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는 과학을 어떻게 볼 것인가?
1. 성경과 과학은 어떤 관계인가?
;성경은 과학의 영역에 대해 말할 때 어떤 책인가?
1) 창조와 창조주
성경은하나님께서 우주와 모든 생명을 창조하셨으며 인간의 타락과 구속에 관한 책이다. 그러므로 성경적으로 볼 때 과학의 모든 원리를 창조하신 분은 하나님이다.
2) 성경은 과학교과서는 아니다.
창조와창조주에 대해 말하나 성경은 과학교과서는 아니다. 신앙의 입장에서 볼 때 성경은 바른 해석을 하는 한 모든 영역에 있어 정확무오하나 과학과 관심이 다른 책이다. 그러므로 성경의 내용을 가지고 구체적 과학 이론을 끄집어내는 데에는 조심하여야 한다. 김춘수의 시 ‘꽃’에서 꽃의 원리를 찾으면 안 되는 것과 유사하다. 망원경의 원리는 성경서 찾지 말고 물리학과 천문학에서 찾는 게 유리하다. 성경의 잘못된 적용으로 마치 성경이 과학적 문제가 있는 책으로 공격받게 만드는 누(累)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성경은 무오하나 과학은 절대적이지 않다(하이젠베르그, 아인쉬타인, 토마스 쿤 등).
3) 성경은 모든 인류에게 적응된 책이다.
하나님은자신을 인간의 한계에 맞추어 적응하셨음을 기독교 신앙의 선배들은 잘 알고 있었다(오리겐, 암브로스, 어거스틴, 루터, 칼빈 등). 하나님은 죄 많은 인간에게 말씀하실 때 아버지가 어린 자녀에게 말을 걸려고 시도할 때 겪는 것과 동일한 문제에 부딪힌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낮추어 내려 오사 우리의 연약한 점에 자신을 맞추신다. 이것은 유아원 선생님이 유아 언어로 말하는 것이나 아버지가 자녀를 돌보면서 자녀들의 방식을 채택하는 것과 비슷하다. 제한된 지성의 어린아이에게 그들의 이해와 경험을 능가하는 말과 개념을 사용할 경우 의사소통에 실패하게 된다. 그러므로 아이 수준에 맞는 방법이 요구된다. 이것이 바로 적응(Accommodation)의 방법이다. 이것이 또한 성경을 과학의 틀에 집어넣으면 안 되는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2. 기독교와 과학은 어떤 관계에 있어왔는가?
;관계를 규정하는 모델은 어떤 것들이 있는가?
1) 일찍이 학자들은 기독교와 과학의 관계에 대해 전쟁, 갈등, 충돌, 대립, 대화, 조화, 독립, 분리, 상생, 공격, 양자유익, 공명 등 다양한 단어를 추출해 내었다.
포스트모던 시대의 과학 이슈들에 대해 이들 모든 현상을 한마디로 설명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슈는 다양한 양상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다분히 복합적이다. 그 이유는 어떤 모델은 서로 충돌하나 어떤 모델은 독립적이며 어떤 모델은 조화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다원주의 시대를 신학의 눈으로 보기 위해서는 다양한 스펙트럼을 종합적으로 검토하는 쉽지 않은 노력이 필요하다.
2) 현대 과학이 기독교의 토양에서 자랐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실제로 현대 과학이 태동할 시기인 17-18세기에 종교, 특히 청교도주의는 과학의 발전에 적극적인 기여를 했다는 것은 익히 알려져 있다. 또한 기독교와 과학이 주로 갈등과 충동 모델부터 시작되었다는 것도 사실이다.
3) 대안적 해석의 모색
△첫째, 과학과 기독교의 협조(cooperation) 모델
이런해석은 주로 초기 과학 사회학자들에 의해서 제시되었는데, 특히 청교도주의의 진전과 17세기 영국에서의 과학의 부흥기의 직접적 상응관계를 감지했던 로버트 멀톤(Rovert Merton)이 그 대표자라고 할 수 있다. 기관과 관련해서 말하면, 그는 왕립학술원(the Invisible College) 내에 청교도들이 주도적이었음을 지적한다. 그는 청교도적 성향이 지적으로, 과학적 탐구와 추구에 적응성이 더 있다고 믿는다. 이런 사회학적 설명은 호이카스(Hooykass)와 같이 종교개혁의 교의적 사고 형태에서 경험 과학의 가능성을 위해 그 근거가 될 수 있는 구체적인 원리들을 발견한 이들의 신학적 성찰에 의해서 보충될 수 있다.
자연에 대한 사랑, 하나님이 영광, 인간의 복지, 만인 제사장주의와 같은 주제들은 청교도적인 사유 속에 깊이 연관되어서 그들은 자신들이 하는 철저히 실증적인 과학이 교회의 위계 구조나 ‘왕권신수설’과 같은 것에 대해 자신들이 표현하는 반권위주의(anti-authoritarianism)의 한 표현일 뿐이라고 여겼다고 호이카스는 논증한다. 그들에게는 과학이란 경험에 근거한 것이지, 고대인들의 권위에 근거한 것이 아니다. 그래서 호이카스에게는, 청교도 지질학자였던 나다나엘 카펜터(Nathanael Carpenter)의 과학적 저작들에 편만해 있는 철학적 자유의 정신이 온 분야에 대한 청교도들의 탐험 전체의 상징이었던 것이다. 이런 ‘협조’모델의 지지자들은 여러 분야에서 나왔다.
철학에서는 마이클 포스터(Michael Foster)가 “기독교 창조론과 현대 자연과학의 부흥”이라는 영향력 있는 논문에서 일찍이 이 입장을 옹호했고, 신학자로서는 토렌스(T.F. Torrance)가, 특히 우연적 피조계(a contingent creation)에 대한 종교개혁의 재발견이 중세사상을 대치한 것을 강조하면서 이 입장을 지지했으며, 마르크스주의 역사가인 크리스토퍼 힐(Christopher Hill)은 왕정복고 이후의 영국에서 과학적 진보와 비국교파들(religious dissent)의 밀접한 연관을 발견해 내었다. 화이트 헤드(A.N. Whitehead)는 과학의 태동기에 희랍 사유형과 성경적 사유형의 독특한 종합이 시작되었다고 보았다. 최근에는 협조 모델에 대한 다양한 연구 결과가 쏟아지고 있다.
△ 둘째, IVP 신학사전의 견해
과학신학의 관계에 대해 독립(independence), 갈등(conflict), 상호보완(complementarity), 공생(symbiosis)의 모델로 분류한다.
△ 셋째, 포스트모던 신학자 테드 피터스(Ted Peters)의 견해
테드피터스는 과학과 종교가 어떤 영향과 관계를 맺어왔는가에 대해 매우 다양한 측면이 있다는 것을 일찍이 간파하고 연구하는 학자이다. 테드 피터스는 과학과 신학이 관계하는 여덟가지 입장이 있다고 주장해 왔다. 테드 피터스는 이 8가지 입장을 잘 논증한다. 그는 과학과 신학의 대안적 견해를 다루는 어휘를 통해 이 문제를 접근하고자 했다. 여기서도 핵심은 그것이 과학적으로 탐지 가능하다고 본다. 그것은 과학주의, 과학제국주의, 교회권위주의, 과학적창조론, 두 언어 모델, 가설적 조화, 윤리적 중첩, 뉴 에이지 영성이 그것이다.
△ 넷째, 이안 바버(Ian Barbour)의 견해
그는<종교와 과학>(Religion and Science)에서 갈등, 독립, 대화, 통합 이렇게 4가지 이론으로 분류한다.
△ 다섯째, 지적설계론자 뎀스키(Dembski)의 견해
과학과신학의 작용에 대해 상호 무관, 다른 관점, 서로 갈등, 서로 긍정으로 나누고 있다.
△ 여섯째, 칼슨(Richard F. Carlson)의 견해
물리학을전공하고 풀러신학교에서 신학과 과학 분야의 방문교수로 있는 칼슨은 자신이 편집한 책에서 과학과 신학의 문제가 단 하나의 기독교적 입장이란 있을 수 없음을 분명히 한다. 창조론적 입장의 생물학계 원로인 웨인 프레어(Wayne Frair)와 화학 물리 고분자학을 전공한 게리 패터슨(Gary D. Patterson), 독립 이론에 과학사와 과학철학을 전공하고 미생물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진 폰드(Jean Louise Berteson Pond), 조건적 일치(qualified agreement)에 1990년, 캠브리지대학에서 과학사와 과학철학을 전공하고 지적설계 논쟁에도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는 스티븐 마이어(Stephen C. Meyer), 이론화 과정에 있는 파트너로서 과학과 기독교 신학의 파트너십의 입장에 미시간 주 그랜드 래피즈에 소재한 칼빈대학의 물리학 및 천문학 명예 교수로 있는 하워드 반틸(Howard J. Van Till) 등 다양한 견해를 가진 4그룹의 학자들을 등장시켜 이 문제를 다루고 있다. 복음주의는 과학과 신학에 대한 이와 같은 포스트모던 상황과 분류 방법을 주목한다.
△ 일곱째, 그레거슨(Niels Henrik Gregersen)의 견해
자신이편집한 책에서 다원주의 세상에서 과학과 신학 사이의 대화를 위한 6가지 모델을 제안한다. 이 6가지 모델을 각 전문가가 논증하는 형식을 취하였다.
3. 한국의 창조과학 운동 평가
1) 창조과학은 무엇인가
‘창조과학’(CreationScience)은 헨리 모리스(H. Morris)가 시작한 과학적 창조론을 말한다. 과학적 창조론은 종종 개신교 식의 교회 권위주의로 오해받기도 한다. 오늘날 과학적 창조론의 조상은 근본주의이다. 분명 근본주의는 로마 가톨릭이 교회의 권위에 호소한 것과 비슷한 방식으로 성서의 권위에 호소한다.
창조과학자들은 성서적 진리와 과학적 주장이 상충될 때면, 공공연하게 과학적 이론들에 반대하는 입장을 취한다. 때로 이 부분이 반대자들에 의해 ‘틈새를 메우는 하나님’(God of the Gaps)의 비판에 직면하기도 한다. 화성의 얼굴 소동이나 영국의 스톤헨지, 미스터리 서클 등을 외계인의 활동으로 돌리는 ‘틈새를 메우는 외계인’(alien-of-the-gaps) 논증도 성립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과학적 창조론은 창세기 자체를 세계가 어떻게 물리적으로 창조되었는지를 우리에게 말해주는 하나의 전제적 사실로 주장한다. 과학적 창조론의 이론은 주로 ICR(Institute for Creation Research)의 설립을 주도한 헨리 모리스와 듀안 기쉬(D. Gish)로부터 정립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은 대체로 그 신학적 신념의 목록 속에 다음의 내용들을 포함시킨다.
이 내용은 미 대법원이 참고했던 ‘맥리안 대 아칸소 교육위원회 소송사건’(Mclean v. arkansas Board of Education)의 지방법원에서도 창조론 측의 공식 입장으로 정리하였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세계는 무로부터 창조되었으며 ②돌연변이와 자연선택설을 진화의 매커니즘으로 설명하는 것은 충분치 못하며 ③현존하는 종들은 고정되어 있고 한 종이 다른 종으로 진화하는 것(대진화, Macroevolution)은 불가능하다. ④원숭이와 인간의 조상이 다르다. ⑤지질학적 형성은 대격변(catastrophy, 즉 Genesis Flood)을 통해 설명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산에서 바다 생물의 화석이 발견되는 것은 대홍수를 통해 설명될 수 있다. ⑥마지막으로 지구의 창조는 젊다. 즉 6000년 내지 1만년 전에 생성되었다.
이 중에서 젊은지구에 대한 주장과 격변론의 해석문제가 다른 복음주의자들과 많은 마찰을 일으키고 있다. 현대 과학의 주류 학자들은 이들 대부분 주장을 무시한다. 그러므로 기성 과학자들은 창조론자들을 무시해 버림으로써 창조론자들에 대해 손쉬운 승리를 얻으려 한다. 최근까지 반 창조론자로 다채로운 활동을 해 오다가 고인이 된 하버드대학의 고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S.J. Gould)는 ‘과학적 창조론’이라는 용어 자체는 무의미하며 자기 모순적이라고 말한다. 과학적 창조론자들과 주류 과학자들 간의 전투는 전면적인 것처럼 보인다. 이 싸움은 오늘날 미국에서 법적 공방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최근에는 우리나라에서도 검인정 교과서 공방이 있었다. 과연 법적 투쟁이 옳으냐 아니냐는 쉽지 않은 문제이다. 신앙의 눈으로 볼 때 반드시 진리가 세상 법정에서 승리를 성취한다고 보기도 어렵다. 예수님도 세상 법정에서 억울한 십자가형을 받지 않았는가. 이것은 승리의 문제가 아니라 무엇이 지혜로운 대처인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2) 창조과학의 공헌
①무신론적 우연주의와 진화론을 향한 공격적 논쟁을 통해 기독교 호교 운동적 측면
②한국 기독교의 보수적 경향에 편승하여 교회의 호응을 받음
3) 창조과학의 과제
①성경과 신학과 과학이 구체적으로 증거하지도 증명하지도 못하는 연대문제에 대한 수구적 주장 고수의 문제
(시간은 절대적이 아니라는 아인쉬타인의 상대성 이론; 벧후 3:8).
②창조과학 틀을 인정하지 않는 복음주의자들과 대화 차단 극복 문제
③성경이 적응된 책이라는 신학적 해석학에 대한 이해 부족 극복 문제,
이로 인한 교회사, 신학, 과학과 불필요한 갈등과 긴장 관계 초래
④학문적 추구보다는 대중 운동에 치중함으로서 탁월한 인재들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학문적 성과가 미흡하여 오히려 세상 학자들에게 딜레탕트들의 모임, 종교적 프로파겐다적 모임, 우파츠(Ooparts)에 대한 끼워 맞추기식 아전인수격 무분별한 인용단체, 문자적 성서근본주의자들이라는 비판의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한 약점 노출 극복 문제
4. 지적설계운동의 위치
1) 지적설계는 무엇인가?
뎀스키(Dembski)는지적설계와 창조과학(또는 과학적 창조론)이라 알려진 창조론 사이를 구별하는 분명한 차이점을 창조 과학이 선험적(先驗的) 종교적 헌신을 가지고 있는 반면 지적설계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과학적 창조론이 세상을 질서 있게 창조한 초자연적 행위자와 그에 대한 성경기록의 과학성을 고수하는데 반해 지적설계는 성경의 이야기에 의존하지 않음을 분명히 한다. 즉 창조과학이 종교적 교리임에 비해 설계한 지성이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서는 설명을 삼간다. 지적설계의 폭은 대단히 넓다. 창조과학과 지적설계는 분명 색깔이 너무도 다른 운동임을 알아야 한다. 다만 한국의 지적설계운동이 신앙적 지적설계운동(이런 말이 가능하지는 모르겠다)과 같은 색깔을 지닌다면 창조의 시기와 방법에 대해 열려있는 한국의 창조론 오픈 포럼과 많이 닮아 있다고 본다. 어찌하든 창조과학이 무분별하게 지적 설계 논쟁을 안심할 만한 우군으로 생각하는 것은 완전한 넌센스이든지 신학적 미숙성 때문이든지 아니면 창조과학 진영의 반지성적 경향을 스스로 증거 하는 것 같아 우려되는 점이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2) 지적설계의 공헌
①일반계시적 측면에서 설계와 설계자를 정교하게 제시하려고 한 점
②창조과학이 기성 과학과 대립적 관계를 설정한 데 비하여 지적설계는 좀 더 유연하여 그 충돌을 줄일 수 있다.
③포스트모던 시대에 시대적 배경을 갖고 나타난운동
3) 지적설계의 과제
①기독교 신앙의 입장에서 볼 때 복음 제시를 표명하지 않음으로 인한 선교적 측면에서 결정적 난관에 봉착할 가능성(가톨릭, 유대교, 이슬람, 이신론, 불교, 힌두교, 카발리스트, 영지주의자, 이단과 사이비 창조론자들에게까지 자리를 마련해주는 포용성).
②자연신학을 표방함으로써 성경관, 성령론, 기독론 등의 약화 초래 가능성
5. 기독교는 과학을 어떻게 볼 것인가?
:복음주의 창조론 운동-창조론 오픈 포럼-을 제안하며
1) 과학의 영역도 하나님의 피조세계이다:
과학 질서도 피조 세계의 일부로 볼 때 과학도 분명 하나님이 주신 도구이다(하나님이 주신 두 권의 책 성경과 자연=갈릴레이, 파스칼, 케플러 등).
2) 과학은 여전히 한계를 가진다:
포스트모던 상황 아래서 과학의 한계와 제한성은 두드러진다. 성경은 피조물인 인간의 수용 능력 부족(captus)을 지적한다. 그러므로 신학과 과학이 증명하지 못하는 사실에 대해 함부로 규정하고 적용하는 성급한 실수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연대 문제 등).
3) 과학적 영역에도 성경의 일반적 원리와 윤리는 적용되어야 한다:
과학 안에도 여전히 신앙적 윤리와 사랑과 평화의 방법이 필요하다. 명확하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는 내 주장만을 고집하지 말고 과학과 성경 안에서 탁월한 해석과 증거가 찾아질 때까지 겸손과 기다림도 필요하다(보기=연대문제, 우주 종말의 시기 등). 무조건 기다리는 게 아니라 명료한 과학적 사실이나 성경적 교리에 대해서는 분명히 마지노선을 그어야 한다(보기=결코 무신론적 우연주의를 수용할 수는 없음).
4) 과학연구에 대한 적극성과 기독교적 청지기 역할:
창조와 구속의 역사를 깨닫게 하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주는 일반계시와 일반은총의 영역에 있는 몽학선생으로서의 과학 연구에 적극성을 포기하면 안 된다. 세상에 대한 청지기로서의 과학의 역할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생명공학, 동성애, 한반도대운하, 광우병, 새만금 등). 그리고 자연의 노예나 폭군이 아닌 창조 영역의 청지기로서의 진지함과 자유함을 갖자.
5) (하등학문인) 과학에 대한 열린 마음
그리스도인에게있어 창조 신앙은 같다. 다만 창조론은 다양할 수밖에 없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작정하셨다(적응의 방법). 그러므로 우리들은 겸손하게 인간 지식의 부족함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하나님을 아는 참된 지식과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를 주님 오실 때까지 추적할 수밖에 없다(벧후 3:18). 자연 과학에 대해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한다. 맥그라스는 자연 과학에 대해 칼빈이 과학연구에 대해 긍정적 활력을 불어넣었고, 과학 연구의 장애물을 제거하였으며 성경을 적응의 방법을 가지고 이해하려 한 세 가지 공헌이 있다고 하였다. 과학에 대해 자유함을 가지며 마치 내 주장만 옳다는 식의 과학에 대한 독단적 태도는 버려야 하는 이유이다. 따라서 과학의 각 분야에 대한 전문가들의 학문적 성과를 무조건 배타시하는 편견은 옳지 않다. 그들의 공헌을 존중하고 대화해야 한다. 외국에 비해 늦었지만 복음주의 신학자, 과학자, 과학철학자, 과학사학자 등 창조론과 연관된 모든 전문가들이 함께 모여 연구하고 토론하고 기도하고 고민하며 모이는 창조론 오픈 포럼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한다.
조덕영 / 피어선신학전문대학원 교수, 창조론오픈포럼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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