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주의와 개혁주의의 신학은 어떻게 다른가? | ||||||
[ 신학논단 / 정동섭 ] 세대주의 신학의 문제점 분석 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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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섭 목사 / 가족관계연수소장, 전 침신대 교수, 사이비종교피해대책연맹 총재, Ph.D. 1. 세대주의 신학이란 무엇인가?
세대주의 신학은 영국의 배타적이고 폐쇄적인 형제교회(Separatist Plymouth Brethren) 지도자 다비(John Nelson Darby: 1800-1882)에 의해서 시작되었다. 19세기 중반에 영국 성공회가 부패했다면서, 교파를 떠나 형제운동을 시작하며 세대주의를 체계화한 사람이다. 다비의 지도하에 형제교회는 급성장했는데, 세대주의는 영국과 미국의 근본주의에 유입되면서 가시적인 기성교회의 제도와 충돌하였다. 신학적으로, 교회적으로 편협한 노선을 주창하면서, 뉴톤(B.W. Newton)과 심한 논쟁 끝에 다비는 배타적 형제교회의 지도자가 되었다(영미에는 개방적인 형제교회 Open Brethren도 있는데, 우리나라에 도입된 것은 배타적이고 폐쇄적인 형제교회다). 성경 전체를 이해하는 시스템에 따라서 신학이 크게 두 갈래로 갈라지는데, 하나는 루터와 칼빈이 가르친 개신교 ‘언약신학’에 기초한 ‘개혁주의 신학’이고, 또 다른 하나는 ‘세대주의 신학’이다. 세대(dispensation)는 세계역사를 관통하는 여러 세대 속에 하나님의 프로그램이 전개되는 것을 가리킨다. 초기 선교사들은 대부분 세대주의 신학에 근거한 복음을 우리나라에 전파했다. 형제교회 창시자 다비와 성경주석자 스코필드는 역사를 일곱 세대로 나누어 설명했는데, 각 세대마다 하나님께서는 다른 구속적 계획을 마련하였다고 보았다. 세대주의에서는 성경 역사를 무죄(innocence)시대, 양심(conscience)시대, 인간통치(human government)시대, 약속(promise: Patriarchal Rule)시대, 율법(Law)시대, 은혜(grace)시대, 천년왕국(Kingdom: Millennium)시대 등 일곱 가지 시대로 나누어 설명하는데, 각 시대마다 하나님이 새로운 구원의 길을 제시해주셨다고 주장하였다. 세대주의 신학에 의하면, 각 시대마다 구원 얻는 방법이 다르다. 양심시대는 양심에 따라 살면 구원을 받고, 율법시대에는 율법을 따라 구원받는다는 식이다. 시대마다 다른 구원의 길을 주셨다는 교리였다. 그래서 율법을 지키면 구원받는다는 주장이 나왔다. 모세와 이스라엘이 율법을 지킬 것을 언약하였지만 사람들이 율법을 지키지 못하고 실패하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은혜로 구원하신다는 주장은 율법과 은혜의 관계를 적대적인 관계로 만들어 버렸다. 따라서 지금 성도들은 은혜시대를 살아가기 때문에 십계명은 우리의 신앙과 생활에 유일한 법칙이 될 수 없다는 말이 나오게 되었다. 이러한 세대주의 종말론은 “더 이상 율법이 필요 없다”는 율법폐기론(antinominianism)으로 이어졌고, 기독교의 윤리성은 무너지게 된 것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오대양사건과 세월호사건 하면 떠오르는 유병언의 구원파라 할 수 있다. 회개무용론을 가르치고 있는 또 다른 구원파의 교주 박옥수도 세대주의 신학을 따르는 돌팔이 목사 중 하나다. 이 신학에 영향을 받은 많은 정통교회도 은혜를 누린다면서 율법을 무시하는 성향을 드러내고 있다. 한국기독교의 큰 문제 중에 하나는 바로 율법과 은혜를 원수처럼 생각한 것이다. 세대주의적 사고에 따라, 율법은 모세를 통해서 주었고, 우리는 율법과 관계가 없으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받은 은혜만이 우리가 받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율법폐기론이다. 세대주의 율법관과 종말론이 한국기독교를 망치고 있고, 많은 이단을 양산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감리교 사회학자 이원규 교수는 “한국교회는 교파분열이 심하고, 사이비 이단종파가 많으며, 품위 없는 성직자가 많다.”고 지적하였다. 예수님은 열매를 보면 나무를 알 수 있다고 하셨다. 물질주의로 나타나는 탐심과 성적 타락은 그 배후에 개혁주의 언약신학의 반대 입장에 서 있는 세대주의 신학이 한 몫을 하고 있다고 본다. 다비는 유럽과 뉴질랜드, 미국과 캐나다를 여행하면서 세대주의를 보급하였고 많은 사람을 형제교회(Brethrenism)로 회심시키려 시도하였다. 그의 세대주의 종말론은 1883-1897에 연례적으로 열렸던 Niagara Bible Conference를 통해 전파되었다. 많은 침례교인과 감리교인, 그리고 장로교인들이 그의 신학적 전제를 수용하였지만 기존교단에 대한 비판으로 교단을 약화시켰기 때문에 정통교단을 떠나지는 않았다. 1920년대 당시 자유주의가 성경적 가르침을 거부한 것에 대한 반작용으로, 세대주의자들과 프린스톤 칼빈주의자와 같은 보수적인 그리스도인들이 달비의 세대주의 신학을 수용하면서 그의 종말론은 미국 근본주의에 강한 영향을 미쳤다. C.I. Scofield Reference Bible은 50년 동안 3백만 부가 팔렸는데, 그 영향으로 Biola, Moody, Dallas, Grace와 같은 신학교가 세대주의 신학에 근거한 종말론을 가르쳤다. 다비는 개신교 교리의 핵심이 되는 두 가지를 부인하였다. 첫째, 죄인이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전가 받아서 의인이 된다는 ‘전가설’, 즉 이신칭의의 교리를 부인하였다. 죄인이 예수를 믿으면 ‘놀라운 교환’(wonderful exchange)이 일어나는데, 우리가 가진 죄를 예수님께 드리고, 예수님은 우리에게 의를 주신다는 교리이다. 신학자들은 이 교환을 전가(imputation)라고 부른다. 둘째, 성도의 성화과정에 필요한 십계명의 규범적 기능을 부인하였다. 칼빈이 말한 ‘율법의 제3용도’를 부인하였다. 결국 한국에 들어온 선교사들은 세대주의 종말론과 근본주의신학을 바탕으로 사역하였다. 결국 십계명을 무시하는 도덕률폐기론, 즉 율법폐기론이 만연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 신학의 극단적 열매가 구원파의 회개무용론, 도덕률폐기론으로 나타났다고 할 수 있다. 20세기 한국의 개신교는 세대주의 신학의 지배를 받았다고 할 수 있다. 세대주의 영향으로 한국교회는 이스라엘과 교회, 그리고 율법과 복음을 이원론적으로 이해하였다. 점진적 계시와 관련하여, 한 세대는 하나님의 경륜 안의 한 단계다. 1960년대 초부터 세대주의적 성경해석으로 회개 없는 잘못된 구원과 임박한 종말을 강조하며 나타난 이단은 다미선교회나 구원파만이 아니다. 지방교회의 사상적 뿌리도 세대주의다. 기존교회 안에서도 특히 극단적 세대주의 신학(ultradispensationalism)에 따라 성경을 해석해 이스라엘이 독립하던 해 1948년으로부터 한 세대 되는 1988년 전후에 예수가 재림하고 신자들은 휴거된다고 가르치던 대형교회 목사들이 있었다. 세대주의의 신학적 특징을 대표적 세대주의 신학자 찰스 라이리(Charles Ryrie)는 그의 책 <오늘날의 세대주의>(Dispensationalism Today)에서 다음과 같이 규정하였다. ⑴ 세대주의의 주요 특징은 각각의 세대마다 하나님의 인간관의 통치관계가 바뀌며, 따라서 인간의 책임도 세대마다 바뀌게 되며, 그에 합당한 계시를 준다는 점이다. ⑵ 하지만 새로운 세대를 구분하는데 시험, 실패, 심판 등은 2차적 특징으로 필수조건이 아니다. ⑶ 세대주의자는 반드시 전천년주의자이지만, 그 역은 성립되지 않는다. 즉 전천년주의자 중에는 세대주의를 지지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⑷ 세대주의의 필수조건은 다음과 같다. ⑸ 문자적 해석을 지지하는 이유로는 첫째, 철학적으로 언어자체의 목적이 문자적 해석을 요구한다. 성경도 언어의 특별한 사용으로 간주될 수 없다. 둘째, 성경적으로, 그리스도의 초림에 관한 구약의 예언들이 문자적으로 모두 성취되었다. 셋째, 논리적으로 만약 문자적 해석법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모든 객관성을 상실할 것이다. ⑹ 일관된 문자적 해석의 중요성: 일관된 문자적 해석은 계시가 진전되더라도 단어의 의미는 변하지 않고 분명히 구별된다(예를 들면, 이스라엘과 교회). 하지만 알레고리나 영적 해석은 두 단어의 융합을 허용한다. 결국 계시가 주어진 시간에 상관없이 모든 계시에 대하여 같은 해석학적 원리가 적용되는 것이 합리적이다(성경 본문의 장르와 저자에 따른 용례와 문체의 차이에 따른 고려). ⑺ 일관된 문자적 해석의 결과: 성경 본문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계시의 과정에서 구별을 인식하여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프로그램에는 경륜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즉 세대주의를 수용하게 된다. 세대주의 다양한 경륜을 하나님의 목적의 ‘계속적인(successive) 드러냄’ 뿐만 아니라 ‘점진적인(progressive) 드러냄’으로도 바라본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모든 프로그램의 절정은 예수 그리스도의 천년왕국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세대주의만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목적의 통일성(unity), 다양성(variety), 그리고 점진성(progressiveness)을 모두 바라본다. ⑻ 세대주의는 일관된 문자적 해석을 종말론에도 적용하며 따라서 구약의 예언이 천년왕국시대에 문자적으로 성취될 것이라 해석한다. 세대주의는 교회와 이스라엘을 엄격하게 구분하기 때문에, 천년왕국에서 성취된 구약의 예언은 교회가 아닌 이스라엘에 해당된다고 해석한다. 따라서 교회는 환란이 시작되기 전 지상으로부터 들려 올려 질 것이다(환란전 휴거). 중국교회와 한국의 인터콥에서 주도하고 있는 백투예루살렘 운동은 세대주의 신학을 배경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2. 세대주의 신학과 개혁주의 신학(언약신학)은 어떻게 다른가? (1) 세대주의 신학 세대는 “하나님의 뜻에 대한 어떤 특별한 계시에 순종하는 것과 관련해 인간이 시험받는 기간”이다. 세대주의는 구약은 율법시대, 신약은 은혜시대로 구분하기를 좋아한다. 세대의 수: 바울은 적어도 세 개의 세대를 언급한다. 현재 이전의 세대(골 1:25-26), 현 세대(엡 3:2), 그리고 장래 세대(엡 1:10). 이 세 세대는 네 번째 세대를 요구하는데, 율법 이전 세대다. 그리고 율법 이전 세대는 다시 두 개로 분류되는데, 타락 이전과 타락 이후로 구분된다. 성경의 전천년설적 이해의 관점에서는 적어도 다섯 세대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7세대는 노아홍수 이후의 한 세대와 아브라함의 부름을 계기로 한 또 한 세대를 상정하고 있다. 세대주의신학은 문자적 해석원리를 따른다. 이 해석원리를 적용하다보면, 이스라엘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과 교회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을 구분하게 된다. 그러므로 교회는 구약시대에 시작된 것이 아니고 오순절 날 시작된 것으로 본다. 이스라엘과 교회는 언제나 분리되어야 한다. 성경이 이스라엘에 대해 말할 때 그것은 교회를 뜻하는 것이 아니며, 성경이 교회에 대해 말할 때 그것은 이스라엘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이스라엘에 대한 구약의 예언 중에는 아직 성취되지 않은 것이 많으므로 이런 약속들은 미래에 성취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유병언, 이요한, 박옥수 등도 구원받은 사람은 은혜 아래 있기 때문에 율법의 속박에서 해방되었다는 말의 의미를 오해하여 가르쳤다. 그러나 성도가 율법에 대해 죽었다는 말은 율법의 정죄와 저주에서 해방된 것이지 율법의 도덕적 교훈에서 자유하게 되었다. 즉 십계명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 아니다. 이것이 세대주의 신학의 맹점이다. 예수님은 간음 중에 잡혀 온 여인에게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거룩한 법을 외면하고 은혜만을 강조하다 보니, 구원파 유병언의 삶에서 보듯이, 양심의 가책이 없이 도적질하고, 간음하고, 거짓말하고, 남의 것을 속여서 빼앗고 탐내고 살인이 저질러지게 되는 결과를 낳게 되었던 것이다. 세대주의의 우산 아래서 수 많은 이단이 독버섯처럼 생겨나게 된 것이다. 따라서 개혁주의신학의 입장에서 볼 때, 세대주의를 이단이라 할 수는 없지만(세대주의에는 온건한, 점진적, 극단적 형태의 세대주의가 존재한다) 세대주의의 극단적 형태는 유사기독교에 해당하는 나쁜 신학이 틀림없다. (2) 개혁주의 신학(언약신학) 하나님은 행위언약에 실패한 인간에게 자비를 베푸셔서 은혜언약(covenant of grace)을 준비해 주셨다. 은혜언약의 핵심내용은 누구든지 자기의 노력이나, 자기의 선이나, 자기의 의를 의지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자는 죄사함을 얻고 하나님 앞에 의인이 되어 영생을 소유하는 존재가 된다는 것이다. 결국 은혜언약의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자는 영생과 부활의 축복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아담과 행위언약을 맺고 노아와 언약을 맺고 최후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새 언약을 맺으시는 언약의 하나님이시다. 어떤 개혁신학자들은 언약을 행위언약(covenant of works), 은혜언약(covenant of grace), 구속언약(covenant of redemption)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고, 이삭, 야곱과 모세, 다윗과 언약을 맺고 점진적으로 그 뜻을 계시하셨는데, 모든 언약에 보면, ‘아브라함의 후손,’ ‘이삭의 후손’, ‘야곱의 후손’이라는 단어는 언제나 단수 ‘자손’(seed)으로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단수로 적혀 있는 ‘자손’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결국 이 모든 언약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천하 만민이 영생의 복을 얻게 되리라는 은혜언약에 대한 점진적 계시이다. 구약시대에는 그림자와 예표를 통해 구원을 받았지만, 신약시대에는 실체를 보고 믿고 구원받는 것이다. 다시 말해 구약시대에는 구원에 관한 모든 것이 그림자였고 예표였지만, 새 언약은 실체이신 그리스도의 현현으로 죄사함과 영생을 주신다는 그림자를 폐한 언약이다(피영민, 2015). 옛 언약의 국가는 배타적이며 선택적이지만, 새 언약에서의 교회는 포괄적이며 개방적이다. 구약은 예비적 성격(예표)을 갖고 있으며, 신약은 집행적 성격(성취)을 가진다. 구약은 행위언약이지만, 신약은 은혜언약이라는 명칭으로 적용되어 진다. 체계화된 언약신학은 최근에 와서 정립되었다. 루터나 쯔윙글리, 칼빈, 멜랑히톤의 글에는 죄와 부패, 구속이 거론되기는 하지만, 언약신학은 이들의 글에 나타나지 않는다. 언약신학에 대한 언급은 1647년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이 나오기까지 어떤 신앙고백에도 언급되지 않는다. 언약신약이 체계화된 것은 17세기였다. 교리적으로 볼 때, 언약신학은 종교개혁 이후에 발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스도의 법과 모세의 법은 다른 법이 아니다. 신약과 구약에는 연속성이 있다. 각 법은 하나님께로서 온 것이다. 그리고 두 법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도록 종용하는 같은 목적을 지니고 있다. 그리스도의 법은 모세의 법을 더 심화시켰을 뿐이다. 개혁신학(Reformed Tradition)은 멜랑히톤, 루터, 칼빈과 쭈빙글리의 신학적 전통을 따르는 것으로, 모세의 법에는 도덕적이고, 의식적이며, 시민적 측면이 있는데, 도덕법에는 ①시민적, ②영적, ③규범적 3가지 용도가 있는 것으로 본다. 언약신학은 타락 이후 하나님은 하나의 은혜 언약 아래 역사하신 것으로 본다. 통일된 특징은 은혜의 언약이며 그 언약 아래 있는 구원적 계획이 있다. 구약에서는 앞으로 오실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받는 것으로 구약의 언약은 기대적 성격이 있고, 신약에서는 이미 오신 그리스도를 믿는 성취된 구원으로 그 언약의 성격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3) 세대주의 신학의 문제점 세대주의 신학은 율법과 복음을 대립적으로 이해했다. 율법의 세 가지 용도는 상당한 시간이 걸리면서 이단집단과의 논쟁을 하면서 정리된 것이다. 교회역사를 보면, ‘율법’(말씀)과 ‘성령’, 그리고 ‘나’ 사이에 세 가지 역학적 관계를 찾아볼 수 있다. ①말씀을 무시하고 성령의 역사만 강조하는 경우; ②말씀은 강조하는데 성령의 역사를 무시되는 경우; 그리고 ②말씀과 성령이 조화를 이루는 경우이다. 첫째는 율법을 배격하고 성령의 직통계시만을 강조하는 율법폐기론자의 경우로 율법을 폐하고 마음대로 살려던 이원론에 빠진 영지주의자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지금 한국에는 성령 사역의 이름으로 다락방 운동(가계저주론, 조상 죄), 신사도운동(제3의 물결과 같은 현상적인 집회), 알파코스와 은사남용, G-12, D-12와 견고한 진, 쓴 뿌리, Soul Tie), 귀신론에 기초한 내적치유 운동이 행해지고 있으나 계명과 율법을 지키는 것은 상대적으로 약화되고 있다. 이단들 가운데 김기동 베뢰아 운동, 변승우의 큰믿음교회 등이 이 경우에 해당한다고 하겠다. 둘째는 말씀만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경우로서 율법주의 오류에 빠진 이들이다. 율법주의란 자기 자신의 힘으로 율법을 지켜 의롭게 되려는 사고방식을 의미한다. 이런 율법주의자의 문제점은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 선을 행한 다음 자기 의(義) 사상에 빠지는 데 있다. 성령의 도움 없이 율법을 지키려는 왜곡된 보수주의자들이 여기에 해당한다고 하겠다. 말씀을 따라 생활하려는 노력이 강조되는 것에 비해 성령의 초자연적 은사는 배제되는 성향이 있다. 세 번째는 받은 바 이신득의의 은혜에 감사해서 성령의 도움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 말씀에 따라 생활하는 복음주의자들이 있다. 약 130년에 이른 한국교회사 속에서 대부분의 교역자들과 부흥사들은 세대주의 신학에 근거하여 종말론을 가르쳤는데, 매우 극적인 내용들 때문에 듣는 자들은 쉽게 거기에 빠져들어 갔다. 예수의 재림을 왜곡되게 가르치는 이단집단들이 세대주의 종말론에 뼈대를 둔 것은 그 매혹적인 극적인 정황 설명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세대주의 사상은 한국교인들의 심성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다(권호덕). 세대주의 사상에서 탈피하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에 무천년 왕국설이 본격적으로 우리나라에 소개되면서부터이다. < 계속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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