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신학(組織神學)
차례
제1절 신앙고백서에 대한 이해
1. 교회의 전승
2. 교리의 요약
3. 성경적 교회 수립
4. 교회의 통일성
5. 신조의 권위
제2절 고대교회의 공동신조
제3절 종교개혁과 신앙고백
1. 루터파 신앙고백
2. 개혁파 신앙고백
제4절 신학의 체계
1. 고대신학
2. 중세신힉
3. 종교개혁 시데 신학
제5절 신앙과 신학과의 관계
1. 신학에 있어서의 보수주의와 자유주의
2. 종교다원주의
3. 신학적 혼합주의
4. 개혁파
제6절 조직신학
1. 신학의 명칭
2. 조직신학의 정의
3. 조직신학과 기독교
4. 조직신학의 필요성
5. 조직신학의 임무
제7절 신학의 구분
1. 주경신학
2. 성경신학
3. 조직신학
4. 역사신학
5. 실천신학
6. 선교신학
제8절 기독교 교육의 근본이념
제9절 기독교 교육의 목적
1. 기독교 교육의 일반적 목적
2. 기독교 교육의 특별목적
제1절 신앙고백서에 대한 이해
신조와 신앙고백서의 중요성은 그 시대마다 신조를 제정함으로 교회의 진리를 보존하고 이단을 방어하고 이단으로부터 성경적 교회의 거룩성을 유지하게 하였다. 또한 세상의 다른 종교와 구별하고 교회의 정체성을 나타내 증거하고 교회를 통일시키고 파괴적이고 부정적인 논쟁으로부터 역사적 정통기독교회를 수립하게 하였다. 종교개혁 이후 개혁자들은 잘못된 교회를 바로잡고 바른 진리를 가르치기 위해 신앙고백서를 만들었다. 신앙고백서는 성경에서 나오고 성경은 신앙고백서에 의해 정리되고 신학에 의해서 체계화되어야 한다. 신학의 체계적 연구가 되기 위해서는 신조와 신앙고백서가 선행되어야 한다. 신조와 신앙고백서를 떠난 신학의 논의는 주관적이 되고 만다. 그 이유는 객관성이 없기 때문이다. 객관성을 가진 신학적 입장이 되기 위해서는 신앙고백서가 필요한 것이다.
김치선 박사는 1955년에 쓴 「신학과 신조」라는 글에서 신학이 바로 서려면 반드시 바른 신조를 토대로 해야 한다고 했다. 신학은 신조를 무시할 수 없고 신조는 신학을 갖지 아니할 수 없다. 이 둘이 완전히 서 있을 때 기독교의 생명이 있고 또한 신학도 가치가 있다. 성경 가운데 산재한 그리스도교 신앙의 근본진리이며 간명한 일개의 문장으로 결합하여 두는 것, 즉 결합된 진리의 의미이니 여기에는 신학이 필요하고 신학은 신조를 토대로 하여야 한다. 조직신학은 신조의 해석학이다.
1. 교회의 전승(傳承)
성경을 바로 이해하고 바른 해석과 바른 신앙을 고백하기 위해 성경이 절대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시대에 성경을 기록한 사도들과 선진들이 고백한 신조와 신앙고백서이 필요한 것이다. 만약 신앙의 전승이 없다면 자기 마음대로 자의적으로 표현할 수밖에 없다. 성경을 자의적으로만 이해하고 해석한다면 시대와 문화와 사람에 따라 천태만상의 신앙의 모습이 나타날 것이다. 신조는 그 시대의 신앙의 선진들의 고백을 통해(히 11:2) 성경의 바른 해석과 신앙을 교회의 전승을 통해 이해하는데 있는 것이다. 선진들의 고백과 교회의 전승이 없이 자의적으로만 해석하고 믿는 다면 종교적 혼란이 일어날 뿐만 아니라 이단자들이 판을 치게 될 것이다. 신앙은 본래 구전으로 전승되어진 것이다. 입에서 입으로 전승되던 것들이 문자가 생기게 됨으로 기록되어진 것이 성경이다. 구전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동안 그 내용이 과장되기도 하고 축소되기도 하며 변질되기도 하며 와전 될 수도 있다. 그러나 한번 기록되어진 것은 그 내용은 변하지 않지만 기록되어진 언어에 대한 해석은 변한다. 시대에 따라 언어가 가지고 있는 본래의 의미는 퇴색되고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 내여 해석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신조는 이러한 오류를 범하지 않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신조와 신앙고백서를 통해 옛 믿음의 선조 들이 당시 성경을 어떻게 믿었고 어떻게 해석하고 신앙을 고백하였는가를 보게 된다. 만약 전승과 신조가 없다면 자기 마음대로 성경을 해석하고 마음대로 한다면 보는 사람의 지적 수준과 도덕적 수준과 문화적 환경에 의하여 풍습에 의하여 각양의 해석이 나타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성경이 계시하고 있는 진정한 의미는 상실되고 자의적으로 왜곡하여 하나님과 성경과 상관없는 신앙과 성경해석이 이루어져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는 식의 논리가 성립될 것이다. 신앙의 전승과 신조는 대단히 중요하다. 그 시대의 신앙고백을 우리도 그대로 받아 드릴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가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시대 성경을 기록할 당시에 어떻게 믿고 해석했는가가 중요하다. 신조는 개인 신앙의 주관적 학적 표명이나 신학적 주장이 아니라 역사적 정통기독교회의 교회성을 본질로 하는 교회신조에 의한 객관적 표명이며 또 역사적 정통기독교회가 공의회를 통해 권위를 부여하여 신조와 신앙고백서를 만들어 중요시하는 것은 선진들이 고백해온 체계적 진리를 옹호하는 전승이기 때문이다.(사 7장 14절 동정녀. 알마(여인, 여자, 숙여, 처녀, 숫처녀)
2. 교리의 요약(要約)
신구약성경 66권을 공부하여 기독교진리를 이해하려면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신조와 신앙고백서를 통해서 짧은 시간에 기독교회의 진리를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전수 할 수 있으며 새롭게 개종한 사람들을 가르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다. 신조와 신앙고백은 기독교 교리의 요약이므로 바른 신앙고백을 하게하며 이단들의 주장을 물리치고 바른 신앙의 정립을 위해 채택된 중요한 신앙의 유산이다. 정통기독교회는 교리를 필요로 한다. 교리는 언제나 정통기독교신앙의 가르침의 이론적 체계요 표준이 된다. 이러한 교리는 오래 전부터 교의신학의 학문적 연구 바탕과 내용이 되어 왔다. 이것은 또한 교회의 역사에서 시대마다 하나님을 신앙하고 찬양하는 진리에 대한 고백과 함께 문서화되어 신조로 표현되었다. 신조란 교회가 기독교의 진리를 신앙하는 것에 대한 고백이요, 그것은 하나님께 대한 공동체의 찬양이요, 신앙의 동질성을 확인하는 기준이 되었으며 동시에 다른 종교의 가르침과 구별됨을 나타내는 표준이 되었다. 그리고 한 공동체 속에서도 진리를 다르게 해석하는 경향이 있으므로 신앙고백서는 교리에 대해 성경이 가르치는 것을 어떻게 보는가를 규명한 것이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섭리, 죄, 믿음, 칭의 등의 용어들에 대해서 다양한 해석으로 정반대의 입장을 표명함에 대해 권위 있게 규준을 정하여 사용함으로 성경적 교리체계를 세운 것이다. 성경적 정통기독교회는 성경으로부터 신조가 나오고 신조로부터 신학이 나오고 신학으로부터 교리체계가 나오며 교리체계는 다시 성경으로 돌아간다. 교부들은 이단으로부터 성경적 신앙을 구별하기 위해 그들이 믿는 신앙을 교리화 하였다. 개혁주의 자들은 성경이 가는 곳까지 가고 성경이 서는 곳에서 서며. 성경이 침묵하는 곳에서 침묵한다는 신학원리 아래 교리화 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성경만(Sola Scriptura)이 신학의 시초가 되지만 교리적 도움 없이는 성경을 바르게 해석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진정 교리적 신학이 확립되지 안이하면 미래의 교회는 없다. 현재교회의 성장도 교리적 신학이 확립되지 않는다면 멀지 않는 미래 교회는 세속화되고 말 것이다. 신조는 성경을 더욱 권위 있게 하는 것이다. 성경적 신조와 신앙고백서의 교리적 확립은 미래 교회의 생명과 기둥이 될 것이다(롬 10:9-10, 마 10:32-33).
3. 성경적 교회수립(敎會樹立)
신조와 신앙고백서의 근본정신은 성경적 계시진리를 지키자는 것이다. 역사적 전통적 정통주의 신학의 기본정신은 성경신앙이며 성경적 교회를 수립하는데 있다. 그러므로 성경은 비판할 수 없다. 신조의 발생은 한마디로 성경적 교회를 수립하기 위해 이단자들로부터 교회를 보호하고 성경적 정통기독교회를 수립하기 위해 공적으로 만들어진 공교회의 고백이다. 자유주의자들은 신조를 부정하고 직접 성경을 연구하는 신학을 하는 것이다. 신조 없이 성경을 직접 연구하며 안 된다. 그러므로 자유주의자들은 성경을 비판한다. 이것이 자유주의자와 개혁주의자의 근본적 차이다. 성경을 바로 알려면 신조를 알아야한다. 그 중 세계(공동)신조라 할 수 있는 사도 신조는 2세기 이후 완성된 이단에 대한 변증이며, 니케야 신조(325년)는 아리우스(Arius)의 그리스도의 신성부정을 해결한 것이다. 또 니케야 콘스탄티노플 신조(381년)는 사도신경과 니케야신경을 합친 것으로 니케야 신조를 보완하고 그리스도의 인성을 부정하는 이단자 아폴리나우스(Apollinarius)와 성령의 신성을 부정하는 마카도니우스의 주장을 물리치고 그리스도의 완전 인격성과 성령의 신성을 규명하였다. 칼케돈 신조(451년)는 유티케스등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의 구별을 부정하는 단일성 주장을 물리치고 그리스도의 이성일인격과 성령의 신성을 확증했다. 아타나시우스 신조(420-450)는 삼위일체론에 종속은 없다는 것과 그리스도의 이성일인격을 제 확증한 것이다. 로마 카톨릭교회는 신조를 반대하는 자들은 이단으로 제거하였으며, 6세기 이후 16세기 종교개혁까지 역사적 정통 기도교회의 신조는 만들어지지 않았다.
종교개혁이후 개혁자들은 잘못된 교회를 바로잡고 바른 진리를 가르치기 위해 루터는1529년 요리문답을 만들었고, 1563년에는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서가 작성되었고, 1566년에 제2스위스신앙고백서가 만들어지고, 그 후 1647년에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가 만들어졌다. 그 중 가장 성경적으로 표현한 신앙고백서는 모든 신조와 신앙고백서를 종합한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이다. 정통기독교회를 정의하기 위해서는 성경이 절대적으로 필요하지만 성경의 바른 해석과 이해를 위해서 신조와 신앙고백서가 필요한 것이다. 신조와 신앙고백서를 통해서만 바른 성경적 진리를 이해 할 수 있고 믿을 수 있기 때문이다.
4. 교회의 통일성(統一性)
신조와 신앙고백서는 공적 교회공동의 교리적 선언이며 교회의 신앙고백으로서 교회의 통일성을 유지하며 정통성을 가지게 하는데 있다. 하나의 교회가 진리에 대하여 하나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제각기 다양한 목소리를 낸다면 신앙이 혼란에 빠질 것이다. 또한 하나의 교회가 통일된 의식을 가지지 않는다면 신앙의 혼선을 가져 올 것이다.
신조는 신앙의 일치, 교리적 일치, 의식의 일치를 위한 취지로 작성된 것이며 신조와 신앙고백서를 통해 보편적이고 객관적 일치를 이룬 것이다. 신앙과 신학이 달라도 된다는 자유주의 입장과는 달리 신앙과 신학은 반드시 일치되어야 한다. 일치된 신학과 신앙을 고백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신조와 신앙고백서가 신앙의 내용이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을 때 비신앙적이다. 비신앙적이란 비성경적이란 말이다. 그렇지 않으면 신앙의 이질화가 된다. 신조와 신앙고백서는 신앙의 이질화를 방지하는 제2의 규준서이다. 대한예수교장로회대신 교회선언 중에서 역사적 개혁파교회란 사도들의 신앙적 유산을 토대로 하여 시대와 환경의 변화에 따라 변질된 기독교회를 개혁하고 역사적 기독교회의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 교회의 본질을 보존하며 발전해 나가는 진정한 기독교회를 의미한다. 조석만 박사는 신조의 중요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사람의 종교적 체험은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으며 반드시 일치될 수는 없는 것이다. 또한 성경을 이해함에 있어서도 주관 적으로는 사람에 따라 여러 가지로 다르며 성경을 읽는 목적과 그 방법도 다르며 성경에 대한 느낌도 다르다. 그러므로 다같이 종교체험을 하지 못하고 다 같은 성경을 읽으면서도 신앙으로 일치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을 읽고 믿는 일에 있어서 하나의 정의된 원칙이 있어야 하며, 모든 신자가 공동으로 시인할 만한 규준이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각 사람이 제 멋대로 종교적 신앙 체험을 고집한 다든지 제멋대로 성경을 이해하고 해석한다든지 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이 되는 것이다. 원칙과 규준 없는 신앙은 결국 교회의 본질을 이질화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개혁파교회는 교회의 일치를 위한 교회신조의 교리적 규준을 유지해야 한다.
5. 신조의 권위
희랍정교회는 성경과 신조를 신앙의 똑 같은 규범의 근원으로 여기고 절대적이고 무오한 권위를 주장한다. 신조의 무오성의 주장은 325년 제1차 니케야 회의에서부터 787년 제2차 니케야 회의에 결의된 것에 국한시켰다. 로마 카톨릭은 트렌트회의(154-63)에서 교회의 전통을 성경과 동등하다고 결정하고, 마리아 무오 사상을 결정한 1854년 칙령이나 교황 무오설을 주장한 1870년 바티칸회의 에서 성경 이상의 권위를 부여하고 있다. 이는 성경과 신조에 대한 잘못된 견해이다. 절대적인 것과 무오 한 것은 오직 성경뿐이다. 신조는 성경과 동등하지 않고 오직 성경에 예속될 뿐이다. 성경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왔지만 신조는 인간의 작품이다. 신조의 가치는 상대적이다. 즉 그것이 얼마나 성경적 인가에 따라서 신조의 가치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면에서 성경은 신적이고 절대적인 권위를 가지나 신조는 상대적이며 단지 교회적인 권위를 가진다고 할 수 있다. 또 신조를 절대화할 수 없다. 왜냐하면 절대화하는 것은 하나의 우상 숭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신조는 바로 성경에서 나온 신앙고백서이다. 신앙은 교리화 되어야 한다는 것은 역사의 증거이기도 하다. 교리가 무시되는 곳에는 언제나 이단 사상이 일어났다. 정통기독교 교리가 체계화되지 않았던 초대교회 당시 에비온, 영지주의, 말시온(Marcion), 몬타누스파(Montanists)와 같은 이단들이 나타나 교회를 혼동케 하였다. 따라서 교부들은 이단으로부터 성경적인 신앙을 구별하기 위하여 그들이 믿는 신앙을 교리화 하였다. 에이 에이 하지는 “영감 된 성경은 모든 종교적 진리의 유일하고 무오한 표준이다.”라고 했다.
개혁파은 “성경이 가는 곳까지 가고 성경이 서는 곳에서 서며, 성경이 침묵하는 곳에서 침묵한다.”는 신학 원리 아래 교리화 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성경만(Sola Scriptura)이 신학의 시초가 되지만 교리적인 도움 없이는 성경을 바르게 해석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신조는 이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중요한 것이다. 바로 안다는 것은 중요하다. 아는 것을 믿는 다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 나아가 아는 것을 실천하는 것은 더욱더 중요하다. 근본적으로 성경만이 유일 절대적 규칙이며 교회는 신조에 입각하면서 신조를 보다 성경적으로 완성해 나아가는 역할을 해야 되는 것이다. 교리학에 있어서 지식의 원리는 어디까지나 성경인 것이다. 성경에서 배우지 않으면 모든 것은 허위인 것이다. “모든 교회는 진리에 대한 신앙고백을 자각적으로 하여야 한다. 진리를 깊이 배움과 동시에 믿음을 고백하여야만 한다. 신앙고백서(신조)는 성경진리를 믿는다고 하는 내용을 조문화해서 간결하게 천명하고 있다. 신조 그 자체는 하나님 말씀은 아니다. 그러나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교회의 이해이며, 고백이며, 자각이다. 성경은 신자에게 신앙고백을 요구하고 있다(고전 15:3-4, 빌 2:6-11, 딤전 3:16). 정통기독교회의 신앙고백서는 신앙적 인식을 도우며 진리를 오해하고 곡해하는 것을 방지하고 진리를 선양하는 역할을 한다.”
칼빈은 “공의회가 신조의 판단을 논하고 결정하는데 있어서 실수가 있을 수 있으므로 논의된 모든 것은 성경의 척도에 따라서 검토되기를 바란다. 그 회의 결정이 정통이 아님을 성경에 의하여 판단함으로 이에 대한 판단을 내릴 수 있다. 그것은 이것만이 판단하는데 있어 유일하고 확실한 법칙이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성경은 영감으로 된 계시진리로 하나님으로부터 왔지만 신조는 인간의 산물이며, 신조는 성경과 동등하지 못하며, 성경은 무오 하나 신조는 시대마다 발전하였으며, 성경은 하나님의 것이지만 신조는 인간의 답변이다. 성경은 신적이요 절대적이지만 신조는 교회적이며 상대적 권을 가지고 있는 교리적 규범이다. 현대교회는 신앙의 통일성을 상실해 가고 있다. 교회마다 목회자마다 사람들마다 각자의 길을 가고 있다. 성경은 각자의 신앙고백을 요구하는 동시에 공동의 신앙고백을 요구하고 있다. 우리는 선진들이 신조를 통해 공동의 고백을 가지고 교회의 통일성을 유지했던 것처럼 오늘 우리 교회가 신앙의 통일성을 유지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신조를 사용 할 때마다 내 개개인의 고백으로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 그리스도인들 전체와 사귐에 참여한다는 의미에서 고백해야 할 것이다. 초대 교회의 믿음의 중심이었던 삼위일체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이성일인격인에 대한 신앙고백은 변함없이 오늘 우리의 가장 중요한 믿음의 진수가 되어야 한다. 조석만 교수는 “역사적 정통기독교회는 성경으로부터 신조를, 신조로부터 신학을 논하게 되며 신학을 논함에 있어서 다시 성경으로 복귀하는 체계적이며 논리저인 연구를 통하여 보다 분명하게 성경진리를 이해하게 된다.”라고 했다.
우리는 신앙의 전승인 신조를 귀하게 여기고 문화적으로 사상적으로 신학적으로 혼탁하고 다원화된 시대 속에서 삼위일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성경적 정통기독교회를 만들어 나가는 일에 한국 교회가 앞장서야 할 것이다. “내가 믿사오며” 이 신조적 신앙고백이 바로 오늘 나의 고백이 되고, 당신의 고백이 되고, 우리들의 고백이 되어야 한다. 또한 21세기 교회의 고백이 되어야 할 것이다.
전투적 지상의 가시적 교회는 끝없이 믿음의 고백을 통하여 신조를 만들고 신조와 고백을 통하여 역사적 정통기독교회를 유지하여 왔으나 또한 신조에 대한 긍정과 부정을 함께 하고 생명을 유지 해온 것이다. 신조의 역사는 많은 논쟁을 불려 왔지만 그것을 통하여 참된 하나님의 교회가 진리 위에 세워지고 이단의 무리를 정죄하고 교회의 성결과 진리를 유지하여 왔다. 역사적 기독교회는 시대마다 필요에 따라 성경 말씀을 토대로 삼아 기독교신앙의 내용을 다시 확인하고 더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흔들이지 않는 신앙의 고백인 신조를 만들어 왔다. 그러나 오늘에 와서 지나친 성경 중심적 신앙과 교회 부흥이라는 미명아래 교회의 역사적 신조와 신앙고백서들을 무시하고 교회의 공동의 고백을 소홀히 하고 자아중심의 논리에 빠져 가는 경향이 일어나고 있다. 신앙이란 자기 나름대로 믿는 것이라 생각하고 신자 각자가 성경을 자기 나름대로 이해한 말씀이 절대적 진리로 주장 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주장하고 있다. 성경을 바로 깨닫고 참된 신앙을 가지기 위해서는 역사적으로 이어져 오는 신조와 신앙고백서가 필요하다. 신조와 신앙고백서는 역사적 전통적 정통기독교회의 위대하고 귀중한 신앙적 유산이다. 우리는 이 귀중한 신앙의 유산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소홀히 대하고 있다. 신조가 없는 교회는 미래가 없다고 하겠다. 참된 교회는 참된 신앙고백으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교회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이단 무리로부터 잘못된 사상으로부터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지키기 위해서 신조가 필요한 것이다.
우리는 정통기독교회의 신앙의 유산인 사도 신조와 선전들의 공동체적인 역사적 신조와 신앙고백서를 재인식하고 존중하고 신조가 21세기 교회의 기둥과 생명이 되어야 할 것이다. 신조와 신앙고백서의 부정적인 면을 서로 각성하고 신조 만능주의에 빠지지 말아야 할 것이다. “신조는 어디까지나 완전한 것은 아니다. 성경이 완전한 것이다. 신조는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서 유추되고 연역된 진리의 체계적 문서인 것이다.” 칼빈은 “공희의 결정들은 성경의 견지에 비추어 과실이 많았다.”라고 말한 것처럼 인간 이 만든 것에는 부족한 부분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신조절대주의의 빠지지 말고 신조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고 하나님을 더 잘 섬기는 것으로 받아드려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신조주의에 빠질 때 로마 카톨릭과 이단들과 차이가 없을 것이다. 주님께서 신조주의에 빠진 바리세인들과 사도개인들을 책망하신 것처럼 우리를 책망할 것이다. 그러나 신조를 잘 활용하고 바로 이해 할 때 지상의 전투적 교회는 진리의 터 위에 굳게 서서 교회의 성결과 질서와 권위를 유지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성경적 교회로 생명력 있는 정통기독교회로 성장할 것이다.
제2절 고대교회의 공동신조
역사적 정통기독교회는 그 역사와 시대적 상황 속에서 안으로부터 시작되는 이단과 밖으로부터 오는 잘못된 사조에 대항해서 교회를 방어하고 성경진리를 사수하고 성경적 기독교회를 수립하기 위해 공의회를 통해 공동의 신앙고백인 신조와 신앙고백서를 만들었다. 신앙고백서는 어느 한 사람의 사상과 주장이 아니라 성경적 진리를 성경적으로 요약하고 집대성해서 모두의 신앙고백이 되게 하여 악으로부터 교회를 보호하고 교회의 순결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우리 모두의 고백이며 공교회의 고백이다.
신조의 근본정신은 성경을 지키는 것이며 성경적 교회를 수립하는데 근본 목적이 있다. 바른 신앙이란 신조가 고백하는 내용이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비신앙적이다. 비신앙적이란 비성경적이란 말이다. 성경은 신앙고백서에 의하여 정리되고 신학에 의해 체계화되어야한다. 신앙이란 주관적이지만 객관성이 있는 신학적 입장을 가져야한다. 신앙이 신조를 떠나면 주관적이 되고 만다. 신조를 통해 교리의 일치와 정치와 생활의 일치를 구현해야한다.
“사도 이후 기독교는 이단종파들의 발흥으로 교회는 사도들의 교훈의 강령을 만들었다 이것이 사도신경이다.” 사도 이후 기독교회는 로마의 박해를 받았고 주 후 2세기부터 기독교 안에 발생한 각종 이단 종파들로부터 도전을 받았다. 그것은 이단자들이 기독교의 복음을 헬라와 로마의 문화권에서 이해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고대의 신조에는 사도 신조를 비롯하여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는 아리우스와 그의 추종자들을 반대하기 위해 325년에 니케야신조가 작성되었고, 이를 재확인하기 위해 381년에 작성된 콘스탄티노플신조와 그리스도의 이성일인격과 성령의 신성을 확정하기 위해 451년 칼케돈신조와 그리고 아타나시우스신조(420-450)가 있다. 이 신조는 삼위일체론에 종속은 없다는 것과 그리스도의 이성일인격을 확증한 것이다.
제3절 종교개혁과 신앙고백서
역사적 전통적 정통기독교의 개혁의 역사는 개혁 전에 개혁의 생명의 물줄기가 소리 없이 흐르다가 루터에 의해 개혁의 강물을 이루었다. 루터 이전에 이미 요한 위클리프(John Wyclif, 1324-1384), 요한 훗스(John Huss, 1369-1415), 지롤라모 사보나롤라(Girolamo Savonarola, 14552-1498), 엑 하르트(Meister Eckhart, 1260-1327)등이 있었으나 1517년 10월 31일 루터가 로마 카톨릭의 면죄부 판매에 대한 부당성을 지적하고 시정할 것을 요구하는 95개 조항의 항의서를 위텐베르크 성문 앞에 계시하므로 역사적인 종교개혁의 횃불을 밝히게 되었다. 로마 카톨릭교회는 공로주의와 교황주의와 신부주의로 억압했지만 이 억압으로부터 자유를 갈망하는 운동이 싹트게 되었다. 중세의 자유란 말은 종교, 다시 말하면 로마 카톨릭에서의 자유를 말하는 것으로 이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자유를 말한다. 시대적으로 신학과 철학이 다시 나누어지게 됨으로 이성주의가 강하게 됨으로 르네쌍스운동(인문주의 운동)이 일어나게 되었다. 이것은 스콜라철학에서 희랍철학으로 돌아가자는 인본주의 운동이었다. 르네쌍스(Renaissance, 문예부흥)운동은 종교개혁을 촉발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위에서는 공로주의와 교황주의와 신부주의가 억누르고 아래서는 이성적 방법을 갈망하는 두 힘이 부닥쳐 터진 것이 르네쌍스운동이다. 르네쌍스운동은 로마주의에 대해 독자적으로 가겠다는 선언이다. 이것을 신조적인 면으로 볼 때 공로주의와 교황주의와 신부주의에서 사도 신조로 돌아가자는 운동이 종교개혁이다. 공로주의는 오직 믿음으로, 교황주의는 오직 성경으로, 신부주의는 만인제사장직으로 하는 개혁운동이 일어나게 되었다. 중세기독교회는 정치적 종교적 생활뿐만 아니라 모든 문학과 사상을 교황청에 따라 조직되고 운영되었다. 이 요구에 반대하는 사상과 행동의 자유를 위한 운동이 고무되어 이로 인하여 종교개혁운동이 일어나게 되었다.
신조에 있어서 루터파 신조와 개혁파(칼빈주의적) 신조로 나누어지고 있다. 루터파나 칼빈파가 오직 성경이라는 절대적 권위를 주장하지만 루터는 실질원리에 있어 이신득의에 의한 구원을 주장하였고, 개혁파에서는 형식원리로서 오직 성경을 주장하였다. 그 결과 루터는 야고보서는 지푸라기 서신이라 하였으며 이신칭의 복음 외에는 등한시했다. 그리고 신조에 있어서도 성경론이 독립적으로 다루어진 항목이 없고 협화(일치)신조(1577)에서 서문부분에 간결하게 다루고 있을 뿐이다. 반면 개혁파신조에 있어서는 성경을 독립적 항목으로 다루고 있다. 프랑스 신앙고백서(1559), 제2 스위스신앙고백서(1566), 아일랜드조항(1615)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1646)는 성경을 첫 부분에 다루고 있다.
이 시대에 등장된 두 사상의 주류는 어거스틴, 칼빈주의와 펠라기우스, 알미니우스주의의 양대 사상의 주류를 이루었다. 그리고 종교개혁과 개혁파 신조의 중요 점은 성경이며, 구원에 있어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교회의 머리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1. 루터교회 신앙고백서
루터교회의 신조는 사도 신조와 니케야신조(325), 아타나우스신조(420-450), 16세기에 와서, 루터의 요리문답(1529) 아우구스부르그신앙고백서(1530), 아우구스부르그신앙고백 변증서(1530), 슈말칼드신조(1537), 루터신앙고백서(1537), 일치신조(1577), 바르멘(칼 바르트) 선언(1934), 1967년 신앙고백(1967), 한국기독교장로회 신앙고백(1972)으로 이어져 역사적 기독교회의 신앙고백서의 노선에서 이탈되었다.
2. 개혁파교회 신앙고백서
루터교회는 주로 독일과 스칸디나비아 지역에서 형성되었다. 개혁파 교회는 여러 지역(유럽전지역)에서 생성되어 다양성을 띠고 교회가 제각기 신앙고백서를 내어놓으므로 현재 약60여 개의 신앙고백서와 요리문답서가 있다. 이는 특히 스위스에서 활동한 개혁자 쯔빙글리와 죤 칼빈의 영향을 받은 교회들이 다양한 고백서들을 자신들의 신앙고백서로 채택하였다. 개혁파 교회의 공통적인 특징은 교회의 정치 및 제도와 신학이 성경 말씀을 근거해야 하고 교회가 성경 말씀에 따라 형성되고 성경 말씀에 따라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개혁파는 교리주의, 전통주의, 신학이나 교리의 체계가 아니다. 또 특정 정치형태나 칼빈의 5대 교리에 대한 믿음도 아니다. 이런 것이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 개혁파 교회라고 말 할 수 없다. 개혁파 교회는 한 마디로 성경적 기독교이며 성경의 본질을 주장하는 것이다. 개혁파 교회는 16세기부터 교회의 일치를 위해 노력했지만 루터교회처럼 일치하지 못하고 교회는 각 지역과 나라와 교회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가운데서 교회의 하나 됨을 믿는 신앙을 가지고 신앙고백서에 각기 이름을 표현하였다.
그리고 개혁파신조들은 사도 신조, 니케야신조(325), 니케야 콘스탄티노플신조(381), 칼케톤신조(451), 아타나시우스신조(420-450), 16세기의 쯔빙글리의 67조(1523), 베른의 신앙고백서(1528), 바젤 제1 신앙고백서(제1스위스 신앙고백서)(1534), 유그노 신앙고백서(1559), 스코틀랜드신앙고백서(1560), 베르기에신앙고백서(1561),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서(1563), 제2스위스 신앙고백서(1566), 도르트신조(1619),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1647), 한국의 12신조(1904), 대신 교회선언(1974)으로 이어지는 노선이다.
한국의 신학은 세 길로 통하여 전수되었다. 하나는 평양을 중심 하는, 미국 남, 북, 카나다, 호주 4개국 장로교회의 선교사들을 통한 길과 다른 길은 미국 유학을 통한 길이다. 또 캐나다와 독일, 일본을 통하여 전수된 것이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를 중심 한 교단은 개혁파 신학을 전수 받았다. 그리고 한국의 자유주의 신학은 독일과 캐나다이다. 1929년 이후 프린스톤신학교(1929)의 영향을 받은 것들이다. 이것들은 정통신학과 역사적 신조를 부정하고 아우구스부르그신앙고백서(1530), 바르멘 선언(칼 바르트)(1934), 1967년 신앙고백서(1967), 로챤협약(1974)을 지향하고 있다.
정통신학은 어디까지나 성경의 절대권위를 믿는다고 하는 신앙고백서의 내용에 의하여 성경을 연구하여 진리 체계를 세우는 것이다. 정통신학은 성경이 하나님의 계시진리의 말씀임을 확증하기 위하여 성경으로부터 신조, 신조로부터 신학이라는 원칙에 의하여 기독교의 진리를 규명하고 있다. 정통신학자들은 신학은 언제나 성경에서 출발하여 역사적이며 객관적인 공동신앙고백서의 입장을 준수하여 신학을 논하고 다시 성경으로 돌아가서 신학을 확인한다.
역사적 개혁파 교회는 성경만이 기독교회의 근본원리임을 믿는 역사적 개혁파교회의 전통(傳統)과 정통(正統)을 지켜나간다. 역사적 개혁파 교회는 사도들의 신앙적 유산을 토대로 하여 시대와 환경의 변화에 따라 변질된 기독교회를 개혁하고 역사적 기독교회의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 교회의 본질을 보존하며 발전해 나가는 진정한 기독교회를 전승한 것이다. 개혁파교회는 신조교회로서 교회의 일치를 위한 교회신조의 교리적 규준을 유지하는 한편 교회신조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위배되는 것이 있다고 객관적으로 확증되는 경우에는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서 공적이며 객관적인 논증을 거쳐서 시정할 수 있다.
개혁파 신학 신앙노선은 개인 신앙의 주관적 학적 표명이 아니라 역사적 기독교회의 교회성을 본질로 하는 교회신조에 의한 객관적 학적 석명(釋明)이다. 이 같은 의미에서 우리는 칼빈주의를 표방한다. 이는 우리의 신학이 칼빈 한 사람의 개인의 신학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칼빈의 신학적 입장이 성경의 계시진리를 역사적 기독교회가 신조 또는 교회의 신학자들의 저술형태로 고백해 온 체계적 진리를 옹호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학은 역사적 기독교회의 공동신조를 비롯하여 어거스틴, 루터, 칼빈, 베자, 17세기 개혁파 신학자들, 17세기 개혁파교회의 신조들, 19세기와 20세기의 개혁파교회 신학자들에 의하여 변증, 변호, 보존되어 온 역사적 기독교회의 정통적 노선이다.
제4절 신학의 체계
1. 고대신학
기도교회의 기본교의는 사도들에 의하여 확립되었으며, '신학'이라는 말은 성경을 의미하는 개념이고, 신학자란 말은 성경기자들을 의미하는 개념이다. 성경에서 복음과 다른 복음(고후 11:4, 갈 1:6-7, 9) 다른 교훈(히 13:9, 계 2:14, 15, 24)이라 말로 입증하고, 고대 교회의 교리적 논쟁과 서방교회와 동방교회의 교부들 사이에도 신학적 차이를 보이고 있었다.
역사적 정통신학이란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라 오랜 역사를 거쳐 계승되어 만들어진 것이다. “신학의 2대 적대적인 학파의 근본적인 원리들의 분별은 어거스틴주의적인 체제와 펠라기우스주의 체제의 대조적 입장들은 5세기에 그 체제를 가진 저명한 사람들에 의해 주장된 논쟁들을 통하여 정의되었다.” 역사적 정통 개혁파 신앙과 신학의 노선은 교본사적인 노선이다. 교본사적 노선이란 교본(텍스트)은 성경을 말하며, 사적이란, 역사적 정통 신조와 신학적 노선을 말한다.
1) 고대 정통파 학자
(1) 이그나티우스(Ignatius, 35-117)
뉴만(A. H. Newman)에 의하면 최초의 기독교적 신앙을 교의학적체계로 진술한 글은 이그나티우스(Ignatius, 35, c98-117)이며, 최초의 「교의학」은 후대에 체계적 진술의 기초가 되었다.
(2) 폴리갑(Polycarpus, 69-155)
사도 요한의 제자로 그는 전통적 성경의 교훈을 그대로 믿었고, 순교를 당하기까지 진리를 사수했다.
(3) 이레니우스(Irenaeus, 130-202)
폴리갑의 제자로 초대교회의 저명한 학자다. 그의 저서로 「그노시스파 이단의 정체의 배격(Elenchos Kai anatrope tes Pseuanymon gnoseos」은 180년대 저술인데 지금도 귀한 자료가 되고 있으며 그는 기독교의 역사를 조직적으로 증거하고 있다.
(4) 아타나시우스(Athanasius, 296-373)
애굽 알렉산드리아 그리스도인의 가정 출신으로 알렉산드리아의 감독이 되었으나 아리우스(Arius)가 반대하고 그를 모함하는 사람들에 의해 다섯 번이나 추방되었다. 그는 자신의 신앙을 지키고 그리스도가 하나님이심을 주장하고,「삼위일체」와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한 논문을 작성하고, 니케야신조(The Nicaene Creed, 325)를 성취시키는데 공헌하였고, 아타나시우스 신조(The Athanasius Creed)도 그의 주장이라 할 수 있다.
(5) 메토디우스(Methodius of Olympus, ?- 311)
메토디우스는 오리겐의 영향을 받아 영혼의 선재설에 대하여 최초로 비판한 사람이다.
(6) 갑바도기아 닛사의 그레고리(Gregory of Nyssa, 330-398)
「대교리문답집」을 저술하였다.
(7) 어거스틴(Augustine, 353-430)
「삼위일체」, 「하나님의 도성」을 기록했으며 고대 대표적 교부 신학자들 가운데 정통신학에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친 사람이다. 그의 신학의 특징은 성경의 권위와 영감을 주장했으며, 하나님은 선하신 창조주이시며 세계는 하나님의 피조물이라는 것과 하나님은 모든 것을 미리 예정(이중예정)하시고 섭리로서 세상을 다스린다고 주장하였다.
(8) 터틀리안(Tertullian, 160-220)
초대교회 교부의 한 사람으로 몬타누스파에 가입하여 로마중심주의에 반대하여 이단과 싸웠고 특히 노스틱 파와 맞섰다. 그는 죄론에 있어서 아담의 죄와 우리의 죄에 관하여 유전적인 연관성을 최초로 말했다. 최초의 헬라 변증가 일뿐 아니라 최초의 라틴 교부이며 삼위일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2) 고대교회의 비정통 신학
(1) 말시온(Marcion)
말시온파라는 이단의 창시자다. 2세기 사람이며 그의 부친은 시노피의 감독이었다. 그는 그노시스파의 감화를 받아 참 하나님은 한 분이다. 그는 무엇이라 이름 지을 수 없으며 볼 수도 없다. 세계는 조물주(Memiurge)로 말미암아 창조되었는데 이 조물주는 하나님이 아니며, 참 하나님과 조물주 사이에는 악마가 있다. 그리스도는 참으로 육체를 가지셨던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물질이란 근본적으로 악하기 때문이다. 구약성경은 위에서 말한 조물주로부터 나온 것이며 조물주와 여호와는 같지 안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사죄함을 받기 위해서는 세 번 세례를 받아야 한다는 것과 영혼의 전생을 가르쳤으며 육체의 부활을 부인하고 극단적인 고행을 주장하였다.
(2) 몬타누스(Montanism)
2세기 중엽 풀기아에서 일어난 분리파인데 무시아 사람 몬타누스로 자칭 하나님의 예언자로 그리스도의 재림이 가까이 왔으며 폴기아의 페프좌에 하늘의 예루살렘이 설립될 것이니 신자는 금식하고 결혼을 하지 말고 엄격한 금욕생활을 주장했다. 235년에 이고니움 회의에서 이단으로 규정되었고 381년 콘스탄티 회의에서 이교도와 같이 취급하였고 5세기 초에 자취를 감추었다.
(3) 에비온 파(Ebionites)
에비온파는 처음에 모든 그리스도인을 가리키는 말이었으나 나중에 유대인 그리스도인만 가리키고, 그 후에 다시 유대교의 이단자들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이들은 바울을 배척하고 이방인들도 율법을 지켜야한다고 주장하고 동정녀탄생을 부인하고 마태복음만 인정했다. 또 예수님의 인성과 신성을 부인, 수난과 부활과 할례를 주장, 예수는 메시아로 자칭하며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을 때 메시아로 인식되었다고 주장하는 기독교 이단이다.
(4) 모나키안(Monarchianism)
2세기 말부터 4세기 초에 걸쳐 유일신에 중점을 둔 로고스 그리스도에 반대한 기독론을 주장했다. 예언과 성령을 인정하지 않고, 그리스도는 하늘의 존재가 아니며 처녀 마리아에게서 난 인간이며 세례 받음으로 성령의 힘을 얻어 구세주가 되었다고 주장하고 그리스도의 인성만 주장하였다.
(5) 사벨리우스(Sabellius, 194-222)
사벨리우스는 3세기의 이단자로 하나님의 세 격위는 단순히 신적 행위의 많은 양상으로 혹은 현현으로 간주했다. 삼위일체를 부정 양태론을 주장, 즉 하나님께서는 창조와 율법을 주실 때에는 그 자신을 아버지로 계시하시고, 성육신 하실 때는 성자로, 중생과 성화를 시킬 때는 성령으로 계시하시면서 그 모습과 형상을 바꾸셨다고 가정했다. 또 성부 수난설을 주장했다.
(6) 아리우스(Arius, 256-336)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해서 이설을 주장하고 그리스도께서 영원한 하나님이시며 성부와 같으심을 부인하고 그리스도는 성부와 같지 않고 성부의 피조물로 천사와 같다고 했다. 하나님의 유일하심을 설명하기 위하여 다신교 사상을 배척하는 동시에 삼위일체설을 부인하였다. 그는 니케야회의(325)에서 이단으로 쫓겨났다.
(7) 아폴리나리우스(Aollinarius)
4세기 수리아 라오디게아 감독으로 니케야신조를 옹호했으나 아리우스 설을 반박할 목적으로 기독론을 연구하다가 예수님의 인성을 부인하고 이성일인격을 부인하고 이단이 되었다.
(8) 네스트리우스(Nestorius, -450)
아리우스설에 대항하여 싸웠고, 동정녀 마리아께서 하나님의 어머니라는 칭호가 옮지 않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그리스도의 이성일인격을 인정하였으나 인격의 연합을 부인하는 네스트리우스설이라는 이단 창시자가 되어 431년 에베소 종교회의에서 이단으로 선고받고 435년에 추방되었다. 사후 451년 칼케톤회의에서 이단으로 규정되었다.
(9) 마카도니우스(Maccadonius)
4세기 사람으로 성령의 신성을 부정하였다.
(10) 펠라기우스(Pelagius, 360-420)
영국의 신학자로 유명한 자유주의자다. 그는 인간은 자연적 상태에 있어서는 타락이지만 하나님의 은총이 없어도 스스로 새 생활을 할 수 있으므로 하나님의 구원을 필요로 하지 않으며 그리스도의 속죄의 절대성을 거부했다. 칼케톤의회에서 그를 이단으로 규정되었다.
2. 중세신학
1) 중세 카톨릭 신학자들
(1) 다메섹 요한(John of Damascus, 675-749)
정통신앙 정해(Ekdosis Akrides tes Orthodoxou Pisteos)로 제1권은 하나님의 삼위일체에 관하여, 제2권 창조와 인간 본성에 관하여, 제3권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음부에 내려가심에 관하여, 제4권 그리스도의 부활과 통치와 신앙 세례 형상예배 등에 관하여 저술로 정통 기독교회의 가르침을 따랐다.
11세기에서 13세기까지는 스콜라신학은 대체로 성경에서 발견되는 교리적 자료들을 철저하게 학문적 방법으로 취급하였다. 세월이 지남에 따라 플라톤적, 아리스토텔레스적, 명목론적, 실재론적 철학의 지배적인 영향에 예속되어 교의학은 철학적 체계로 전략하고 성경의 권위와 철학적 이성적 논리와 대립하게 되었다.
(2) 켄티베리의 안셀무스(Anslmus of Canterbury, 1033-1109)
대표적 인물인 켄티베리의 안셀무스(Anslmus of Canterbury)는 주제를 철저한 조직적 방법을 취급하였으며 고전적인 해설을 했다.
(3) 피터 롬바르드(Peter Lombard, 1095, 1100-1160)
피터 롬바르드(Peter Lombard, 1095, 1100-1160)의 체계적 저서인 네 명제집(Libri quattrorsententiarum, 1148-1150, 1157-1158)은 전 4권으로, 제1권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신비에 관하여, 제2권은 하나님의 은혜와 피조물에 관한 것으로 천사, 인간의 타락, 죄 등에 관한 내용이며, 제3권은 그리스도의 성육신, 인간의 구원, 덕목, 10계명 등에 관하여, 제4권은 7성례전, 종말적 사건, 심판과 지옥, 천국 등의 내용이다. 카톨릭교회의 7성례전은 롬바르드에 의하여 처음으로 분류되었다.
(4) 헤일스의 알렉산더(Alexander of Hales, 1180-1245)
헤일스의 알렉산더(Alexander of Hales, 1180-1245)의 신학 대전은 롬바르드의 책의 해설을 하였다.
(5)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4-1274)
알렉산더의 신학은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4-1274)에게 계승되어 스콜라적 방법이 확립되었다.
(6) 둔스 스코투스(Johannes Duns Scotus, 1266-1308)
둔스 스코투스(Johannes Duns Scotus, 1266-1308)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과 기독교를 조화시키려고 하였던 아퀴나스의 철학을 비판하고 롬바르드의 신학명제를 주석하고, 하나님의 은혜는 사랑과 동일하며 의지는 지성보다 우월하다고 보고 천국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구성되었다고 믿었다. 그리고 스코투스주의는 중세 스콜라주의를 쇠퇴케하고, 신앙과 이성을 별개의 것으로 분리시키고, 성모의 무죄성을 주장하기도 했다.
3. 종교 개혁기 신학
1) 종교개혁 시대의 개혁파 정통신학
(1) 루터(Martin Luther, 1483-1546)
루터는 로마 카톨릭교회의 신부로서 비성경적인 면죄부 판매의 부당성을 지적한 95개 조항의 반박문을 1517년 10월 31일 위텐베르크(Wittenberg)성당의 정문에 계시하였고, 1520년 자신의 신학적 입장을 밝혔다. 루터는 「독일기독교 귀족에게 요청하는 글」에서 교황의 성경해석권을 비판하고 「기독교회의 바벨론 포로에 관하여」에서 7성례를 비판하고 「그리스도인의 자유」에서 이신칭의를 말하였다. 루터의 「대교리문답」「소요리문답」은 루터교회의 지침서로 되어 있다.
(2) 멜랑히톤(Philipp Melanchthon, 1497-1560)
루터의 제자로 대표적 저서는 「신학개론」(Loci Communes, 1521)으로 로마서를 순서에 따라 체계적으로 교리를 강해한 것으로 초기 루터신학의 기본원리를 세운 조직신학 책으로 종교개혁 당시 프로테스탄트 조직신학 교본이라고 할 수 있다. 훗날에 그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주장하고 신인협력설의 경향으로 기울려졌다. 성찬교리는 칼빈의 입장을 취하기도 하였으며 「아우구스부르그 신앙고백서」를 작성하였다.
(3) 쯔빙글리(Huldteich Zwingli, 1484-1531)
「하나님의 말씀의 명료성과 확실성」을 출판한데 이어 개혁파교회 신앙 강령이라고 할 수 있는 67개조에서 성경의 영감에 대해서 천명하고, 참된 종교와 거짓 종교에 관한 논평은 개혁파 신앙을 조직적으로 최초로 해설하였고 칼빈과 같이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만물의 제1원인은 하나님이라고 주장하였다. 카톨릭의 공적 사상을 반대하고 예정론을 말하고 그의 예정론은 타락전 선택이다.
(4) 칼빈(John Calvin, 1509-1564)
요한계시록을 제외하고 전성경을 주석하였으며, 「기독교강요」,「기독교신앙안내」,「제네바신앙문답서」, 특별히 기독교강요는 4권으로 되어 있는데 제1권은 신론, 제2권은 기독론, 제3권은 성령론, 제4권은 교회론으로 되어있다. 칼빈의 신학사상은 모든 종교개혁자들과 같이 어거스틴의 사상을 재생한 것이다. 칼빈에 있어서 하나님의 절대주권, 성경의 유일무오, 예정, 하나님의 섭리, 인간의 타락, 신앙의 의, 구원의 단계, 교회제도 등이 특징이다. 칼빈의 신학사상은 어거스틴의 사상을 재생한 것이라 말할 수 있다.
(5) 베자(Theodore Beza, 1519-1605)
16, 17세기 칼빈주의 대표적인 교의 학자라 할 수 있다. 칼빈의 후계자로 칼빈이 설립한 제네바 아카데미의 초대원장이며, 저서는 「신앙고백」,「기독교인의 문답서」, 「기독교개요」는 칼빈의 예정론을 옹호하기 위하여 쓴 것이다. 그는 타락전 예정설을 지지하고 칼빈의 신학사상을 체계화하였다.
(6) 존 낙스(John Knox, 1513-1572)
스코틀랜드의 종교개혁자로 칼빈의 신학체계를 따르고, 1554-1567년까지 망명생활을 하면서 「시편6편 주해」에서 하나님의 계약교리를 언급했다. 그는 존 윌로크(John Willock) 등과 함께 「스코틀랜드 신앙고백서」를 승인하였다.
(7) 아만두스 폴라누스(Amandus Polanus, 1561-1610)
개혁파 초기형성에 주도적 역할을 하였으며 기독교신학통론을 저술하였다.
(8) 고마르스(Franciscus Gormarists, 1563-1641)
알미니우스는 칼빈주의자였으나 인간의 자유의지를 주장하는 코론헤르트(Dirik Volckaerts Zoon Koomheert)의 잘못된 주장을 칼빈주의 입장에서 반박해 달라는 암스탤담의 시장의 요청에 따라서 그 글을 읽다가 동조하게 되었다. 그는 유기의 작정을 부인하고 원죄교리를 완화시키려했다. 그는 타락전 선택설을 주장하는 동료교수인 프란시스 고마루스(Gormarists)와 공개적으로 대립했다. 1609년 세상을 떠났다. 그 후 에피스코피우스, 위텐보가르트가 지도자가 되었다. 알미니우스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신조를 다섯 항목으로 위텐보가르트가 작성하여 1610년 항의각서(Remonstance) 이름으로 화란과 서 프란스의 국회에 제출하였다. 칼빈주의자들은 반항의서(Counter-Remonstrance)를 제출했다. 이에 고마루스는 결정적 역할을 하여 도르트신조(1619)가 작성되었다.
(9) 투레티니(Franz Turetini, 1623-1687)
그의 대표저서는 「논쟁신학강요」(Institutio Theologiae Elencticae, 3vols, 1670-1685)이다. 당시의 가설적 보편적 구원론을 비판하고 하나님은 특별한 사람들을 구원하시기로 뜻을 정하신 것이라 주장했다. 그의 「논쟁신학강요」는 17세기 제네바에서 가장 중요한 조직신학 책으로 인정받았다. 그의 「논쟁신학강요」는 아키발드 알렉산더 교수에 의해 1812년 프린스톤신학교의 조직신학교본으로 채택되어 1871-1873년 찰스 하지가 조직신학을 출판할 때까지 60년 동안 사용되었다.
이 외에도 존 오웬, 부티우스, 폴라우스, 볼레비우스, 비트시우스 등이 있다.
2) 종교개혁 시대의 비정통신학
(1) 코론헤르트(Dirik Volckaerts Zoon Koomheert)
인간의 자유의지와 보편 구원설을 주장하였다.
(2) 알미니우스(Arminus Jacobus, 1560-1609)
“알미니우스주의의 창시자로 화란 레이덴 대학과 제네바 대학에서 공부하고 테오도. 베자에게서 신학을 배웠다. 그는 코른헤르트의 보편구원설과 온건 칼빈파의 학설을 공격하기 위하여 관명을 받아 연구하다가 정통 칼빈파를 옹호하였던 것인데 결과적으로 코론헤르트의 설을 인정하고 자기주장을 버리고 1604년 알미니우스설을 설파했다.”
3) 19세기 이후의 개혁파 정통신학
19. 20세기 정통개혁파 신학은 화란계 신학자들과 청교도들이 1811년 미국 뉴저지 주 프린스톤에 프린스톤신학교를 설립하여 정통신학을 이어왔다. 그러나 자유주의 신학사상으로 좌경화됨으로 메이첸을 중심으로 1929년 웨스트민스터신학교가 설립됨으로 웨스트민스터신학교가 개혁파 정통신학을 이어가고 있다.
(1) 알렉산더(Archibald Alexznder, 1772-1851)
미국 북장로교회의 목사로 프린스톤신학교의 설립자 중의 한 사람이며 교수였다. 그는 1812년 교수 취임식에서 〈성경을 찾으라. 고 하는 제목으로 성경이 신학교의 존립의 기초가 됨을 역설하였다. 16세기 종교개혁으로 활발해진 개혁운동이 17세기 후반에 접어들어 시들해진 틈을 타고 18세기 인문주의 운동과 19세기 슐라이엘마허(Schleiermacher Friedrich Ernst, 1768-1834)의 등장으로 미국 사회를 휩쓸고 있던 반종교적인 자유주의 사조를 퇴치하는 일에 앞장을 섰다.
(2) 찰스 하지(Charles Hodge, 1797-1878)
찰스 하지의 「조직신학」 전3권은 지금까지 개혁파 조직신학의 중요한 문헌으로 각광 받고 있다. 그의 신학은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 입장이며 조직신학의 체계를 세웠다.
(3) 워필드(Benjamin Breckinridge Warfield, 1851-1921)
미국 북장로교회의 목사이며 정통 칼빈주의 학자이다. 그는 프린스톤 신학교에서 찰스 하지의 조직신학을 배웠고 사도들의 교훈집으로「디다케」에 관한 연구로 유명해졌다. 그는 성경의 계시성과 신빙성을 입증함에 있어서 성령의 외적 증거(학문적 논증)와 내적 증거(종교적 주관적 체험)를 다 같이 중요하게 여겼다. 성경의 무오성이라는 용어는 기계적인 영감설에 의하는 것은 아니 다고 했다. 그는 성경의 축자영감설을 주장하였다.
(4) 아브라함 카이퍼(Abraham Kuyper, 1837-1920)
카이퍼는 1880년 칼빈주의 이념으로 하는 암스델담 자유대학을 설립하고 총장 및 조직신학 교수로 취임했다. 카이퍼는 루터 사상의 출발점을 인간론적 주관적 이신칭의에 있다고 보았으며, 칼빈 사상의 출발점은 포괄적이며, 보편적이며, 우주적이며, 객관적 원리인 하나님 절대주권에 있다고 보았다. 이에 그는 칼빈의 세계관적 입장에서 철저히 하나님 중심의 일원론적 관점을 가지고 있으며 일반은총과 특별은총, 주권영역에 대한 신학을 정립하였다.
(5) 바빙그(Herman Bavinck, 1854-1921)
화란개혁파 교회의 목사요 신학자로서 아브라함 카이퍼의 후계자이다. 그의 성경관은 하나님의 영감에 의하여 성경저자들의 인격뿐만 아니라 문자와 역사적 사실에 관한 기록과 하나님의 모든 계시적 사실에 관한 기록에 있어서 유기적으로 영감 되어 성경이 기록되었다고 믿었다.
(6) 메이첸(John Gresham Machen, 1881-1937)
메이첸은 1902년 프린스톤신학교에 입학하여 딕 월슨(Dick Wilson), 게르하르두스 보스(Geerhardus Vos), 카스파르 W. 핫지(Caspar W. Hodge), 워필드(Warfield), 패튼(Francis L. Patton)에게 수학했다. 1906-1929년까지 프린스톤에서 신약신학을 강의했다. 그러나 자유주의 신학과의 마찰로 1929년 웨스트민스터신학교를 세웠다. 그는 자유주의 신학을 반대하고, 성경의 절대권위를 주장하고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를 중심 한 개혁파 입장을 유지하고 개혁파야말로 가장 일관성 있는 변증적 기독교를 표현한다고 믿었다.
(6) 벤틸(Corneilus Van Til. 1895-)
벤틸은 화란 출신의 개혁파 변증학자로 지금의 개혁파 신학을 리드하고 있다. 그는 프린스톤에서 월슨(Dick Wilson), 게르하르두스 보스(Geerhardus Vos), 카스파르 W. 핫지(Hodge), 워필드(Warfield), 메이첸(John Gresham Machen)에게 배웠고, 찰스 하지(Charles Hodge), 바빙그(Herman Bavinck) 등의 영향을 받았다. 그는 메이첸과 함께 웨스트민스터신학교 개교를 도왔고, 하나님과 성경의 전재론을 주장했다.
(7) 벌콥(Louis Berkhof, 1873-1957)
벌콥은 화란계 미국개혁파 신학의 전통을 보존하는 일에 전념한 신학자이다. 그는 미국 칼빈 신학교에서 게르하르두스 보스(Geerhardus Vos), 헨더리쿠스 뵈커(Henderieus Beuker, 1834-1900)에게 배웠고, 1902-1904년 사이에 프린스톤에서 연구했고, 그 후 칼빈신학교에서 1906-1914년까지 신구약을 강의하고, 1928-1944년까지 조직신학을 강의했다. 그의 조직신학과 교리사는 한국의 보수계열 신학교에서 교재로 사용되었다.
(7) 한국에서는 박형룡 박사, 최순직, 조석만 박사로 이어오고 있다.
4) 19세기 이후 자유주의 신학
(1) 슐라이엘마허. 프리드리히 에른스트
(Friedrich Ernst Schleiermacher Frie, 1768-1834)
19세기의 신학적 배경은 18세기를 지배한 경건주의(Pietism) 운동과 합리주의(Rationalism)에서 시작된다. 19세기 이후 자유주의 신학은 슐라이엘마허로 시작된다. 그는 독일의 종교철학자이며, 할레대학에서 신학과 철학을 공부하고 1804년 할레대학의 조교수가 되었다(1810년에 정교수). 그는 이신론과 초자연적 경향을 조화시키려고 하였다. 즉 경건주의와 계몽주의의 합일적 신학을 구상하고, 초자연적 초이성적 성질을 절대적인 것으로 보지 않았다. 그는 성경을 중요시하면서도 성경에 대하여 비판을 가하였다. 「종교론」에서 감정이 종교의 기초라고 하였다. 그의 신학은 직관적 감정을 기초로 하는 체험적 종교와 성경비평이라는 두 측면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 칼 바르트(Karl Barth, 1886-1968)
칼 바르트의 신학 사상은 1919년에 출간된 로마서 주석에서 시작된다. 지금까지 유럽을 지배하던 인간중심적 자유주의 신학에 일대 폭탄적 도전이었다. 바르트의 신학은 말씀의 신학으로 자유주의 신학의 주관적 계시관에 반대하여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성경자체가 계시가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증거이다. 그러므로 성경을 읽을 때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계시로 임한다는 것이다. 바르트는 역사를 두 가지로 해석, Historie와 Geschichte라는 두 단어로 각각 질적 차이가 있는 역사를 말한다. Historie는 객관적으로 증명될 수 있는 일반 역사요, Geschichte는 실존적 의미를 갖는 Historie 이상의 개념이다. 그는 예수의 부활신앙을 고백한다. 그러나 예수의 부활은 Historie 영역에서 일어난 것이 아니고 Geschichte 영역에서 일어났다고 한다. 또 성경자체는 하나님 말씀에 대한 증거에 불과하다. 따라서 성경은 인간이 쓴 글이기 때문에 인간적 오류가 많이 있을 수 있다고 본다. 이런 오류투성이의 성경일지라도 하나님이 이것을 계시의 증거로 사용하실 때 하나님의 말씀이 되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기독교를 초월적 종교로 만들어 버렸다. 그의 신학의 구조는 칸트(Inmanuel Kant), 헬겔(Hegel), 키에르케코르(Soren Kierkegaard) 등의 철학 위에 신학을 세운 것이며 이는 자유주의 신학을 앞문으로 쫓아내고 뒷문으로 받아드린 것이다. “신정통주의는 인간의 주관적 경험을 진리의 표준으로 삼는 것을 핵심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교회의 신앙고백서에도 결합이 있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다. 그는 교리에 대한 사상적 자유를 제한 하지 않고 모두를 인정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3) 블트만(Rudolf Bultman, 1884-1976)
칼 바르트의 로마서 주석을 읽고 “나는 대체로 바르트의 입장을 받아 드린다”라고 했다. 성경의 비신화화(de mythologization)를 주장하였다. 그의 신학을 양식비평(Form Criticism)으로 이는 성경은 제자들이 성경을 저술하기 전에 여러 교회에 유포되고 있었던 단편적인 구전들을 한데 모아서 편집하였기 때문에 복음서의 기록들은 그 역사적 신빙성이 아주 적다고 본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와 사도들의 생애와 교훈의 신빈성 있는 기사로 믿을 수 없다고 전제하고 출발한다. 예수와 그리스도를 분리하여 사실적(Historie) 예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도들에 의하여 전파된 그리스도, 즉 증거된 그리스도, 즉 케리그마(Kerygma)의 그리스도(실존적 그리스도)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역사적 예수는 원시 기독교가 신화화한 것이므로 인간 예수는 기독교 신앙과 관련이 없다고 주장한다.
(4) 몰트만(Jurgen Moltmann, 1926-)
몰트만의 신학은 소망의 신학(Theology of Hope)이다. 세계의 소망은 지상 낙원의 건설에 있다고 했다. 그에게 있어서 종말론은 성경해석의 원리요, 희망은 성경의 주제가 되었다. 구약은 하나님은 약속의 하나님이요, 희망의 하나님이시다. 현재는 하나님의 약속을 항상 내포하고 미래는 하나님이 그의 약속을 이행하심에 있어서 신실하심을 증명한다고 했다. 그는 수직적 구속의 역사를 무시하고 평면적이고 역사적인 면을 강조하고, 교회는 구원받은 성도의 모임이 아니라 사회 구원을 위한 도구로서 존재한다고 했다. 그러므로 혁명적 방법을 사용할 수 있다고 했다.
(5) 오스카 쿨만(1902- )
오스카 쿨만은 구속사(Heilsgeschichte)의 강조점은 역사와 역사 안의 하나님의 계시이다. 시간은 사람의 구원을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투기장이며, 하나님의 계시와 구속은 역사적인 사실에 기초한다고 말하고 있다. 성육신으로부터 재림까지 모두를 구속사건으로 보고 있다.
(6) 알티저(Thomas J. J. Altizer)
기독교 무신론적 복음주의로 역사적 기독교회를 부정하고, 창조를 부정한다.
(7) 하아비 콕스(Harvey Cox)
이는 세속화신학을 주장했다. 세상의 문제들이 그리스도인들의 주된 관심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교회와 세계의 구별을 철폐해야 하며 초자연주의를 배격하고 있다.
(8) 죤 로빈손(John A. T. Robinson)
삼위일체 하나님에서 이탈하여 내재적 주관성에서 찾으려고 했다. 그의 저서 「신에게 솔직히」(Honest to God)에서 저 위에(up there) 계시거나 저 멀리 밖에(out there) 게시는 분으로 생각하는 것은 우주시대에 사는 현대인들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상황윤리(Situation Ethics)는 종래의 윤리에 대한 반작용으로 종래의 윤리는 절대적 표준으로 시작한다면 새 도덕은 귀납적이어서 사람에서 출발하여 원칙보다 인격에 우선을 둔다. 행위의 궁극적인 유일의 표준은 윤리적인 준칙이 아니고 자아가 없는 희생적인 아카페적인 사랑에 두고 사랑이 신이라는 것이다.
(9)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ffer)
볼트만에 의하여 시작된 신학의 인간화학 운동은 본회퍼에 의하여 성공적으로 발전되었다. 오늘의 급진신학의 연원을 볼트만, 본회퍼, 틸리히 등에서 찾는다. 그는 비신학화(Demytheologization)를 주장했다. 그의 신학은 수직적인 면보다 수평적이다. 다시 말하면 남을 위해서 사신 예수님을 본 받아 남을 위해 사는 인간만을 고조하는 인본주의 기독론을 주장하고 있다. 교회는 영혼 구원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고 사회 개혁에 있는 것으로 말한다. 신관에 있어서 하나님의 객관적인 인격적 존재 대신에 주관적 사랑을 말함으로 무신론을 말하고 있으며, 개인구원을 무시하고 사회개혁을 중시함으로 비성경적이다.
(10) 폴 틸리히(Paul Tillich, 1886-1965)
오늘의 과격신학(Radical Theology)은 볼트만에서 움이 돋고 본회퍼에게서 열매를 맺고 틸리히에게 신학적 확인을 받았다. 틸리히 신학은 무신론적이며 새로운 존재신학이다. 틸리히는 하나님은 어떤 사물(thing)도 아니고 어느 존재자(Being)도 아니다. 하나님은 존재 이상이며 사물들 이상이다. 하나님은 존재 자체요 존재의 능력이며 존재의 근거다. 하나님은 최고의 존재로 간주하는 것까지도 그를 피조물 차원으로 떨어뜨리는 일이 된다. 같은 모양으로 하나님의 존재를 긍정하는 것은 그것을 부정하는 것이나 꼭 같은 무신론적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존재(Being) 자체는 존재(existence)를 초월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성경의 모든 표현은 상징적이지만 유일신의 궁극적 실재를 존재 그 자체라고 표현하는 것이 만이 상징이 아니다. 그는 기독교와 성경의 절대성을 부인하는 동시에 그리스도의 구원의 절대성을 부인하며, 기독교만이 구원이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종교에도 구원이 있다고 주장한다.
(11) 슈바이처(1875-1965)
예수전을 통해 예수님을 윤리적 교사로 절락 시켰고, 말적 열광주의자라고 보았다.
박아론 박사는 “현대신학이 알티저(Thomas J. J. Altizer)와 함께 신의 사망을 선언하고 신의 무덤에 묘비를 세운 것도 오래 전에 일이었다. 지금은 콕스(H. Cox)가 설계한 「세속도시」의 관광은 꺼림칙한 기분으로 끝마치고 플레처(J. Fletcher)의 「상황윤리」의 교실에서 강의를 모두 다 듣고 나와 버렸다”라고 말했다. 자유주의 신학은 펠라기우스(Pelagius), 알미니우스(Jacobus Arminus)의 인간이성을 중심한 인본주의로부터 슐라이엘마허(Friedrich Ernst Schleiermacher)의 감정, 칼 바르트(Karl Barth)의 초절신학, 블트만(Rudolf Bultman)의 양식사와 비신화론, 몰트만(Jurgen Moltmann,의 소망의 신학, 세속신학과 해방신학, 흑인신학, 민중신학, 여성신학, 전위신학으로 탈바꿈하는 변화무상 한 신학으로 역사적 기독교를 흔들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역사는 칼빈주의 신학자 워필트(B. B. Warfield, 1851-1921), 카이퍼(A. Kuyper, 1837-1920), 바빙크(H. Bavink, 1895-1964) 등에 의하여 전 유럽과 구미에 역사적 기독교의 전승이 변호되었다. 또 찰스 하지(Chartis Hodge), 에이 에이 하지(A. A. Hodge)에 의해 역사적 기독교신앙 변함없이 전승되었다.
20세기 현대 기독교회는 W. C. C. 에큐메니칼 운동, 기독교 공산주의 운동, 미국 남부에서 시작된 흑인신학(Black Theology)이 밀려왔지만 영국, 화란, 미국, 한국, 개혁파 신학교들이 역사적 정통 기독교의 신앙을 계승하고 반증, 대변, 변증하고 있다. 웨스트민스터신학교의 벤틸(Cornelius Van Til, 1895-), 보스(Geerhardus Vos, 1802-1949), 스톤하우스(Ned B. Stonehouse, 1902-1965), 머레이(John Murray, 1898-1975), 벌콥프(Louis Berkhof), 티센(Henry C. Thiessen), 에드워드 영(E. Young), 팩커(J. I. Packer), 로이드 죤슨(Martin Lloyd Johnson) 등이며, 우리나라에서는 박형룡, 김치선, 박윤선, 최순직, 조석만 등이 역사적 기독교회의 신앙을 전파하고 변증하고 있다. 한국에서 개혁파 입장에서 조직신학 전권을 쓴 분은 박형룡, 조석만, 이종성 박사이다.
현재 개혁파 신학은 구 프린스톤신학교에서 웨스트민스터신학교의 시대로 신학이 흐름이 바뀌었다. 역사적 기독교회는 정통신조와 정통신학자들의 학적 석명(學的釋明)으로 이어오고 있다. 이는 어느 개인의 신학사상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전수되어온 저작형태의 학적 석명인 것이다.
제5절 신앙과 신학과의 관계
보수주의에서는 신앙과 신학은 불가분리의 관계이며 신조(신앙고백서)로부터 신학 그리고 신학은 다시 성경으로 돌아가 체계와 원칙에 의하여 신학을 논한다. 신앙은 어떤 개인 한 사람의 신학자가 자가 나름대로 사상을 아무렇게나 표명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기독교회가 역사를 통하여 고백해온 객관적 신앙(신조와 신앙고백서)을 기초로 하여 신학을 논하는 것이다.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 제1장 2조는 “성경의 모든 책들은 우리의 신앙과 생활의 규준이다.”라고 천명하고 있다. 이것은 성경이 신앙과 생활은 물론하고 신학에 있어서도 객관적 규준이 됨을 의미한다.
자유주의에서는 신앙과 신학을 별개의 것으로 분리시키며 성경으로부터 신학이라는 직접적 방법에 의하여 신학을 논한다. 이 경우 신학에 있어서 신앙고백은 없다. 어디까지나 성경은 한낱 학문의 자료로만 사용될 뿐이다. 어떤 신학자가 개인의 주관적 신앙에 기초하여 자기의 사상을 자기 나름대로 표현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은 성경을 객관적 규준으로 인정하는 전통적 입장과는 전적으로 다르다.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신앙과 신학은 일치되어야 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신학의 탈바꿈)
신학이란 신앙내용의 해석학이다(조직신학). 신앙 없는 신학이나 신학 없는 신앙은 각각 괴리적인 것이어서 각각 기독교적 의미를 가질 수 없는 것이다. 기독교 신앙과 신학에 있어서 보수주의와 자유주의의 근본적 차이점에 대하여 올바른 분별적 인식을 가져야만 근대적, 혹은 현대적 기독교의 혼탁한 사조 속에서 역사적 기독교회와 비역사적 기독교회의 신앙과 신학에 관하여 올바른 인식을 하게 된다.
1. 신학에 있어서 보수주의와 자유주의
1) 보수주의와 자유주의의 개념
보수주의란 말은 사도적 역사적 기독교회의 성경신앙의 전통을 지켜 나가는 정통적 입장을 말한다. 전통(tradition)이란 역사적 사실을 전승 또는 계승하는 것을 의미하며, 정통이란(orthodoxy) 똑 바로 올바르게 계승하는 것을 의미한다.
자유주의라는 말은 비사도적 비역사적 비성경신앙적 기독교회의 입장을 의미하는 것으로 성경의 교리는 어떻든지 어떻게 믿어도 좋으며 교리와 전통과 정통으로부터 또는 하나님과 성경과 교회로부터 자유롭게 해방되어 보려는 입장이다.
2) 보수주의와 자유주의의 역사적 배경
보수주의는 하나님의 섭리사에 의하여 특별히 계시된 진리인 성경을 믿음으로써 하나님의 은혜의 약속이 구체적으로 주어진 신앙의 조상 아브라함을 비롯하여 모세, 구약시대의 선지자들, 예수 그리스도, 사도들, 어거스틴, 종교개혁자들(칼빈), 19, 20세기 하지, 카이퍼, 워필드, 바빙그, 메이첸, 벌콥, 벤틸 등 보수주의 신학자들, 그리고 현재도 지속적으로 전승되어지고 있는 기독교회의 역사성에 근거를 두고 있다.
자유주의는 고대희랍철학(아리우스, 펠라기우스)과 르네쌍스(renaissance)적(알미니우스) 근대적 인본주의(슐라이엘막허)의 철학적 윤리적 교훈과 과학적 지식과 주관적 심미적 감성과 주관적 이성적 인식에 의한 상대적 진리와 세계사적 상대적 역사성에 근거를 두고 있다.
2. 종교다원주의
종교다원주의는 기독교와 다른 종교와의 대화, 혹은 교류를 모색하기 위한 발상으로 기독교 정통신학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후기 근대주의(post modemism), 급진주의의 하나의 유형이다. 종교다원주의 특징은 어떤 특정한 종교(기독교)의 절대성이나 보편성을 부인함과 동시에 모든 종교의 상대성과 주관성(주체성)을 인정하여 종교 상호간의 신앙적 종교적 문화교류를 통한 만남과 대화의 장을 마련함으로써 종교의 토착화는 물론 범종교적 협력에 의한 공동의 목표를 향하여 지혜와 힘을 모아 보자는 발상에서 착안한 종교일치 운동 사상이다. 범종교적 협력에 의한 공동의 목표는 사회변혁, 평화유지 및 상생의 길 등을 열고자 하는 것이다. 이것은 기독교 전통에 대해서는 의도적으로 혹은 반사적으로 비판적이며 배타적이면서도 다른 종교에 대해서는 아주 관대하다.
post modemism을 이해하려면 먼저 post의 뜻을 살펴보아야 한다. post는 ... 후에...뒤를 따라온....나중 에라는 간단한 뜻이다. 그러므로 post modemism이란 뜻은 현대주의의 뒤를 잇는다는 것에 불과한 애매모호한 것이 아니다. 포스터모더니즘은 현대주의의 기초적 믿음 즉 인간의 이성이 진리로 인도 할 수 있다는 믿음을 이제 더 이상 지지할 수 없다고 선포했다. 다시 말하면 기존적인 것에서 탈현대하는 것이다(갱신(renewal), 개혁(reformation), 페라다임(paradigm). 포스터모더니즘은 역사적 기독교의 정통성과 자유주의 신학까지도 부정한다. 포스터모더니즘은 성경의 절대적인 주장들을 무효화 시키고 객관적이거나 규범적인 진리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기 때문이다. 포스터모더니즘은 다원주의를 받아드렸는데 이것은 성경적 계시와 영감을 부인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예수 그리스도의 절대성에 관해서도 다원적인 성격 때문에 그리스도를 다른 종교의 창시자들 중의 한 사람으로 보고 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인류의 유일한 진리(요 14:6)가 더 이상 아니 다고 주장하고 있다.
3. 신학적 혼합주의
역사적 기독교는 정통신학의 보수를 그 특색으로 한다. 그러므로 복음의 순수성에 도전하는 혼합주의를 배격한다. 혼합주의(Syncretism)란 종교적 신조의 절충주의를 의미한다. 헬라어 원어로 숭그리노에서 나온 말로 “서로 붙인다.(bring together) “혼합하다”(combine) 등의 뜻을 갖고 있다. 이 용어는 초대 기독교에 있어서 히브리사상과 헬라사상의 혼합에 적용되어 사용되었다. 교회사적으로 보면 베사리온(Bessarion)은 동, 서방교회의 연합을 제의 할 때 상호절충을 뜻하며 혼합주의를 내세웠다. 종교개혁이후에는 프로테스탄트 교회간의 통합, 특히 루터파와 칼빈파의 합동을 위하여 혼합주의 논쟁(Syncretistic Controversy)은 루터파의 신학자 죠지 칼리스옥스(George Calixtus)는 기독교의 통합을 위하여 각 교파의 신조 중에서 중요하지 않는 지엽적 요소를 제외하고 교리적 공통분모를 찾고자 제의했으나 실패하였다.
근래에 와서는 혼합주의는 교리적 신조의 절충보다는 오히려 기독교와 비기독 사이의 사상적 조화를 시도하고 있다. 대표적 학자는 윌리암 어네스트 호킹(William Ernest Hocking)으로 그의 저서 「산 종교와 한 세계의 신앙」(Living Religion and World Faith)과 「재고되어야 할 선교」(Rethinking Mission)라는 저서 등에서 기독교는 타종교에 영향을 끼친 만큼 또 영향을 받아서 조화를 이룬 하나의 세계적 통일종교를 모색할 것을 제의하였다. 마치 중국에서 불교가 도교와 함께 상호수수작용을 한 것이나 인도의 시크(Sikh) 종교에서 모슬렘교와 힌두교가 잘 혼합되어 있는데서 좋은 본보기가 된다고 했다.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Arnold Toynbee)는 혼합주의적 역사철학을 강하게 주장하였다. 그는 문명의 기저를 종교에서 발견하고 문명의 위기를 극복하는 길은 종교 간의 혼합절충에서 찾으러한다.
오늘의 W. C. C. 운동은 하나의 혼합주의 운동으로 변해가고 있다. 뉴델리 총회에서 역설된 「포괄적 신학」이 바로 그것을 증명한다. 1955년 6월 19일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렸던 “신앙축제”(The Festival of Faith)에서 기독교, 불교, 힌두교, 유대교, 모스렘교이 모여 혼합주의 향연 속에 에큐메니칼 축제가 진행되었다. 바울 당시 초대교회를 위협했던 영지주의(Gnosticsm)는 동방기독교의 신비주의와 애굽의 유출설, 페르시아의 이원론 등을 기독교 사상과 교묘히 혼합하여 ”영지“를 중심으로 이룩한 혼합종교이다.
혼합주의는 종교의 기원을 인간적 차원에서 찾을 수 있을 때만 가능하다. 종교의 기원과 발전을 문화사적 측면에서만 설명할 수 있다고 볼 때 보다 나은 종교를 위한 종교 간의 혼합이나 조화는 오히려 지혜로운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는 그 기원을 계시에 두기 때문에 계시의 절대성을 기본신앙으로 삼는다(갈 1:8). W. C. C. 의 교회연합운동은 정통프로테스탄트의 개혁자들의 신학 노선에 입각한 연합운동이 아니다. 조직적 정치적 기구화가 되어 종교혼합 혹은 이념혼합의 연합체 운동이다. 이들은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과 육체적 부활의 본질적이고도 근본적인 기독교교리에는 침묵하고 교회의 통일성만 강조하는 것은 기독교적 신앙적 영적 교통과는 상관없는 이단적인 요소나 이교적이며 불신앙적인 단체를 총망라하여 연합체를 구성한 혼합주의자들이다. W. C. C. 는 성경적 기독교회의 사명이나 역사적 기독교회의 보편성의 문제를 위한 연합 기구가 아니라 보다 큰 세계기구 또는 세계조직 속의 일원이기를 바라는 단체들의 연합이다. 지금은 성경 해석에 있어서 상황적 혼합주의에 빠져있다.
4. 개혁파( the Reformed)
개혁파, 개혁주의 칼빈주의라는 말은 한국에서는 동의어로 서로 바꾸어 가면서 쓰고 있다. 그러나 정확히 말하면 개혁파가 의미에 가까운 것이다. 개혁파란 성경에 의해 개혁되어 가는 것을 중요시한다. 그리고 개혁파 교회는 철저하게 칼빈주의 신학과 신앙의 토양 위에 세워진 것이며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를 철저하게 따르고 있다.
그러면 개혁파는 어떤 특정 교리(Dogma, Doctrne(교의))인가?
대개 한국교회 성도들의 인식 가운데 칼빈주의란 말을 할 때마다 예정론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칼빈주의 5대 교리를 말한다. 이는 1957년 박형룡 박사가 “로레인 부트너(Loraine Boetner) 박사가 쓴 개혁주의 예정론을 칼빈주의 예정론이라고 번역한 후부터 칼빈주의는 예정론이다고 고정되었다.” 칼빈주의는 기독교강요나 신조들과 예정론을 칼빈주의의 기본원리로 취급하고 있지 않다. 예정론은 구원론에서 취급되고 있다. 5대 교리도 칼빈주의 골격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 자체가 칼빈주의는 아니다. 또 하나님의 영광을 기본원리로 생각하고 있지만 이는 우리의 전 생애를 통하여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제일 되는 목적이지만 이도 칼빈주의 원리라고 하기에는 불충분하다. 그러므로 칼빈주의와 개혁파는 어느 특정한 교리가 아니다.
개혁파신앙이란 아래와 같이 정리 할 수 있다.
① 하나님 영광을 위해 그의 면전에 철저하게 살아가는 신앙
② 성경의 무오성과 신앙생활의 유일한 기준으로 삼는 것을 전제로 한 신앙
③ 역사적 정통신조와 신앙고백서를 인정하는 신앙
④ 하나님 절대주권을 철저하게 주장하는 신앙
⑤ 칼빈주의 5대 교리를 중요시하는 신앙
⑥ 유신론적 범주 안에서 문화적 활동을 지향하는 신앙
⑦ 모든 것을 하나님 관점에서 보는 신앙
⑧ 성경적 예배를 철저하게 전개하는 신앙
⑨ 장로주의(Presbyterianism) 정치를 확립하고 성경적 교회를 지향하는 신앙
⑩ 하나님의 창조와 섭리를 철저하게 믿는 신앙
⑪ 일반은총과 특별은총을 믿는 신앙
⑫ 시원적 종말을 믿는 신앙을 개혁파 신앙이라 할 수 있다.
개혁파란 루터파와 칼빈파를 구별하는 말이며 복음주의, 보수주의, 근본주의, 신복음주의, 신정통주의, 자유주의(Liberalism), 급진주의를 철저하게 구별하는 용어로 어느 특별한 교리를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성경을 전제로 하며 칼빈주의를 지향한다. “장로교회(Presbyterian Church)는 철저한 칼빈주의 사상에 기초한 것이다. 그러므로 독일의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1563), 화란의 벨직 신앙고백(1561), 스위스의 제2 신앙고백서(1566), 화란의 도르트 신조(1619),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11647) 등은 칼빈의 「기독교 강요」(1536)를 토대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개혁파교회나 장로교회는 칼빈주의 신학과 신앙의 원리 위에 세워진 것이다.” 개혁파 신앙은 하나님의 절대권위와 모든 삶을 성경을 전제로 하며, 역사적 정통 신조(Creed)와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Westminster Confession of Faith)를 중요시 여기는 교파와 교인을 개혁파교회와 개혁주의 칼빈주의 자라 할 수 있다.
개혁파라는 명칭은 '말씀에 따라서 끊임없이 개혁되어야만 하는 교회, 성경 말씀에 따라서 개혁된 교회이며, 더욱이 성경에 의해서 개혁되어 가야만 하는 교회라는 것이다. 개혁파교회는 제네바 종교개혁자인 칼빈의 전통을 받아들여 계승하고 있는 교회이지만 칼빈이라는 개인적 존재보다도 칼빈이 지향했던 이념, 즉 말씀에 굳게 서는 교회를 언제든지 추구하는 것이며, 그러한 자세를 계승하는 것에 역점을 두는 것이다. 예를 들면 루터 자신이 쓴 소교리문답서는 루터파에 있어서 신조적 권위를 가지고 있다. 이에 반해 칼빈이 쓴 제네바 신앙문답서는 개혁파교회에 있어서 16세기 제네바를 제외하고 신조적 권위를 차지하지 못했든 것이다. 이상으로 성경에 따라 성경에 의해개혁되어 가는 것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개혁파란 철저하게 칼빈주의를 지향하는 교회를 말하는 것이다. 개혁파는 복음주의, 보수주의가 아니다. 보수주의, 복음주의, 근본주의적, 요소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보다 더 포괄적인이 광범위한 신학체계인 것이다.
제6절 조직신학
1. 신학의 명칭
신학이라는 말은 성경에 없다. 이 말은 희랍의 문학이나 철학에서 옮겨 온 것이다. ‘데오스’와 ‘로고스’ 혹은 ‘로기아’의 합성어가 ‘데오로기아’인데 ‘로기아’와 어원이 같은 ‘로게이온’은 아덴(Athen)에서 신들의 대변자가 신탁을 말하는 단을 의미하며, ‘말하다’. 또는 ‘사상’이라는 의미로 사용된 것은 훨씬 그 후였다.
하지(A. A. Hodge)는 “신학이란 가장 보편적 의미에서 종교학(The Science of Religion)이다.“라고 말하고 기독교신학이란 성경진리를 확정하고 해석하며 변호하는 학문이다.”
신학이란 하나님에 관한 교훈과 기독교 교리전체를 의미하는 학문이다.
오늘날에 와서 교리학, 교의학, 교의신학, 기독교신학개론, 조직신학 다양한 명칭들을 사용하면 학자의 기호에 따라 사용하고 있다. 칼빈은 「기독교 강요」라고 했다.
신학을 총체적으로 분류하면, 조직신학, 주경신학, 성경신학, 역사신학, 실천신학이라고 하는 다섯 개의 분야를 말하게 된다. 이 모든 분야의 지식이나 교리, 즉 교의의 내용으로 하여 체계화한 학문을 교리학, 교의학, 교의신학, 조직신학, 계통신학, 체계신학, 기독교신학개론이라고 말한다. 기독교개론이라 함은 조직신학이 기독교신학의 모든 분야에 있어서 가장 토대가 되는 기초학문이기 때문에 붙여진 명칭이다.
2. 조직신학의 정의
조직신학은 역사적 기독교회가 성경으로부터 인출하여 믿고 승인한 신앙고백의 내용에 따라 성경의 교리를 체계화하는 진리체계이다. 따라서 조직신학은 하나님과 관계되는 모든 것에 관한 계시진리를 체계화한 것이다.
카이퍼(A. Kuyper)는 신학을 두 종류로 구별하였다. 하나는 하나님을 신학의 대상으로 하는 하나님에 관한 지식으로서의 학문이며, 또 하나는 하나님이 자기 자신을 나타내시는 계시 진리를 신학으로 삼는 학문이다. 라고 했다.
벤틸(Van Til)은 조직신학은 모든 성경의 진리를 연구하여 성경으로 밝혀내는 것이며, 하나의 체계전 전체 속에서 진리를 형성하는 것이다, 라고 하였다. 성경의 진리를 성경적으로 밝히는 것은 성경신학의 입자이며, 조직신학은 하나님의 계시진리 즉 성경교리를 역사적 정통적 성경신앙의 토대 위에서 체계적으로 해석하고 규명하여야만 참된 조직신학이라 말할 수 있다.
3. 조직신학과 기독교
신학이라는 말은 기독교적 용어이며, 조직신학은 기독교의 학문이다. 기독교와 신학과의 관계는 불가분리로 밀접하다. 기독교는 신학을 떠나서 생각할 수 없고, 신학을 떠나서는 기독교를 생각할 수 없다. 기독교는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사실과 하나님이 자기를 계시하셨다고 하는 사실을 전제로 하여 존재하는 것이다.
역사적 정통적 개혁파 신학은 하나님의 유일무오한 말씀인 성경의 계시 진리를 전적으로 수용하는 성경신앙의 기초 위에서 출발하며 규법으로서 절대권위를 가진다. 그러므로 성경을 첨가한다든지 제한다면 순수한 역사적 기독교가 아니다. 역사적 정통기독교회는 교리의 하나의 고정된 개념이나 체계는 아니지만, 성경이 형식원리로 제시하고 있는 하나님의 계시 진리의 의미와 내용은 전통적 교리로서 이미 역사적 공동신조의 토대 위에 세워진 학적 석명의 유산으로 초대교회에서부터 어거스틴, 칼빈, 19, 20세기 개혁파 신학자들의 신앙적 신학내용이다.
4. 조직신학의 필요성
혹자는 말하기를 기독교의 복음을 전파하고 교회를 세워나가는 데에 성경이면 그만이지 신학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한다. 그것은 신학적 견해의 차이로 인하여 기독교진리를 이해함에 있어서 혼란을 초래한다. 진정한 기독교진리를 전파함에 있어서 신학적 연구와 이해 없이 사람마다 성경적이라고 주장하는 데에는 오히려 혼란만 초래한다. 바울은 “만일 누구든지 너희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 지어다(갈 1:9). 고대 기독교 교부들은 비성경적 신앙을 방어하기 위해 기독교신앙 내용을 체계화하고 문서화 한 것이다.(1-5세기, 16-17세기 신조시대, 18-19세기 초 경건주의 운동, 결과 자유주의, 신비주의, 광신주의가 등장)
5. 조직신학의 임무
조직신학은 역사적 사도적 신앙고백의 터 위에서 성경의 진리의 체계를 확립하고 진리를 학문적으로 해석하고 규명하고 규정하고 변호하고 모든 시대를 걸쳐서 기독교인들의 공통적으로 진리를 이해하고 보전하고 전달하게 하는 의무를 가진다.
제7절 신학의 분류
신학이란 말은 넒은 의미로 신학의 모든 영역을 총칭하는 포괄적인 용어이며, 좁은 의미로는 기독교의 교리, 즉 기독교의 신앙내용을 체계적으로 석명하는 학문, 즉 조직신학을 의미한다. 조직신학은 기독교의 모든 신학분야의 기초학문으로서 신학의 중심적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정통신학에 있어서 모든 신학은 조직신학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신학은 일반적으로 주경신학, 성경신학, 조직신학, 역사신학, 실천신학으로 분류된다.
신학과 종교와의 관계에 대해 다이슨 교수는 “신학과 종교의 관계는 동일원인에 의하여 생겨난 서로 다른 영역에 있어서의 결과라 할 수 있다. 즉 하나님, 피조물에 대한 사상적 체계화하는 영역이 신학이 되고, 개인과 단체의 생활 영역에서 그것은 종교가 되는 것이다. 라고 했다.
1. 주경신학
신학에 있어서 성경을 연구하는 분야는 주경신학, 성경신학 조직신학이다. 주경신학은(Exegetical Theology)은 하나님의 말씀의 의미를 해석하고 주석하는 학문이다. 문법적 언어적 규명을 필요로 하며, 성경본문 연구 및 해석과 관련되어 있는 과목들을 포함하고 있다.
1) 성경개론
성경내용의 연구와 해석을 위하여 기초가 되는 문제들을 취급한다. 일반계론은 성경의 정경과 본문 등 성경전체에 관계되는 문제들을 취급한다. 특수계론은 성경의 각 책의 내용분석, 저자, 자작연대, 성경의 진정성, 각 책의 성격 등에 관 문제들을 취급한다.
2) 구약개론
구약성경의 각 책의 내용분석, 저자, 자작연대, 성경의 진정성, 각 책의 성격 등에 관한 문제를 취급한다.
3) 신약개론
구약개론과 동일.
4) 구약성경주석
구약성경 원어, 모세오경, 역사서, 예언서, 지혜서 등이다.
5) 신약성경주석
신약성경 원어, 공관복음을 시작으로 신약전체를 주석한다.
6) 주경신학을 위한 보조학문은 조석만 박사 「조직신학 서설」 p. 80. 참조.
2. 성경신학
성경신학(Biblical Theology)은 본래 주경신학에 속한 것인데 19세기 후반 성경비평연구가 성행하면서 점차적으로 주경신학으로부터 독립 과목으로 분류되었다. 성경신학은 성경해석의 결과를 수납하며 성경전체에서 특히 계시사적 연구를 통하여 성경에 일관된 계시진리와 계시 사상을 규명하여 체계를 세운다. 계시사적 연구란 성경의 본문에서 계시된 진리의 요소들이 점진적으로 발전된 사실을 추적 조사하여 성경이 하나님의 영감에 의하여 기록되었다고 하는 사실을 규명하는 것을 의미한다. 중요학문으로는, 신구약성경신학, 신구약신학, 사도(선지자)들의 사상연구, 신구약의 예언 및 계시에 관한 연구, 신구약성경 비평에 대한 비평 등을 포함한다. 보조학문으로는 성경형성사, 성경분류연구, 성경해석학, 성경언어학, 예형학, 성경고고학, 신약 중간사 등이며, 성경연대학과 신구약 중간 사는 역사신학에도 관계된다.
3. 조직신학
조직신학은 신학의 뼈대라고 할 수 있다. 조직신학(Systematic Theology)이라는 말은 다른 신학과목들은 비조직적이고 조직신학만이 조직적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조직신학이 성경의 계시진리를 전체적으로 통일적인 체계에 의하여 규명하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주경신학은 성경구절들을 자료로 하여 귀납적으로 해석하는 것과는 달리 조직신학은 성경의 모든 계시진리의 내용을 전체적으로 포괄적으로 종합적으로 통일적으로 연역적으로 구명하여 논하고 변호하고 진술하여 밝힌다.
조직신학은 주경신학, 성경신학, 역사신학이 제고하는 재료들을 취하여 역사적 기독교회의 공동신조들에 표명된 기독교의 신앙내용(성경교리들, 즉 하나님의 계시 진리의 내용)에 의하여 포괄적으로 신학적 명제를 규정하고, 그것을 성경전체를 통하여 통일적으로 체계적으로 규명, 해석, 논리적으로 변호한다.(형식원리와 내용원리),
1) 조직신학의 주요 과목들
① 서론은 조직신학의 서론에 극한 된 것이 아니고 기독교 신학의 전체, 신학 전반을 명제를 정의하고 있다.
② 신론(Theology)은 하나님의 존재, 속성, 삼위일체, 신적작정, 예정, 창조, 섭리 등의 교리와 영적 세계에 관 교리를 포함.
③ 인간론(Anthropology)은 피조적인 인간과 그 본성, 인간의 원시상태와 타락, 인간의 비참, 죄, 죄의 기원, 죄의 전가, 하나님과의 인간의 언약관계 등을 포함,.
④ 기독론(Christology)은 기독론 논쟁사, 그리스도의 인격론, 그리스도의 신분론, 그리스도의 사역론 등을 포함.
⑤ 구원론(Soteriology)은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에 의한 성령의 특별 사역론으로서 구원의 질서와 은사 등을 포함.
⑥ 교회론(Ecclesiology)은 교회의 본질과 제도 및 그 기능에 관한 논리와 목회원리에 관한 내용을 포함.
⑦ 종말론(Eschatology)은 개인의 종말과 우주의 종말에 관한 교리 혹은 준 종말적 사건과 순종말적 사건 등을 포함한다.
4. 역사신학
역사신학(Historical Theology)은 성경에 계시되어 있는 바, 하나님의 백성의 역사와 그리스도의 탄생의 역사를 비롯한 그리스도 이후의 기독교회의 역사적 사실에 관한 전체적 연구를 포함한다.
1)주요과목
세계기독교회사, 교부사, 교리사, 신조사, 선교의 역사, 기독교사상사, 종교개혁사, 세계장로교회사, 한국장로교회사, 한국교회사, 세계선교기구의 역사, 에규메니칼운동사 등이다.
5. 실천신학
실천신학(Practical Theology)은 신학적으로 확인되고 해석된 하나님의 계시진리의 말씀을 전파함에 있어서 모든 신자에게 부과된 의무를 다하는 실천적 삶을 살게 하며 하나님의 약속의 은혜와 복을 받게 하는 일체의 방법을 포함하고 있다.(프로그램과 소비자와 공급자의 관계로 변질되고 있다)
① 목회학
설교학, 예배학, 교회정치학, 교회행정학, 교회헌법 등. 기독교교육학 분야의 대부분의 과목도 포함된다. 보조과목으로는 교회성장학, 선교학, 심리학, 상담학 등이 포함된다.
② 기독교교육학
기독교교육학개론, 기독교교육철학, 기독교교육사, 청년지도에 관한 교과목, 청소년 지도에 관한 교과목, 유초등부 지도에 관한 교과목 등이다.
6. 선교신학
선교의 성경적 근거와 원리를 연구하며, 최근에 더욱 학문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는 분야다. 세계복음화를 위해 지교회의 선교전략 정책이 필요하다. 선교학, 교회성장론, 국내외선교론, 보조학문으로는 지리학, 비교종교학, 자연과학, 문화인류학, 민속학 등이며 특히 선교대상 지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전 영역에 관 연구를 포함한다.(모든 신학과목은 보조학문이 필요하다)
제8절 기독교 교육의 근본이념
역사적 정통 기독교 교육이념은 피교육자로 하여금 하나님이 모든 진리의 근원이 되심을 믿고 하나님의 계시진리와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성경적 하나님 중심의 세계관, 역사과, 인생관을 확립함과 동시에 진정한 지식을 습득하고 진정한 기독교적 덕성을 도야하여 진정한 삶을 살며 그리스도의 진정한 증인으로서 하나님 중심의 교회와 하나님 중심의 문화를 형성해 나아가는 일에 이바지할 수 있는 인재를 양성하고자 하는 것이다. 기독교 교육이념은 어느 한 시대에 한해서 이념적 실천을 완료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시대의 기독교인의 역사적 사명에 부합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① 성경적 신관 확립 ② 성경적 인생관 확립 ③ 성경적 세계관 확립 ④ 성경적 역사관 확립 ⑤ 성경적 사명관 확립
제9절 기독교 교육의 목적
1. 기독교 교육의 일반적 목적
기독교교육의 일반적 목적은 한 마디로 신자로 하여금 하나님 중심 사상을 확립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도록 하는 것이다.
① 하나님의 관계를 바로 인식하고 순종의 삶을 살도록 한다.
② 세계와의 관계를 바로 인식하고 세계에 이바지하게 한다.
③ 인류 역사의 의미를 바로 인식하고 인류역사의 물결을 바로 잡도록 한다.
④ 자기 자신에 대하여 바로 인식하고, 자신에게 진실하도록 한다.
⑤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바로 인식하고 이웃을 위한 삶을 살게 한다.
⑥ 국가와 사회와의 바른 관계를 인식하고 국가 사회에 공헌하게 한다.
⑦ 기독교 교육을 통하여 기독교적 인격자가 되도록 한다.
⑧ 문화에 대하여 바로 인식하고 문화에 적극 참여하게 한다.
⑨ 땅 끝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 하게 한다.
2. 기독교 교육의 특별목적
기독교교육의 특별한 목적은 한 마디로 참된 목회자, 신학자, 기독교지도자를 양성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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