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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천국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가?

수호천사1 2016. 10. 20. 10:20

천국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가?

누가복음 16:19-31

    

 

지혜로운 신앙인은 죽음 이후의 세계를 내다보고 준비하는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내세를 준비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내세를 준비하며 계십니까? 사람은 누구나 죽습니다. 죽음은 현실입니다. 죽음은 피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당연한 죽음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의식적으로 죽음에 대한 생각을 회피합니다. 죽음이라는 현실을 의식 속에서 제외하려 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우리는 지금도 죽음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죽음은 그 어느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이 땅에서 마지막으로 겪는 필연적 과정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사람은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나 버릴까요? 아닙니다.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은 소멸되는 존재가 아닙니다. 세상에서 소멸되지 않은 영원한 것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께서 영원하십니다. 그 다음에 하나님의 말씀이 세세무궁토록 함께 있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영혼이 소멸되지 않습니다. 성경은 인간의 육신의 죽음 이후에 또 다른 내세가 있다고 말해 줍니다. 천국과 지옥이 있습니다. 아무도 가보지 못한 천국과 지옥이지만 그 천국과 지옥이 존재한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가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진리의 말씀인 하나님의 말씀에서 천국과 지옥이 있음을 분명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특히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누가복음의 말씀은 우리에게 천국과 지옥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곳이며, 우리가 지옥에 가지 않고 어떻게 그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지를 가르쳐 주는 말씀입니다.

 

 

오늘 말씀은 예수님의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라고 알려진 말씀입니다. 흔히 비유에는 이야기체, 예화체, 실화체가 있는데 부자와 나사로 비유는 실화체에 속합니다.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는 예수님이 천상에서 일어난 실화입니다. 한마디로 논픽션(nonfiction)드라마입니다. 이 비유는 다른 비유와는 달리 두 가지 특징이 있는데, 첫째, 예수님께서 비유를 말씀하실 때는 비유로 말씀하시되라고 소개하는데 부자와 나사로 이야기는 그런 것이 없습니다. 실제 있었던 이야기를 비유로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예수님이 다른 비유를 말할 때는 사람들의 이름을 실명으로 사용하지 않는데, 오늘 이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는 나사로라는 실명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결국 오늘 말씀에 나오는 천국과 지옥은 동화의 세계, 종교의 세계가 아니라 실존하는 세계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신약 성경에는 지옥이라는 말이 22번 나오는데 예수님이 14번 사용하십니다. 예수님이 거짓말을 하시거나 없는 말 하실 분은 아닙니다. 지옥과 천국은 엄연하고 분명한 실존 세계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첫 번째로 하신 말씀이 천국에 대한 말씀입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라고 선포하시며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그만큼 천국과 지옥이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사실 이런 천국이니, 지옥이니 하는 내용의 설교는 매우 중요하지만 사실 너무 무겁고 부담스러운 주제이기 때문에 한국 교회에서 잘 다루지 않고 목회자들이 설교를 회피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설날을 맞이하며 우리가 고향을 찾아 가는 귀성객이듯, 우리 성도들은 천국이라는 본향을 찾아가는 영적 귀성객인 까닭에 오늘 천국에 대한 말씀을 드리는 것은 매우 의미가 있겠다 싶습니다.

 

자 그렇다면 성경에서 말하는 천국과 지옥은 어떤 곳일까요? 천국은 죽음도 고통도 눈물도 슬픔도 없는 장소이지만 본문에서 말하는 음부 혹은 하데스라고 부르는 지옥은 고통의 장소입니다. 지옥은 단 한 방울의 물의 자비도 끊어진 장소입니다. 지옥은 다시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희망이 없는 장소입니다. 영원한 불 못입니다. 마태복음 18:8에서 예수님은 지옥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장애인이나 다리 저는 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지옥은 끔찍한 곳이니 이 땅에서 어떤 대가를 치루더라도 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죽음 이후, 지옥과 천국, 두 군데 중에 한 곳은 반드시 가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남아 있는 시간을 이 땅에서 지옥으로 가지 않고 천국에 갈 수 있도록 어떻게 무엇을 준비하며 살아야 하겠습니까?

 

 첫째. 우리는 이 땅에서 구원 얻을 기회를 잃지 말아야 합니다.(19-23)

우리는 오늘 죽어도 천국 가는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본문의 이 부자처럼 뜨거운 불꽃가운데 고민하며 괴로워하는 지옥에 가면 안 됩니다. 이 땅에서 아무리 많은 것을 소유하고 즐긴다하여도 구원의 기회를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 것과 같습니다. 바로 오늘 성경에 나오는 부자가 그런 사람입니다. 이 부자는 이 땅에서는 얻을 것을 다 얻은 사람입니다. 호화로운 집이 있고, 좋은 옷이 있고, 날마다 잔치하며 즐길 수 있는 친구가 있습니다. 죽음의 순간까지 건강과 부귀영화를 다 누렸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다 부러워하는 대표적인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는 내세에서 구원은 받지 못했습니다. 죽음 이후에 지옥의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곳에서 후회하지만 이미 모든 것이 다 끝난 인생입니다.

 

오늘 이 부자를 누가복음 16:14에서 바리새인들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본문의 부자는 바리새인들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아브라함의 후손이고, 하나님의 율법을 이미 들고 배운 사람들이기에 그들은 이미 천국과 지옥의 존재를 아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아브라함의 후손이란 자격만으로도 죽은 후에 천국에 갈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부자가 지옥에 가서 뭐라고 말합니까? 24절에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라고 울부짖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부자에게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25절에 라고 합니다. 얘는 "테크논", “아들아입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인데 지옥에 가 있습니다. 이 말씀은 유대인들에게 엄청난 충격이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아브라함의 자손, 하나님의 아들로 삼으십니까? 요한복음 1:12~13입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오직 예수 이름을 믿는 자는 그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됩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서 오셨는데도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지 않고 기회를 잃은 것입니다. 교회에 발만 들여 놓았다고 천국 가는 것 아닙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해야 합니다. 지옥 가지 않고 천국 가는 길은 이 길 밖에 없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가는 나라입니다. 기회가 끝날 때가 옵니다. 그 날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거지 나사로는 어떻게 구원받고 천국에 갈 수 있었습니까? 가난하기 때문에 천국가고 부자이기 때문에 지옥에 가는 것은 아닙니다. 아리마대 요셉은 부자인데도 예수 믿고 천국 백성이 되었습니다. 니고데모는 국회의원인데 예수님을 믿고 천국 백성이 되었습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부자였습니다. 그들도 무사히 천국입성을 하신 분들입니다. 우리는 나사로라는 그의 이름에서 진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나사로의 이름의 뜻은 "하나님은 나의 도움"입니다. 그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에 의하여 그를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8입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하나님이 값없이 주시는 은혜를 거절하지 마십시오. 나사로처럼 건강도, 부도, 명예도 없다하여도 하나님의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구원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가장 큰 낭패는 구원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남아 있는 시간을 이 땅에서 어떻게 살며 천국을 준비헤야 합니까?

 

둘째. 우리는 이 땅에서 상급 받을 기회를 잃지 말아야 합니다.(24-26)

이 땅에 주어진 모든 것은 천국에서 상급 받을 기회입니다. 이것 놓치면 안 됩니다. 말썽피우는 자녀가 상급 받을 기회일 수 있습니다. 병든 부모, 부담스러운 가족, 내가 맡은 목장식구가, 내가 근무하는 직장이, 내가 섬기는 교회가, 헐벗고 굶주린 우리 이웃이 우리가 천국 가서 상급 받을 기회입니다. 부자는 이 기회를 놓쳐버렸습니다. 좋은 기회를 무관심으로 잃어버렸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율법도 많이 알고 일주일에 두 번 금식도 하고 헌금도 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당연히 천국에 간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이런 행위는 다 내용이 없는 형식뿐이었습니다. 부자는 거지 나사로를 어떻게 대합니까? 불쌍히 여겨 치료해주거나 보살펴 주지도 않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새 옷을 입혀 줄 수 있었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먹일 수도 있고 치료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부자는 거지 나사로에 대해 무관심했습니다. 이 무관심은 상대를 소극적으로 멸시하는 일입니다. 야고보서 4:17"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않으면 죄니라"는 말씀이 바로 그런 경우입니다.

 

오히려 이 부자는 거지 나사로를 자기 과시용으로 이용했습니다. 쫓아 내지 않고 대문에 놓아두고 부스러기를 주는 위선적 구제로 자신의 선행을 선전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본문 14절에서 예수님은 이 사람을 가리켜 이렇게 말씀합니다.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들이라 이 모든 것을 듣고 비웃거늘 돈만 좋아하는 자라고 말합니다. 진리를 비웃는 사람입니다. 내세를 비웃는 사람입니다. 본문 15절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사람 앞에서 스스로 옳다 하는 자들이나 너희 마음을 하나님께서 아시나니, 사람 중에 높임을 받는 그것은 하나님 앞에 미움을 받는 것이니라.”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고 높임 받기를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칭찬듣기, 명예를 좋아합니다.

 

부자는 지옥에 가서도 착각하고 있습니다. 본문 24절을 보십시오. 불러 이르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하나이다.” 그 권력이 영원한 것으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나사로를 자신의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하고 지옥에 가서도 그렇게 부립니다. 물 한 방울 찍어 자신의 타는 목마름을 축여 달라고 합니다. 살았을 때 자비를 베풀지 않은 사람이 이제는 죽어서 나사로를 통한 자비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미 끝났습니다. 불꽃 가운데 괴로워 할 뿐입니다.

 

부자의 마음속에는 자신과 자신의 가족, 잔치에 참여할 만한 자격 있는 친구만이 있습니다. 그저 쌓아 놓고 먹고 마시고 즐기는 데만 관심을 가졌습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이 모두 자기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병들고 굶주린 나사로는 그에게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순간적인 세상적인 쾌락에 사로잡혔습니다. 교회 다니면서도 못된 짓을 다 하고 다닙니다. 순간적인 쾌락을 주는 것은 잠깐입니다. 마약은 순간적이 쾌락을 줄 수 있습니다. 탈선이 순간적 쾌락을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시간이 지나면 자신의 몸을 해치고 인생을 망치게 합니다. 영원한 것에 인생을 투자해야 합니다. 부자는 정말 좋은 조건이 주어졌는데 그것으로 자신만 위해 살다가 결국 지옥의 형벌을 받게 되었습니다. 부자에게 돈이 많은 게 죄가 아닙니다. 그것을 상급 받을 기회로 활용하지 못한 것이 죄입니다.

 

, 그렇다면 우리에게 나사로는 누구일까요?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10:42에서 말씀하십니다.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25:40에서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그러나 영원한 지옥 불에 들어간 사람들에 대해서는 43절에서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아보지 아니하였느니라"라고 말씀합니다. 부지중에 천사를 대접한 아브라함처럼 주변의 나사로를 보살펴야 합니다. 내 주변에 있는 나사로가 누구입니까? 내 주변에 있는 작은 자가 누구입니까?

 

건강과 물질, 명예 그리고, 조건이 주어졌을 때 그것을 상급 받을 기회로 사용해야 합니다. 모든 것은 때가 있습니다. 때를 놓치면 가슴치고 후회해도 소용 없습니다. 공부할 때가 있고 사업할 때가 있고 기도할 때가 있고 봉사할 때가 있고 예배드릴 때가 있습니다. 공부하고 싶어도 공부할 수 없는 때가 오고, 봉사하고 싶으나 봉사할 수 없을 때가 옵니다. 부자처럼 돈 돈 돈 하지 마십시오. 돈이 아무 쓸데가 없을 때가 있습니다. 나의 학식, 나의 건강, 나의 부, 나에게 주어진 명예를 우리 주위의 나사로를 위해 사용하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의 상급이 하늘에 가득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남아 있는 시간을 이 땅에서 어떻게 천국을 준비하며 살아야 합니까?

 

셋째, 우리는 이 땅에서 '전도의 기회'를 잃지 말아야 합니다.(27-31)

부자는 지옥에 가보니 아직 죽지 않은 다섯 형제들을 생각하니 딱하기 그지없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에게 부탁합니다. 나사로를 자신의 형제들에게 보내 달라는 것입니다. 합리적인 부탁일 수 있습니다. 이보다 더 효과적인 전도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성경은 뭐라고 말합니까? 이미 때가 늦었다는 것입니다. 당신에게 준 기회는 끝이 났다는 것입니다. 본문 29~31절입니다. "아브라함이 이르되, 그들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그들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 이르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이제는 죽은 사람이 살아 나가도 그들은 안 된다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표적을 구하는 종교인이었습니다. 그러나 표적이 없어서 천국과 지옥의 실제를 믿지 않습니까? 믿지 않으려고 마음먹기 때문에 믿지 않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십시오. 애굽의 열 가지 재앙을 보았습니다. 홍해의 기적을 보았습니다. 만나의 기적, 반석에서 물이 나는 기적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믿지 않는 사람들은 믿지 않습니다. 표적이 없어서 믿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도 얼마나 많은 표적을 행했습니까? 그런데 얼마나 믿었습니까? 이적기사를 가장 많이 행한 벳세다나 고라신 같은 동네의 사람들이 제일 믿지 않았습니다. 후에 주님께서 이런 말씀까지 하셨어요. 누가복음 10:13입니다. 화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 있을진저 벳새다야, 너희에게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라면 그들이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이렇게 안 믿는 것도 문제가 있지만 복음이 전해지 않아서도 문제입니다. 복음이 들려지지 않아서, 듣지 못 해서 못 믿는 경우도 많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도 때가 있습니다. 살아 있는 동안 부모 자식 친척들을 부지런히 주님께 인도해야 합니다. 지옥의 형벌에서 벗어나게 하여야 합니다. 이 땅에서 잘 사는 것 그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천국가지 가야 잘 사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고 싶어도 전할 수 없는 때가 오기 전에 복음을 증거 해야 합니다. 기회 주어졌을 때, 그 사람이 죽기 전에, 주님 오시기 전에 전도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분들이 주님께 돌아올 수 있도록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무덤은 인생의 종착역이 아니라 정거장입니다. 무덤 저편은 무덤 이편에서 결정됩니다. 무덤 저편에서 아무리 후회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인생은 이 땅으로 끝이 나는 것이 아닙니다. 뱃속의 아기는 그것밖에 모릅니다. 세상을 모릅니다. 그러나 어머니 뱃속에서 나와 보면 새로운 세계가 있은 것을 깨닫습니다. 뱃속에서는 전혀 할 수 없는 자전거도 타고 배구도 하고 축구도 하는 새로운 세계가 있습니다. 영원한 천국과 지옥이 있습니다. 후회 없는 인생을 살려면, 이 땅에서 세 가지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구원 얻을 기회, 상급 받을 기회, 생명을 구원할 전도의 기회 잃지 말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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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은혜동산 JESUS - KOREA
글쓴이 : 죤.웨슬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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