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지기 자료 - 교회를 성장시키는 제직
교회 성장을 시키는 제직
제직이란 교회 안의 여러 직책을 의미한다. 장로회 헌법에는 ‘제직의 회원은 시무 목사, 장로, 집사, 권사. 전도사, 서리집사로 한다.’ 로 되어 있다. 제직은 하나님의 집인 교회의 일 맡은 청지기이다. 믿는 것이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 바로 믿는 것이 중요한 문제인 것처럼 제직이 되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제직 이 되었는가 더 중요하다. 교인 중 에서 선택받은 제직이 지켜야할 자세는 제직의 직무와 제직이 가져야할 자세로 생각해 보겠습니다.
1. 제직의 직무
가. 장로의 직무
장로는 교회의 택함을 받고 치리회의 회원이 되어 목사와 협력하여 행정과 권징을 관리하며 교회의 신령상 관계를 살피며 교리를 오해하거나 도덕적으로 부패하지 않도록 권면하며, 회개하지 않는자 가 있으면 당회에 보고한다.(헌법 6장39조)
직무를 감당하기위해 다시 세가지로 살펴보면
(1) 교회의 행정과 권징을 관리 하는 직무.
교회의 목적과 의사를 실현시키고 맡겨진 과업을 수행하기 위해서 교회를 다스리는 행정이 있고, 그리스도의 권위와 교회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교회를 처리하는 권징이 있다. (단 목사와 협력하지 않고 장로가 단독으로 행정과 권징을 할 수 없다.)
(2) 교회의 신령한 문제를 살핀다.
장로는 목사와 협력하여 신앙 관계, 즉 영적인 문제를 다스린다. 교회의 신령상 관계를 살펴야할 장로는 신령한 눈이 뜨인 사람이어야 하고 신령한 눈이 있어야 자신을 살피고, 교회를 바로 살필 수 있다.
(3) 교인을 선도 한다.
장로는 교인의 인도자이며 권위자이다. 교인들이 교리를 오해하거나 도덕상으로 부패됨을 막기 위해 지도하며 권면해야 한다.
장로는 지도력과 분별력이 있어야 한다. 장로가 지도력이 없으면 무능해서 교인들을 바르게
인도할 수 없다.
나. 집사의 직무
집사는 교회의선택함을 받고 제직회의 회원이 되며 교회를 봉사하고 헌금을수납하며 구제에 관한일을한다.
(헌법 8장 50조) 직무를 감당하기위해, 세가지로 살펴보면
1. 제직회 회원이 되어 교회를 봉사 한다.
집시는 예배시간에 참석하고 제직회에도 참석해야한다. 집사가 제직회에 참석하여 각부서보
고를 듣고 새로운 계획을 검토하여 교회를 바르게 봉사한다.
2. 헌금을 수납한다.
3. 구제에 관한 일을 한다.
집사는 구제의 일을 맡아보는 자이다. 그러한 직무를 맡은자 가 천재지변이 없는 한 구제의 대상이 되어서는 않된다
다. 권사의 직무
권사는 교회의 택함을 받고 제직회 회원이 되며 교역자를 도와 궁핍한자와 환란 당한 교우를 심방하고 위로하며 교회에 덕을 세우기에 힘쓴다.(헙법 8장 52조) 직무를 잘 감당하기 위해 살펴보면
(1) 교역자를 잘 도와야 한다.
권사는 서리 집사로 오랫동안 봉사한 사람이나 전도사 경력을 가진 사람으로서 여신도 중에도 지도급 인물 중에서 선출되는 일이 많다. 이러한 위치에 있는 권사가 교역자에게 잘 협조하지 않으면 교회 전체에 어려운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2) 심방의 의무를 감당해야 한다.
교우 중에 가난한 자나 환란을 당한 형제를 심방하여 위로하는 일은 권사가 해야 할 직무이다.
심방도 교역자를 도와주기 위한 심방이어야 한다. 권사직은 명예직이거나 장식품이 아니라 봉사하여야 할 직책이다.
(3) 덕망이 있어야 한다.
권사는 교우들의 보호자가 되어야 한다 초신자촵낙심자촵병약자촵실패자촵불우아촵노약자 등 여러 모양의 사람들을 위한 보호자가 될 수 있을 때 권사의 직무인 심방은 효과적인 것이 될 것이다. (安자 를설명)
라. 제직의 언어 생활
하나님은 인간에게 축복으로 말을 주셨다. 그러나 말은 사람에게 유익한 면도 있지만 위험 하고 두려운 면도 많다는 것이다(약 3:8, 시 57:4, 잠 21:23).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고루게 함같이 하라“ (골 4:6)고 하였다.
임진택 목사의 제직 훈련 교재에서 하지 말아야 할 말 다섯 가지와 해야 될 말 다섯 가지를 소개 하겠습니다.
(1) 하지 않아야 할 말 다섯 가지
첫째, 거짓말은 입 밖에도 내지 말라 (엡 4:25), 거짓말은 습관이 되기 쉬운 것이므로 하나님을 위한 말이라고 해도 거짓말은 하지 않아야 한다.
둘째, 남의 험담은 말하지 말라 (엡 5:4). “두루 다니며 말하는 자는 남의 비밀을 누설하나 마음이 신실한 자는 그런 것을 숨기느리라“ (창 11:13) 하였으니 남의 허물을 덮어 주면서 고치도록 권면하는 것이 험담으로 폭로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다.
셋째, 형제에게 이간이 될 말은 하지 말라 (잠 16:18) 제직은 모든 사람으로 화목해 할 책임이 있다 (막 9:50, 살전 5:13). 화목의 사명이 있는 제직은 이간을 붙이는 행위는 주님의 몸에 상처를 내는 행동임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이 미워하고 싫어하는 것 중에 형제 사이를 이간하는 자를 미워하신다 (잠 6:19) 고 하셨다.
넷째, 자기를 자랑하는 말을 하지 말라 (시 12:3). 언어 생활에서 자신을 넘어지게 하는 것중에 한 가지는 자기 자랑이다. “자랑은 악한 것이므로 하나님께서는 자랑하는 혀를 끊으시리라“ (시 12:3) 하였고, 바울은 자랑하는 행위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였다 (롬 1:30).
아무리 충성을 다하는 제직이라도 자기를 잘아하는 입술로 그 공을 소멸해 버리는 사례가 허다하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되 그리스도 예수를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 하지 말라“고 하였다 (빌 3:3).
다섯째, 불평이나 원망하는 말을 하지 말라(시 37:1). 하나님께나 사람에게 불평이나 불만을 토하지 않아야 한다. 심지어 악을 행하는 자로 인하여도 불평하는 것은 죄가 된다 (시 37:1). 우리는 상대방을 불평하고 원망하려면 끝이 없다. 그러므로 상대방을 충분히 이해하려는 교양과 지성이 필요하다.
(2) 해야 할 말 다섯 가지
말조심이란 무조건 함구하는 데에만 있지 않고 경우에 따라서는 바른 말은 꼭 해야 할 때가 있다.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쟁반에 금사과“ (잠 25:11) 라고 하였으니 해야 할 말이 있다.
첫째, “예“와 “아니오“를 분명히 하라. (마 5:37). 형제가 억울하게 송사를 당하거나 모함을 당할 때 옳은 것을 옳다 하고 그른 것을 그르다고 할 수 있어야 한다. “예“와 “아니오“를 분명하게 하려면 용기도 있어야 하지만 진실성도 있어야 한다.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 (잠 18:21) 고 지혜자는 말하였다.
둘째, 참된 것을 말하라 (엡 4:25).
우리 사회에는 거짓말이 너무나 많다. 우리는 불신 사회의 불신 풍조 속에서 살아간다. 서로 속고 속이면서 살아간다. 서로 믿지 못하는 것처럼 불행한 일은 없다.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으로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혜가 됨이니라“ (엡 4:25) 고 바울은 주장하였다.
셋째,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선한 말을 하라 (엡 4:29). 제직은 무엇인가?
가치 있는 일, 보람 있는 일, 의미 있는 일을 하여야 한다. 이러한 일을 하기 위해 제직은 덕스러운 말을 하여야 한다.
이웃의 마음을 괴롭히는 말을 하거나 오해될 말은 삼가야 한다. 덕은 외롭지 않다고 한다. 들어서 흐뭇하고 기분이 상쾌한
말을 하는 제직이 되어야 한다.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엡 4:29).
넷째, 형제를 위로하는 말을 하라 (살전 4:18). 제직은 독한 말로 형제의 마음을 아프게 해서는 안 되고 넘어져 가는 자를 위로와 격려의 말로 붙들어 주어야 한다. 마음이 상한 자나 고난 당한 자를 위로할 뿐 아니라 지옥으로 달려 가는 형제에게 위로가 될 말을 하는 제직이 되어야 한다. 바울은 주님이 다시 오실 것과 죽은 자의 부활을 설명하면서 “여러 말로 서로 위로하라“ (살전 4:18)고 하셨다.
다섯째, 칭찬과 격려의 말을 하라 (산전 5:13). 비평이나 책망할 일이 있어도 먼저 잘 한 것을 칭찬하여 의욕을 일으켜 주는 아량이 필요하다.
2. 제직들이 갖어야할자세.
교회라는 조직은 부족하기 짝이 없는 인간들의 모임이기 때문에 많은 문제점이 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지금도 예수 그리스도의 피값으로 사신 교회를 통해서 일하시고 계신다.
그러므로 우리 제직들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일터가 교회인 줄 믿고 그 맡겨 주신 교회에서 충성하여야 한다.
우리는 충성을 하기 전에 먼저 교회가 어떠한 곳이며 교회의 使命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한다.
무엇을 교회라고 합니까? 하나님을 믿는무리, 회중, 교인들의 공동체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A라는 교회가 교회당도 없이 어느 가정에서 예배를 드린다 할지라도 교회는 존재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제직들은 교회란 건물이 아니라
하나님이 택하신 무리, 즉 공동체라는 생각을 확실히 가져야 한다.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하나님의 일을 하려는데 있다. 교회가 가장 중요하게 여길 것은 예배입니다.
예배가 거룩하고 은혜가 충만하기 위해서 온 교회는 힘써야 한다. 예배를 통해서 교회의 생명력이 더 강해지기 때문이다.
1. 충성하는 제직
고전 4:1-2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 했다. 주인이 관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오직 충성이다.
충성하지 않는 청지기, 놀고 먹는 청지기는 얼마나 보기 싫은가요 마찬 가지로 교회의 일꾼으로 세운 제직들 에게 가장 요구되는 것은 충성입니다. 우리는 충성을 하되 충성의 원칙을 몇 가지로 생각해 보겠습니다.
(1). 작은일에 충성해야 합니다.
눅 19:17 “주인이 이르데 잘하였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 하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 는 말씀을 통해서 보거나, 마 25장의 달란트 비유를 보면 다섯 달란트나 두 달란트를 남긴 자들에게 하나같이 “ 작은 일이 충성하였으매”라고 칭찬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작은 일에 충성하는 일꾼이 하나님의 사업에 이익을 남기는 자가 된다는 교훈이다.
한 달란트 받은 자가 책망을 받은 것은 작은 것이라고 무시하고 충성하지 않은 데 있다.
하나님은 작은 일에 충성하는 자에게 큰 달란트, 큰 직분을 맡기신다. 왜냐하면 작은 일에 충성하지 못하는 사람은 큰 일을 맡겨도 충성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 젊은 청년이 위대한 선교사 로버트 모리손(R. Morrison) 박사를 돕기 위하여 중국에 가기를 원했다.
그 때 선교회에서는 청년에게 말하기를 ‘당신은 선교사로서는 적합치 않다.
모리손 박사의 일꾼으로 갈 생각이 있다면 우리는 당신을 보낼 수 있다’ 라고 했다.
보통 청년 같으면 ‘선교사로 지원한 사람을 잡부 취급을 하다니, 선교회가 사람을 이렇게 무시해도 되는가?’ 라고
하면서 화를 내고 돌아갔을 것이다. 그러나 이 청년은 ‘예, 좋습니다.
선교사의 자격이 못 된다면 심부름꾼으로 가겠습니다. 저는 나무를 팰 수도 있고, 물도 기를 수 있습니다.’ 라고 대답한 후 중국으로 떠났다. 그러나 그는 후에 중국 선교사 중 가장 뛰어난 이가 되었는데 그 분이 바로 `밀른(milne)박사인 것이다. 남이 칭찬하고 목사님이나 당회가 알아주면 열심히 충성하고 알아주지 않으면 충성을 멈추는 자세는 사람을 위한충성 이다.
(2). 은혜라는 심정으로 충성해야 한다.
우리가 충성을 할 때에 가장 금해야 할 일은 무슨 대가를 바라고 충성하는 것이 다. 충성이나 헌금을 하는 것이 더 큰복을 받기 위함이라면 그 목적이 순수하지 못하므로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실 것이 분명하다. 하나님께 받은 바 은혜를 갚으려는 사랑의 빚진 자세로 해야 한다. 그 때에 감격이 있고 새 힘이 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자세로 충성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은혜와 상급을 아끼지 않으실 것이다.
「채필근 목사의 예화집」이런 예화가 소개되고 있다. 어느 일꾼들이 이웃 동네에 있는 부잣집에 가서 며칠 품을 팔았다.
그리고 품삯을 다 받고 내일이면 떠나는 날 밤이 되었다. 모두들 들뜬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었는데 부자 영감이 난데없이 모두를 깨우더니 한다는 소리가 ‘여보게들, 급히 쓸 일이 있으니 노끈 좀 꼬아 주게’ 라는 것이었다.
모두가 불평 하기를 ‘아니, 인색한 영감 같으니, 모두에게 품삯을 다 준 다음에 이러 잡일을 시키다니’ 하면서 하는둥 마는둥 마지못해 노끈을 꼬았으나, 어느 일꾼은 정성껏 꼬았다. 다른 일꾼들은 ‘자네 이 집 사위가 될려고 그렇게 충성하는가?’ 라고 비웃었다.
이틑날 아침에 부자 영감이 큰 그릇에 엽전을 가득 담아 가지고 오더니 그 동안 너무나 수고했다고 하면서 각자 꼰 노끈에 엽전을 꾀어 가라고 하는 것이 었습니다. 게을렀던 일꾼들은 가슴에 치며 후회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그러나 자기 일처럼 정성껏 노끈을 꼬았던 일꾼은 품삯보다 더 많은 액수의 돈을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3). 성령의 은사를 따라 충성해야 한다.
롬 12:4-5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직분을 가진 것이 아니니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라 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교회라는 몸을 주시고 각각 지체에게 성령을 다라 은사를 주셨다.
어는 분은 가르치는 은사를 어느 분은 예언의 은사를, 어느 분은 섬기는 은사를, 어느 분은 권위의 은사를, 어느 분은 다스리는 은사를, 어느 분은 긍휼의 은사를 주셨다고 했다. 그러므로 우리 직분자들은 자기의 능력이나 자기의 지혜로 하지 말고 성령이 주시는 능력을 다라 충성하여야 한다.
배드로와 제사들은 오순절날 성령을 받기 전에 열심히 충성한다고 했지만, 예수님이 십자가 에 돌아가실 때는 모든 제자들이 도망 갔고 예수님의 수제자 이던 베드로 마저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는 비겁쟁이가 되었다. 그러나 그들이 오순절날 성령을 받은 후에는 어떤 반대나 어떠한 박해에도 전혀 굴하지 않고 담대히 충성하는 자가 되었다. 행 4:18-21 “그들을 불러 경계하여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 하니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가로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 관원들이 백성을 인하여 저희를 어떻게 벌할 도리를 찾지 못하고 다시 위협하여 놓아 주었으니 이는 모든 사람이 그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림이러라” 했다. 성령을 따라 일하지 않고 인간의 열심으로나 인간의 주관대로 일하다 보면 하나님이 원하시지 않는 열매를 교회 앞에 나타내게 되는 것이다.
갈 5:I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아무리 인품이 좋고 지식이 뛰어난 직분자 라도 예외일 수는 없다.
『 무디가 주일학교 교사로 일하고 싶었으나 그가 학교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 했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그는 주님을 위해서 너무나 일하고 싶은 나머지 성령의 능력을 달라고 열심히 기도하던 중, 어느날 거리를 걷다가 기도하고 싶은 충동을 이기지 못해서 친구 집에 들어가 기도를 시작했는데, 기도의문이 터지더니 마침내 그에게 성령의 불이 임하는 것을 체험했다.
나중에는 그 불이 너무나 뜨거워서 그만 달라고 할 정도였다고 한다. 하나님은 그러한 무식한 무디를 세계적인 부흥사로 사용하사 수많은 영혼을 구원하도록 역사 하셨던 것이다.
(4). 섬기는 자세로 충성해 야 한다.
예수님은 마 20:28에서 말씀하시기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은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고 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서로 섬기려고 하는 자세를 가질때 교회다운 교회로 성장하게 될 것이다.
성경은 직분자들 에게 권고하기를. 벧전 5:3 “맡기운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오직 양무리의 본이 되라.” 롬 12:16 “서로 마음을 같이 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말라”고 했다. 또한 예수님은 큰 직분을 맡은
자들에게 권고하시기를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마 20:26)라 했다.
(5). 맡은 일에 충성을 다해야 한다.
제직들은 교회를 관리하고 여러 가지로 봉사할 일들이 주어진다. 주차장 관리, 안내와 헌금위원, 식당 봉사, 자모실 관리, 교회학교, 성가대, 청소와 정돈 등등의 일들이 제직들의 손을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맡은 일에 봉사할 때 월권(越權)하려고 해서는 않됩니다.
어느 분은 손, 어느 분은 발, 어느 분은 눈, 어느 분은 입이라는 지체의 역할을 다 주셨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손의 역할을 받은 사람은 손의 일만 잘하면 되지, 자기 일을 제대로 안하면서 발을 보고 이러쿵저러쿵 간섭이나 비판하는 자세는 올바르지 못하다. 특히 성경에서는 성령의 은사에 대해서 그러한 강조를 많이 하고 있다.
고전 12:11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시느니라” 고 했다.
롬 12:6 에서도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라 했다.
성령을 주신 분은 성령이시지, 교회도 당회도 아닙니다.
(6). 전도로 충성해야 한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영혼구원이었다. 요 3:17-18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는 것이니라”고 했다. 또한 승천하시기 전에도 제자들에게 유언으로, 마 28:10-20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고 말씀하셨고, 성령의 구원을 받는 목적도 행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고 하면서 전도의 사명을 주셨다. 그래서 초대교인들은 전도하는 일에 힘썼다. 행 5:42 “저희가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쉬지 아니하니라.” 그러므로 예수님의 지체인 우리도 전도하여 영혼 구원하는 것을 최대의 과업으로 알아야 마땅하다. 특히 우리 제직들은 어느 누구보다도 먼저 전도하는 일로 충성하여야 한다. 전도하지 않는 제직은 열매가 없는 포도나무처럼 주님으로부터 책망을 받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7). 기도로 충성해야 한다.
제직들의 충성직 중에는 기도도 포함되어 있다. 깨어서 교회와 목회자와 성도들을 위해 중보기도할 의무가 있다.
교회의 일이라는 것은 성령의 역사로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기도의 뒷받침이 안될 때에는 사탄의 역사가 틈을 탈 수가 있다.
성경에 보면 사도 바울은 많은 곳에서 중보기도를 요청하고 있다. 롬 I5:30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
고 성령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기도에 나와 힘을 같이하여 나를 위하여 하나님께 빌어”라 했고, 엡 6:19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벌려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 라 했다.
나이가 연로하신 제직들 중에는 나는 힘도 없고 돈도 없고 지혜도 없으므로 충성하기가 힘들다고 낙심을 하곤 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연로하신 제직들 일수록 기도의 충성자가 되어야 한다. 기도의 거룩한 손을 높이 들기를 멈추지 말아야 한다.
출 i7장에 보면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를 지나갈 때 아말렉 족속을 만나서 르비딤이라는 지역에서 전쟁을 하게 되는 장면이 나온다.
여기서 진기한 장면이 나온다. 모세는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지팡이를 높이 들고 있고 여호수아의 군대는 전쟁터에서 싸우게 되는데 모세가 손을 들면 여호수아의 군대가 이기고 모세가 팔에 힘이 없어 손을 내리면 여호수아 군대가 아무리 고군분투해도 지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연로하신 제작들은 모든 충성직을 젊은이들에게 맡기고 저들을 위해 거룩한 손을 들기를 멈추지 말아야 한다.
그때 젊은 충성자들의 모든 사역들이 사탄들이 사탄과의 전투에서 승리의 전투(戰果)를 거두게 될 것이 분명하다.
제직들이여, 맡은 자들의 구할 것은 충성이니, 예배와 맡은 일에 충성하라. 헌금과 전도로 충성하라.
무엇보다도 기도로 충성함으로 온교회가 모든 영적인 전투에서 승리하기를 바랍니다.
8. 청지기 역할을 다해야합니다
교회의 제직은 하나님의 청지기입니다. 성경에서 강조되고 있는 것도 청지기 사상 입니다.
마24:45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사람들 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뇨” 라는 내용이 나오는데 종들 가운데 주인의 집과 재산을 관리하도록 세운 자가 바로 청지기인 것이다.
청지기는 결코 주인이 아니다. 주인의 가정 업무와 사업과 재산을 위탁받아 주인의 뜻을 따라서 감독하고 주인의 대리자로서 관리하는 종에 불과한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청지기로 하나님의 집인 교회, 또는 하나님의 사업과 재산을 맡아서 일하는 사람인 것이다. 우리들이 모든 것은 전부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이 성경의 사상이다. (시 95:5) “바다가 그의 것이라
그가 만드셨고 육지도 그의 손이 지으셨도다” 고 했다. 이러한 하나님의 것들을 지금 우리에게 위탁하시고 관리하라고 명하신 것이다.
잘 관리한다는 것은 맡아서 간직한다는 아주 소극적인 의미가 아니라 그것을 잘 활용하여 이득을 남긴다는 의미가 있는 것이다. 마 25:14-30에 보면 우리가 잘 아는 달란트 비유가 나온다. 주인은 먼 타국으로 떠나면서 세 종에게 각각 그 능력에 따라 한 종에게는 다섯 달란트를, 다른 종에게는 두 달란트를, 그리고 도 다른 종에게는 한 달란트를 맡겼다.
그런데 다섯 달란트나 두달란트를 맡은 자는 그 받은 것으로 바로 가서 장사하여 이득을 남기므로 주인으로보터 후에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는 칭찬을 받는 자가 되었다. 그러나 한 달란트를 받은 자는 그냥 땅에 묻어 둔 채 보관만 하였다가 후에 “이 악하고 게으른 종아” 라는 책망을 받게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모든 것들, 특히 받은 직분을 잘 관리해야 하겠다.
이것은 다만 하나님께로 받은 모든 것을 간직한다는 소극적인 자세가 아니라, 장사꾼이 장사하여 이익을 남기는 것처럼 받은 것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더 많은 열매 더 많은 달란트를 남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
막스 베버의 저서 [기독교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 의하면 서구 문명이 오늘날처럼 우뚝 서게 된 원동력이 기독교의 소명감에 따른 직업정신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기에게 주신 『청지기 사명』을 다하기 위해 맡은 바 자기 직분을 다할 때, 기술과 자본이 축
적되고 서구 자본주의의 발달에 기여했다는 것이다. 서구 기독교인들은 모든 직업을 하나님이 주신 줄 믿었다.
그래서 천직(天職)이라고 했다. 자기가 구두직공이든, 청소원이든, 상인이든, 학자나 의사이든 그 직업을 귀하게 여겼다.
결코 직업의 빈부격차를 따지지 않았다.
18세기초 영국의 유명한 건축가 크리스토퍼 우렌경이 성바울의 대성전을 건립하게 되었다.
한번은 공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을 때에 크리스토퍼 우렌경은 평복을 입고 공사 현장을 혼자서 시찰하게 되었다.
여기저기를 돌아보는 중에 석수(石手)들이 일하는 곳으로 가서 한 석수에게 묻기를 “당신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라고 하자, 그 석수는 아무런 표정 없이 “아침부터 저녘까지 6자 길이 3자 폭의 돌기둥을 깎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우렌경은 다른 석수에게 똑같이 질문하자, 그 석수는 아니꼽다는 눈초리로 힐끗 쳐다보더니 하는 말이 “입에 풀칠하기 위해 하루종일 이 짓을 합니다.” 라고 투덜대었다. 우렌경은 또 다른 곳에 가서 어느 석수에게 똑같은 질문을 하자, 그 석수는 웃는 낯으로 낮 모르는 신사를 바라보면서 “선생님, 보시는 대로 이렇게 부족한 사람이 세계적으로 유명하신 우렌경의 지휘 밑에서 성바울의 성전을 짓는데 동참하게 되었으니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라고 하였다.
아마, 이 석수는 우렌경은 할 수 잇는 한까지 많은 일을 맡겼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사람이 무슨 직업을 가졌든지 천하게 여겨서는 안 된다. 그것은 기독교 정신에 어긋난다.
또한 청지기가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할 일은 자기에게 맡겨진 일에 대해서 반드시 결산하는 날이 온다는 것을 명심하여야 한다.
마 25:14-30 달란트 비유에 보면 “오래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저희와 회계할새” 라고 했다.
그 결과 다섯 달란트나 받은 자는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고 하면서 칭찬과 아울러 배나 더 큰 직책을 받았으나, 한 달란트 받은 자는 말하기를 “주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엇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받으셨나이다.” 라고 하면서 받은 그대로 내어 놓았다.
그러나 주님은 이러한 자를 책망하기를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두었다가 나로 돌아와서 내 본전과 변리를 받게 할 것이니라” 고 한 뒤에 옆에 있는 자들에게 명하기를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어라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데로 내어 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고 했다. 그렇다. 하나니은 아주 공정하신 분으로 청지기에게 맡기신 대로 반드시 결산하시는 분이다. 맡겨 주신 하나님을 위해서 일하지 않고 어리석은 부자처럼 자기의 사역을 위해서 먹고 마시면서 책임을 게을리한 자에게는 책망과 형벌을 반드시 주시는 분이시다.
히 9:27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라 했다.
지금은 죄를 지어도 회개만 하면 용서받을 길이 잇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셔서 백보좌 심판대에 앉으시는 날은 피할 길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직분자들은 다음 성경구절을 언제나 명심하여야 한다. 계 20:11-15 “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자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 데 없더라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 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지금은 자다가 깰 때요. 맡은 일에 충성을 다할 때입다. 예수님은 마지막 때의 징조에 대해서 말씀하신 후 결론적으로 말씀하시기를 마 24:44-51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가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뇨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의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 모든 소유를 저에게 맡기리라 만일 그 악한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동무들을 때리며 술친구들로 더불어 먹고 마시게 되면 생각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간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의 받는 율에 처하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고 했다. 이 구절에서는 두 가지 종류의 직분자가 등장하다.
지혜로운 청지기와 어리석은 청지기이다. 제직 여러분은 어떤 청지기가 되기를 원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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