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주의와 알미니안주의 신학의 비교
이 두 신학적인 경향은 대단히 큰 영향을 미쳐왔다. 칼빈주의는 장로교 신학의 기초를 이루었고, 알미니안주의는 감리교(침례교, 오순절, 일부 복음주의)적 신학의 기초를 이루었다.
1. 용어 기원의 배경
칼빈주의라는 이름을 가진 신학체계가 역사에서 출현하게 된 것은 17세기 초 화란에서 일어났던 신학논쟁이 단초가 되었다.
2. 아르미니우스 추종자들의 저항
1610년 즉 James Arminius( Dutch seminary professor)가 죽은 후 1년이 된 해에 알미우스의 가르침에 기초한 믿음에 대한 글 5 이 그의 추종자들에 의해서 발간되었다. 알미니안주의자들이라고 불리게 된 이 추종자들은 화란 정부에 이 5의 교리적인 글들을 항의형식으로 제출했다. 그 사람들은 벨직 신앙고백서와 하이델베르그 교리문답(화란 교회의 공식적인 교리 표준)은 자기들이 제기한 교리적인 입장에 맞추어서 바뀌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두 문서가 보여주는 교리들을 부정했는데, 그 교리들은 '하나님의 주권, 인간의 전적 무능력, 무조건적 선택 혹은 예정, 제한적인 구속, 거절할 수 없는 은혜, 성도의 견인'이다. 그들 화란 교회의 공식 표준으로서 바뀌기를 원했던 것은 바로 이런 문제들과 관계되어 있었다.
3. 알미니안주의의 5 가지 요점
Roger Nicole은 다섯 개의 항의의 글에서 다섯 개의 항목으로 요약하였다.
1. 하나님은 신앙과 불신앙을 미리 보시고 그것을 기초로 하여서 선택하시거나 책망하신다.
2. 비록 믿는 자들만 구원을 받지만, 그리스도는 모든 사람들과 모든 개인을 위하여 죽으셨다.
3. 사람은 믿음과 어떤 선행을 위해서든지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만큼만 타락하였다.
4. 이 은혜는 거부될 수도 있다.
5. 참으로 중생한 모든 사람이 확실하게 믿음 안에서 보호될 지의 여부는 더욱 살펴보아야 할 점이다.
이 중 다섯 번째 것은 그 후에도 참으로 중생된 신자가 믿음을 잃고 구원을 잃게 될 가능성을 가르칠 만큼 주의를 끌었던 것이기는 하지만, 알미니우스 추종자들도 일치된 견해에 이르지 못했다. 그 중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성령으로 중생된 모든 사람들은 영원히 보호되며 결코 망할 수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4. 알미니안주의의 철학적 기조
J. I. Packer는 항의 문서에 나타난 알미니안주의 사고 체계를 분석하면서, “알미니안주의로 알려진 이 신학은 두 개의 철학적 원리에서 나온다는 관찰을 내 놓았다: 첫째, 하나님의 주권은 인간의 자유와 양립할 수 없으며, 따라서 인간의 책임과도 양립할 수 없다. 둘째, 가능성(ability)이 의무를 제한한다.... 이 원리들로부터 알미니안주의자들은 두 가지를 연역해 내었다.
첫째, 성경이 믿음을 자유롭게 응답하는 행위로 여기므로, 믿음은 하나님에 의해 야기될 수 없으며, 하나님과 관계없는 상태에서 작용하는 것이다. 둘째, 성경이 믿음을 복음을 듣는 모든 사람들의 편에서 해야 할 의무로 여기므로, 믿을 수 있는 가능성은 보편적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성경이 다음과 같은 입장들을 가르친다고 주장했다.
(1) 사람은 복음이 자기 앞에 제시될 때에 그것을 안전하게 믿을 수 없을 만큼 죄에 의해 완전하게 타락하지 않았으며, (2) 또한 복음을 거절할 수 없을 만큼 하나님에 의해 완전하게 통제되지도 않는다. (3) 하나님이 믿게 될 사람을 선택하시는 것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믿을 것을 보시고 시작하시는 것이다. (4) 그리스도의 죽음은 어떤 사람의 구원도 보장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것을 아무에게도 믿음이라는 은사(이런 은사는 없다)를 보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죽음이 한 것은 누구든지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을 창조해 내는 것이었다. (5) 신앙을 유지하여서 은혜의 상태에 자신을 지키는 것은 신자들 자신에게 달려 있다. 이와 같이 알미니안주의는 사람의 구원을 궁극적으로 사람 자신에게 달린 것으로 만들었다. 구원하는 믿음은 그 사람 속에서 이루시는 하나님의 사역이 아니라, 사람 자신의 사역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으로 보이도록 만들었다.” 이상이 Packer의 정리이다.
5. 도르트회의와 칼빈주의의 승리
도르트 회의에서 알미니안주의가 거부되고 칼빈주의의 5 가지 요점이 만들어졌다.
1618년 도르트에서 알미니안주의를 성경에 비추어서 검토할 목적으로 국가적인 회의가 열렸다. 이 회의는 1618년 11월 13일에 화란 국회에 의해서 소집되었다. 84명의 회원과 18명의 정부 관리들이 참석했다. 독일, 궁궐, 스위스랜드, 영국으로부터 파견된 27명의 대표가 포함되었다. 이 문제를 숙고하기 위해서 7달 동안 154번의 회의(sessions)가 있었는데, 마지막 회의가 1619년 5월 9일에 있었다.
Warburton은 " 그 공회는 항의문서에서 제기된 다섯 가지 논점들을 아주 면밀하게 검토했으며, 거기서 제시된 가르침을 성경의 증거와 비교하였다"고 썼다. 하나님의 말씀과의 그 가르침과 조화에서 실패하자, 그들이 확정적으로 선언했던 그것은 알미니안주의자들만 신앙의 규칙으로 받아들였을 뿐, 나머지 거기 참석자들은 만장일치로 거부하였다. 하지만 그들은 단순히 거부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그들은 문제가 된 논점들과 관계지어서 참된 칼빈주의적 가르침을 제시할 필요가 있음을 느꼈다. 그들은 칼빈주의적 입장을 구체화 시키는 이 일을 했는데, 그것이 후대에 '칼빈주의 5개 요점'(the five points of Calvinism)이라고 알려졌다. '칼빈주의'(Calvinism)란 이름은 프랑스 종교개혁자 요한 칼빈(1509-1564)에게서 왔는데, 그는 이 견해들을 해설하고 변호하는데 큰 기여를 했었다. 그래서 후대 사람들이 문제가 발생했을 때에 그의 이름을 따서 정리하여 붙인 것이 칼빈주의이다.
도르트 공회가 이단적이라고 하면서 이 다섯 가지 교리들은 거부했다는 것은 오늘날 많은 사람들에게 이상하게 여겨질 것이다. 왜냐하면 오늘날 교회에서 알미니안적인 이 교리들은 넓게 받아들여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오늘날은 이 교리들이 의문시되지도 않는다. 그러나 당시의 다수의 개신교 신학자들은 이 문제에서 다른 견해를 가졌었다. 그들은 성경이 알미니안 측이 옹호한 교리체계와 전혀 다른 교리 체계를 제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구원이란 그 공의회 회원들에게는 '처음부터 끝까지 은혜의 사역'으로 여겨졌다. 결단코 죄인이 자신을 구원한다거나 구원에 기여한다고는 믿지 않았다. 아담의 타락은 인류를 완전히 파괴했다. 모든 사람은 본성상 영적으로 죽었으며, 그들의 의지들은 죄와 사탄에게 매여 있었다. 복음을 믿을 수 있는 능력은 그 자체가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선물이며, 그의 한없는 은총의 대상으로 선택된 사람들에게만 주어지는 것이었다. 어느 죄인들이 자비를 입고 구원을 얻을 것인지를 결정하는 이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었다. 이것은 본질적으로 도르트 공의회의 회원들이 성경의 가르침으로 이해했던 것이었다.
알미니안주의는 도르트 공의회에 의해서 거부되었다. 이것은 "항의문서"(Remonstrance)(비록 5가지 요점이 이 순서대로 정리되어 있지는 않았지만도)에서 내포되어 있는 사고체계였다. 이것은 알미니안주의자들에 의해 1610 에 화란 교회에 받아들이도록 하기 위해 제출되었으나 1619에 도르트 회의에 의해서 그것은 비성경적이라는 이유로 거절되었다.
도르트 공의회에 의해서 재확인되었다. 이 신학체계는 1619년에 도르트 공의회에서 성경에 내포된 구원론으로 재확인되었다. 이 체계는 그 때에 5가지 요점으로(알미니안주의자들에 의해 제시된 5요점에 대한 응답으로서) 공식화되었고, 그 이후로 "칼빈주의 5가지 요점"(the five points of Calvinism)이라고 알려져 왔다.
6. 각 체계의 기본 개념들은 도르트 공의회보다 더 오래 되었다.
- 펠라기우스와 어그스틴의 논쟁
- 반 펠라기안주의(Semi-Pelagianism), 알미니안주의의 선구자
- 칼빈주의-> 종교개혁 신학.
16세기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의 지도자들은 펠라기우스주의와 반 펠라기우스주의를 둘 다 성경적이 아니라는 입장에서 거절하였다. 어거스틴(Augustine)과 같이 종교개혁자들은 하나님의 주권, 인간의 전적 부패, 무조건적 선택의 교리들을 지지했다. 뵈트너(L. Boettner)가 보여주었듯이, 그들은 함께 예정의 관점에 서 있었다. "그것은 칼빈에 의해서만 가르쳐진 것이 아니라 루터, 쯔빙글리, 멜랑톤( 비록 멜랑톤은 후에 반 펠라기안적 입장으로 후퇴해버렸지만), 불링거, 부서, 그리고 종교개혁에서 출중한 지도자들에 의해서 가르쳐졌다. 어떤 다른 점들에서는 다른 견해를 가지기도 했지만, 그들은 예정 교리에서는 일치했고, 그리고 그것을 강조하여 가르쳤다. 루터의 주요 저서 '의지의 예속'(The Bondage of the Will)은 그가 충심으로 칼빈이 했던 것처럼 예정 교리에 들어갔음을 보여 준다"(Loraine Boettner, The Reformed Doctrine of Predestination, p. 1).
Packer는 진술하기를 "모든 종교개혁 1세대의 주요 프로테스탄트 신학자들은 정확하게도 여기서 같은 터전 위에 서 있었다. 다른 점들에서는 그들은 각자 차이점들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죄에 빠진 인간의 도울 길 없음, 은혜 속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주장함에 있어서 그들은 전적으로 하나였다. 그들 모두에게 이 교리들은 기독교 신앙의 생명의 피였다....종교개혁자들에게는 중차대한 질문 즉 하나님은 율법의 행함 없이 신자들을 의롭다고 하시는가 하는 질문은 간단한 것이 아니었다. 죄인들은 그들의 죄에서 전적으로 도움을 받을 수 없는지, 그리고 하나님은 자유롭고, 무조건적이고, 거절할 수 없는 은혜로 그들을 구원하시는 분으로 생각되어야 하는지, 그들이 믿음에 돌아 올 때에 그리스도를 위하여 그들을 의롭다고 하실 뿐만 아니라, 그들을 믿음으로 데리고 오기 위하여 그의 일깨우는 성령에 의해 죄의 죽음으로부터 그들을 일으키는지 하는 문제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여기에 중대한 문제가 있다: 하나님은 칭의뿐만 아니라 믿음의 저자인가? 최종적으로 분석해 볼 때에 기독교는 구원과 그것에 필요한 것들을 위하여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존하는 종교인가, 혹은 자기와 자기의 노력에 의존하는 종교인가?"
이와 같이 1619년에 도르트 공의회에서 기안된 칼빈주의 5 요점들은 결코 신학의 새로운 체계가 아니었음이 분명하다. 반대로 Wyllie 박사가 도르트 회의에 대하여 말한 것처럼, "그것은 큰 위기에 봉착했으며, 다시 생각하고, 재평가하고, 거듭 거듭 믿을만한 것으로 증명하도록 요구받았다."
7. 칼빈주의와 알미니안주의의 차이
이 역사적인 논쟁에 관련된 주제들은 실로 진지한 것들이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하나님, 죄, 구원에 대한 기독교적 개념에 치명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Packer는 이 두 체계들을 대조하면서 확실히 바른 주장을 했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다: "양자 간의 차이는 기본적으로 강조점의 차이가 아니라, 내용의 차이다. 한 편은 구원하는 이가 하나님이라고 주장하는데, 다른 한 편은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을 구원할 수 있게 하는 이가 하나님이라고 말한다. 칼빈주의는 삼위일체의 세 큰 행동들 즉 아버지의 선택, 아들의 구속, 성령의 부르심을 잃어버린 인류의 회복을 위하여 제시한다. 즉 이 행동들은 같은 사람들을 향해서 방향이 정해져 있고, 그리고 그들의 구원을 오류 없이 보증한다. 반면 알미니안주의는 각 행위에 다른 언급(reference)을 주며(구속의 대상들은 모든 인류이며, 부르는 대상들은 복음을 듣는 사람들이며, 선택된 대상들은 응답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그리고 어떤 사람의 구원이 삼위 사역의 어떤 것에 의해서 보증된다는 것을 부인한다. 이와 같이 이 두 신학은 아주 다른 용어들로 구원 계획을 그리고 있다. 하나는 구원이 하나님의 사역에 달려 있는 것으로 만들고, 다른 것은 사람의 사역에 달린 것으로 만든다. 하나는 믿음을 하나님의 구원의 선물의 한 부분이라고 하는데, 다른 하나는 구원에 사람이 기여하는 것이라고 한다. 하나는 믿는 자들을 구원하는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는데, 다른 하나는 칭송을 구원이라는 기계류를 건설하신 하나님과 믿음으로 그것을 작동하는 인간 사이에 나눈다. 분명히 이 차이들은 중요하며, 칼빈주의의 요약으로서 다섯 가지 요점의 영구적인 가치는 그것들이 그 자체와 정도에서 이 양측의 개념들이 서로 다르다는 점을 명백하게 한다는 사실에 있다."
알미니안주의에 따르면,
구원은 하나님(주도권을 잡는 분)과 사람(응답해야만 하는 이)의 공동 노력으로 통하여 이루어진다. 사람의 반응이 결정하는 요인이 된다. 하나님은 모든 이를 위하여 구원을 준비하셨지만, 그러나 그의 준비는 그들 자신의 자유의지로 하나님과 협동하기로 하고 하나님의 은혜의 제공을 받아들이기로 "선택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만 효과적이 된다. 아주 중대한 시점에서 인간의 의지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이와 같이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이 구원이란 선물을 받을 자들이 되는 것을 결정하는 자이다.
칼빈주의에 따르면,
구원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에 의해 완수된다. 아버지는 백성을 선택하시고, 아들은 그들을 위하여 죽으시고, 성령은 선택된 자를 믿음과 회개로 이끄시고, 그것으로 인하여 그들을 즐거이 복음에 순종하도록 야기시킴으로 그리스도의 죽음을 효과적으로 만든다. 전 과정(선택, 구속, 중생)이 하나님의 사역이며 은혜에 의해서만 된다. 이와 같이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구원이라는 선물을 받을 자들을 결정하는 분이다.
출처:'칼빈주의 다섯 가지 요점들'(David N. Steele &Curtis C. Thomas, The Five Points of Calvinism, Presbyterian and Reformed Publishing Co. Philadelphia, Pa. 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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