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

[스크랩] 예배순서에 대한 기초 이해

수호천사1 2016. 8. 8. 16:21

예배순서에 대한 기초 이해

 

 

기독교의 예배는 필연코 예배를 드리는 사람의 마음과 정성이 모아진 행위여야 한다. 그럴때만이 예배의 재반행위는 방관적인 자세를 벗어나 적극적인 자세로 이어질 수 있게 된다. 그러기에 천주교의 경우는 성도들에게 「미사해설」과 같은 책자를 읽히도록 하여 예배여전의 소중함을 알리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개신교는 설교를 듣는 예배로서 모두를 끝낼 뿐 자신이 드리는 예배의 진정한 의미의 파악에는 너무나 무관심한 현실이다. 그러나 순서 하나하나에 부여된 예배신학적 깊은 뜻의 이해는 주일마다 드리는 성도들에게는 실로 중요한 일이다. 이제 이토록 중요한 예배의 순서를 아주 간략하게 서술하여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려는 인도자들에게 조금의 도움이라도 드리고저 한다. 여기서는 성만찬 성례전이 생략된 일반 예배의 순서만을 위한 설명으로 한정한다.

 


    묵도

 
  묵도(黙禱)는 침묵의 기도를 의미한 것으로서 기독교 예배에서는 예배중간에 조용한 기도의 부분으로 간혹 사용은 되기도 한 부분이다. 그러나 예배를 시작하면서 갖는 묵도는 한국교회에서만 보는 생소한 부분이다. 여기서는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마음과 정신을 정리하고 예배의 대상인 하나님과의 만남을 희구하는 기도를 드리는 것이 적절하다.

  그러나 언제인가 한국의 교회도 오르간 전주를 통하여 연주되는 성곡들을 조용히 경청하면서 세상의 삶으로 부터 헝클어진 마음을 정리하고 새로운 정신을 가다듬게 되는 예배를 위한 준비가 있어져야 할 것이다.

 


 예배의 선언

 

  예배의 전통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묵도로서 예배의 시작을 가져오는 것 보다는 오늘의 예배를 인도하는 인도자가 다음과 같은 말로 예배의 시작을 선언함이 훨씬더 효과적이고 타당하다고 본다.

  “이제 우리의 마음과 뜻과 정성을 모두어 우리의 하나님께  00예배를 시작하겠습니다.”

 

 성가대 응답송

 

   위와 같은 예배의 선언이 시작되면 묵도의 행위에 익숙해진 한국의 회중들은 마음을 준비하기 시작하게 된다. 그 때 성가대가 바로 응답송 을 불러 예배로 마음들이 모아지도록 함은 매우 효과적인 출발이라고 본다.

  

 예배의 부름

 

  성경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회중들을 예배 가운데 임하게 하는 순서로서 예배의 주도권이 인간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소유하고 계심을 알리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예배를 드리는 분위기를 형성하는 순서가 바로 예배의 부름이다. 그러기에 여기서는 예배 인도자가 자신의 말을 사용하지 않고 성경에 기록되어진 하나님의 말씀을 사용한다. 그때에 회중들은 엄숙한 말씀 앞에 머리를 숙이면서 하나님 앞에 자신이 가져야 할 자세를 가다듬게 된다.

 

   기원

 
  인도자가 드리는 기원이란 짧은 기도로서 오늘의 예배 속에 성령으로 임제하신 하나님의 권능과 현존으로 예배애 임하는 성도들을 성결하게 해 달라는 것과 우리의 부족한 백성들이 드리는 예배를 통하여 영광을 받아달라는 매우 짧은 기도이다. 이러한 기도는 일반기도와는 그 성격이 달라서 기원(Invocation)이라 이름한다.

  이 기원은 참회나 간구의 성격이 아님을 유의해야 한다. 오직 성령님의 역사로 정결하게 해달라는 기원과 드리고저 하는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의 높으신 경륜을 감사하고 성령의 임제 속에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기만을 구하는 것이 바로 기원의 내용이고 성격이어야 한다.

 

 찬양과 경배의 찬송

 

  예배의 부름을 통하여 예배를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라는 준엄한 하나님의 명령 앞에 모두가 일어서서 응답하고 그 하나님을 찬양하는 순서가 곧 찬양의 경배와 찬양의 찬송이다. 이 찬송에 담겨진 뜻은 죄인된 자신들을 거룩한 존전에 예배하도록 허락하시고 불러주신 하나님을 경배하면서 찬양으로 응답하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이 부분의 찬송은 주로 경배와 찬양의 뜻이 담긴 예배찬송을 부르게 된다. 현제 사용하고 있는 찬송가의 경우 59장까지가 여기에 해당된다고 하겠다.

 

   시편교독

 
  신약시대를 비롯하여 초대교회의 예배에서는 오늘과 같은 찬송이 없 었다. 그들은 그들의 보편적인 운률을 사용하여 시편을 찬송으로 사용하였다. 시편은 바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고 결단을 다짐하는 찬송으로 훌륭하게 사용하여 왔다. 그러나 16세기에 이르러 루터를 기점으로하여 18세기의 웨슬리와 19세기의 생키에 의하여 현대의 찬송이 속속 개발되고 회중들은 시편송을 외면하게 되었다.

 이러한 결과는 기독교 예배의 전통에 자리잡았던 시편의 소중함을 간직해야 한다는 운동이 일게 되었고 예배에서 시편교독으로 오늘까지 있게 되었다.

 

   고백의 기도

 

  이 순서는 최근에 우리의 교회에 도입되기 시작한 부분으로서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여기서는 하나님의 거룩한 존전에 서 있는 실존으로서 부끄러운 자아의 모습을 내 놓고 거기에 하나님의 용서와 임재를 간구하고 예배하는 공동체의 용서 받아야 할 고백을 함께 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무리들이 죄악된 사연을 그대로 품고 있을 때 거룩한 하나님과의 만남은 어려워 진다는 사실을 안다면 이 기도의 의미와 소중함은 더욱 크다고 하겠다.

 

   사함의 확신

 

   사함의 확신은 고백의 기도 다음에 반듯이 있어져야 할 순서로서 회중들이 고백한 죄가 하나님의 말씀(성경)으로 용서함 받은 것을 확신하는 것이다. 이 사함의 확신은 목사가 성경말씀에  의하여 회중들이 하나님으로 부터 용서받은 존재들임을 알려주는 부분이다. 즉 하나님은 언제나 죄를 고백하는 그의 자녀들을 외면하거나 멸망케 하신 적이 없는 분이심을 회중들에게 알려주는 것이다.

 

   영광송

 

   하나님이 용서하신다는 말씀을 듣는 회중들이 감격하여 모두가 일어서서 용서받은 기쁨 속에 성부, 성자, 성령되신 하나님을 창양하면서 모든 영광송을 하나님께 돌리는 회중들의 감사와 기쁨의 표현이 담긴 것이다. 이 순서는 개혁자들이 집례했던 예배에서 부터 가장 엄숙하고 가장 진지한 자세로 불러진 순서이다.

 

중재의 기도

 
   일명 목회기도라고도 불리는 이 기도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탁받아 섬기고 살피는 책임을 가진 목양자로서 그들이 살고 있는 정치, 경제, 문화적 상황에서 발생된 죄와 모순을 고하고 용서를 구함은 물론, 나라와 민족, 그리고 자신이 보살핀 회중이 각종상처와 질병과 가난과 억눌림으로 부터의 해방을 간구하는 기도이다. 그러나 한국의 교회에서는 대표 기도라는 이름으로 장노들이 오래전 부터 이 기도를 드리고 있다.

 

   말씀 봉독

 
 지금까지 다루어 온 예전의 순서는 모두가 하나님께 드리는 인간의 찬양, 감사, 경외와 고백의 행위들이었다. 이제 여기서부터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응답해 주 시는 순서이다. 하나님이 인간들에게 예배를 통하여 가장 분명하고 풍부하게 응답해 주시는 것은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이다. 그러기 때문에 개혁 당 시부터 개신교 예배가 가장 강조한 대목은 바로 이 말씀의 선포였으며 이 전통은 지금도 우리의 예배 가운데 가장 핵심적인 부분으로서 지켜지고 있다.역사적으로 이 순서는 참으로 소중한 부분이었으며 가 장 엄숙한 분위기를 요구했던 부분이기도 했다.  외국의 예식서에서는 그 시작과 끝을 다음과 같이 하고 있다.

시작--“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은 요한복응 3장 1절에서 16절 까지의 말씀입니다. (찾는 시간을 준다음) 이제 봉독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십시오.”

(끝)“하나님께서 봉독한 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은혜주시기를 원합니다.”

 

   성가대의 찬양

 

  성경에  최초로 나타난 성가대는 언약궤가 예루살렘으로 옮겨오고 성전 예배를 가졌을 때, 다윗이 성전에서 노래만을 하도록 사명을 주는 데서부터 그 기원을 잡을 수 있다. 오늘의 예배 가운데서 성가대가 맡은 역할은 대단히 중요하다.  그 중에서도 설 교 전에 부르는 찬양은 하나님을 향하여 가장 아름다운 경외를 드리는 부분이며 예배자들의 마음을 하나님 앞에 함께 끌고가는 헌신의 경험을 주는 사명을 감당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예배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할 수 있도록 마음의 그릇 을 준비시키는 역할까지도 수행하는 것이다.

 
설교 전 기도

 

   설교 전에 드리는 이 기도(the prayer of illumination)의 내용은 말씀을 선포하기 전 성령께서 임재하시어 우리의 마음을 열어 주시고 그 말씀을 선포하기 전  우리의 마음을 열어 주시고 그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그 마음에 순종하도록 해달라는 기도인 것이다.  이 기도는 그날에 적당한 내용의 기도문을 사용하기도  하며 설교자가 기도할 수도 있다.  또는 회중들이 순서지에 기록된 기도를 함께 읽는 방법도 있다.  그러나 많은 설교자들은 대체로 설교를 시작하기 직전에 성령의 손에 말씀의 사역과 결과를 부탁하는 기도를 잠깐 동안 드리는 것이 보통이다.

 
   설교

 

 설교란 예배 가운데서 봉독한 하나님의 말씀을 회중들에게 다시 그들의 언어로  해석해 주고 그들의 생활 속에 구체적으로 현장화시키는 것을 주 목적으로 해 왔다.  그래서 설교는 기록되어진 하나님 말씀의 선포이며 해석이며 적용이라는 정의를 내리게 된다. 그러나 그 말씀이 설교자를 통하여 나오기에 거기에는 설교자의 인간적인 요소가 적지 않게 내포된다.  그러나 설교 가운데 나타난 설교자의 인간적인 요소를 스스로 배제하고 하나님이 그 설교 속에서 자신에게 주시는 메시지의 경청과 함께 내리는 결단이 설교에 대한 바른 이해이다.

 

   설교후 기도

 

  설교전 기도와 설교후 기도는 장로교의 오랜 전통에 속한다. 스콧트랜드 교회의 예식서에는 매우 소중하게  이 부분을 다루고 있다. 설교후의 기도는 성령님의 역사 안에서 뿌려진 말씀의 씨앗이 성령님의 역사 안에서 자라 결실을 맺게 해달라는 기도이다. 때로는 설교의 내용을 다시 반복하고 있으나 이러한 경우는 가장 간결한 언어로 설교의 반복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감사와 응답의 찬송

 
  하나님의 말씀이 설교자를 통하여 선포된 다음에 예배자들은 즉각적인 감사의 응답을 표현하는 것이 바로 이 순서이다. 원래 개혁자들의 예배에서는 구제 헌금을 함으로써 최소한의 감사와 응답의 반응을보인 적이 있다.  그러나 19세기 이후 찬송이 예배의 중요한 부분으로 등장된 이래찬송을 부름으로써 계시에 대한 응답을 하는 순서가 많이 등장되고있다.  하나님께서 내려 주시는 은총에 감사할 줄 모르는 인간들이 아니라 언제나 말씀 앞에 지체없는 감사의 표현을 하는 예배자임을 보이는 순서로써 진행되어야 한다.

 
   봉헌

  

  봉헌의 순서는 기독교 에전 가운데 중요한 의미를 갖는 부분이다.  오늘의 예배 속에 봉헌이란 단순히 돈을 바치는 행위를 지칭하는 데 그치고 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볼 때 이 봉헌의 의미는 '예물의 드림'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원칙적으로하나님의 은총 앞에 성도들이 드리는 응답적 행위를 총칭하는 말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될 때 정성을 다하여 경청한 무리들이 스스로 우러나는 감사의 응답으 로 내어놓은 모든 마음과 정성의 표현인 것이다.

 

   오늘의 위탁

 
  이 부분은 회중들을 세상 한 가운데로 파송하면서 주는 마지막 부탁이다. 여기서의 공식 문장은 다음과 같다. “이제 세상으로 나아가십시오. 그리스도안에서 서로 사랑하고 섬기면서 한 주간을 주의 자녀로 승리하십시오” 그러나 이 문장만을 매주일 계속할 때 그 반복으로부터 따라오는 비 효과성 때문에 많은 예배의 인도자들은 오늘의 설교내용을 한두문장으로 다시 요약하여서 주면서 주의 백성으로서의 한 주간의 삶을 부탁한다.

 
    강복선언 (Benediction)

 

   강복선언의  근원은 구약에서부터 시작되어 오랜 역사성을 가지고 있는 예배의  순서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의 시조로 아브라함을 선택한 순간에서부터자신이 사랑하는 자에게 축복할 때 그 응답으로서 복을 내려 주실 것(降福)을 약속하셨다(창 12:3).이러한 복을 빌어 주는 공식 행위는 제사장의 고유한 권한이며 그들의 특유한 의무였다. 이 축도는 하나님이 예배드리는 무리들에게 복을 내려 주심을 선언(降福宣言)하는 예배의 절정을 이루는 부분이다.

   칼빈을 비롯한 개혁교회의 예배에서는 대부분 민수기 6장 24절의 아론의 축도를 사용하였고 그 지역에서는 지금도 이 축도를 사용하고 있다.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그러나 미국의 침례교와 장로교의 일부에서는 고후 13장 13절의 바울의 축도를 애용하는 편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 (성도들)에게 함께 있을 지어다.

 

출처 : 은혜동산 JESUS - KOREA
글쓴이 : 거리.천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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