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사적 성경해석과 기적중지론(1)
-성경은 대부분이 신자의 ‘본보기’를 위해 기록된 책이다-
▲기적중지론자들은 '구속사적 해석'이란 색안경을 추가하여 자신들의 무경험을 정당화하고 있다 |
어느 집사님 집에 심방 갔을 때의 일이다. 3살 정도 되어 보이는 꼬마 남자 아이가 조그만 냄비를 엎어놓고 젓가락으로 열심히 두들기고 있었다. 교회의 찬양대인 엄마 아빠가 연습할 때 따라가서 드러머(Drummer. 북 치는 사람)가 드럼 치는 것을 유심히 보더니 그날부터 드럼 치는 흉내를 내기 시작하더란다.
1997년 한국에 IMF 외환 위기가 왔을 때 국민들은 모두 실의에 차 있었다. 그런데 여자 골프 선수 박세리가 가장 권위 있는 US 여자오픈대회에 출전하여 우승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마지막 라운드에서 박세리의 공이 경사진 러프(rough. 긴 풀이 있는 황무지)에 빠져 우승은 물 건너 간듯했다. 그때 박세리는 양말을 벗고 물 속으로 들어가서 흔들림 없는 샷을 쳐서 공은 러프를 탈출했고 마침내 우승을 낚아채었다. 박세리의 승리는 외환 위기로 실의에 찬 한국인들에 불굴의 의지를 심어주었고 수많은 ‘박세리 키즈’를 양산하여 지금은 박세리 키즈들이 미국 여자 골프계를 장악하고 있다.
대학생선교회(CCC)가 신유와 축사 기록이 많은 누가복음을 바탕으로 제작한 『예수』(Jesus) 영화는 전 세계적으로 수억 명이 시청했다고 하는데 스크린이 없는 오지에서 흰 벽을 스크린 삼아 시청한 사람들이 영화에서 예수님이 하신 것처럼 하여 수많은 영혼을 구원함은 물론 병도 치유하고 귀신도 쫓은 사례도 많다고 한다.1)
예수 그리스도는 신자의 구세주이시자 삶의 모범이시다
이 단순하고 명료한 기독교인의 신앙 고백을 신학적으로 파고 들어가보면 난마처럼 복잡하게 얽혀져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필자가 여러 다른 교파의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다가 신학교에 들어가니 생전 들어본 적도 없는 구속사적 해석(Redemptive-historical Interpretation), 구속사적 설교란 말을 자주 듣게 되었다.
“구속사는 ‘하나님의 모든 권고’를 모든 가르침, 율법, 예언 및 환상과 함께 예수 그리스도의 관점에서 조망하는 것이다.” –시드니 그레이다누스.
구속사적 성경해석이란 성경의 모든 사건이나 기록이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 및 부활을 지향한다는 그리스도 중심적 성경해석 방법을 말한다. 성경의 모든 계시는 점진적으로 계시되어 그리스도에 이르러 완전히 꽃을 피운다. 그러므로 특히 구약을 해석하거나 설교할 때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완성하신 구원의 역사적-구속사적- 관점에서 해야 한다.
예수님이나 예수님을 통한 구원 사역의 실재나 원형(原型. Anti-type)이 구약에서는 예표(豫表, type)나 그림자(shadow)로 나타난다.2) 예표란 예수님이나 구원의 진리가 구약성경의 역사를 통해서 그림자(shadow)와 같이 부분적으로 희미하게 나타난 것이고 이에 대한 원형이나 완전한 구현은 신약에서 드러난다.
구약에 제시된 예수님을 상징하는 예표(type)나 그림자(shadow)-사람, 율법, 성막, 제사제도 등-는 구원의 역사가 전개되는 과정에서 점점 밝히 드러난다. 처음에는 씨앗 같던 구원의 계시가 역사 속에서 시간이 지날수록 둥지와 가지를 내면서 점점 성장해 오다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완전히 꽃을 피우게 된다. 이것을 점진적 계시(Progressive revelation), 계시의 유기적 성장(Organic growth)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하나님이 아담에게 주신 여자 후손의 언약인 원시 언약(창 3:15), 아브라함의 횃불 언약(창 15:18)으로부터 시작하여 할례 언약(창17:1-21), 시내산 율법 언약(출 19:5; 20:1), 새 언약(렘 31:31-34)으로 점점 구체적으로 형태를 드러내다가, 예수 그리스도의 피 언약(마 26:26-29)에서 성취되고, 보혜사 성령 언약(요 14:26) 및 재림 언약(마 25:31; 26:64)을 통해 마침내 구원의 역사가 완성된다.
성경의 어떤 특정 주제를 구원의 역사적 관점에서 단계적으로 책 별로 연구하는 것을 주경 신학(Biblical Theology)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보혈’에 대한 소논문을 쓴다면, 피(blood)에 대해 모세오경, 역사서, 시가서, 선지서의 구약과 복음서, 서신서 및 계시록의 신약이 말하는 피에 관한 구절 전체를 연구하면 피에 대한 의미가 진전되고 변화되어 오다가 예수 그리스도의 새 언약의 피에서 정점을 이루게 되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이처럼 주경 신학과 언약 사상 및 구속사적 성경해석은 서로 맞물려 있다.
신학교에서 처음으로 구속사적 성경해석을 배우면서, 교수가 제시한 성경 구절을 본문으로 하여 성경 전체를 참고서로 삼아 구속사적 관점에서 주경 신학적 소논문(biblical theological paper)을 몇 번 쓰고 나니 만화경을 통해 성경을 보듯 성경 전체가 꿰뚫어지는 기가 막힌 은혜를 체험하게 되었다. 평면적인 ‘모범적 성경해석’이 주지 못하는, 성경 자체에서 우러나오는 깊은 은혜를 맛보게 되었다.
예를 들면, 아브라함은 자기의 가장 귀중한 이삭을 제물로 바쳤다. 실제는 아니지만 마음으로는 이미 바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도 하나님께 내가 가진 가장 좋은 것을 바쳐야 한다로 해석하면 ‘모범적 해석’이다. 그러나 구속사적으로 해석하면, ‘이삭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바친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제물로 바치신 것의 모형이다. 이삭은 장차 희생제물이 될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이다’는 식으로 해석하고 설교하는 것을 말한다.
물론 실제로 해석하고 설교할 때는 누구라도 100% 구속사적이거나 100% 모범적으로 설교하는 것은 아니다. 성경을 예수 중심으로 해석하고 설교하다 보면 구속사적이 될 수 밖에 없고 그 내용을 개개인의 삶에 적용하다 보면 모범적 해석이나 설교가 될 수 밖에 없다.
문제는 구속사적 성경해석을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니 모범적 성경해석을 간과하거나 배제하는 경향이 농후하여, 성경 특히 사도행전에서 사도들이 표적과 기사를 행하는 중요한 사건 모두를 <구속사>(Historia Salutis. History of Salvation)의 관점에서 ‘시대 획기적이고’(epochal) ‘독특하고’(unique), ‘단회적이고 최종적’(once-and–for-all)이고 ‘비반복적인’(non-repeatable) 사건으로 해석하면서 개인의 <구원의 서정>(Ordo salutis. Order of Salvation)-구원의 순서와 경험-과는 상관이 없는 것으로 해석해 버려서 결과적으로 철저한 기적중지론의 단초를 마련했다는 사실이다.
구속사적 관점에 젖은 사람들은 이렇게 주장한다.
“오순절의 성령 강림은 구속사적으로 독특하고 단회적이고 비반복적인 사건이지 개인이 본 받아야 할 경험과 모범을 위해 기록된 것이 아니다.”
“예수님이나 사도들이 한 행동은 구속사적으로 시대 획기적이고(epochal), 독특하며(unique), 단회적이고 최종적인(once-nad-for-all) ‘계시적 또는 계시사적 사건’이므로 교회 시대 신자의 본이 아니다?"
“사도들이 기적을 행하면서 사역을 한 것은 교회의 기초를 설립하고, 성경 기록을 위해 구속사적으로 획기적이고 독특하고 단회적이고 비반복적인 사역이지 교회 시대의 신자들이 본 받아야 할 모범이 아니다.”
쉽게 말하면, 구속사적 해석이란 예수님이나 성경 인물의 ‘인격’이나 ‘고난’은 본 받아야 하지만 기적을 행하는 사역은 본 받아서는 안 된다는 성경해석을 말한다. 그러므로 사역을 하더라도 말씀 선포 위주로 조용하고 점잖게 해야지 기적을 행한답시고 우쭐대고 잘난 체 하는 것은 비성경적이라는 주장이다.
칼뱅과 워필드가 기적의 기능을 주로 사도성의 신임장과 66권만이 성경이라는 정경(正經. canon) 기록을 위한 기능으로 국한시켰다면, 구속론자들은 구속사적 성경해석이란 색안경을 하나 더 끼고 성경 전체의 중요한 사건이나 기록을 교회 시대의 신자와는 상관이 없는 ‘독특한 사역’이나 ‘단회적 사건’으로 규정하여 오히려 칼뱅이나 워필드보다 더 철저한 기적중지론의 기초를 놓은 것이다.
사실 ‘구속사적’, ‘시대획기적’, ‘독특한’, ‘단회적이고 최종적인’이란 단어들은 듣기에는 거창한 것 같지만 실제로는 반대파에 의한 나쁜 경험을 비판하고 자기들의 무경험을 변호하고 정당화하는 구실에 지나지 않는다. 실제로 예수 이름으로 병자를 낫게 하고 귀신을 쫓아보면 지금까지의 기적중지론이 얼마나 허황한 인간의 논리에 의한 것인가를 절감하기 때문이다. 기적중지론은, 서두에서 예를 든 것처럼, 잘 난 신학자들이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신 가장 중요한 모방 본능을 무시하고 자기들의 무경험을 정당화하기 위해 상아탑에서 만들어낸 탁상공론에 불과하다.
구속사적 성경해석의 태동
기적중지론도 학자들이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성경을 깊이 상고하면서 현장을 점검하여 진위를 분별하여 나온 신학이 아니라 로마 가톨릭이나 광신자들을 대항하기 위해 급조된 신학이기에 비성경적이고 편견적인 오류 투성이다. 구속사적 성경해석도 마찬가지다. 구속사적 성경해석도 당시 발흥하던 자유주의 신학과 신정통신학에 대항하기 위해 일단의 신학자들에 의해 급조된 신학이다.
1930년대에 화란의 신학자들은 두 가지 운동에 대처해야 했다. 한편으로는 성경의 신적 권위를 인간의 기록으로 폄하하고, 성경의 기적을 신화, 전설 또는 심리적 현상으로 비신화화(非神話化) 하고, 예수는 하나님이 아니라 공자, 석가, 마호멧과 같은 성인으로 격하시켜 ‘도덕적 모범’(moral example)으로 주장하면서 성경 본문을 모범적으로 해석하고 설교하는 자유주의자들을 대항해야 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성경 계시의 역사성을 무시하고 지나치게 주관적으로 변증철학을 강조하는 바르트의 신정통주의에 대항해야 했다.
구속사적 해석은 성경의 기사체-이야기체-특히 구약의 이야기를 크리스천이 따라야 할 ‘모범’이 아니라 오실 메시야에 대한 ‘계시’로 이해한다. 구약의 이야기는 이스라엘의 메시야가 예수의 인격과 사역에서 계시될 시기를 역사적으로 가리키는 모형(types)과 그림자(shadows)의 역할을 한다고 강조한다.
이러한 견해를 지지하기 위해 그들은 누가복음 24장27절과 44절을 인용한다.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눅 24:27).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44절).
구속사적 성경해석에 의하면, 성경 내용은 추상적인 도덕적 원칙이 아니라 하나님이 역사를 통해 행하신 위대한 사역의 집합체이다. 성경은 오실 그리스도에 대한 이야기를 기록한 책이므로 설교도 이런 관점에서 행해져야 한다고 그들은 주장했다. 그래서 화란에서는 성경 기록 특히 구약의 내용을 구속사적으로 설교할 것인가, 모범적으로 설교할 것인가에 대한 논쟁이 활발하게 일어났다.
그러다가 2차 대전이 터져 독일군이 화란에 진주하는 바람에 논쟁이 종식되었다. 논쟁이 종식된 이유는 전쟁 탓도 있지만 논쟁 자체가 별로 실익이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왜냐하면 구속사적으로 설교하는 사람도 모범적으로 설교하기 마련이고 모범적으로 설교하는 사람도 예수 그리스도 중심의 구속사적으로 설교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구속사적 해석법은 생선의 뼈대를 형성한다. 그러나 생선 뼈를 위해 생선을 구입하는 사람이 없듯, 아무리 구속사적 해석의 뼈대가 중요하더라도 모범적인 살코기가 풍성해야 제대로 된 생선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주경신학 해석법(Biblical-theological method)은 원래 독일에서 자유주의 신학자인 요한 필립 게블러(Johann P. Gabler)가 보수 기독교의 독단적(dogmatic) 해석에 대항하기 위해 성경의 역사적 성격을 강조해야 한다는 자유주의 신학에서 시작된 것이지만 유명한 주경 신학자인 구 프린스턴의 게하르트 보스(Geerhardus Vos)에 의해 보수적 개혁주의 신학 방법으로 정착되었다. 이후 언약의 관점에서 구약성경 전체를 관통해서 보기도 하고(팔머 로벗슨), 하나님의 나라의 관점에서 보는 시도도 있다(존 브라이트 등).
이후 구속사적 성경해석과 주경적 해석은 미국의 보수적 개혁주의 신학교에 의해 착실하게 계승되었고 한국에서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의 보수적 장로교 신학교에서 구속사적 성경해석을 주된 성경해석법과 설교법으로 가르치고 있다.3)
두 해석법의 장·단점
구속사적 해석과 모범적 해석의 장단점은 무엇인가? 둘은 어떻게 상호 보완될 수 있는가? 4)
먼저 구속론자들이 모범적 성경해석 방법을 비판하는 이유를 살펴보자.
첫째 모범적 성경해석은 구속사라는 넓은 문맥의 중심인 그리스도와 단절되어 성경의 통일성을 해친다.
둘째 문맥에 주의하지 않는다. 성경의 그때 그 장소는 지금 이곳으로 바로 연결된다.
셋째 모범을 중시하다 보니 구속의 점진적 특징을 간과한다.
그 결과 각 시대마다 계속되는 계시의 연속성과 역사적, 문화적, 사회적으로 구별되는 특징들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설교의 깊이가 없는 경우가 많다.
넷째 그 결과 성경 계시를 도덕화, 심리화, 영해 또는 풍유화 한다.
성경의 인물에 대한 서술이 오늘의 우리들을 비추는 거울이 아니라 도덕적 규범이 되어 버린다. 그래서 예수님이나 사도들의 기사와 이적은 문화적, 역사적, 계시 점진적 여과 과정이 없이 바로 오늘의 우리에 대한 규범이 되어 버린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결과 하나님 중심적이고 기독론 중심보다 인간론 중심의 성경해석이 되어 버릴 공산이 크다.
그러면 구속사적인 성경해석에는 어떤 단점이 있는가?5)
첫째 도식주의(Schematicism)이다.
다양하고 풍부한 성경의 여러 기록을 몇 개의 교리나 도식으로 이해한다. 그 결과 다양하고 다각도적인 접근이 어렵다.
둘째 사변(speculation)적이다.
계시의 점진성에 매혹된 나머지 ‘침묵에 의한 논쟁’ (argument from silence)을 주저 없이 늘어놓는다. 쉽게 말하면 논리가 성경을 앞선다. 앞으로 자세히 밝히겠지만 은사주의자들이 경험을 성경보다 앞세운다고 비판하지만 구속론자들은 무경험에 의한 ‘논리’를 성경보다 앞세우는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 특히 구속사적 성경해석에 의한 기적중지론은 대표적으로 잘못된 논리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객관주의이다.
구속사적으로 발생한 것들을 정확하게 다루려는 노력은 가상하지만 오늘의 청중들과의 실존적인 관련성이 결여된다. 구속사의 객관성을 강조하려다 보니 모든 사건이 ‘독특한, ‘비반복적’, ‘단회적’이라는 주장을 심심치 않게 되풀이 한다.
상반되는 두 가지 패러다임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6)
첫째 모범의 기능을 인정한다.
모범주의는 반대하지만 구속사 범주 안에 있는 모범에 대한 정당한 위치는 인정해야 한다. 그리스도나 성경 인물들은 누구도 따를 수 없는 길을 갔지만 동시에 우리의 모범도 된다.
둘째 하나님의 말씀은 주관도 아니고 객관도 아니라 심령과 골수를 쪼갠다.
성경 말씀에는 교회의 순수성, 오직 은혜, 오직 칭의도 있지만 개인의 신앙생활, 성령의 임하심, 성화와 인간의 책임을 강조하는 면도 있다. 구속사의 전진만을 강조하여 그리스도와의 교통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의 오심만을 강조할 것이 아니라 성령의 사역도 구속사에 포함되어 있다.
셋째 구속사는 모든 것을 그리스도 중심으로 보는 것과 그리스도를 역사의 중심으로 보는 것을 근본으로 한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은 고공에서 내려다보듯이 성경 전체의 파노라마는 펼쳐주지만 지상의 부요-실생활에의 적용-는 주지 못하여 궁극적으로 열매가 빈약하다.
넷째 모범적 해석론자들은 역사적 본문의 고유한 성격에 소홀하여 하나님의 원래의 행동을 무시했지만 구속론자들은 그것을 너무 강조하다 보니 하나님을 구속사적인 틀에 제한시켰다.
그러므로 우리는 원래의 저자가 무슨 문제점들을 전달하려고 했으며, 무슨 문제에 답하려 했으며, 전하려고 한 특별한 메시지가 무엇이었는지를 살펴야 한다. 이 과업을 위해서 해석자는 성경을 모범적인 일대일의 접근이 아니라 문법적·역사적인 해석방법(Grammatical-Historical Interpretation)을 취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풍유화, 도덕화, 영해, 성경인물 모범화의 오류에 빠지게 된다.
마지막으로 성경의 구속사적인 주된 흐름에 치중하다 보면 본문 자체를 무시하는 경향을 초래하기 쉽다. 그러므로 “문맥의 넓은 전개는 본문으로 좁혀져야 하고 본문은 성취와 적용의 넓은 분야로 열려야 한다.”
이러한 조화는 구속사의 비반복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기적의 지속성을 부인하는 사람들이나 모범적 반복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모든 사람들이 성경 속의 인물들과 같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모두에게 좋은 안내가 될 것이다.
구속사적 성경해석과 기적중지론
설교에서는 구속사적 설교와 모범적 설교와 어느 정도 조화를 이루고 있는데 성경해석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구속사적 성경해석이 자유주의의 모범적 성경해석을 지나치게 의식한 나머지 이를 배제하는 과정에서 기적중지론으로 흘렀다고 볼 수 있다.
구속론자들은 자유주의와 신정통주의와의 차별성을 강조하기 위해 구속사적 성경해석을 차용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극단으로 치우쳐서 자유신학의 좋은 점이자 성경이 주장하는 ‘모범적 해석’을 송두리째 내팽개쳐 버린 것이다. 이것을 서양 속담으로는 ‘구정물을 버리면서 아이까지 버린다’고 한다.
성경은 예수 중심의 기록이지만 동시에 성경 시대 전체의 신자의 모범을 위해 기록된 책이다.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눅 24:24).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눅 24:44).
24절은 유대인의 구약 성경 이분법에 따라 모세(모세오경)과 선지자(선지서)로 구분한 것이고, 44절은 삼분법에 따라 모세(모세오경), 선지자(선지서들) 및 시편(시가서 5권)을 의미한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요 5:39).
즉 구약은 오실 메시야에 대한 기록이고 신약은 오신 메시야에 대한 기록, 구약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숨겨져 있고 신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드러났다. 구약은 오실 메시야를 예언하고 신약은 오신 메시야의 성취를 기록한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이자 그림자인 구약의 사건, 인물, 율법 및 성막은 모두 실재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에서 성취되었다. 그런 점에서 성경 전체는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에 대한 기록이므로 독특하고 단회적이고 비반복적이다. 누가 감히 예수 그리스도가 걸어가신 길을 걸어갈 수 있는가?
그러나 또한, 성경은 신자들의 모범을 위해서도 기록되었다.
“4.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위로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니라. 5. 이제 인내와 위로의 하나님이 너희로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서로 뜻이 같게 하여 주사 6. 한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노라”(롬 15:4-6).
“6. 이러한 일은 우리의 본보기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그들이 악을 즐겨 한 것 같이 즐겨 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11. 그들에게 일어난 이런 일은 본보기가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기록되었느니라”(고전 10:16, 11).
“그러므로 내(바울)가 너희에게 권하노니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전 4:16).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전 11:1).
정리하면, 예수님이나 사도들을 포함한 성경 인물들은 모두가 교회 시대의 신자들이 따를 수 없는 독특한 길을 걸어갔지만 동시에 우리가 본 받아야 할 모범이다. 좋은 것은 본 받고 나쁜 것은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신자들은 예수님이나 사도들의 인격은 물론 사역-일반사역이나 기적사역-도 본 받아야 한다.
그런데 구속사적 해석에 경도된 중지론자들은 성경 인물과 관련된 사건의 독특성, 단회성, 비반복성을 비성경적으로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니 예수님이나 사도들이 성령의 능력을 받아서 기적을 행하면서 사역을 한 사건-특히 기사체인 복음서나 사도행전-도 모두 교회 시대의 신자들과는 상관이 없는 책이 되게 만들어 버리고, 서신서만이 교회 시대 신자의 본이라고 잘못 주장한다. 그것도 기적에 관한 구절들은 모두 비기적화 시켜 버린다.
또한 구속론자들은 '구속주 예수'를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니 '도덕적 모범으로서의 예수'를 소홀히 하여 바른 교리와 전통을 자랑하면서도 삶의 열매는 별로가 아닌가? 중지론자들은 일부 은사주의자들의 도덕적 해이를 거론하면서 모든 은사주의자들을 비도덕적 인물들로 몰고 가지만, 실제로 한국에서 말썽 부리는 목사와 장로 중에는-물론 전체 숫적으로 많기 때문이기도 하지만-장로교인들이 훨씬 더 많다.
하나님의 나라의 임함의 특징은 악한 자가 정복되고, 예수님이 기적을 행하시고, 복음이 전파되고, 구원을 현재적으로 소유하고, 예수가 곧 기대하던 그리스도이다 라고 설파한 헤르만 리델보스도, 구속사적으로 볼 때, 기적은 중지되었다고 잘못 주장한다.7)
자유주의자들이 성경 기록이 ‘이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고 저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다’고 비판했다면 보수주의자들은 성경의 축자영감설과 절대적 권위를 내세우면서도, 교회 시대의 기적에 관한 한 자기들의 영적 무경험을 정당화하고 다른 교파들의 나쁜 주장과 행동을 대적하기 위해 자기들의 신학으로 난도질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자유주의자들이 성경의 기록은 신화, 전설, 심리적 현상이라고 하면 온갖 논리를 동원하여 사실(facts)이라고 변호하다가 막상 교회 시대에 기적이 일어난다고 하면 자유주의자들이 사용한 바로 그 논리를 차용하여 심리현상, 과대망상증, 부풀려진 소문이란 온갖 인간적 논리를 동원하여 부인한다.
구속사적 해석을 지지하는 개혁주의자들은 화란의 아브라함 카이퍼(Abraham Kuyper), 제임스 패커(James I. Packer), 루이스 벌콥(Louis Berkhop), 안토니 후크마(Anthony Hoekema), 존 스토트(John Stott), 리처드 개핀(Richard Gaffin), 로버트 레이몬드(Robert Reymond) 등이 있고 세대주의자들로서는 존 월부어드(J. F. Wolvoord), 메릴 엉거(Merill Unger), 노만 가이슬러(Norman Geisler) 등이 있다.
특히 강성 기적중지론자인 존 맥아더(John MacArthur)는 개혁주의적 기적중지론을 주창하면서 종말론은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을 따르고 있다. 한국에는 박형룡, 박윤선(나중에 견해가 바뀜), 신복윤, 정성구, 이종윤, 서철원, 이승구, 김재성, 최병규, 최윤배 등이 기적중지론적 개혁주의자들이라고 할 수 있고8), 박영돈은 자신은 계속론자라고 하지만 방언 정도만 인정하는 '실천적 중지론자'(?)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천방지축으로 날뛰는 전형적인 기적중지론자인 정이철도 주로 '구속사적 해석'으로 기적을 부인하고 있다.
그러나 세계적인 석학들인 고든 피(Gordon D. Fee), 웨인 그루뎀(Wayne Grudem) 샘 스톰즈(Sam Storms), 로드만 윌리암스(J. Rodman Williams), 잭 디어(Jack Deere), 웨인 그루뎀(Wayne Grudem), 존 파이퍼(John Piper), 막스 터너(Max Turner), 또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한국의 차영배, 안영복, 정원태, 박봉배, 조종남, 김영한, 김명혁, 김동수 등은 기적계속론적 입장이다.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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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Endnotes) :
1) “The JESUS Film Project.” http://www.cru.org/communities/ministries/the-jesus-film-project.html
2) 헬라어 ‘튀포스’(예표, 모형: 롬5:14; 고전10:6, 11), ‘스키아’(그림자: 골2:17; 히8:5; 10:1), ‘휘포데이그마’(사본: 히8:5; 9:23), ‘세메이온’(표적: 마12:39), ‘파라볼레’(비유: 히9:9; 11:19), ‘안티튀포스’(원형: 히9:24; 벧전3:21) 등).
3) 구속사적 해석법을 가르치는 신학교들 : Northwest Theological Seminary, Westminster Theological Seminary, Westminster Seminary California, Reformed Presbyterian Theological Seminary Calvin Theological Seminary and Canadi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 한국에서는 특히 예장 교단 계열의 총신대, 고신대, 합신대 등이 있다.
4) 박종칠, “구속사적 성경해석과 설교, 그 흐름과 전망,”『목회와 신학』(두란노 서원, 1991년4월) CD-Rom; ______, 『구속사적 성경해석』(기독교문서선교회, 1986).
5) ibid.; 시드니 크레이다누스, 『오직 성경으로』(Sola Scriptura).
6) 박종칠, “구속사적 성경해석과 설교, 그 흐름과 전망,”『목회와 신학』(두란노 서원, 1991년4월).
7) Herman Ridderbos, tr. by H. de Jongste, The Coming of the Kingdom(P and R P, 1962), 61-97; _______________, Redemptive History and the New Testament Scriptures(P & R Publishing, 1988).
8) 김영한, “[영성신학 칼럼 3] 은사지속론에 대한 신학적 성찰,” 『크리스천투데이』, 2014.03.31. http://www.christiantoday.co.kr/view.htm?id=27117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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