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

[스크랩] 찬양의 참 목적성을 알아야 바른 찬양을 할수 있다

수호천사1 2016. 8. 8. 16:17

찬양의 참 목적성을 알아야 바른 찬양을 할수 있다

 

 

중국에 가서 만리장성에 올라가 보았다. 우선 그 규모에 놀랐다. 말 그대로 산꼭대기에 큰 돌들로 만리나 되는 성을 쌓아놓은 것이다. 이것을 쌓았을 때 중국은 엄청난 국방의 힘을 느꼈을 것이요, 변방 국가들에게는 전쟁의 의지를 꺾는 큰 위협이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만리장성은 그 목적성이 완전 소멸되었다. 대단했던 위용들이 한낱 구경거리요, 오락거리로 변해버린 현장을 보면서 많은 생각들을 하게 했다. 이 성을 쌓기 위해 얼마나 많은 예산과 시간이 투자되었으며, 또 국민들의 땀과 생명을 쏟아 부었을까? 그로 인해 무수한 개인과 가정들이 받은 고통은 어떠했을까? 이제 그 거창했던 목적들이 사라진 지금의 모습은 너무나 처량하고, 초라해 보였다. 이렇게 될 줄은 누구도 예상치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 음악도 참 목적성을 놓치면 마치도 시효가 지난 만리장성 같은 아주 하찮은 가치밖에는 없다. 그러면 원래의 목적은 사라지고 저급한 용도들로 쓰이다가 효용 가치를 완전히 잃게 되면, 그때는 오히려 사단이 파 놓은 위험천만한 함정으로 말려들게 될 것이다. 그것이 영적 문제요, 정신문제들이다. 사실 세상 음악은 완전 목적성을 잃고 사람들에게 많은 고통을 주고 있다. 왜 아름다운 음악이 동성애를 찬양하고, 노골적으로 성(Sex)을 부추겨 세상 분위기를 흐리며, 폭력과 마약을 조장하는 노래들을 부를까? 그래서 청소년들의 타락과 범죄를 선동하여 사회가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을 만큼 심각한 상태가 되지 않았나?

이제는 세상 음악의 막강한 힘이 흑암문화를 주도할 만큼 분위기기 조성되고 말았다. 가수 한명이 뜨면 세계의 공항이 온통 마비되며 청소년들은 물론, 아주머니, 할머니들까지 들뜨게 하여 가정 전체가 흔들리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이것은 숨겨진 음악 전문가인 사단이 가진 또 하나의 거짓된 목적이다.

음악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하나님을 만나고 참 축복을 누리는 예배적 요소로 허락하신 것이다(사43:21, 시22:25) 세상 음악이 그렇게 성장하는 옛 교회는 성경적 찬양의 참 목적을 회복하지 못하고 오히려 세상 것을 흉내 내다가 교회 찬양마저도 총체적 위기에 빠져있는 현실이다. 그래서 찬양의 응답을 간증해야할 찬양자들이 축복은커녕, 세상 음악인들 못지않게 정신적, 가정적, 육신적 고통에 시달리는 자들이 많다. 이제라도 빨리 찬양의 참 능력과 축복을 회복해야 한다. 찬양은 놀이도, 오락도 아니며, 더더구나 음악도 아니다. 하나님과 만나는 문이다. 축복의 문을 부수어서는 절대 안 된다.

 

1. 교회 안에서 쓰여지는 잘못된 찬양의 용도들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일이 바로 하나님께 나아가 예배하는 일이다. 거기에서 인간은 모든 소원을 누리게 된다(시103:5). 그런데 예배의 핵심은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는 일이다. 그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드리는 방법이 바로 찬양이라 하겠다(시29:2). 그때 하나님은 은혜로 성취 될 말씀을 주신다(시49:4). 그래서 예배의 순서를 보아도 앞부분에서는 찬양 순서가 집중되어 있음을 볼 수 있지 않는가? 그런데 예배 때 중심적인 요소로 하나님께 드려져야 할 찬양이 예배순서 속에 시녀 노릇을 하고 사실이다.

예배의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한다든지, 혹은 예배의 진행을 돕기 위한 일에 쓰여지는 실정이다. 그래서 “준비찬송”, “헌금찬송”, “예배를 돕는 찬양대” 같은 성경에는 없는 단어들을 사용하고 있다. 마치도 찬양대는 예배를 돕는 기관이요, 찬양은 예배를 위한 준비 운동이나, 예비동작 쯤으로 생각하고 있다.

또 그런 표현은 않지만 자리 정돈용으로의 찬양, 시간 떼우기용 찬양, 강사를 기다리기 위한 찬양…. 더구나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감히 점수를 매겨 상주는 일, 찬양을 팔아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하는…. 이렇게 불리워진 찬양이 이제는 후대들에게 그대로 답습이 되어 가장 엄숙하고, 두렵고 떨리는 마음, 그러나 진심으로 감사와 기쁨으로 찬양해야 할 시간에, 그래서 최고의 영광과 존귀를 드리고, 최상의 깊은 은혜와 치유를 받을 시간에, 가장 엄숙하지 못하고 너무 버릇없이 자기 멋대로 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는…. 그래서 사29:13절 말씀대로 입으로는 가까이 하고, 입술로는 존경한다고 하나 마음은 아니라고…. 그래서 찬양도 잃고 지혜와 명철까지 빼앗기게 된 것이다(사29:14).

보라. 찬양의 참 목적을 모르니 젊은이들이 세상적 음악 기준가지고 자신의 끼를 발산하는 음악으로, 또는 세상 가수들을 모방한 춤과 창법으로 흑암 문화의 분위기를 조성하면서 자신을 드러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참으로 찬양의 춘추전국시대에 살고 있는 형국이라 하겠다. 그래서 성경에는 나와 있는 찬양의 축복과 역사들이 사라져버렸다. 참으로 메아리 없는 언어유희에 빠져버린 것이다.

 

2. 음악 학자들이 보는 세상 음악의 목적성

진화론이라는 거짓된 학문을 만들어 인간의 기원을 설명하는 학자들이 음악에 대해서만은 진화론적 기원을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인간 존재가 먼저인지, 음악이 먼저인지도 밝히지 못한다. 그러나 음악은 인간의 중요한 일에는 빠짐없이 사용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예를 들어 결혼식, 장례식, 혹은 신을 찾는 일에는 어김없이 음악을 쓴다는 것이다. 뿐 아니라 행복, 사랑, 자기 존재의 과시 같은 가치 있는 일에도 사용한다. 또 음악을 들으면 이해 못할 위로와 평안을 얻고, 질병도 치료하고…. 그래서 음악은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해결사와 같아서 인류 역사의 시작과 더불어 인간은 항상 음악을 끼고 살아왔다고 했다.

그러나 음악의 정체성, 목적성은 잘 모르겠다는 것이 세상 음악학자들의 공통된 견해이다. 바른 음악의 목적성을 발견치 못했기에 지금까지 나타난 모든 음악은 목적성이 작은 음악들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그래서 목적성이 분명한 음악을 만들 때까지 음악은 변화무쌍한 길을 가게 될 것인데 예수님 재림하실 때 까지는 불가능하다. 속이는 자, 사단이 주도하기 때문이다. 참 목적성을 발견치 못했다는 증거로 세상 음악은 “유행가”, “유행음악”이란 이름표를 뗄 수가 없다. 명곡(애매모호성이 많은 음악)이라 부르는 클래식을 비롯해, 팝송, 록 음악 같은 것들도 하나님의 소원이 아닌, 사람들의 욕구를 충족시키려다 보니, 시대 따라, 상황 따라 변할 수 밖에 없다.

 

사단은 사람들의 욕구를 잘 채워주기에 세상 음악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며 그로 인해 열광도 하고 기절까지 한다. 얼마 전 우리나라 부산에서 열린 APEC 회담 때도 세계적 정상들이 자신의 손녀 뻘 되는 어린 소녀의 음악을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감상하지 않던가?

 

유명한 음악 학자인 소피드 링커(Sophie Drinker)는 그의 저서 “음악과 여성의 역사”란 책에서 음악을 “마술적인 노래”라고 표현했다. 마술적인 노래(Incantation)로 표현 된 단어에서 “Cantaion”은 라틴어 칸타레(Cantare)는 “노래”라는 의미요, 앞에 붙은 “In”은 안으로라는 뜻이기에 문자대로 해석하면 “노래를 통해 안으로 들어간다”는 의미라고 해석했다. 음악을 통해 어떤 세계로 들어간다는 말이다.

그래서 신비하고도 마술 같은 언어며 문제를 해결하는 특효약 같은 것이라고 했다. 물론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의 음악은 당연히 자신들의 영적 아버지인 사단을 위한 것이며 흑암세계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사14:12-20) 어디로 들어간다는 사실까지는 알았지만 어딘지는 영원히 모르게 될 것이며, 음악의 참 목적을 모르면 그저 신비로운 힘에 속아 사단이 파 놓은 사망의 함정에 영원히 잡히게 될 것이다.

 

3. 음악의 참 목적- 교회가 회복할 참 찬양

신대원에 다닐 때 개척교회를 하던 친구들이 농담 삼아 그런 얘기를 가끔 했다. 예배드릴 때 찬양대가 없으면, 외국의 유명한 오케스트라가 반주를 하고 훌륭한 성악가들이 찬양한 그런 테이프로 찬양을 대신하면 어떠하겠느냐고…. 시원찮은 찬양대보다는 황홀하도록 연주한 찬양이 예배와 하나님께는 잘 어울리지 않겠느냐고? 그렇다. 절간에서 목탁을 치며 염불하는 예불이라면 24시간 녹음기로 대신해도 좋을 것이다. 어차피 듣지 못하는 우상에게 하는 짓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귀를 지으신 자시요, 눈을 지으신 분으로 우리를 세밀히 살피시는 하나님이시기에 기능보다는 중심이 중요하다 하겠다(시94:9) 세상 음악교육 밖에는 더 이상 찬양에 대한 지식이 없기에 성도들은 일평생 세상 음악의 법에 매여 찬양하다가 인생을 끝낸다. 찬양 - 그까짓 것 적당히 불러재끼면 되지 뭐…. 그런 자들은! 전도가 뭐 대수냐? 밖에 나가서 불신자들 끌어오면 되는 것 아니냐고…. 그 말과 똑 같다. 그래서 찬양이 뭔지도 모르고 대강 부르고 있다. 그런 성도에게 찬양의 전문가인 사단은 속이기가 얼마나 쉽겠는가?

찬양은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는 문이며(시100:4) 하나님의 별명이기도 하다.(렘17:4, 시22:26) 찬양은 하나님께 드리는 최상의 제사요, 제물이다.(히13:15, 시69:30-31) 인간은 예배만 바로 드리면 모든 축복을 누릴 수 있다(시84:10). 우리를 창조하신 분, 창3장에서 건져내신 구원의 하나님께 최고의 영광과 존귀를 드리는데 그 최선의 방법이 바로 찬양이라는 사실이다.(시148편) 또 하나님께 참 복을 받은 자들이 그 축복을 누리는 최상의 방법도 찬양이라고 했다.(시편) 이제 우리는 왜?, 어떻게? 찬양해야 할까 고민할 시간표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시작해야 한다. 창조목적이 찬양이기 때문에….

 

박지회 목사(찬양선교국장 · 서울 할렐루야교회 담임)

 

                         

출처 : 은혜동산 JESUS -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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