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성경에 나타난 치유 기적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치유사역은 매우 중요한 사역인데, 이에 대한 신학적 연구와 고찰이 너무 부진했다. 그로 인해 여러 가지 혼란이 빚어졌다. 전통적 치유에 대한 견해도 교정해야 하고, 바른 입장을 정리하는 것이 시급하다.
1) 예수의 치유 기적
사 35:5-6 ; 61:1-2 - 예수님의 치유기적은 구약적 배경을 통해 이해해야 한다. 구약의 선지자들은 종말에 이스라엘 민족을 모든 억압에서 해방시키는 메시야 시대가 도래 할 것을 대망했다. Time of Messiah is time of healing liberation(선지자가 대망한 종말의 메시야시대는 해방의 시대, 치유의 시대이다). 예수님은 이런 종말론적 기대와 소망을 실현시키는 메시야 사역 중에 하나인 치유의 기적을 수행하셨다.
눅 4:18-21 - 예수님은 눅 4:18-21에서 이런 구약적 소망을 인용하시면서 당신의 사역의 특성을 설명하셨다. 귀신을 쫓아내는 것과 병자를 고치는 것은 이 땅 위에서 사단의 세력이 물러나고 하나님의 종말론적 통치와 하나님 나라가 임한다는 표적이다. 예수님 치유의 사건은 종말론적 통치와 나라가 임할 때 하나님 나라에 수반되는 종말론적인 회복과 구원의 한 단면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복음을 전하시고 이 복음의 내용(하나님 나라가 임했고, 하나님 나라 안에서 종말론적인 구원과 회복이 이루어진다는)의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주님은 복음만 전하신 것이 아니고, 복음의 내용이 사람들 안에서 이뤄지는 사인으로서 이적을 행하셨다. 주님의 메시야 사역의 일부가 치유 사역이다.
하나님 나라 안에서 이루어지는 종말론적인 구원은 전인적인 구원, 영육간의 온전한 구원, 전인적인 구원이다. 주님의 인간 이해는 히브리적인 전인적 인간이해이다. 종말론적 통치가 임했을 때 우리가 맛보게 될 종말론적 구원과 회복의 특성은 전인적인 치유이다. 그래서 제자들을 전도하러 보내시면서 천국복음 전파와 병 고침 두 가지를 명령하셨다(눅 9:2, 10:9). 여기서는 복음 사역과 병 고침을 분리하지 않고 복음 사역의 일환으로 본다. 복음의 구체적인 표현으로서, 하나님의 종말론적 회복과 치유가 임했다는 구체적인 나타남으로서 이런 치유의 기적을 행하라고 하셨다.
2) 사도들의 치유사역
사도행전을 보면 예수님의 복음 사역의 패턴과 사도들의 복음 사역의 평행이 나타난다. 누가가 그 점을 강조한다. 또한 베드로와 바울의 복음 사역이 비슷하게 평행을 이룬다. 예수님의 복음사역의 패턴이 사도들에게도 이어진다. 사도들도 복음을 전하고 병자를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었다. 사도행전을 보면 베드로가 복음을 전하고 앉은뱅이 고쳤으며, 바울도 복음을 전하고 병자를 고쳤다. 누가는 이 사도들의 치유사역을 예수님의 치유사역과 어느 정도 평행을 이루도록 묘사하고 있다. 특별히 베드로와 바울의 치유 사역은 온전히 이 패턴을 평형을 이루도록 기록하고 있다.
베드로 |
바울 |
3:1-10 : 성전에서 앉은뱅이 일으킴
5:15 : “그 그림자라도 뉘게 덮일까 바라고”
5:16 : 와서 다 나음을 얻음
9:36-40 : 죽은 도르가 살림 |
14:8-10 : 루스드라에서 앉은뱅이 일으킴
19:11-12 : 바울의 손수건이나 앞치마로 병든 자를
28:8-9 : 멜리데 섬 사람들 고침
20:7-12 : 드로아에서 유두고 살림
|
사도의 치유도 사람의 전인을 온전하게 만드는 전인적인 치유였다.
3) 예수님과 사도들의 치유사역과 오늘날 교회의 치유의 연속성과 구별성을 이해해야 한다.
▪ 동일성, 연속성 -
전통적으로 예수님의 치유기적은 복음의 진정성의 표적이며, 사도들의 기적도 사도들의 복음의 진정성을 얘기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B. B. 워필드는 더 이상 그런 기적적 은사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것은 치유의 사역은 하나님 나라 도래의 사인이며 회복의 구체적 표현이다. 만약 그 치유 기적이 복음의 구체적인 표현이라면, 그리고 종말론적 회복의 한 부분이라면 그것은 지금도 계속되어야 한다. 그런 치유 기적이 우리에게 하나님의 현재적인 실재(reality)가 임했다는 징표요, 종말론적 회복의 일부라면 지금도 존속되어야 한다. 이런 연속성을 인정하는 바탕 위에서 어느 정도의 기적의 구별성도 생각해야 한다.
전통적 신학자들은 기적이 예수님의 메시야되심을 나타낸다고 주장했다. 한편 현대 신학자들은 또 그것을 부인한다. 우리는 이 둘을 다 잘 연결시켜야 한다. 바다를 잠잠케 하신 것은 우주의 왕이심을 나타낸다. 그런 점은 모방할 수 없다. 그러나 복음의 구체적 표현,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사인이라는 연속성이 있다.
▪ 구별성, 불연속성 -
예수님 복음사역은 특수하고 유일한 면이 있다. 치유 기적을 통해서 복음의 메시지를 구체적으로 나타내셨을 뿐 아니라, 그것을 통해 자신이 메시야이심을 증명하셨다. 그리고 예수님의 메시야이심을 증명하는 동시에 예수님의 하나님의 아들이심, 신적 존재, 성령에 완전히 사로잡힌 특별한 인간이라는 것, 더 나아가 예수님의 신성을 입증한다. 이것이 전통적인 신학에서 주장하는 바요, 워필드의 주장이다. 이처럼 전통적인 견해도 성경적 근거 위에 있다.
예수님은 가버나움의 중풍병자를 일으키시면서 하나님께서 가지신 죄 사함의 권세가 자기에게도 있음 강조하셨고, “나를 믿을 수 없으면 내가 행하는 일을 보고 믿으라”고 하셨다. 치유를 통해 하나님의 긍휼과 능력을 나타내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신 것이다. 사도들의 복음사역도 우리와 다른 점이 있다. 그들은 오고 오는 세대를 위한 교회의 기초요, 복음의 사역과 메시지를 입증하는 역할을 감당했다. 따라서 구원 역사가 점진적으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예수님과 사도들의 사역의 특수성과 우리 교회의 사역의 특수성을 인정함으로 어느 정도 구별성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터는 한번만 닦으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 그 누구도 예수님과 사도들과 똑같은 정도의 치유기적을 일으킬 수는 없다. 예수님의 치유사역은 완전하고 즉각적이었다. 완전한 치유의 기적은 예수님만 행하심으로써 그 자체가 예수님은 우리와는 다른, 성령에 전적으로 사로잡히신 분임을 입증한다.
4) 결론
교회 시대와 사도시대의 치유의 기적은 하나님 나라가 임했다는, 하나님 나라의 현실적인 실체를 증거하는 징표이다. 하나님 나라 안에 우리에게 임한 구원은 전인적인 구원이며, 병의 치유함은 종말론적 회복의 한 단면이다. 이런 점에서 복음 내용의 구체적인 나타남이요 표현이다. 그런 면에서 치유 사역은 지금도 연속된다. 예수님의 치유기적은 예수님의 메시야이심과 신성을 강조하는 것이고, 사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밀알이 떨어져서 하나님 나라가 확대되는 데 있어 제일 첫 기초를 세우는 역할을 했다. 이런 면에서는 예수닌과 사도들의 치유의 사역은 불연속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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