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신학

[스크랩] 평신도-성직자 개념 재정립

수호천사1 2016. 10. 4. 22:38

평신도-성직자 개념 재정립


 1. 평신도가 없는 한 백성

 

 평신도란 단어는 정의하기 무척 어려운 용어이다. 교회의 어떤 맥락에서 사용되는 지에 따라, 평신도는 기능(말씀 사역과 성례를 집행하지 않는 자), 지위(목사라는 호칭이 붙지 않는자), 처한장소(주로 세상에서 일하는 자), 교육(신학교육을 받지 않은 자), 보수(전임이 아니며 보수를 받지 않는 자), 생활 방식(종교적인 생활이 아니라 세속적인 삶을 영위하는 자)등의 견지에서 규정되는 데, ~하지 않는 자와 같이 보통 부정적인 말로 정의 된다.

  만인제사장직을 비롯한 종교개혁의 풍부한 유산에도 불구하고 개신교도 별로 나을 게 없다. 개신교는 평신도를 안수 받지 않고 보수가 없는 교육받지 않은 자로 규정한다. 오늘날 교회에 들어가면 두 백성을 보게 되는데, 하나는 사역을 받는 평신도 층이고 또 하나는 사역을 베푸는 성직자층이다. 그러나 우리가 신약성경의 세계로 들어가 보면 오직 한 백성, 곧 참 하나님의 백성(라오스) 밖에 없음을 발견하게 된다.

  신약성경의 저자들은 하나님의 백성을 묘사할 때 다음 두가지 용어는 거부했다. 첫째는 헬라어 '라이코스'인데 이는 평범한 무리에 속한 자' 라는 뜻이다. 이 단어는 신약성경에 전혀 사용되지 않고 있다. 두번째 헬라어는 '이디오테스'인데 그의미는 전문가나 전공자에 대비되는 평범한 사람이란 뜻이다. 그런데 사도들 중 그 누구도 그리스도인을 지칭하는 데 이 단어를 사용한 적이 없다. 대신 다른 단어가 사용되고 있다.  '라오스'라는 헬라어는 본래 '군중', '한 국가의 백성'을 의미했다. 그 의미는 '교육받지 못한' 혹은 '평범한'이란 뜻이 아니고 '하나님의 백성' 곧 참으로 비범한 백성이란 뜻이다.

  성경에 의하면, 그리스도의 주되심, 성령의 강림, 종말의 시작과 함께 전 교회가 참 사역체 곧 일주일 내내 성령의 능력으로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선지자와 제사장과 왕의 공동체가 되었다. 모든 사람이 성직자인데, 하나님의 기업으로 존귀케 되고 섬기기 위해 하나님의 임명을 받았다는 의미에서 성직자인 셈이다.모두가 하나님의 백성됨에 뿌리를 둔 정체성을 갖고 있다는 면에서 평신도인 셈이다. 모든 이가 사역을 베푼다. 모든 이가 사역을 받는다. 그것이 바로 교회의 속성이다.

 

  2. 성직자의 출현

 

  1세기는 성직자나 평신도의 구별이 없는 한 백성의 시대였던 데 비해, 2-3세기에는 대체적으로 성직자-평신도가 엄격하게 구분되었다. 초기의 사도들은 이제 기억속으로 사라졌다. 또한 일반 회중 가운데서는 교리에 대한 혼동이 일어났는데, 이단의 위협에 직면하여 안디옥의 이그나티우스(주후50-110년)는 연합의 구심점으로 한명의 주교를 임명할 필요성을 역설했다. 터툴리안의 저술(주후 197-200년)을 보면, 교회 구조상 평신도가 주교, 장로, 집사등 제사장 혹은 교회 내 성직 계층과 구별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평신도였던 오리겐은 평신도 선생이 주교들이 있는 가운데 설교하는 것이 지극히 어렵다는 사실을 당대에 이미 간파했다.

  한편 주후249년 카르타고의 주교 키프리안이 성직자의 일원은 평신도가 아니다라고 분명히 밝혔다. 더욱이 키프리안은 누구든지 주교로부터 분리되는 자는 교회로부터 분리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불과 두세기도 안되어 우리는 공동체적 제사장직에서 별개의 성직자 계급으로 곧 그리스도안에서 백성이 누리는 제사장적 왕적 통치 모두를 대신하는 분리된 계층으로 이동 한 것이다.

  이처럼 성직주의로 전환하게 된 강력한 요인의 하나는 주의 만찬을 둘러싼 대중적인 신앙인데, 즉 주의 만찬을 예수님의 희생 제사가 반복되는 것으로 보는 경향이 점차 강해졌다. 그 제사를 집전하려면 집전자가 특별한 자격을 갖추어야 했다. 신약성경은 누가 그 공동체의 식사를 주관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으며, 집전자의 종교적인 성격보다는 오히려 공동체 내의 상호관계를 분별하는 것을 중시한다(고전11:29)

  4세기에서 16세기에 이르는 동안 성직자-평신도의 구별은 더욱 심화되었다. 평신도는 성직계급에서 맨 바닥에 위치했다.콘스탄티누스대제는 회심(주후312년)후에 제국 전역에 걸쳐 주교를 시민 행정관으로 임명했고, 성직자를 특권층으로 활용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개신교 종교개혁이 만인제사장직을 외쳤음에도 불구하고 평신도를 존귀한 백성의 지위로 되돌려 놓는데까지 미치지는 못했다. 그 몇가지 요인 다음과 같다.

  1) 종교개혁은 교회론보다 구원론에 더 치중했다.

  2) 설교자가 사제를 대치했다. 미사시 가톨릭사제가 차지했던 성직의 지위를 똑같이 갖게 되었다.

  3) 가톨릭의 신학교 체제가 결국에는 채용되었다. 19세기에 발전된 신학교체제가 보편적인 모델이 되어 예비 목사들이 성직의 문화에 적응하게끔 훈련되었다.

  4) 하나님 나라의 사역은 교회사역에 의해 거의 완전히 잠식당했다.

  5) 안수는 거의 전 세계적으로 보수를 받는 교회의 전임사역자에게 주어지는 형편이고, 사회에서 하는 평신도사역을 제대로 공인하는 절차는 전무하다. 대다수의 교단은 여전히 안수를 그리스도인의 소명을 인정하는 것으로 보기보다는 제사장적인 특성을 부여하는 것으로 여긴다.

  6) 적절한 평신도 영성을 가르치거나 촉구한 적이 거의 없었다. 극소수의 예외를 제외하고는 개신교의 영성은 대부분 탁워한 기독교 지도자의 카리스마적, 신비적 체험이나 내면의 삶에 초점을 두었지, 삶 전 영역(먹는 것, 자는 것, 일하는 것, 팔고 사는 것, 노는 것, 성 관계맺는 것, 죽는 것 등)에 걸쳐 보통 그리스도인의 거룩함을 탐구하지 않았다.

 

  교회는 이러한 육신적인 경향을 띤 성직자-평신도 모델에 대항해서 싸워야 하고 각 세대는 그리스도 안에서 사역을 갱신하는 일에 뛰어들어야 한다.

출처 : JESUS - KOREA (은혜동산)
글쓴이 : 임마.누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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