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전쟁

[스크랩] 제사 지낼 때 신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수호천사1 2016. 2. 10. 19:25


(2006-08-17 09:48:30, Hit : 1751, Vote : 87

제사 지낼 때 신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질문]

우상 숭배 금지는 십계명에서 제일 첫 번째로 내세울 만큼 중요하므로 신자들이라면 당연히 가장 중요하게 지켜야 할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좀 혼란스러울 때 가 있어서 목사님께 질문을 드리고자 합니다.

제사를 지내서는 안 되는 이유에 대해서는 성경문답 1번 "왜 제사를 지내면 안 되는가?" 에서 잘 이해하였습니다. 제가 이해한 요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제사지내면 안 되는 이유]
1. 제사자리에 부모님 혼이 오시는 것이 아니고 사실은 그 자리를 사탄이 차지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결국은 사탄에게 절하는 것임.
2. 죽은 자의 영혼을 불러오는 것 자체를 하나님께서 엄격하게 금하고 계심.
[현실적인 대안]
1. 불신자 가족의 경우 처음에는 예배가 아니더라도 제사형식을 피하고 음식을 나누며 고인을 회상하는 형식을 권유하면서 하나님의 존재를 이해시킴.
2. 부득이한 경우 제사에 참여하지 말고 제사 후 그 자리에서 추모 기도로 대체함.
[기타]
1. 우상숭배란 만들어놓은 조각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 조각이 하나님의 자리를 대체한다고 믿는 것임.
2. 조각을 모두 거부하다보면 국기에 대한 경례, 살아계신 부모님에게 절하는 것 등을 모두 거부함으로써 이단의 주장과 같아짐.

저의 질문입니다.

1. 집에서 제사 지낼 때 제가 향 피우고 술 따르고 절해야 할 차례가 되었습니다. 그 때 제가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기도만 하면 우상숭배에 해당이 안 되는 지요? (회사에서 고사를 지낼 때도 같은 경우가 생기는데, 기도로 대체하면 우상승배에 해당이 안 되는 건지 아니면 제사나 고사 자리 자체를 회피해야 하는 건지 현실적인 갈등이 있습니다)

2. 집사람이 여행을 다녀오면서 진시황능에서 발굴된 병마용 조각품을 몇 개 사 왔는데 우리 교회 목사님께서는 그런 것이 다 우상이니 집에 두지 말고 그런 곳은 구경도 하지 말고 하시는데, 여행 시 사찰이나 왕릉 같은 곳을 관광하는 것 자체도 우상 숭배에 해당 되는지요?

그 외에 저 자신도 모르게 저지를 수 있는 우상 숭배 행위에 대해
말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답변]

제 글의 핵심을 정확하게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성경상의 근본적인 진리에 관해선 정리가 되셨는데 질문하신 대로 이제 막상 현실에서 실제로 부닥치는 경우에 구체적으로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가의 문제가 남았습니다.

1.집안의 제사에서 신자가 취해야 할 태도

원칙적으로는 제사를 안 지내고 대신에 추모예배를 드리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그러나 가족들이 아직 불신자이기에 그들이 전도되어 집안에서 제사가 완전히 폐지될 때까지는  과도기적인 과정을 거치게 마련입니다. 그럴 때에 과연 어떻게 해야 되는가 참으로 판단이 서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성경에 드러난 신앙상의 근본 원칙에 비추어 답변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세상에 우상의 실제적인 존재(實在)는 없지만 사단과 그 종 귀신은 있습니다. “우상은 세상에 아무 것도 아니며 또한 하나님은 한 분밖에 없는 줄 아노라”(고전6:4) 그래서 귀신은 죽은 조상의 원귀나 혼이 아닙니다. 간혹 그런 모습을 뛸 때도 있지만 사실은 사람을 미혹시키려는 사단의 졸개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귀신을 믿고 숭배하는 제사 자리에는 죽은 조상이나 우상 대신에 사단의 세력이  와 있습니다. 만약 신자가 제사상을 향하여 절하면 사단에게 절하는 셈이 되므로 절대 그렇게 해선 안 됩니다.  

그렇지만 신자라도 제사 자리에 참석할 수는 있습니다. “이 세상의 음행하는 자들이나 탐하는 자들과 토색하는 자들이나 우상 숭배하는 자들을 도무지 사귀지 말라 하는 것이 아니니 만일 그리하려면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할 것이라.”(고전5:10) 제사는 돌아가신 조상을 추모하고 또 남아 있는 가족끼리 화목을 도모한다는 좋은 의미도 있습니다. 따라서 신자가 우상숭배에 대한  확고한 거부와 하나님에 대한 온전한 신앙 인식을 갖고서 단지 조상 추모와 가족의 화합을 위해 참석한다면 우상 숭배에 참석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신자가 제사 자리에 앉아서 무릎 꿇고 기도한다고 해서 잘못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어디에도 계시며 신자의 진실한 기도에 언제나 귀를 기울이시되 신자의 중심을 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가능하면 제사가 끝날 때까지 다른 방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마지막에 잠시 가서 기도를 하는 것이 더 좋습니다. 제사의 절차상에도 여러 가지 우상숭배와 이단적 요소와 의미가 많이 포함되어 있어서 그런 절차에 동참하는 것 자체가 그런 것들을 인정해 주는 의미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기도가 단지 형편상 할 수 없이 제사 자리에 참석했지만 저의 죄를 용서해달라는 식의 소극적인 내용만으로는 턱 없이 부족합니다. 말하자면 “제사에 참석하는 저들은 사단의 자식이라 지옥에 가도 나와는 상관이 없고 책임이 없지만 이 자리에 부득이 참석할 수밖에 없었던 저의 형편을 이해하셔서 저에게 벌은 내리지 말아주십시오”라는 기도는 차라리 안 하느니만 못합니다.  

신자는 언제 어디서나 세상 사람을 향해 하나님의 제사장 나라로 서있어야 합니다. 제사에 동참하여 가족과 친척을 만나는 것도 오직 그 한 가지 목적 때문이어야 합니다. 제사 자리에 있는 흑암의 세력들이 물러가고, 가족들을 향해 복음을 증거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고, 성령이 역사하여 그들의 마음 문이 열리도록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제사나 자신의 속죄만을 위한 기도가 아니라 불신자 가족들의 영혼 구원을 위한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신자는 반드시 세상 사람과는 구별된 모습으로 서야 합니다. 제사나 고사 자리에 할 수 없이 참석해서 순서를 맡게 되었다 할지라도 기독교식의 기도를 한다는 모습이 확연히 드러나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혹시라도 남들도 모르게 잠시 마음  속으로만 기도하고 모든 의식에 동참해서 따라 해선 안 됩니다.  

“너희 자유함이 약한 자들에게 거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지식(註: 우상과 귀신이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아는) 있는 네가 우상의 집에 앉아 먹는 것을 누구든지 보면 그 약한 자들의 양심의 담력을 얻어 어찌 우상의 제물을 먹게 되지 않겠느냐(註: 기독교에서도 제사를 인정한다고 오해하지 않겠느냐)”(고전(6:9,10)

도저히 제사나 고사 자리에 참석하고픈 마음이 없거나 또 참석하더라도 혼자서 따로 기도드릴 자신이 없으면 아예 참석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가족과 회사에 신앙 상의 이유로 참석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그대로 실천하면 됩니다. 그러나 그 이후에 따라 오는 핍박과 여러 가지 현실적 손해를 기꺼이 감수하셔야 합니다. 나아가 그렇게 선언한 원칙을 끝까지 타협하지 말고 고수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맹세를 함부로 하지 말라고 한 대로 중간에 괜히 변경, 절충, 포기할 양이면 아무 말 없이 참석해 기도하는 것이 낫습니다. 신자가 자기가 선언한 원칙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모습이 오히려 덕이 되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신자가 제사 문제를 처리하는 길은 아예 참석하지 않는 것과 참석은 하되 기도로 대체하는 것 둘 뿐입니다. 그러나 이 둘 모두 가족이 예수님의 사랑을 알게 될 때까지의 과도기적 과정입니다. 모든 식구가 함께 제사를 폐하고 집안의 우상을 불태우며 선조의 기일에 하나님께 예배드릴 수 있기를 간절히 소원해야 합니다. 제사에 일시적으로 참여하는 것도 오직 그 일을 위해 기도하고 계속해서 십자가를 기꺼이 지며 주님을 증거 하는 삶을 살기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신자가 정작 신경 써야 할 일은 제사보다 다른 부분에 더 많다는  뜻입니다. 신자는 무슨 일을 하든 항상 가족과 회사 동료 직원들을 전도의 대상으로 대해야 합니다. 무엇을 먹든 마시든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해야 한다는 뜻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래서 일상적인 삶에서 얼마나 신자답게 사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평소에는 세상 사람들과 똑 같이 모든 수단을 동원해 향락만 쫓는 삶을 살다가 제사만 기독교식으로 드린다고 그들 앞에 그리스도가 결코 증거 되지 않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제사란 서로 상반되는 두 가지 특성을 가집니다. 우선 일 년에 몇 번 있는 행사로 신자가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할 기회가 오히려 다른 일에 비해 적습니다. 반면에 제사는 불신자라도 죽음과 절대자에 대해 자연적으로 생각하는 계기가 되므로 신자가  기독교의 영원한 구원의 진리에 대해 소개할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가 됩니다.      

요컨대 제사에서 신자가 어떻게 처신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단순히 신자가 계명을 따르는가 어기는가에 한정지어 생각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이미 신자는 어떤 잘못을 범해도 구원이 취소되지 않습니다. 또 그런 대단하고도 소중한 구원을 주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단에 미혹되어 하나님의 크신 구원의 은혜를 모르는 자들을 주님의 십자가로 인도하라는 뜻이지 않습니까?

따라서 신자의 모든 사고와 말과 행동은 어떻게 하면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데에 가장 효과적일 것인가에만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또 그러기 위해서 항상 성령의 인도하심을 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반드시 세상 사람과는 구별된 모습으로 증거 되어져야 합니다. 도덕적 우월성의 비교가 아니라 전혀 다른 영적 차원의 삶이 있음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물론 현실적으로는 제사나 고사에 아주 미묘한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할 때가 많습니다. 가문의 분위기, 전통, 어른들의 성격, 기질, 가치관 사고방식 등(고사도 마찬가지임)을 함께 감안해야 합니다. 그래서 제사에 아예 불참하든, 참석은 하되 기도만 하던 간에 일관된 원칙을 갖고서 성령님의 인도에 따라야 합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제사 이외의 삶에서 신자답지 못한 허물과 잘못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지는 더더욱 말아야 합니다.

2. 사찰 관광과 기념품 구입에 관해서

진시황의 무덤을 단순히 관광 목적으로 다녀오시고 또 그 부장품을 본떠 만든 기념품을 사온 것까지 문제 삼을 것은 없습니다.

예수 믿는 신자들은 언제 어디서나 당당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권세가 세상 끝 날까지 땅 끝까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예수님의 권세란 바로 사단의 흉계를 완전히 깨트린 권세입니다. 음부의 권세를 이기고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이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는 권세입니다. 그 권세가 자기와 함께 함을 확신하는 신자라면 담대하게 어떤 이단이나 이방의 땅에 가셔도 됩니다.

물론 사단의 영이 지배적으로 차지하고 있는 특정 장소나 물건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단 종교의 사원이나 또 그 종교의 형상물 등입니다. 그래서 원칙적으로는 가능한 그런 곳에 접근을 하지 않고 물건도 만지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특별히 아직 믿음이 연약한 자들은 더욱 조심을 해야 합니다. 제사 문제와 마찬가지로 혹시라도 기독교인들이 우상 숭배자들과 교류 내지 협력한다는 오해를 불러 일으킬만한 일은 절대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엄격하게 따지면 이 세상은 어디를 가나, 누구를 만나나, 공중 권세 잡은 사단의 영이 지배하는 곳입니다. 그 중에 예수를 믿는 신자만이 그 지배에서 벗어나 있고 또 그 지배를 쳐부술 소명과 권세를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타 종교인들과 불신자들을 구령의 대상으로 보고 어떤 공적인 일을 협력할 수는 없어도 개인적으로는 얼마든지 접근하여 교제할 수 있습니다. 또 기독교 진리를 더 확신하기 위해서라도 타 종교와 비교 연구할 목적으로 그런 곳을 방문할 수 있습니다.

나아가 그 기준이 아주 미묘하긴 하지만 역사적 유물과 이단 종교의 거점(그 종교의 역사적 유물을 포함하여)과는 구별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미국 워싱턴의 링컨 대통령의 기념관에는 의자에 앉은 동상이 있고 또 그 상을 닮은 소형모조품을 팝니다. 그럼 이들 기념관을 신자가 관광하고 또 그런 기념품을 사왔다고 해서 큰 문제가 될 것은 없지 않습니까?  

그렇다고 진시황은 우상을 믿었고 링컨은 크리스찬이었으니 획일적인 비교는 곤란하다는 식의 논리는 억지입니다. 아무리 진시황이 신자가 아니었다 해도 그 능과 부장품은 일차적으로 우상이라기보다는 역사적 기념품이기 때문입니다. 또 그렇게 따지자면 링컨의 개인적 신앙이 과연 얼마나 진실했는지 아무도 모르지 않습니까?

“바울이 아레오바고 가운데 서서 말하되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성이 많도다. 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의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행 17:23,24)

바울이 우상숭배의 도시 아덴에서 전도하는 장면입니다. 아레오바고는 아덴의 법정 혹은 평의회를 가리키는데 당연히 그 주위에는 만신상들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심지어 알지 못하는 신의 제단도 근처에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바울은 오히려 그들에게 다가가 참 하나님과 그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과감하게 증거 했습니다.

이 문제도 신자의 삶의 모든 부분이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야 한다는 측면에서 따지셔야 합니다. 말하자면 그런 곳을 구경하거나 기념품을 사오는 것으로 신자가 계명을 어겼는지의 여부만 따질 것 같으면 너무나 기독교 신앙이 초라하지 않겠습니까?

결론을 말씀드리자면 역사적 명소뿐 아니라 이방 종교의 거점을  관광하는 것은 우상 숭배가 아닙니다. 역사적 기념품을 사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단 이방 종교와 우상과 직접 연관되는 종교적 형상물을 사는 것은 금해야 합니다. 혹시 그 구분이 모호할 때는 가능한 사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반면에 신자라면 바울 사도처럼 복음을 들고 그들에게 적극적으로 접근할 줄 알아야 합니다. 타종교와 비교해서 기독교 진리를 더 확고하게 세우기 위해서 비교 연구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연약한 자가 어떤 준비와 확신 없이 혼자서 접근하는 것은 금해야 합니다. 나아가 모든 신자는 믿음이 자라 바울처럼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과 그분의 일이 가장 소중해지도록  노력해서 역사적 기념품 같은 인간이 만든 조형물에 대한 관심과 흥미도 줄여 나가야 할 것입니다.  

3. 알지 못하고 우상 숭배하는 경우

이 문제는 성경에서 말하는 우상 숭배의 뜻을 먼저 정확히 이해하셔야 합니다. 사단과 귀신은 있지만 우상은 따로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상 숭배를 하지 말라는 둘 째 계명을   이런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우상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고 인간이 하나님에 대해 오해하고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만드는 것이란 뜻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섬기되 절대로 가시적 형상물을 만들어 놓고 마치 그것이 하나님인양,  혹은 하나님을 대체하는 힘을 가진 양 믿고 섬기지는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딤전1:17) 분이기 때문에. 세상의 어떤 것과도 비교당할 수 없고 전혀 유사하지도 않습니다.

반면에 인간이 우상을 만드는 목적은 가시적 형상물로 자신의 불안감과 염려를 없애려 하거나, 특정한 축복을 받으려는 신탁을 의뢰하기 위해서입니다. 말하자면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는 감히 들고 나올 수 없는 세상적, 이기적, 심지어 죄악적인 요구를 우상에게 마음 놓고 하겠다는 뜻입니다. 인간은 우상을 스스로 만들고선 그 앞에다 대고 순전히 자기들을 위해서 절하고 빕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인간의 그런 어리석음을 너무나도 통렬하게 지적했습니다. “나무는 사람이 화목을 삼는 것이어늘 그가 그것을 가지고 자기 몸을 더웁게도 하고 그것으로 불을 피워서 떡을 굽기도 하고 그것으로 신상을 만들어 숭배하며 우상을 만들고 그 앞에 부복하기도 하는구나 그중에 얼마는 불사르고 얼마는 고기를 삶아 먹기도 하며 고기를 구워 배불리기도 하며 또 몸을 더웁게 하여 이르기를 아하 따뜻하다 내가 불을 보았구나 하면서 그 나머지로 신상 곧 자기의 우상을 만들고 그 앞에 부복하여 경배하며 그것에게 기도하여 이르기를 너는 나의 신이니 나를 구원하라 하는도다.”(사44:15-17) 한 마디로 이상한 형상으로 타다 남은 나무토막을 조각해선 신이라 부르고 자신을 구원하라고 절한다는 것입니다.

우상은 인간이 의도적으로 자기 욕심을 채우려고 스스로 만든 것입니다. 그렇다면 자기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우상을 숭배하는 일이란 아예 불가능합니다. 또 알지 못하고 짓는 죄가 어디 그런 형상에 절하는 행위뿐이겠습니까? 그런 일은 특정 장소에 방문했을 때만 일어나는 일로 오히려 빈도수는 훨씬 드물지 않습니까? 대신에 신자들이 매일 자기도 모르게 마음으로, 말로, 행동으로 짓는 죄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자꾸 우상 숭배를 어떤 형상물에 절하는 것으로 한정하기 때문에 혹시라도 다른 종교나 역사적 기념관에서 자기도 모르게 그런 잘못을 범하지 않을까 염려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상 숭배란 본인이 의식적으로 이 세상의 어떤 것으로 하나님을 대신하게 하는 일입니다.  자신의 존재와 삶과 인생에 있어서 하나님 대신에 혹은 하나님보다 더 강하게 영향을 받고 있거나 받고 싶어 하는 것들이 더 큰 우상입니다. 깎아 놓은 형상물의 우상은 믿음이 약한 자라도 보면 대충 알 수 있어 얼마든지 거부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탐심이 우상 숭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골3:5) 탐심이 세상적인 것, 물질적인 것을 과도하게 욕심을 내는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신자가 반드시 있어야 할 자리를 벗어나는 것, 있어서는 안 될 자리에 서는 것이 탐심입니다. 한마디로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돈, 전문가, 사람, 학식, 건강, 나아가 자신 등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신자가 정작 주의해야 할 우상 숭배는 바로 이런 것입니다.

제사, 고사, 이단 종교 사원, 형상물 등은 눈에 보여서 조심하기 쉽습니다. 혹시라도 그들과 맞닥트려 그리스도를 증거할 담력과 믿음이 갖추어져 있지 않다면, 또 어디까지 우상 숭배인지 구별하기 힘들면 그런 것들을 피하면 그만입니다. 그러나 현실의 삶에서 하나님 대신에 자꾸만 다른 힘들을 구하고 의지하려는 성향은 정말 평생을 두고 피 흘리기까지 싸워야 할 우상숭배입니다. 다른 종교의 우상인줄 알지 못하고 그 앞에 절을 한 경우는 아무 죄가 아닐지라도 종교적으로는 경건하고 거룩하게 살면서도 자기의 의를 자랑하거나 세상적인 방법으로 살고 잇는 것이 더 큰 죄이자 우상 숭배임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8/16/2006 박 신 목사


출처 : 은혜동산 JESUS - KOREA
글쓴이 : 죤.웨슬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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