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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신앙(Faith)이란 무엇인가?

수호천사1 2016. 9. 15. 22:44

신앙(Faith)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기독교의 역사상 믿음의 개념에 관한 두 가지의 경향을 찾아볼 수있다.

(1) 신앙은 하나님의 본성(초자연적 진리)이나 과거사(역사적 진리)에 관한 진리를 마음으로 믿고 동의하는 것으로 정의될 수 있다(assensus).

(2) 신앙은 (1)의 내용까지를 포함해서 인간의 전 인격이 기본적으로 어느 곳을 향해 있는 것을 말한다.

신뢰(fiducia), 확신, 충성이 더 옳은 표현이다.

 

첫번째의 다소 지성주의적인 모델은, 신앙을 구원을 향한 첫번째 단계로 보고 그 구원을 완성시키기 위하여 소망과 사랑 등의 부가적인 덕목들을 요구한다.

두번째의 의지론적인 모델은 인간의 모든 행동과 생각을 그의 기본적 지향성의 표현으로 보기 때문에, 신앙 하나가 결정적이고 적당한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결정해 준다고 여겼다.

 

개략적으로 말해서 개신교와 로마 가톨릭, 그리고 개신교회들 사이의 불일치가 이 두 서로 다른 신앙의 개념에 의하여 설명될 수 있다.

대체적으로 초대 교회의 신학자들은 신앙을 지성주의적으로, 즉 전통을 수납하는 것이나 하나님에 관한 영원한 진리를 이해하는 것으로 간주하려는 경향이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전 기독교인의 삶을 그것에 한정시켰다는 말은 아니다.

 

반대로, 그들은 그 지성적인 믿음이 구원과 동일시 될 수 없고, 그 믿음에 신비적 경험이나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Clement of Alexandria)에서처럼 고도의 지적 직관, 혹은 그노시스가 덧붙여져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어거스틴(St. Augustine)은 의지를 강조함으로써 이 견해를 근본적으로 수정하였으나, 그도 역시 때때로 신앙을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더 높은 경지에 도달하게 하는 첫번째의 단계라고 간주하곤 하였다.

 

좀더 지성주의적인 신앙의 개념 중 가장 인상적인 신학 체계는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에 의하여 세워졌고, 그의 가르침은 로마 가톨릭의 기본적인 교리를 제공하였다.

 

로마 가톨릭의 공식적인 주장에 따르면, 신앙은 초자연적인 진리나 도그마를 그것의 신적 권위 때문에 동의하는 지적인 행위를 말한다.

의지가 지식을 움직임에도 불구하고(그렇기 때문에 아퀴나스가 신앙을 단순한 '지적 행위'라고 말했다고 하는 것은 옳지 않다) 신뢰나 확신(fiducia)은 신적 권위를 지향하고 있지 않고, 따라서 그것들이 신앙 자체의 행위를 구성하고 있다고는 말할 수 없다.

신뢰나 확신의 요소는 신앙에 앞서는 동기가 될 뿐이다.

이 이유 때문에 로마 가톨릭에서는 암시적 신앙(fides implicita)의 개념이 발달하였다.

즉, 지적으로 세련되지 못한 무지한 사람이라도, 또한 진리가 알려지거나 이해되지 못했다 할지라도, 권위에 근거한 초자연적인 진리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상태를 말한다.

로마 가톨릭은, 신앙만으로는 하나님과 인간을 완전하게 연합시키지 못하고, 두 개의 또다른 초자연적인 덕인 소망과 사랑이 보충적으로 필요하다고 분명히 말한다.

 

루터(Luther)는 신앙을 지적 동의에 한정시키는 것을 반대하고, 그리스도안에서 계시된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는 전 인격적인 응답으로 보았다.

신앙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완전히 의뢰하는 것을 의미하므로 소망과 사랑을 포함한다.

신앙은 마음과 의지의 기본적인 지향성이므로 신앙의 대상은 초자연적인 진리가 아니라, 하나님 자신과 그의 신실하심이다.

그래서 루터는 성육신의 교리를 믿는 것과, 그리스도의 임재로부터 오는 유익을 신뢰하는 것과를 자주 대조시켰다.

루터 자신은 정통적인 교리를 받아들였지만, 그의 논리에 따르면,교리는 신앙의 대상이 아니라 신앙을 표현하기 위한 하나의 시도이다.

 

이러한 언명은 후대의 개신교에 가서 극단적으로 발전하여 정통 교리도 하나님의 자비에 대한 신앙을 말하기 위한 역사적 제약성을 가진 상대적인 시도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정통 신조들도 그 시대에만 상대적으로 옳은 것이기 때문에,다른 시대에는 진정한 이해나 신앙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칼빈(Calvin)도 루터와 비슷한 견해를 가졌으나, 그의 지식(cognitio)으로서의 신앙에 대한 강조 때문에 루터보다는 더 지성주의적이 되었다.

그러나 칼빈의 '지식'이라는 단어의 사용을 조사해 보면, 그것이 하나님의 형이상학적 본성(본질)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호의에 대한 지식, 혹은 "그의 본성과 일치하는 것"에 대한 지식을 가리킴을 알 수 있다.

 

계속되는 로마 가톨릭 신학자들과의 토론 과정에서 16, 17세기의 개신교 스콜라주의 신학자들은 다시금 신앙을 특정한 역사적 진리와 교리에 대한 동의와 동일시하게 된다.

비록 이 진리들이 그것에 동의하는 사람들에게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을 확신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덧붙이긴 했지만, 그러나 역시 강조점은 올바른 교리쪽에 주어졌고, 많은 개신교의 목회자들과 복음주의자들이이러한 강조점의 차이에 반대하였다. 그 반대자들은 교리의 종교가 아닌 "마음의 종교"에 우선권을 두었다.

 

과학의 영향, 이에 따르는 성겨의 문자적 정확성에 대한 의심, 형이상학적 사변에 대한 확신의 결여 등으로 말미암아 교리를 믿는 것과 그리스도의 유익을 신뢰하는 것의 구분이 새롭게 강조되기 시작하였다.

그 구분은 너무 날카로워서 정통 기독교의 교리를 믿는 것 대신에 종교적 체험을 강조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예를 들어 슐라이어마허(Schleiermacher)는, 교리들은 신앙의 대상도 될수 없고, 계시로부터 나온 사변적 추론도 될 수 없고, 단지 종교적 경험이 말로 표현된 것일 뿐이라고 하였다.

 

리츨(Albrecht Ritschl)은 신앙과 교리를 동일시하는 태도를 로마 가톨릭의 본질이라고 하였다.

 

헤르만(Wilelm Herrmann)은 개신교 정통주의와 로마 가톨릭주의와의 단 한가지 다른 점은, 후자는 성경과 전통을 믿을 것을 요구하고, 전자는 성경만 믿을 것을 요구한다는 것이라고 비꼬는 투로 말했다.

그러므로 그러한 개신교 정통주의는 '반쪽' 가톨릭 주의이다.

 

신개혁주의 신학자들이 많은 점에서 개신교 자유주의를 거부했지만, 신앙의 개념에 있어서 지성주의로 돌아간 것은 아니다.

거의 모든 신학자들이 신앙의 대상을 하나님에 관한 교리로 보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로 보았다.

그러나,그들은 감정이나 종교적 체험을 강조하지 않고 '만남', '나타남', '실존적 진리'와 같은 용어들을 사용하였다.

그들에게 있어서의 교리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하나님과의 만남 속에 내포되어 있는 것을 이해할 수 있게 표현하려는 시도로 간주되었다.

이에 대한 중요한 예외는, 로마 가톨릭의 신앙 개념은 반대하지만 객관적인 지식이 계시 안에 주어져 있다고 주장하는 바르트(Karl Barth)이다.

출처 : 은혜동산 JESUS - KOREA
글쓴이 : 죤.웨슬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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