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신약

[스크랩] 도무지 맹세하지 말라

수호천사1 2016. 11. 23. 09:22

도무지 맹세하지 말라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를 하지 말지니" (마 5:34)
  
   맹세하지 말라는 말씀에 대한 교회의 해석은 다양했다. 어떤 파에서는 이 말씀을 문자적으로 해석하여 맹세를 일체 거부하였다. 예컨대 교우회(the Society of Friends)에서 그렇게 했다. 그들은 맹세하는 것은 곧 예수님의 말씀을 범하는 것이라 생각하였다. 그러면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그 해석을 따라서 전혀 맹세하지 말아야 하는가?
  만일 우리가 교우파처럼 본문을 문자적으로 해석한다면 심각한 문제가 생기는데 무엇보다도 성경 자체에 모순이 된다. 스테인(Robert  H. Stein)은 그 문제점을 네 가지로 지적하였다.

   1. 구약의 명백한 교훈과 뚜렷하게 모순된다. 레위기 5:1; 19:12; 민수기 30:2-15; 신명기 23:21-23 그리고 출애굽기 20:7은 맹세가 합법적임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다. 다만 맹세를 하고 지키지 않는 것을 꾸짖고 있다.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은 사실상 동등한 하나님의 말씀이다. 구약과 신약은 은혜에  대한 공통 계약의 증거이며 동등하게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렇다면 구약에서 금하지 않는 맹세를 신약에서 금할 때 그것은 성경 자체에 큰 모순이 아닐 수 없다. 구약성경이 아직도 성경의 정경에 한 부분이라면 문자적인 해석을 취해서는 안 된다.


   2. 신약에는 여러 가지 맹세가 명확하게 언급되어 있다. 사도행전 2:30과 히브리서 6:16-18; 7:20-22의 명확한 맹세에 대한 언급은 하나님께서 그가 하신 약속의 확실성을 강조하기 위해 하나님의 맹세로 하셨음을 보여준다. 역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을 불러 증거한다(고후 1:23)고 했고 하나님 앞에서 내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갈 1:20)고 했으며 하나님이 내 증인이라고 하였다(빌 1:8). 그러면 바울이 잘못한 것인가?  이것은 바울이 본문의 예수님 말씀을 문자적으로 해석하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3. 마태는 결코 이 방법으로 아래의 말씀을 해석하지 않았다.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말하노니" 라는 말씀에서 그는 결코 구약의 교훈을 배격하지 않았다. 마태복음 5:17에서 내가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이루려 왔다고 하였다. 구약의 교훈을 파괴시키려는 것은 마태의 방법이 아니었다. 그의 방법은 오히려 이루는 것이요 성취하는 것이었다.


   4. 문자적인 해석은 예수님 자신도 받아들이지 않으셨다. 예수님께서 대제사장에게 심문을 받으실 때 그는 침묵하셨다(마 26:62). 그러나 그의 침묵 끝에 대제사장이 예수님으로 살아 계신 하나님께 맹세하게 하여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지 우리에게 말하라고 할 때(마 26:63), 예수님은 네가 말하였다고 하셨다(마 26:64). 예수님은 맹세의 타당성을 인정하시고 반응하신 것이다.1)

  그러면 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라는 말씀은 무슨 뜻인가? 구약성경은 레위기 19:12에서 내 이름으로 거짓 맹세하지 말라고 했고, 민수기 30:2에서는 사람이 여호와께 서원하였거나 마음을 제어하기를 서약하였거든 파약하지 말고 그 입에서 나온 대로 다 행할 것이니라 하였다. 신명기 23:21에서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 서원하거든 갚기를 더디하지 말라고도 하였다. 이상의 말씀들은 맹세를 금한 것이 아니라 맹세한 것을 지키지 않는 경우를 들어 경고하고 있을 뿐이다. 또 예수님께서도 맹세를 인정하셨다면 도무지 맹세하지 말라는 말씀은 모순이 아닌가?  우리는 이 말씀을 당시 유대의 상황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  


  그 당시 유대 인의 풍속에서는 하나님의 이름이 직접 연계되지 않는 맹세는 저버려도 큰 허물이 아니었다고 한다. 따라서 바리새 인과 서기관들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된 맹세는 지키나 그렇지 않으면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라 꼭 지킬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이름 대신에 하늘이나 땅 예루살렘 성, 성전, 제단, 머리 등으로 맹서하였다. 그러나 그 대상이 무엇이든지 하나님의 이름과 연관없는 것이란 하나도 없다. 땅은 하나님의 발등상이요(사 66:1) 예루살렘은 큰 왕의 성이요(시 48:2) 머리도 사실상 하나님만이 희고 검게 하실 수 있으니 다 하나님과 관계가 있는 것이다.2)


  유대 인의 사회에 맹세가 흔했던 것은 오늘 우리 사회와 다르지 않았다.  거짓과 불신이 팽배했기 때문에 상대방을 믿을 수가 없었고 그러기에 맹세가 유행했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맹세한 것까지도 믿을 수가 없었다. 사람들은 거짓말을 할 뿐 아니라 거짓말을 하려고 맹세까지 했던 것이다.3)


  예수님은 이런 병폐를 고치기 위해서 도무지 맹세하지 말라고 하셨다. 예수님은 이런 악을 반대해서 생각과 말과 행실에서 신실하여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이 되기를 명하신 것이다. 만일 우리가 이렇게 진실하기만 하면 맹서는 필요치 않을 것이다.

 

우리는 다만 그런 것은 그렇다, 아닌 것은 아니다 라고 하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사실상 맹세 없이는 믿을 수 없는 사람이 된다면 그것은 악(혹은 악한 자)으로 좇아난다고 할 수 있다. 자기의 불신과 부정직을 감추기 위한 방편이 맹세이기 때문이요 그런 거짓은 악한 자 마귀에게서 나오기 때문이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요 14:6)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그리스도인은 맹세가 없이도 믿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1. Robert H. Stein, Difficult Passages in the  Gospels, pp.64-66
   2. William Hendriksen, The Gospel of Matthew. p.308
   3. R.C.H. Lenski, The Interpretation of St. Matthew's Gospel, p.236

 



출처 : 은혜동산 JESUS - KOREA
글쓴이 : 죤.웨슬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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