다!
▲ 탁자식 고인돌 중에서 가장 크고 조형미가 빼어난 것으로 유명한 강화도 부근리 고인돌
이런 형태의 고인돌은 ‘제단’으로 축조된 것이다.
강화에는 약 120기에 달하는 많은 고인돌이 있다.
강화도 하점면 부근리에 있는 고인돌은 사적 제137호로 지정되어 있다. 지금까지 남한에서 발견된 탁자식 고인돌 가운데 가장 큰 것이다. 덮개돌의 크기는 장축 길이가 650㎝, 너비가 520㎝, 두께가 120㎝, 무게는 약 80톤 정도이다. 받침돌의 크기는 길이가 450㎝와 464㎝, 두께가 60㎝와 80㎝, 높이가 140㎝이다. 덮개돌 두께를 합치면 고인돌 전체 높이는 260㎝나 된다.
이런 형태의 고인돌은 무덤이 아니라 제단으로 축조된 것이다. 여기에서는 대단히 큰 규모의 제천행사가 치러졌을 것이다. 고인돌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이영문(목포대학교 고고학 교수) 박사는 강화도 부근리 고인돌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이 고인돌은 대지상에 거대한 덮개돌이 받침돌에 의해
웅장한 모습을 띤 것이라든지
주위에서 쉽게 관망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점에서
무덤으로서의 기능보다는 제단으로서의 기능이 강한 것이다.”
(이영문, 「고인돌 이야기」, 다지리, 2001, p.196)
고인돌은 흔히 족장의 무덤으로 알려져 왔다. 대형 고인돌의 위용과 그것을 축조하는 데 들인 노역을 감안한다면 아무래도 그만한 권력을 지닌 사람의 무덤이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작은 크기의 고인돌은 더 많이 있다. 그 소형 고인돌은 뭐라고 설명할 것인가?
▲ 강화도 교산리 고인돌
받침돌과 덮개돌의 크기를 보라. 아주 작은 크기의 고인돌이다.
덮개돌은 한 쪽으로 떨어진 채 방치돼 있다. 뒷 편에는 더 작은 고인돌이 있다.
(받침돌 사이에 있는 사람은 필자)
▲ 2014년 우리나라 동해안 최초로 발견된 탁자식 고인돌
(울진군 북면 나곡리 산 105-11번지)
크기는 장축 170 × 단축 160 × 두께 50cm이다.
서쪽 지석의 크기는 현 높이 48 × 길이 127 × 두께 28cm 내외이며,
동쪽 지석의 크기는 현 높이 48 × 길이 116 × 두께 22cm 내외이다.
그리고 동쪽과 서쪽의 지석 내부 간격은 약 40cm이다. 아주 작은 크기의 고인돌이다.
고인돌은 무덤이 아니다. 우리 조상들이 엄청난 노역을 들여서 거대한 고인돌을 축조했던 단 하나의 까닭도 그것의 용도가 하느님께 경배를 드리기 위한 ‘제단’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무덤설은 애초에 가정부터 잘못 세우고 나온 엉터리 이론인 것이다. 그것은 우리 겨레 고유의 종교 및 문화가 ‘제천신앙’이었다는 것을 간과한 데서 나온 억설이다.
“단군조선시대에는 제천의식이 북으로는 백두산에서,
남으로는 강화도 마리산 산정의 참성단에서 행하여졌다.
이 제천행사야말로 동이문화의 정수(精髓)이며 우리 문화의 본성(本性)이다.”
-최태영 교수(서울대 초대 법대학장)-
이제까지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것으로 알려져 있는 고인돌은 고창 운곡리에 있다. 높이가 약 4m, 200톤 무게의 대형 고인돌이다. 그러나 이 지역 발굴을 담당했던 전영래(전 원광대 교수) 박사는 이 고인돌에서 유골을 발견할 수 없었다. 근처의 다른 고인돌도 마찬가지였다. 신분과 권력을 상징할 만한 어떤 흔적도 남아 있지 않았다. 전북 고창 매산마을 산기슭에는 수백기의 크고 작은 고인돌이 널려 있다. 이 고인돌들 역시 1992년 전영래 박사가 발굴 조사했는데 유골은 물론 권력을 상징할 만한 부장품이 전혀 나오지 않았다.
▲ 고창 도산리 민가 장독대 옆 고인돌
강화도 부근리 고인돌과 같은 형태로서, 역시 무덤이 아니라 제단으로 축조된 것이다.
(정종목, 「역사스페셜」, 효형출판, 2000, p.228)
그러나 일부 고인돌은 유적에서 사람의 뼈가 출토된 사례가 있다. 그 까닭은 무엇인가? 그것은 고인돌 당시가 아니라 후대에 일부 무지한 자들이 고인돌 밑에 사람의 시신을 매장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주 작은 몇 가지 사례만 갖고서 고인돌을 전부 무덤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난센스다. 박성수(전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학 대학원 교수) 교수는 다음과 같이 역설한다:
“몇 군데 고인돌 밑에서 유골이 나왔다고 해서
고인돌을 묘라고 단정해 버리는 선입견에는 문제가 있다.
지석묘(支石墓)가 아니라 지석단(支石壇)이라고 불러야 한다.”
(박성수,「단군문화기행」, 서원, 2000, p.136)
아주 타당한 지적이다. 고인돌의 정확한 기능은 그 형태가 어떤 것이든 간에 묘가 아니라 ‘제단’이었기 때문이다. 고인돌은 제천행사에서 제물을 바치던 감사의 제단이었다.
▲ 성화 작가 최용성 화백의 작품 '돌제단 고인돌'
구약성경 신명기 27장 5절 이하에 보면 하느님(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다듬지 않은 돌로 제단을 쌓고 그 위에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고 거기서 먹으며 하느님 앞에서 즐거워하라고 말씀하셨다.
신 27:6 너는 다듬지 않은 돌로 네 하나님 여호와의 제단을 쌓고
그 위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 번제를 드릴 것이며
7 또 화목제를 드리고 거기에서 먹으며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하라
그런데 우리 조상들은 이스라엘 백성보다 훨씬 먼저 단군시대부터 다듬지 않은 돌로 제단을 만들어 그 위에 제물을 바치고, 거기에서 먹고 마시면서, 주야 무휴로 노래하고 춤추며 하느님 앞에서 즐거워했다. 그것이 국중대회로 치러진 전국적인 ‘제천행사’였던 것이다.
▲ 다양한 크기의 강화 오상리 고인돌군
제천행사는 전 국민이 참여하는 국가적 대사였다. 그렇게 국가적 행사로 천제(天祭)를 드리려면 국가의 위엄이 풍겨나는 큰 제단과(강화도 부근리 고인돌), 전국에서 지방별로 나누어 드릴 작은 제단들도 아울러 필요하다. 이것이 만주와 지나(支那) 동부지역(동이족 영역), 한반도 각지에 고인돌이 골고루 산재해 있는 이유인 것이다.
고인돌은 무덤이 아니라 ‘제단’이다. 그것은 대홍수 후 알이랑(하느님과 함께) 고개(파미르고원~천산산맥~알타이산맥)를 넘어 동방으로 천동(遷動)한 욕단 계열의 성민 한국인의 선조들이 하느님께 제사했던 제단이다. 그러므로 지석묘(支石墓)라는 명칭은 터무니없는 것이다. 고인돌은 ‘제단’이라는 사실에 부합하게 지석단(支石壇)이라고 불러야 한다.
☞관련기사: < 돌제단 고인돌 왕국 >
< 하나님 VS. 하느님 >
알이랑 코리아 제사장 나라
cafe.daum.net/ALIL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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