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을 쫓아낼 수 있는 권한과 방법
“18 그 후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오셔서 일러 말씀하시기를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권세를 나에게 주셨도다.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가르치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며”(마 28:18~19) [한글킹]
1. 위임 권한
그리스도인이 무슨 권한으로 하나님께서 인정한 사탄의 권리를(자세한 것은 이 책 PartⅡ. 02. 사탄의 실체와 정체를 참조하라.) 정지시킬 수 있는가? 성경은 성부 하나님께서 예수님에게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주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그 권세를 제자들에게 주셨다. 그 권세를 위임받은 제자들이 나가서 그 일을 행하였을 때(눅 10:17) 주님께서는 “사탄이 하늘에서 번개와 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눅 10:18)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주셨던 그 권세가 지금은 예수님의 제자가 된 그리스도인들에게 위임되었다. 본문의 말씀에 의하면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가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졌다는 것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권세를 움직일 수 있는 그 힘이 예수를 믿는 나에게 주어져 있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세상의 모든 권세를 가지고 계신다. 그렇다면,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가 어떤 권세인가?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오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러 오셨기 때문에 마귀의 일을 멸하는 권세(요일 3:8), 하늘의 천사를 부리는 권세(히 1:14, 外 각주참조), 천국 문을 열 수 있는 권세, 묶으면 묶고 풀면 풀리는 권세(마 16:19),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눅 10:19) 등이다. 주님께서는 십자가의 승리로 이 권세를 얻으셨다.(골 2:15) 그리고 이 권세를 예수님과 동행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신 것이다. 이 영적 근거에 터 잡아 하나님의 자녀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들에게 떠날 것을 명할 때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 귀신들이라 할지라도 그 명령에 복종할 수밖에 없게끔 되어 있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주어진 귀신을 쫓아낼 수 있는 권한이다.
그러나 지금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그 권한을 행사하는 것은 고사하고 그런 권한이 주어져 있다는 것도 모르고 있다. 그리스도인의 능력 있는 삶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가 주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유함을 누리지 못하고,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살고 있는 것이다. 참으로 기가 막힐 일이다. 신앙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신앙생활이라고 하고 있는 것이다.
2. 귀신을 쫓아내는 방법 - 나사렛 선포
축사 사역은 주님께서 이 땅에서 행하신 사역을 똑같이 우리가 행하는 것이다. 따라서 귀신을 쫓아내는 방법도 주님이 행하신 것과 똑같다. 주님께서 귀신을 쫓아내실 때는 그냥 명하셨다. “악한 귀신아 나오라.”이렇게 명하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그냥 “악한 귀신아 나오라.” 이렇게 명할 경우에 귀신들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성경의 기록을 보면 주님의 십자가 사역을 믿는 자들에게는 분명히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주셨다. 주님과 연합되어 하나가 될 때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축출할 권세를 주신 것이다. 십자가 사역이 있기 전날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기쁨이 충만하리라.”(요 16:24)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그 이후에는 제자들이 사역에서 예수님의 이름을 사용하여 그 이름에 영들이 순복하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고 하여 걷게 만든 것이다.(행 3:6)
“18 이같이 여러 날을 하는지라 바울이 심히 괴로워하여 돌이켜 그 귀신에게 이르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 하니 귀신이 즉시 나오니라”(행 16:18)
본문에서 사도 바울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라고 하여 귀신들을 쫓아낸다. 귀신을 쫓아내는 방법은 이 방법이다. 베드로가 사용하고 바울이 사용한 이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다. 즉, 나사렛 선포이다. 나사렛 선포는 나사렛 예수의 이름을 사용하여 귀신을 쫓아내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아무나 나사렛 선포를 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주님과 합하여 한 영이(고전 6:17) 된 사람만 귀신들이 항복하는 것을(눅 10:20) 경험하게 된다. 축사 사역에서 주님과 연합되지 아니한 자들이 흉내를 낼 경우에는 귀신들에게 화를 당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13 또 돌아다니며 귀신을 쫓아낸다고 하는 어떤 유대인들이 악령들린 사람들에게 주 예수의 이름을 불러서 말하기를 “우리가 바울이 전파하는 예수로 너희에게 엄명하노라.”고 하였더라. 14 제사장들의 우두머리인 한 유대인 스케바에게 일곱 아들이 있었는데 그들도 그렇게 행하더니 15 그 악령이 대답하여 말하기를 “내가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알지만 너희는 누구냐?”라고 하더라. 16 그리고 그 악령들린 사람이 그들 위에 뛰어올라 그들을 짓누르니 그들보다 힘이 센지라, 그들이 상처를 입고 벌거벗은 채로 그 집에서 도망치더라“(행 19:13-16) [한글킹]
본문의 내용은 주님과 연합되지 아니한 자가 축사 사역을 흉내 내었다가 귀신들로부터 당하여 도망친 장면을 기록한 것이다. 축사는 흉내를 내어서는 안 되고 반드시 주님과 연합하여 친밀한 교제 가운데 동행할 때 가능한 것이다. 축사 사역의 원리인 “주께서 그들과 함께 역사하시고The Lord working with them”(막 16:20)를 놓쳐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믿음으로 귀신들에게 떠나라고 명할 때 귀신들은 “무슨 근거로 너희가 예수의 이름을 사용하느냐?”고 물을 것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주님과의 연합이 중요하고 인격적인 동행이 중요한 것이다. 지식적으로 진리를 알고 있다고 해도 영의 실재를 만나지 못하고 하나님과 동행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반격을 당할 수 있다.
주님과의 연합의 정도와 인격적인 동행의 깊이에 따라 나사렛 선포의 위력은 달라진다. 다시 말해서 권세의 강도, 즉 능력의 크기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결과도 달라진다. 나사렛 선포가 귀신을 쫓아내는 방법이지만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친밀함에 따라서 그 결과가 달라진다는 것을 항상 인식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3.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축사 사역을 할 수 있는가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축사 사역을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 축사 사역은 연습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축사 사역은 의욕만 가지고 되지 않는다. 영의 원리를 알아야 하고, 실제 영적인 존재들과 부딪치면서 습득한 경험적인 지식도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감당이 안 되는 사태에 직면할 수도 있다. 주님과의 연합의 정도에 따라 나사렛 선포의 능력의 크기가 달라진다는 것을 위에서 보았다. 주님과 연합하여 동행하는 사람들은 성령님의 음성을 듣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처음 축사를 행한다고 하더라도 크게 염려할 것은 없다고 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경험을 쌓아야 한다는 것이다.
축사 사역을 할 때 경험자와 초심자가 팀으로 사역하는 것이 바람직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초심자가 배워야 할 것은 귀신들림을 식별하는 분별력이다. 피사역자의 귀신들린 상태를 성령님의 계시로 알게 되었는지, 아니면 ‘그럴 것이다.’는 자신의 생각으로 추측한 것인지를 경험을 통해서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성령님의 계시로 알게 되었을 때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이 귀신들의 축출이 용이할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생각으로, 혼적인 감각으로 피사역자의 상태를 감지할 경우에는 전혀 다른 상황이 설정된다. 예를 들어 피사역자가 “죽고 싶어요.”라고 말하면 자살 귀신이 들어있다고 생각하고 자살 귀신에 대한 축사를 행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지극히 혼적인 감각으로 하는 사역이다. 부가설명을 한다면, 죽고 싶은 생각은 자살 귀신이 들렸을 때에만 드는 것이 아니라 우울의 영이 있을 때에도 든다는 것이다. 이렇게 진단을 잘못하고 축사를 하게 되면 처음부터 그 사람에게 없었던 자살 귀신에 대해서는 엉터리 사역이 되는 것이고 오히려 다른 귀신들을 격동케 한다. 강도를 잡으러 경찰이 들어왔는데 강도하고는 연관이 없는 도둑이 난리를 치는 꼴이 되는 것이다. 축사의 현장에서는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이렇게 되면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킨다.
축사 사역자는 많은 것을 구비하여야 한다. 주님과의 연합부터 시작하여 사역자의 자세, 영적인 지식, 현장의 경험을 통하여 습득되어야 할 귀신들에 관한 습성 등 많은 부분에서 다듬어지고 숙성되어져야 한다. 축사 사역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귀신들이 일으키는 기괴하고 황당한 상황들을 다루는 방법을 터득하는 것은 경험으로 얻어지는 경험적 지식 이외에는 없다. 따라서 초심자들은 경험자와 사역을 통하여 배우는 것이 그 방법일 것이다.
4. 자가 축사(셀프 축사)가 가능한가!
자가 축사가 가능한가? 답은 ‘가능하다.’이다. 그러나 참으로 어려운 주제이다. ‘자가 축사’의 개념은 자신에게 들어있는 귀신을 자신이 쫓아내는 것을 말한다. 자가 축사가 가능하다고 믿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나사렛 선포만으로 귀신이 떠나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항상 명심해야 할 것은 축사 사역은 주님과의 동행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이다. 자가 축사가 쉽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가 축사를 직접 해본 사람은 자신 안에 들어있는 귀신을 스스로 쫓아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실감하게 된다. 그리고 축사의 진수가 무엇인가를 터득하게 된다.
자가 축사가 어려운 이유는 환경의 단절에 있다. 귀신을 쫓아낸 후에는 전에 생활하였던 그 환경과 단절되어야 하는데 이것이 쉽지가 않다는 것이다. 보다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음란의 영을 축출할 경우 음란의 영을 쫓아내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 이후에 다시 들어오는 것을 방어하는 것이 문제가 된다는 것이다. 축사 사역의 핵심은 축사 이후에 다시 들어오려는 귀신들을 어떻게 막아내느냐에 있다. 다시 들어오려는 귀신들을 막아내기 위해서는 귀신들에게 틈을 주어서는 안 된다. 틈을 주지 않기 위해서는 생각의 차단도 중요하지만 환경의 단절도 중요하다. 음란의 영을 쫓아낸 사람이 포르노를 계속 본다면 반드시 음란의 영들은 다시 들어온다. 음주의 영을 쫓아낸 사람이 술집을 들락거리면 음주의 영은 반드시 다시 들어온다. 환경의 단절이 어려운 이유는, 귀신에 들린 상태는 이미 생활에서 중독성을 띠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환경에서 스스로 벗어나는 것을 쉽게 말해서는 안 된다. 필자의 경우는 축사 이후에 환경과 단절하는 것이 금연하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 생각하였다. 이런 어려움이 따르는 일을 너무나 쉽게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5. 자백에 의한 축사
“9 우리가 우리 죄들을 자백하면 그는 신실하시고 의로우셔서 우리 죄들을 용서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시느니라”(요일 1:9) [한글킹]
축사의 또 다른 방법으로는 자백이 있다. 나사렛 선포를 하지 않았는데도 자백에 의해 귀신들을 떠난다는 것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이 사실은 우선 하나님과의 온전한 관계 속에 들어가면 악한 것들이 손대지 못하게 하신다는 말씀이 증명되는 것이기 때문이다.(요일 5:18)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된다는 것이 생활 속에서 확인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백으로 귀신들이 떠난다는 것이 성경적인 사실이라는 것을 공식적으로 밝힌다.
자백으로 귀신들이 떠나는 근거로, 본문에서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시느니라.”는 대목을 주목하여야 한다. 모든 불의에서, 즉 죄를 짓게 만드는 세력으로부터 깨끗하게 하신다는 것이다. 결국, 죄를 짓게 만드는 세력으로부터 깨끗하게 하여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할 수 있고 이것은 귀신들을 쫓아내지 아니하고는 될 수가 없기 때문에 자백이 하나님께 상달되었을 때에는 귀신들이 떠날 수밖에 없는 구조였던 것이다. 진정한 자백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킨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진리의 발견이었다.
축사 사역을 행할 때 회개가 선행되어야 하는가!
대부분의 책들을 보면 축사 사역에 앞서서 죄에 대한 회개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회개의 주체가 누구인지 알고 있는가를 묻고 싶다. 진정한 회개는 죄에 대한 참상이 성령님의 조명으로 보여질 때 가능하다. 회개가 하나님의 은혜로 된다는 것을 안다면 우리가 원할 때 하나님은 은혜를 주시는 것인가를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사역의 현장에서
주님과 동행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귀신을 쫓아내는 방법인 나사렛 선포는 믿는 자의 삶을 지키는 방패이다. 악한 영들의 공격이 확인될 때 그 영들을 물리치는 것은 나사렛 서포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다. 마귀의 앞잡이들은 이 선포를 싫어한다. 나사렛 선포를 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고 나사렛 선포를 하지 못하도록 교묘하게 방해한다.
마귀의 앞잡이들은 귀신에 대한 지식을 가르치는 것을 아주 싫어한다. 자신들의 정체가 드러나기 때문에 본능적인 거부 반응을 보인다. 이들의 주장들을 현장에서 들어보면 “설교 중에 귀신에 대해서만 말한다.”고 주장한다. “설교할 때 귀신 얘기만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진리가 자유케 하기 때문에 복음만 말하면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런 주장이 얼마나 사악한 주장인가를 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마귀의 앞잡이들이 주장하는 내용에 대해서는 기회가 주어지면 별도로 기술하기로 하고, 여기서는 그들의 주장이 왜 허구인가를 간단히 살펴본다.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은 단 한 시간도 예수님을 떠나서, 하나님을 떠나서 생각할 수도 없고 생활할 수도 없다. 매 순간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으면 그는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다. 하나님을 매 순간 생각한다면 어떤 현상이 있게 되는가를 보자.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마귀이다. 하나님을 의식하는 곳에 마귀는 반드시 출현한다. 그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기 위해서이다. 하나님을 생각하는 그 시간에 세상으로 눈을 돌리게 하고 다른 생각을 넣어주는 것이 마귀 일이다. 따라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은 매 순간 사탄이 하는 일들을 분별하게 된다. 내 안에 세상을 바라보는 생각을 넣어주는 주체가 무엇인지를 영적 분별력을 통해서 안다. 그리고 매 순간이 영적 전쟁이라는 것을 인식한다. 이런 상태에서는 마귀를 의식하지 않고 그의 부하들인 귀신들을 보지 않으려고 해도 보게 된다. 영적인 생활을 제대로 하는 사람들은 마귀가 얼마나 지긋지긋한 존재인가를 안다. 이들을 물리치는 방법이 나사렛 선포 이외에 어떤 방법도 없다는 것을 안다. 아울러 나사렛 선포가 없는 신앙생활은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것은 마귀의 궤계를 알고 분별하는 것이다.(고후 2:11) 어떻게 마귀를 말하지 않고, 귀신들을 말하지 않고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가? 없다. 귀신들을 말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고 생활한다는 것을 스스로 방증하는 것이다.
마귀의 앞잡이들은 복음만 말하면 된다고 말한다. 귀신들을 의식할 필요도 없고 사탄을 생각할 필요도 없다고 말한다. 믿는 자는 귀신에 들리지도 않는다고 말한다. 예수님이 다 이루셨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예수님이 다 이루셨다는 것은 옳다. 그러나 그 권세를 행사하여 승리의 생활을 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들 몫이다. 이 생활을 하지 못하도록 마귀의 앞잡이들은 궤변을 늘어놓고 있는 것이다. 귀신을 말하지 않는 신앙은 거짓이고 사악한 신앙이다. 광명한 천사로 가장한 하나님을 알지 못하게 하는 마귀의 세력들이다.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오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시기 위해서였다. 마귀의 일을 멸하는 방법은 하나님과의 동행이고, 방법에 있어서는 나사렛 선포 이외에는 없다.
“8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이는 마귀가 처음부터 죄를 짓기 때문이라. 이 목적으로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셨으니, 곧 마귀의 일들을 멸하시려는 것이라“(요일 3:8) [한글킹]
[회복시리즈 05. 믿는 자의 표적 中 일부 발췌 / 박찬빈 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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