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이드 존스는 항상 본문의 문맥을 잘 살펴서 해석한다.
그는 마치 세밀화를 그리는 화가처럼 아주 작은 부분까지 섬세하게 표현한다.
그렇다고 해서 작은 부분에만 빠져들지 않고 성경 전체의 흐름과 맥락을 따라 본문을 해석한다.
그는 마치 한 우물을 깊이 파고들어 마침내 그 밑에 성경 전체를 관통하여 흐르는 지하수를 퍼 올리는 사람과 같다.
로이드 존스의 강해 설교가 탁월한 이유이다.
니고데모와 같이 독실한 종교인과 참된 그리스도인은 비슷한 듯하지만 분명한 차이가 있다.
독실한 종교인과 달리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자신이 속한 세상이 어떤 곳인지 확실하게 알고 있다.
이 세상은 결국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견디지 못하고 멸망할 곳이다.
그렇지만 세상이라고 해서 무조건 악하고 추하고 잔인하다고 생각하면 잘못이다.
이 세상에는 도덕도 있고, 종교도 있고, 아름다움도 있고, 선함도 있다.
단지 하나님만 없을 뿐이다.
하나님 없이 인간 스스로 하나님 나라(에덴, 파라다이스)를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한다.
과학이, 정치가들이, 교육자들과 세상의 리더들이 그것을 주장한다.
성경은 하나님 없는 이 세상을 사단의 세상이라고 말한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엡6:12)
흔히 세대주의 종말론자들은 흑백론이나 이원론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그들은 사탄의 표인 666을 극도로 경계하고, 사탄의 음악, 사탄의 영화, 사탄의 문화를 이야기한다.
그들의 책자를 살펴보면, 한결같이 뿔 달린 괴물의 모습과 기괴한 사탄의 표식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런데 사탄은 절대 멍청하지 않다.
자신의 정체를 노골적으로 드러내어 그리스도인에게 경계심을 갖도록 하지 않는다.
오히려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여 어떻게 해서든지 하나님을 떠나 살면서도 자신이 독실한 신앙인인 줄 착각하게 한다.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할 대상은 자신의 뿔을 드러내고 덤벼드는 자들이 아니다.
니고데모는 스스로 생각하기를 누구보다 자신은 훌륭한 신앙인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기도도 열심히 했고, 신앙생활도 성실히 했으며, 많은 사람에게 존경받는 자로서 자부심도 있었다.
그렇지만 니고데모는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아니었다.
이는 독실한 종교인이 빠지는 가장 위험한 함정이다.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마7:22-23)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지금 자신이 얼마나 위험한 세상에 살고 있는지를 분명히 알고 있다.
사탄은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니며 집어 삼킬 자를 찾고 있다.
하나님 없이도 얼마든지 멋진 종교 생활, 사회 생활을 할 수 있다고 우리를 미혹한다.
그러나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없는 삶은 그것이 아무리 아름답고 화려하고 훌륭하고 선하다 할지라도 한 줌 먼지와 같음을 알고 있다.
하나님 없는 세상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것은 전부 사라져 버릴 허울이요 겉치레뿐이다. (요일2:17)
그러므로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것에 흥미를 잃어버린다.
세상 사람들은 바람에 밀려 이리저리 요동치지만,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진리를 부여잡고 영원한 나라를 소망한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5:17)
이전 것은 다 지나가고 사라져버린다.
세상에서의 명성, 존경, 품위, 칭찬은 다 부질없는 것이다.
성경이 세상을 악하다고 하는 것은 그것이 외적으로 추하고 더럽고 잔인해서가 아니다.
사탄은 하나님의 나라를 복제하여 만든 거짓된 세상에 사람들이 속아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지 못하고 마침내 멸망에 빠지도록 하기에 악하다.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그러한 세상의 실체를 똑바로 보지만, 독실한 종교인은 세상의 실체를 알지 못한다.
독실한 종교인은 사단이 만들어 놓은 복제된 종교에 빠져 자신이야말로 누구보다 신실한 그리스도인이라고 착각하며 살아간다.
단순히 행동의 차원에서 보면, 독실한 종교인이 참된 그리스도인보다 더 훌륭할 수 있다.
도덕의 관점, 성실의 관점, 종교의 관점에서 보면, 독실한 종교인은 누구에게도 칭찬받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지 아닌지 결정짓는 기준은 우리의 행동이나 도덕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영과 생명이다.
평민이 왕족보다 능력도 출중하고 훌륭한 삶을 살 수도 있다.
그렇다고 그것을 기준으로 왕족이냐 아니냐를 판단할 수 없다.
왕족이냐 아니냐는 혈통과 태생의 문제이다.
독실한 종교인과 거듭난 그리스도인의 차이점은 바로 이것이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다.”(요3:6)
독실한 종교인은 항상 자기 자신에 만족한다.
그는 이렇게 기도한다.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과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눅18:11-12)
그는 자랑할 것이 많다.
그는 신실한 종교인으로서 감당해야 할 책무를 감당한다.
누구도 자신의 신앙생활에 이렇다저렇다 말하지 못하게 할 자신이 있다.
그러나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자랑 자체가 사라져 버린다. 오히려 자신을 미워한다.
자신 안에 아직도 옛사람의 본성이 그대로 남아 있음을 깨닫고 가슴을 치며 통회 자복한다.
예레미야 선지자가 말한 것처럼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이 자신임을 깨닫는다.
자기 안에 있는 세상의 악한 원리, 마음, 정신을 보며 날마다 자기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려고 힘쓴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단 한 순간도 바로 설 수 없음을 깨닫는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라고 고백한다. (고전15:10)
스위스의 위대한 신앙인 라바터(Johann Kaspar Lavater)는 이렇게 노래하였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요. 주가 전부이심을 날마다 배우리이다.”
거듭난 그리스도인과 독실한 종교인은 세상을 보는 눈, 자신을 보는 눈에서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로이드존스 "요한복음 3장 강해"의 여섯번째 설교 '그리스도인과 세상'을 읽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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