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리학

[스크랩] 사도신경 중에서 "음부에 내려 가시고"에 대해

수호천사1 2016. 1. 6. 15:36

 사도신경 중에서 "음부에 내려 가시고"에 대해

 

 

'사도신경'이란 표현은 기록상 390년경에 처음 등장하는 데, 12사도에 의해 공동으로 작성된 신경이라는 전설로 인해 형성된 명칭이다. 4세기말 루피노(Rupinus of Aquileia)는 사도신경에 대한 주석에서 이 신경의 사도적 기원을 주장하고 있다. 즉 사도들이 성신(聖神)을 충만히 받고 복음전파를 위해 떠나기 전에 그리스도교 교리의 핵심을 확인키 위해 가르침의 골격과 믿음의 규정을 정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주장에 암브로시오(Ambrosius)도 동조하였는데 그는 신경에 포함된 12항목과 12사도를 연결시켜 생각하였다. 따라서 12사도가 각각 한 항목씩의 신조를 고백했다는 주장이 중세까지 별 이의 없이 전달되어왔다.

그런데 피렌체공의회(1438년)에서 에페소의 대주교 마르코 에우제니코(Marcus Eugenicus)가 동방교회에서는 이러한 사도신경 및 그 사도적 기원에 대하여 아는 바 없음을 주장하였다. 몇 년 뒤에는 이탈리아의 인문주의자 라우렌시오 발라(Laurentius Valla, ?-1547)가 보다 이론적으로 사도신경의 사도적 기원에 대하여 반대하였다. 그러나 최근 학자들의 연구결과는 사도신경에 나타난 신조(信條)의 내용이 모두 성서적 사도적 기원을 가지고 있음을 밝혀내고 있다. 오늘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사도 신경은 200년경부터 세례식을 거행할 때 사용하면서 부터 시작이 되었다. 세례를 받는 사람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받기 때문에 성부 성자 성령의 신앙을 사도신경을 통하여 고백하게 한 것이다.

이렇게 세례를 위한 신앙 고백이 점차 발전하여 니케아시대에서부터 일반적으로 믿어 오던 것을 좀더 보충하여 세례문답 뿐만 아니라 그노시스(영지주의)이단을 위시한 여러 가지 잘못된 교리를 구별하기 위한 정통적 신앙고백으로 점차 사용하게 되었다. 터툴리안(주후 200년)이 전해주는 것과 같은 초기의 본문에는 영지주의종파들의 이단설에 대해 올바른 가르침을 전하기 위해 꼭 필요한 내용들만이 포함되어 있었다. 영지주의는 하나님은 창조자가 아니며, 예수께서 육체로 나신 역사적 인물로서, 참으로 부활하셨고, 또한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육의 부활의 소망이 있다는 것을 부인했는데, 워낙 이런 관념이 영향력이 컸다.

따라서, 교회는 세례문답자들에게 오늘날 우리가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형태로 영지주의를 비판하여 기독교신앙으로 이끌고자 한 것이다. 200년을 전후로 하여 로마에서는 8∼9개의 항목으로 구성된 신경이 신앙의 규범으로 정착되었다. 히포리토(Hippolytus)의 사도전승(traditio apostolica)에 나타난 신경은 고대 로마신경이라 불리우는데, 사도신경의 모체였을 뿐 아니라 후기에 나타나는 모든 신경의 원형과 같은 구실을 하였다. 그러나 동방에는 큰 영향을 주지 못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점차 영지주의가 종식되어가고 교회의 역할이 증대되면서 6세기부터 당시 교회생활에 중요한 조항들, 즉 음부에 내려 가신 것(descensus ad inferos), 죄를 사해주는 것(remissio peccatorum), 거룩한 공회(sancta Ecclesia catholica),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communio sanctorum), 영원히 사는 것(vitam aeternam) 이 삽입되었다.

“성도의 교제”란 말은 650년 이후에 삽입되었으며 “영원히 사는 것”이란 말은 어거스틴이 사용한 신경에서부터 쓰여지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문제의 지옥강하 조항도 이 나중단계에 하늘로 들어올리심(ascensus ad coelos)에 평행하여 신조로 편입된 것이다. 고대교회시대 내내 이 조항이 잘 알려지지 않았거나 무시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가장 오랜 언급은 359년 Thrace의 Nice에서의 교회회의에서였을 뿐, 400년경의 로마신경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았고, 어거스틴의 교리해설에서도 이 조항은 언급되지 않았다.

동시대인이었던 제롬(=히에로니무스)가 이 조항을 언급하고 있는 것을 보면, 어거스틴은 이 조항을 받아들이지 않거나 신조로서의 권위를 무시했다고 볼 수 있다. 그후 750년경에 정식으로 삽입이 되었다 그런데, 잘 알려져 있다시피 중세로 가면서 연옥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증대되었다.

그래서 어거스틴에게서는 연옥이 확실치 않은 가능성에 지나지 않았지만, 로마감독 대레오(Leo the Great)에 와서는 믿어야 할 확실한 것으로 선포된다. 이와 더불어 지옥강하의 조항이 본격적으로 그 위치를 확고히 자리한 것이다.

그래서 중세기의 아퀴나스의 가르침에 따라 트렌트 공의회의 교리문답(49절)에서 처럼 예수의 지옥강하는 예수를 모르고 죽은 조상들이나 죄를 짖기 전에 죽은 아이들이 죽어서 가는 림보(Limbo)에서 그들을 구출하기 위함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중세 말기에 이미 이 조항을 빼버리자는 제안이 나왔고(예컨대, Reginald Peacock, 1440), 종교개혁 때에도 이 조항에 대한 비판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종교개혁자들은 이것을 그대로 살리는 쪽을 더 선호했다.

가령 칼빈은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지옥강하를 빠뜨려서는 안 된다. 이것은 구속을 실현하기 위해서 적지 않게 중요한 일이다. 그런데 고대저술가들의 글을 보면 사도신경에 있는 이 어귀가 교회에서 그다지 많이 사용되지 않은 때도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교리의 요점을 설명할 때에는 이 어귀를 보존해야 한다. 매우 중요한 문제에 대해서 귀중하고 유용한 신비가 거기 포함되었기 때문이다."(기독교강요 2.16.8) 칼빈이 여기서 말하는 '귀중하고 유용한 신비'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하나님께 버림을 받으신 (정신적이고 영적인) 고통을 죽음의 세계에 이르기까지 친히 겪으셔서 우리를 위한 대속을 성취하셨다는 복음의 진리를 가리킨다.

그래서 예수의 "'지옥강하'는 우리를 위해서 그리스도가 받으신 정신적 고통을 의미한다"고 하였다(기독교강요. 2.16.10). 루터는 신이시며 인간이신 그리스도께서는 문자 그대로 지옥에 들어 가셨다고 하였다. 이런 전통에 따라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은, "음부에 내려 가시사"라는 말은 왜 첨가된 뜻은 "가장 큰 시험 중에서도 나로 하여금 나의 주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와 그 전에 그의 영혼으로 당하신 말할 수 없는 고통과 아픔과 공포로 말미암아 나를 지옥의 고통과 괴로움에서 구속하셨음을 확신하게 하기 위함이다"고 진술하였다(44문답).

또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도, "그리스도의 죽음 후의 낮아지심은 장사되심과 죽은 상태에 머무심과 제3일까지 죽음의 권세 아래 있으심인데, 그것은 다른 말로 '지옥에 내려가시사'라고 표현된다"고 진술하였다(50문답). 한국카톨릭 교회는 지옥강하를 "저승에 가시어" 라고 번역하였는데 저승이란 일반적으로 음부(陰府), 명부(冥府), 유명(幽冥), 후생 등으로 불리며, 사람이 죽은 뒤에 그 혼령이 산다는 저 세상을 말 한다. 예전에 카톨릭 교회에서는 저승을 고성소(古聖所)라 하였다. 고성소란 경계(境界)라는 의미의 라틴어 림보(Limbo)에서 유래한다.

그러나 한국개신교회는 카톨릭교회와 달리 일찍이 사도신경을 번역할 때 지옥강하를 삭제하였다. 한국교회가 지옥강하 신조를 굳이 포함시키지 않는 것은, 굳이 연옥을 연상시켜 중세적 오해를 반복할 필요가 없다는 점도 있겠지만, 예수가 지옥에 가셨다는 표현이 지옥에 대한 강한 종교의식을 가진 한국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데 별 도움이 되지 않는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한국 개신교는 이미 사도신경에서 임의로 예수가 죽은 후 지옥 혹은 음부에 내려갔다는 구절을 삭제했다. 그래서 전 세계 교회에서 이 구절이 없는 사도신경을 가지고 있는 곳은 유일하게 한국 교회뿐이라고 한다. 이처럼 임의로 사도신경의 한 조항을 삭제한 것에 대한 비판이 없지 않다.

그러나 사도신경 자체가 성서와 같이 일점일획을 더하거나 뺄수 없는 경전과 같은 절대적 규범이 아니다.

정경도 사실상 사본과정이나 번역 과정에서 첨삭이 있었고 그 본문도 결국은 해석상의 문제이다.

루터도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롬 1:17)는 말씀에 "오직"을 첨가하였고, "약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막 10:25)는 구절에서 바늘 귀는 바늘 눈(the eye of a needle)의 의역이다.

서양에서는 바늘 눈이라고 하지만 우리는 바늘 귀라고 표현하기 때문에 우리에게 뜻이 통하게 하기 위해서 번역을 다르게 한 것이다. 지옥강하의 삭제도 이런 관점에서 보아야 할 것이다.


참고로 다음은 사도신경 라틴 원문과 번역본을 소개한다.

Credo in Deum Patrem omnipotentem; Creatorem coeli et terrae.(700년경 라틴원문)
I believe in God, the Father almighty, creator of heaven and earth.(현대 영어본문)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개신교 구 사도신경)
전능하시고 천지를 창조하신 아버지 하나님을 믿사오며 -->(개신교 새 사도신경)
전능하신 천주 성부, 천지의 창조주를 (저는) 믿나이다 -->(천주교의 사도신경)
나 천지를 내신 전능 천주 성부를 믿으며 --->(성공회의 사도신경)

Et in Jesum Christum, Filium ejus unicum, Dominum nostrum;
I believe in Jesus Christ, God's only Son, our Lord,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님,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며

qui conceptus est de Spiritu Sancto, natus ex Maria virgine;
who was conceived by the Holy Spirit, born of the Virgin Mary,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시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성령으로 인하여 동정 마리아께 잉태되어 나시고,
성신으로 인하여 강잉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심을 믿으며

passus sub Pontio Pilato, crucifixus, mortuus, et sepultus;
suffered under Potius Pilate, was crucified, died, and was buried;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장사한지
본디오 빌라도 치하에서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묻히셨으며
본시오 빌라도 통치아래서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고 묻히셨으며
본디오 빌라도 때에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묻히심을 믿으며

descendit ad inferna; tertia die resurrexit a mortuis;
he descended to the dead. On the third day he rose again;
(he descended into hell; --> 전통 영어 본문) (-지옥강하 생략-),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음부에 내려가사,
사흘만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셔서 저승에 가시어,
사흗날에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시고, 음간(陰間)에 내리사,
사흘만에 죽은자 가운데로 좇아 다시 살으심을 믿으며

ascendit ad coelos; sedet ad dexteram Dei Patris omnipotentis;
he ascended into heaven, he is seated at the right hand of the Father,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하늘에 올라 전능하신 천주 성부 오른편에 앉으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천주 성부 우편에 좌정하심을 믿으며

inde venturus (est) judicare vivos et mortuos.
and he will come again to judge the living and the dead.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거기로부터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그리로 부터 산 이와 죽은 이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믿나이다.
저리로서 좇아 산 이와 죽은 이를 심판하러 오실 줄을 믿나이다

Credo in Spiritum Sanctum I believe in the Holy Spirit,
(Ghost : 전통 영어 본문) 성령을 믿사오며,
성령을 믿사오며 성령을 믿으며,
나 성신을 믿사오며

sanctam ecclesiam catholicam;
the holy catholic church,
거룩한 공회와
하나의 거룩하고 사도적이며 보편적인 교회를 믿사오며
거룩하고 보편된 교회와 거룩한 공회와

** 개신교 새 사도신경의 번역은 원문에 없는 구절로, 니케아 신조의 구절, "We believe in one holy catholic and apostolic Church / Credo unam sanctam catholicam et apostolicam ecclesiam"를 사도신경의 종전 구절 대신 옮겨 넣은 것이다. '가톨릭 교회'에 고백하는 듯한 신경 원문의 직역은 싫지만, 또 '공회'라는 세속적인 용어를 그대로 쓰기도 곤란한 번역자의 고민이 보인다.

sanctorum communionem;
the communion of saints,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성도들이 서로 사귀는 것을 믿사오며
모든 성인의 통공을 믿으며,
성도의 상통함을 믿으며

** 여기에서 천주교와 개신교의 결정적 차이가 나온다. 천주교는 천상교회(성인) 연옥교회(통회하고 보속하는 연령) 지상교회(신도)가 서로를 빌어줌으로서 주께서 살펴보기를 간구하나(가톨릭의 사도전승으로 확정), 개신교는 천상교회와 연옥교회, 그리고 지상교회간의 '통공'에 대해서 비성서적인 죽은 사람과의 소통으로 보고 단죄하며, 단지 지상교회의 성도들이 서로 사귄다고 축소한다. 단지 지상교회의 성도들끼리만 서로 사귀는 것을 믿는다고 한다.

remissionem peccatorum; carnis resurrectionem;
the forgiveness of sins, the resurrection of the body,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죄를 용서함 받는 것과, 몸이 다시 살아나는 것과
죄의 용서와, 육신의 부활을 믿으며
죄사함을 믿으며, 육신이 다시 삶을 믿으며

vitam oeternam. Amen.
and the life everlasting. AMEN.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니다. 아멘.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영원한 삶을 믿나이다. 아멘.
영원히 삶을 믿나이다. 아멘

 

글쓴이: 허호익교수. 목회신학정보에서

출처 : 은혜동산 JESUS - KOREA
글쓴이 : 임마.누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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