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종말

[스크랩] 기독교인의 역사의식

수호천사1 2016. 10. 1. 00:21

기독교인의 역사의식

 로마서 13:11~14

    

 

 

아버지와 아들이 아침에 운동을 하기 위해 집을 나섰습니다. 이 부자의 모습을 쳐다보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웃습니다. 아버지가 나올 때 급하게 나오느라 신발을 짝 자기로 신고 나온 겁니다. 아들아, 집에 들어가서 아빠 신발 좀 가지고 나올래?” 집에 뛰어 들어갔던 아들이 빈손으로 나옵니다. “왜 그냥 나왔니?” “집에 있는 아빠 신발도 짝 자기야.” 당연하지요. 신발 한 짝을 잘못 신고 나오면 다른 신발도 짝 자기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옷을 입을 때도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모든 단추가 잘못될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신앙생활 잘 하고 계십니까? 신앙생활은 하나님과 내가 인간의 노력과 하나님의 능력의 짝이 잘 맞는 것입니다. 혹시 하나님과 내가 짝 자기는 아닌지요?

 

저는 이번 추석 연휴를 보내는 동안 조용히 말씀을 묵상하며 제 마음 속에 품었던 소박한 욕망이 있습니다. 그것은 금년 가을이 하나님과 짝을 잘 맞추어가는 그런 영성 깊은 가을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했습니다. 분주했고 산만했던 마음을 정돈하고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 하나님과의 친밀성이 더 회복되기를 원합니다. 기도의 문이 열리고, 내 마음이 오직 예수님께 매이게 되기를 바라며, 성령님과 저의 인생을 더욱 깊이 의논하는 가을이 되기를 원합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들도 저와 동일한 소망을 가지게 싶지 않으십니까? 부디 여러분들도 하나님과 짝을 맞추어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세상에 짝을 맞추고 사는 사람들은 삶의 사이클을 이 세상에 고정해 놓고 살기 때문에 세상의 소리가 잘 들립니다. 세상이 크게 보입니다. 세상과 늘 친밀합니다. 반면 자신의 영성을 하나님과 짝을 맞추어 있다면 하늘의 소리를 듣게 될 것입니다. 그런 사람의 특징은 전능하신 하나님,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에게 인생의 사이클을 고정해 놓았기 때문에 그분이 기뻐하는 것 나도 기뻐하고 그분이 좋아하는 것 나도 좋아하고 그분이 싫어하는 것 나도 싫어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예수 정신에 나의 사이클을 맞추어 놓고 그분이 가는 곳에 나도 가고 그분이 쉴 때 나도 쉬고 그분이 죽는 곳에서 나도 죽고 그분이 사는 자리에서 나도 살아나는 것입니다. 그분이 하시고자 하시는 말을 나도 하고 그분이 침묵할 때 나도 침묵하는 법을 배워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가 성령님에게 사이클을 맞추어 놓고 살아갈 때 그분의 능력이 나의 능력이 되고 그분의 비전이 나의 비전이 됩니다. 다시 묻습니다. 신앙생활이란 도대체 무엇입니까? 내 인생을 하나님과 짝을 맞추어 함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한 시각 장애인의 소망을 들었습니다. 이 가을에 저 떨어지는 낙엽을 한번이라도 볼 수 있다면, 저 가을 산의 아름다운 단풍을 한번이라도 볼 수 있다면, 사랑하는 가족들의 얼굴을 한 번이라도 볼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눈을 뜨고 있으면서도 영적으로 정서적으로 제대로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며 무미하게 살아온 저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오늘 우리 믿음의 눈을 크게 떠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이 가을의 아름다운 믿음의 큰 역사를 세워나가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그 일을 시작할 때나, 그 일을 중간 점검 할 때, 그리고 어떤 일을 마감하려고 할 때 반드시 네 가지 질문을 해야 됩니다.

 

첫째는 손익계산을 물어야 합니다.

무엇을 얻었으며 무엇을 잃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백해무익한 것을 계속한다면 그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기대할 것이 없습니다. 담배 피우는 사람. 제게도 나쁘고 남에게도 나쁘고, 아무리 설명해도 백해무익 하다는데 그걸 피우면서 이리 저리 구박받으며 쫓겨 다니는 걸 봅니다. 뻔히 손해나는 일을 알면서 그 일을 계속 할 필요가 없습니다. 유익하다면 무엇이 유익한가? 오늘 유익한가? 내일 유익한가? 보다 더 먼 장래를 위해서 유익한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면서 손익계산에 확실해야 합니다.

 

둘째는 목적을 물어야 합니다.

무슨 일을 했던지 간에 무엇을 위하여 한 것인가, 궁극적 목적이 무엇이었나? 결산하면서 물어보아야 합니다. 간혹 교회 봉사하는 분들 가운데도 그런 분들이 있습니다. 봉사는 열심히 한 것처럼 되어 있는데 마지막에 보면 원망 불평이요. 이제 다시 묻고 싶습니다. 도대체 누구를 위해 한 일입니까? 그 일을 하는 목적이 무엇이었습니까?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내가 정말로 무엇을 위하여 누구를 위하여 이 일을 해야 했던가? 목적을 재진단해야 할 것입니다.

 

셋째는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무엇이 잘 되었는지 물어야 합니다.

우리는 대개 일이 잘될 때는 재수 좋았다고 합니다. 잘된 이유를 확실히 알아야 그것을 지속할 수가 있는데 잘 된 이유에 대해서 깊은 연구가 없습니다. 그저 넘어갑니다. 그러니까 한 번에 끝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잘못되었다고 할 때는 이것은 깊이 반성해야 됩니다. 아무리 괴롭고 아파도 잘못된 건 잘못된 것입니다.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알아야 됩니다. 그런데 이것은 또 팔자라 그래버립니다. 잘못을 인정하려고 들지 않습니다. 잘못의 이유에 대해서 냉철한 판단이 없습니다. 그래서 악순환은 계속되는 것입니다.

 

네 번 째는 어디까지 왔는지를 물어야 합니다.

나의 시점을 이해해야 됩니다. 시간은 과거에서 현재로, 현재는 미래로 계속 흘러가고 있습니다. 일을 마감해야 될 사람이 그 일을 새롭게 시작하겠다고 하면 그것을 주책이라고 합니다. 나이가 많이 들면 이제는 하던 일도 줄여가면서 일을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내가 이 시점에서 해야 할 일이 뭔가? 지금 내게 주어진 이 카이로스, 이 시간은 내게 뭘 말하고 있는가? 무엇을 요구하는가? 그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오늘 성경말씀은 그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줍니다. 11절입니다.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이 시기를 알라! 카이로스입니다. 크로노스가 아닙니다. 이 시점에 의미를 바로 알아라. 오늘이 며칠입니까? 이거 모르면 안 됩니다.

 

적도가 지나가는 지역에 가보면 사람들이 봄 여름 가을 겨울이이 없어서 한 해가 가는 걸 모릅니다. 그래서 자기 나이도 모르고 부인 나이도 모릅니다. 물어보면 얼마쯤 됐을 거라고 그럽니다. 그냥 대충 삽니다. 그러나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내가 처한 이 시점에 대해서 확실해야 됩니다.

본문 12절입니다. 밤이 깊고 낮이 가까이 왔으니 지금 이 시점, 내 인생은 이 깊은 밤으로 달려가고 있다는 말입니다. 밤이 점점 깊어지고 있다! 그러면 내가 할 일이 뭐냐? 밤이 점점 깊어지면 낮이 가까이 왔다는 걸 의미합니다. 밤은 아침을 예고합니다. 그러므로 밤이 깊었다고 하는 이 현실 속에서 밤에 침륜되고 밤에 젖어 들어 밤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이 밤은 지나가기 때문입니다. 밤은 점점 깊어지고 아침으로 향하고 있으니까 우리는 지금의 이 시점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요즘 경제, 정치, 문화, 도덕, 그 모든 면에서 어두워졌습니다. 앞을 예측하기 어려울 만큼 캄캄합니다. 모든 것이 어두워졌는데, 이 어두움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경험하고야 깨닫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경험하기 전에 알기 위해서 우리가 공부라는 걸 하지 않습니까? 공부라는 것은 다른 사람이 미리 경험한 것을 우리에게 전수해주어서 내가 경험하기 전에 아는 것입니다. 시집가기 전에 시집살이를 알고 결혼하기 전에 결혼을 알고 죽기 전에 죽음을 알고 그것이 바로 지혜입니다. 왜 꼭 죽어보아야만 죽음을 알겠습니까? 미리 알아야지요. 그러므로 밤이 깊었다고 할 때에 우리의 의식도 밤에 묶여 있어서는 안 됩니다. 캄캄한 밤에 살고 있어도 우리의 생각만은 저 아침에 가 있어야 한다 그 말입니다. 밤은 깊었다는 사실은 아침이 다가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밖에서 하늘을 쳐다보며 밤을 지내본 일이 있습니까? 전방에서 군대생활 하신 분들은 잘 아실 것입니다. 저는 군목으로 근무할 때 철책선에 따라 걸으며 근무하는 초병들을 위문하면서 꼬박 하늘을 쳐다보며 밤을 지새운 적이 많았습니다. 밤을 밖에서 지새워보면 특별한 게 있습니다. 초저녁에는 빛이 없어도 훤합니다. 그러다가 점점 어두워집니다. 밤 세시쯤 되면 완전 깜깜해지면서 별빛 하나 보이지 않습니다. 그렇게 어두워졌다가 저 동쪽에서 새벽 별이 반짝하게 떠오르고 훤해지는 걸 볼 수 있습니다. 동녘 쪽이 훤해지는 것. 얼마나 반갑고 신비로운지 알 수 없습니다. ‘밤이 깊었다,’ 이것은 아침이 가까워 오고 있음을 의식합니다. 벌써 우리의 생각과 느낌도 거기에 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의 삶에 오늘만 생각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현실에 살면서 현실만 생각해선 안 됩니다. 젊었다고 젊음만 생각해선 안 됩니다. 다음 단계를 계속 생각하고 의식해야 합니다.

 

미국의 세계적인 역사가인 찰스 베어드(Charles A. Beard, 1874~1948)에게 어떤 사람이 질문했습니다. "당신은 평생 역사를 연구하면서 무엇을 깨달았습니까?" 그는 간단하게 네 가지를 말해주었습니다. 이 네 가지가 그 분의 역사관임과 동시에 우리가 붙들어야 할 기독교인의 역사의식입니다.

 

첫째, 하나님께서 어떤 개인이나 국가를 심판하실 때는 권세욕에 날뛰게 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사실 개인이나 국가나 교만하면 망합니다. 교만해지기 시작하면 아하! 끝났구나.” 그렇게 보면 됩니다. 그동안의 역사 속에서 나타난 진실입니다.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맷돌은 곧 심판의 역사는 아주 천천히 돌고 있기 때문에 때로는 돌지 않는 것도 같고 심판이 없는 것도 같은데, 절대로 아니라는 것입니다. 악과 선, 불의와 의를 아주 고르게 세밀하게 골라주시고 심판하십니다. 예외 없이. 절대 숨길 수가 없고 하나님의 공의가 세밀하게 역사 속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셋째, 벌이 꽃 속에 들어가서 꿀을 빨아내는데 마치 강도질하는 것 같지만 그것이 아닙니다. 벌은 이 꽃, 저 꽃 다니면서 허가도 받지 않고 꿀을 도적질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묘한 진리가 됩니다. 이렇게 벌이 이 꽃, 저 꽃 옮겨 다니면서 꽃의 술을 옮겨 놓습니다. 결국은 도적질하는 것 같으나 벌은 꽃을 위해서 심부름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악도 있고 도적질도 있고 강도도 있습니다. 포탈하는 일도 있고 많은 침략도 있는 것 같아도 결국은 이 모든 일을 통해서 더 귀한 일, 더 큰 일들이 아름답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봅니다. 전쟁과 재난은 엄청난 사건이지만 이를 통해서 하나님은 참으로 위대한 일들을 이루셨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역사에서 봅니다.

 

넷째, 날이 점점 어두워지면 별빛도 보이지 않고 아주 어두워지고 말 것 같지만 그것이 다가 아니라 저 앞에 소망의 별이 있다는 것입니다. 다 망하는 것 같은데 망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역사의 흐름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심판을 봅니다. 그러나 동시에 구원의 날이 가까워 왔음을 압니다. 세상이 어두울수록 구원을 의식합니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인들이 지녀야 할 복음적인 역사의식입니다. 심판과 함께 구원의 아침이 가까워 옵니다. 하나님의 질서, 하나님의 경륜, 하나님의 섭리는 그렇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24, 25장은 종말장입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말세에 대하여 엄중히 말씀하십니다. 끔직한 이야기는 거기에 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지진과 전쟁과 재난과 형제간에 미워하고 아비가 자식을 죽이고, 자식이 아비를 죽이고 하는 엄청난 혼란과 무질서와 고통 이런 것들을 예수님께서 예고하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여기서 진리를 말씀합니다. 이런 어려운 세대가 오겠다. 점점 더 어두워지겠다. 그러나 이를 통하여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전파되고 그제야 끝이 오리라" 그제야 끝이 오리라. 이것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역사의식입니다.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때로 우리 마음대로 되지 않고 우리에게 안정이 없고, 우리에게 평안히 없고 그래서 왜 이렇게 세상은 늘 흔들리느냐고 한탄하지만. 그런데 아닙니다, 이 흔들리는 역사 속에서 하나님은 당신의 구원의 역사를 이루십니다.

 

1950년 중국 공산당이 교회를 다 문 닫아 버렸습니다. 중국에 있는 모든 교회를 다 문 닫아 버리고 창고로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1982년에 이제쯤은 교회가 다 없어졌을 거라고 생각하고 자신 만만하게 하도 세계에서 말들을 하니까 교회 문을 열어 보았더니 놀랍게도 6,000만 명의 교인이 있습니다. 지금은 15,000만 명이라고 합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이 세상에 중국처럼 복음의 문이 활짝 열린 곳이 없습니다. 예배당은 마음대로 지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도 이 땡볕에 마당에서 예배를 드리는데 300명이상이 모여 가지고, 목사님도 아닌 어떤 분이 올라가서 설교를 하는데, 두 시간을 합니다. 그래도 한 사람의 동요도 없습니다. 그들의 마음이 얼마나 간절한지요, 이게 중국입니다. 공산주의 40년 동안 무얼 한 거 같습니까? 하나님은 당신의 역사를 이루신 것입니다. 평안할 때, 마음대로 복음 전할 때, 교회가 마음대로 모일 때, 그런 때에 300만 밖에 없었어요. 교인이. 핍박과 환난과 고통, 많은 고난 속에서 하나님은 당신의 역사를 이루신 거예요. 이것이 복음적 역사의식입니다.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귀한 말씀을 주십니다. 13절입니다.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지금은 밤인데 이제 낮이 올 거니까 아침이 다가오니까 낮과 같이 단정히 행하라는 것입니다. 어두운 가운데 있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자들 화장할 때, 밤 화장이 있고 낮 화장이 있다고 합니다. 밤 화장이라는 건 좀 더 야하게 해서 눈도 시커멓게 하고, 작은 눈도 크게 보이게 하고, 깊지 않은 눈도 깊게 만들고 뭐 그렇게 재주를 부립니다. 그런데 이거는 밤에만 통하는 거예요. 촛불을 켜놓고 마주 앉아야 그게 그 거짓말이 통하는 것이지, 이 밤 화장을 가지고 대낮에 나가보세요. 정신 나간 여자라고 그러지 않습니까? 이걸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낮에 할 일이 있고 밤에 할 일이 있습니다. 밤에 할 일을 우리가 그대로 가지고 그 모습으로 낮을 맞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지금은 밤입니다. 그러나 아침이 오고 있으니까 우리는 낮과 같이,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라. 얼마나 귀한 말씀입니까. 지금 빛이 보이질 않습니다. 그러나 빛을 보듯이 밝은 햇빛 앞에 선 것처럼 그렇게 행하라. 그 말입니다.

 

한때 미국의 영적 부흥의 주역이었던 조나단 에드워드 목사님은 다섯 가지를 결심하고 한평생 그것을 지키며 살았습니다. 첫째, 목숨이 붙어 있는 한 전력을 다해 주님의 뜻을 이룰 것이다.

둘째, 다른 사람을 깎아 내리거나 욕되게 하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는다.

셋째, 앙갚음을 하거나 분하다고 해서 복수하려는 마음에서 하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는다.

넷째, 걱정거리나 부끄러움으로 남을 일은 하지 않는다.

젊었을 때 되는대로 살아놓고 나이 많아서 부끄러워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고개를 들 수 없는 사람들, 그 잠깐 잘못하고 잠깐 참지 못해서 먼 훗날에 후회하고 뉘우치고 이러지 말았어야 하는데, 참 괴로운 거 아닙니까?

다섯째, 모든 시간을 창조적이고 건설적인 시간으로 보낸다.

조나단 에드워드 목사님은 절대로 부정적이거나 소극적인 일은 하지 않는다며 그렇게 살았습니다.

 

역사는 윤회가 아닙니다. 되돌아오지 않습니다. 계속 앞으로만 갑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 어두움 속에서 빛을 의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저 미래를 바라보고, 영원한 세계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12절입니다.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어두움의 옷을 벋고 빛의 갑옷을 입자.” 옷을 벗듯이 어두움의 일, 어두움에 관계된 거 다 벗어버립시다. 그리고 빛의 갑옷을 입읍시다. 환한 밝은 빛, 그리스도로 옷 입으라 이렇게 가르칩니다. 그리할 때 아침이 와도 부끄러움이 없을 것입니다. 밝은 빛이 내게 다가와도 부끄러움이 없을 것입니다. 구원이 그 어느 때보다도 가까웠습니다. 구원을 바라보며 새로운 역사의식을 가지고 다시 출발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남신도회 주일입니다. 리 남신도 식구들, 우리들의 소중한 가장입니다. 우리들의 둘도 없는 남편이고 아들이고 아버지입니다. 세상이 버겁지만 힘을 내십시오. 세상이 어두움 가운데 요동쳐도 흔들리지 말고 빛의 갑옷을 입고 우리 정락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십시오. 그러기 위해 기도의 자리에 있으십시오. 말씀의 거울에서 자신을 비추십시오. 그리고 비춰진 그 빛을 따라 가십시오. 주님을 따라 가십시오. 간절히 부탁합니다. 든든한 내 남편, 내 아들, 내 아버지가 되어 주십시오. 힘들어하는 교우들에게 기댈 수 있는 든든한 어깨가 되어 주십시오. 우리도 쉬지 않고 기도하겠습니다.

 

 

 

 

 
CCM - 우리가 사는 세상
 
출처 : 은혜동산 JESUS - KOREA
글쓴이 : 죤.웨슬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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