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칭 '성경 칼빈주의자' 마틴 로이드 존스의 생애 | ||||||||||||
손자 요나단 캐서우드와 자서전 집필자 이안 머레이의 회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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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기 목사 / 캐나다록키침례교회 담임, 교회부흥성장연구원장
찰스 스펄전 이후 영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었던 설교자로 평가를 받는 마틴 로이드 존스(David Martyn Lloyd-Jones)에 관한 복음주의자들의 관심은 그가 소천한 지 34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하다. 지난 4월 미국의 캔터키 주 루이빌 컨벤션 센터에서 개최된 ‘Together for the Gospel’ 컨퍼런스에서는 마틴 로이드 존스 패널이 있었다. 이 패널에는 사회자 마크 데버 목사와 그레이스 커뮤니티 교회의 존 맥아더 목사 및 로이드 존스의 자서전 집필자인 이안 머레이와 로이드 존스의 손자인 요나단 캐서우드가 참석했다. 캐서우드에 의하면 로이드 존스의 가족들과 지인들의 인터뷰가 포함된 로이드 존스의 생애에 관한 영화가 현재 제작되고 있는 중이다.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 영화 감독에 의해서 만들어 지고 있다. 또한 로이드 존스의 육성 설교를 1,600편 이상 소장한 웹 사이트(www.mljtrust.org) 서비스가 일반에 무상으로 제공되고 있다. 성경을 한 절 한 절 철저하고 깊이 있게 강해하는 설교자 로이드 존스는 성경을 한 절 한 절 철저하고 깊이 있게 강해하는 설교자로 정평이 나 있다. 그는 그러나 열정적인 전도자이기도 했다. 머레이에 의하면 로이드 존스는 매 주일 저녁예배 시 전도 설교를 했고, 주중(보통 화요일과 수요일)에는 영국의 여러 다른 지역을 다니며 주로 전도 설교를 했다. 이 설교들은 그러나 대부분 녹음이 되지 않았는데, 미국에서 전해진 몇몇 설교들은 최근 크로스웨이(Crossway)가 책으로 펴냈고, 영국에서는 진리의 깃발(Banner of Truth Trust) 출판사가 로이드 존스의 구약 전도설교(Old Testament Evangelistic Sermons) 몇 편을 출판한 바 있다. 로이드 존스가 얼마나 복음 전파를 중요시 했는지는 Mrs. 로이드 존스의 다음과 같은 말에 잘 나타나 있다. “나의 남편은 우선 기도의 사람이며 전도자였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나의 남편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로이드 존스는 평소 자신을 ‘성경 칼빈주의자’(Bible Calvinist)라는 용어로 묘사하곤 했는데, 그의 적극적인 복음전도의 신학이 이 용어 안에 잘 나타나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그러면 로이드 존스의 가정생활은 어떠했을까? 캐서우드에 의하면 책 표지에 등장하는 엄숙한 표정의 로이드 존스와는 정반대로 그는 세상에서 가장 친절하고 참을성 있는 할아버지였다. 그는 또한 집에서는 매우 친절하고 접근하기 쉬운 남편이자 아버지 및 할아버지였다.
머레이에 의하면 로이드 존스는 겸손한 사람이기도 했다. 한 번은 저명한 성경학자 에프 에프 부르스(F. F. Bruce)가 로이드 존스가 복음주의자가 아닌 사람들과 교제하는 것을 보고 로이드 존스를 공개적으로 비난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세인트 폴 성당(St. Paul’s Cathedral)의 주임 사제가 로이드 존스의 설교를 들은 후 그의 설교가 매우 나쁘다고(very bad) 평하며, 그 이유는 설교자가 매우 교만한(arrogant)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비판했을 때, 브루스는 로이드 존스를 다음과 같이 적극적으로 변호해 주었다. “로이드 존스는 교만한 사람이 아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확신하고 있다. 그는 가장 겸손한 사람이다.” 머레이는 웨스트민스터 채플에서 로이드 존스를 도와 다년간 협동 목회를 한 바 있다. 그는 로이드 존스는 강단에서는 사자였고 강단을 내려오면 양과 같았다고 회고한다. 로이드 존스는 강단 밖에서는 아주 쉽게 접근해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었다. 아이들도 쉽게 그에게 접근했고 그 또한 아이들을 매우 따뜻하게 대해 주었다. 그는 나이가 들면서 젊은이들이 그를 실망시켜도 그들을 멀리 하지 않고 그들과 함께 하곤 했다. 이는 조지 휫필드가 취한 태도와는 정반대였다는 것이다. 존 맥아더는 설교에 관하여 로이드 존스로부터 받은 영향 두 가지를 언급한다. 첫째는 강해설교는 철저히 교리 중심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머레이는 로이드 존스가 사역할 때 영국에서는 교리 중심의 강해설교가 거의 전무한 상태였다고 증언한다. 둘째는 미리 계획되지 않은(unscheduled) 강해설교를 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로이드 존스는 에베소서 1장을 강해할 때 몇 번에 걸쳐 설교해야 그 장을 끝낼지를 모르고 시작했는데, 마치고 나니 38편의 설교를 했다는 것이다. 즉 강해설교를 진행하며 자연스럽게 설교의 내용을 구성한 것이다. 맥아더는 성경의 한 장을 강해할 때 언제쯤 마치게 될 것인지를 모르느냐는 사회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나는 그것에 관해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그렇게 될 수도 혹은 그렇게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이에 머레이는 다음과 같이 덧붙여 말한다. “요점은 성령의 인도를 존중한다는 것이다. 당신은 모른다. 당신은 큰 자유함을 누릴 수 있다. 설교를 한 번 하는 대신 두 번 할 수도 있는 것이다.” 머레이에 의하면 로이드 존스는 설교를 실패하는 이유는 사람이나 문제를 잘 몰라서가 아니라 말씀과 성령을 잘 모르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로이드 존스는 설교할 때 항상 하나님의 주권과 영광을 강조했다. 맥아더는 로이드 존스가 성경의 권위를 수호하는 면에서도 자신에게 영향을 주었다고 말한다. 예컨대 빌리 그래엄(Billy Graham)이 1966년에 개최된 베를린 대회의 의장직을 맡아 달라고 부탁했을 때, 로이드 존스는 그래엄에게 다음과 같은 2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첫째, 성경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을 강단에 함께 앉게 하지 말라. 둘째, 결단 초청을 하지 말라. 그래함은 이 조건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결국 로이드 존스는 의장직을 수락하지 않았지만, 성경의 권위를 수호하는 면에서 로이드 존스는 단호한 태도를 보여준 것이다. 맥아더는 산상수훈은 교회시대의 성도들을 위한 가르침이라는 로이드 존스의 주장이 자신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말한다. 맥아더는 자신은 전통적인 세대주의자로서, 목회를 시작할 즈음에 산상수훈은 교회시대가 아닌 장래의 천년왕국시대를 위한 가르침으로 믿고 있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로이드 존스의 책을 읽는 가운데 주님께서 자신의 생각을 바꾸어 주셨고, 산상수훈에 관한 세대주의의 관점을 버리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머레이는 로이드 존스를 이해하는 첫 걸음으로 산상수훈에 관한 책을 추천한다. 또한 교회, 상황, 복음주의의 정책 등을 논한 <시대를 알라>(Knowing the Times)라는 책도 로이드 존스를 이해하는 첩경으로 제시한다. 머레이에 의하면 로이드 존스는 의사로 일을 하고 있을 때부터 설교 초청을 받았다. 한 번은 그가 웨일스(Wales) 남부의 한 집회에서 설교를 하면서 웨일스 설교가 전통적이고 직업적인 것이 되어 버렸다고 개탄을 했다. 또한 교리적인 설교를 하지 않는 것을 비판하며, 사람들이 너무 쉽게 교회의 회원이 되는 것을 한탄했다고 한다. 그런데 로이드 존스는 이때 평신도 신분이었다. 이를 두고 맥아더는 로이드 존스가 대담했다(bold)고 말하지만, 머레이는 그가 오만했다(arrogant)고 조심스레 평가한다. 하여간 로이드 존스는 당시에 웨일스 사회의 도덕덕 퇴조가 웨일스 교회의 퇴조에서 비롯되었고, 교회의 퇴조는 설교의 퇴조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았다. 이 일은 로이드 존스가 이미 평신도 시절부터 설교에 대한 냉철하고 예리한 안목을 지니고 있었다는 사실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로이드 존스의 설교를 청중의 한 사람으로서 직접 들었다면 어떤 느낌을 받았을까? 로이드 존스의 조력자로 웨스트민스트 채플에서 3년간 함께 일했던 이안 머레이는 이렇게 설명한다. “내 생각으로는 모든 좋은 설교들, 다시 말하면 성경적인 의미에서 참으로 좋은 설교들을 들을 때면 당신은 곧 설교를 하고 있는 사람을 잊어버리게 된다. 이것이 로이드 존스가 설교할 때 일어나는 현상이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말씀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참으로 나는 이것이 참된 설교의 특징이라고 생각한다. 당신은 설교자 자신을 잊어버린다.” 강단에서는 사자였고 강단을 내려오면 양과 같아 머레이는 당시 웨스트민스터 채플의 주일예배를 영상 기록으로 남기지 못한 것을 큰 손실로 생각한다. 그 이유는 예배는 설교로 이어졌고, 또한 예배와 설교는 불가분리의 관계였기 때문이다. 로이드 존스는 설교 만 한 것이 아니라 예배를 처음부터 끝까지 인도했다. 그리고 성령이 그를 통해서 역사하셨다. 스펄전의 경우에도 그러했는데 사람들은 스펄전이 설교 외에 다른 순서들을 왜 다른 사람들에게 맡기지 않는가 하고 비판하지 않았다고 한다. 왜냐하면 성령이 역사하실 때 그 배후에는 설교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로이드 존스가 목회하던 웨스트민스터 채플의 주일예배는 어떠했을까? 머레이에 의하면 로이드 존스는 조용히 등단하여 의자에서 잠시 기도를 드린다. 이후 짤막한 찬가(doxology)가 울려 퍼지고 로이드 존스는 짧은 기도를 인도한다. 이어서 로이스 존스는 첫 번째 찬송을 언급하고 회중이 함께 찬송을 부른다. 주일 오전예배는 항상 시편을 낭송하는 시간이 있고, 로이드 존스는 설교를 시작하기 전 오랜동안 목회기도를 드린다. 이어 교회 서기가 잠시 공지 사항을 말한 후 찬송을 하나 부르고 설교가 시작된다. 그리고 설교가 시작되면 사람들의 마음이 사로잡히곤 한다.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 설교자가 짧고 흥미 있는 이야기로 시작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맥아더는 로이드 존스의 설교를 들을 때면 그의 설교를 해부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설교에 참여한다고 말한다. 그는 로이드 존스의 설교가 자신에게는 항상 강렬하게 다가오곤 한다고 고백한다. 맥아더에 의하면 로이드 존스는 전도에 있어서 율법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믿었고, 죄를 직면하기 위해서 율법에 관해 설교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는 죄인들에게 죄인이라고 말해 주는 것 뿐 아니라 그들이 죄인이라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따라서 그의 설교는 논리적인 주장을 많이 담고 있다. 로이드 존스는 설교할 때 죄인들을 꼼짝 못하게 잡는다. 그의 설교를 들으면 사람들의 마음은 위로 들어올려지며, 죄인들은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보게 된다는 것이다. 머레이에 의하면 로이드 존스는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어 깨우는 설교를 하려 했다. 사람들은 그의 설교를 듣고 이 사람은 우리가 죄인이라고 말한다고 불평을 하곤 했는데, 로이드 존스는 이 말을 들으면 격려가 된다고 말했다. 때때로 웨스트민스터 채플의 예배에 참석했던 어떤 사람들이 다시는 여기에 오지 않겠다고 맹세를 하고는 다시 찾아온 사례도 왕왕 있었다고 한다. 로이드 존스는 사람들에게 매우 분명하게 설교를 했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그가 설교한 것 그 이상이었다. 그의 설교에는 확신을 주는 그 어떤 힘이 함께 역사하고 있었다. 마크 데버(사회자)는 로이드 존스는 사람들의 마음을 심히 건드리고(disturb) 자주 논쟁을 벌이고는 했다고 평가하며, 그 이유를 묻는다. 이안 머레이(로이드 존스의 자서전 집필자)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답한다. “위대한 데이빗 브레이너드는 성령의 충만함을 받지 않고 사람들의 양심에 호소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말한 바 있다. 나는 이 말이 이 경우에 해당된다고 본다. 이것은 책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성령으로 기름부음을 받을 때 그는 사람들의 심령과 양심에 호소할 수 있다. 로이드 존스는 매우 강력한 마음을 소유하고 있었지만, 사람들의 양심에 깊이 호소할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신약이 말하는 바가 아니겠는가. 즉 하나님의 안목으로 진리를 사람들의 양심에 보여주는 것 말이다. 이런 점에서 로이드 존스는 현대인들과 교회 사이에는 큰 간격이 있어서 의사소통을 전혀 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말에 동의하기를 원치 않을 것이다. 결코 그렇지 않다. 사람들은 모두 양심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의 안목으로 보면 모든 사람들의 심령에는 증인이 있다. 우리는 이 양심에 호소해야 한다.” 존 맥아더(그레이스 커뮤니티 교회)는 로이드 존스의 이러한 관점을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표현한다. “당신은 중생하지 않은 사람들의 심령 안에 협력자인 양심, 즉 하나님의 법을 가지고 있다. 당신은 그 양심을 공략해야 한다. 로이드 존스는 이것을 알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그가 심리학을 강력히 반대한 이유인 것이다. 심리학자들은 사람들에게 자신을 알아야 한다고 말하지만, 로이드 존스는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양심, 즉 심령에 쓰여진 하나님의 법을 공략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러한 관점은 매우 유익한 것이다.” 설교 녹음 반대해… 설교는 예배의 한 부분으로 집중해야 데버는 로이드 존스의 설교에는 부흥이 선명하게 나타나 있다는 것을 지적한다. 그러면 로이드 존스는 부흥을 무엇이라 생각했는가? 머레이는 데버의 이러한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한다. “로이드 존스는 하나님의 나라의 일은 역사 속에서 동일한 수준으로 발전되지 않는다고 믿었다. 하나님의 일은 항상 여름철이 아니다. 때로는 겨울에 접어들기도 한다. 하나님은 결코 교회를 떠나시지 않지만, 교회는 퇴보의 시기를 맞이하기도 하고 심지어 배도하는 때를 지나기도 한다. 로이드 존스는 교회사를 많이 읽었고, 교회사로부터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즉 사람들이 새로운 방법으로 성령의 능력을 받을 때 그들은 지난 20년간의 설교를 통해서 얻지 못하던 결과들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들의 설교는 동일하지만 하나님의 추가적인 도우심으로 그런 결과를 맺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로이드 존스는 부흥은 흔치 않은 성령의 부으심(outpouring) 혹은 분출(effusion)이라고 보았다. 또한 부흥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더 깊은 목마름,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를 원하는 간절함을 통해서 보여지는데, 이는 요나단 에드워즈가 부흥의 테스트로서 제시한 것들이다. 부흥은 흥분, 쓰러짐, 웃음, 울부짖음 등으로 평가되는 것이 아니다. 사실상 이런 것들은 아무 것도 아니다(nothing). 부흥은 도덕적 변화를 산출하며 사회 전반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참된 부흥이 일어나면 사람들은 배상하고, 도둑질이 사라지며, 어떤 지역에서는 경찰들이 할 일이 없어지는 것을 본다. 영국에는 이런 영적 각성이 오랜동안 없었다. 로이드 존스는 이런 부흥이 가능하다고 믿었고, 1960년대에 부흥에 관해 설교를 많이 했다. 그때 많은 사람들은 부흥이 임박했다고 생각했으나, 로이드 존스는 그렇게 믿지 않았다. 그는 ‘부흥이 임박했다고 생각하지 않는가’라는 질문에 ‘아니오’라고 답했다. ‘왜 그러한가’라는 질문에 그는 ‘우리는 너무 건강하다(too healthy), 우리는 필요를 절감하고 하나님께 부르짖는 단계에 이르지 않았다’라고 답했다. 그러나 부흥이 임박했다고 믿었던 사람들은 부흥에 관해 설교했다. 그러나 부흥은 오지 않았고 또 다른 부흥의 메시지가 전해졌으며, 바로 그 때 은사주의 운동이 왔다. 하나님은 사람들을 시험(test)하신다. 현재 영국에는 참된 영적 각성이 필요하다. 또한 미국에도 참된 부흥이 필요하다. 숫자들, 책들, 테이프들을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한다. 이런 것들은 하나님의 역사의 징후이지만, 우리는 이보다 더한 것이 필요하다.” 데버는 머레이가 저술한 <분열된 복음주의>(Evangelicalism Divided)라는 책을 추천한다. 데버에 의하면 저자는 그 책에서 로이드 존스가 사역하던 시기를 배경으로 로이드 존스의 사역을 서술했고, 부흥과 그에 관한 논쟁들을 다루었으며, 마지막 장에서는 사랑을 매우 강조했는데 이는 로이드 존스의 마음을 잘 포착한 것으로 보인다. 머레이는 “로이드 존스는 우리와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과 우정과 친절함의 관계를 유지해야만 한다는 것을 강력히 역설했다.”고 말하며, 그는 삶을 통해 이러한 주장을 실천했다고 말한다. 캐서우드(로이드 존스의 손자)도 로이드 존스는 그러한 삶을 살았다고 확증하며 다음과 같이 말을 잇는다. “로이드 존스는 옳다고 믿는 바를 위해 서 있어야 한다고(stand up) 열정적으로 믿었으며, 바울은 이에 관한 좋은 본보기였다고 말했다. 그러나 우리 각자는 죄인들이고 연약하며 개인적 관계들은 매우 중요하다고 여겼으므로, 1960년대와 70년대에 논쟁을 벌였던 인사들이 자신의 집을 방문하면, 비록 자신과 같은 그리스도인의 표준을 가지고 있지 않을지라도 로이드 존스는 그들과 대화하며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존 맥아더는 로이드 존스의 책 <설교와 설교자들>(Preaching and Preachers)을 젊은 설교자들에게 추천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로이드 존스는 설교를 녹음하는 것을 반대했다. 그는 설교는 성령의 능력이 임하는 사건으로서, 설교를 녹음하여 문맥을 벗어나 취하는 것은 신적인 요소를 제거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나는 그의 책을 읽으며 이런 주장에 처음에는 동의하지 않았지만, 정보를 부분적으로 취해서 전달하는 과정에 의미가 상실될 수 있다는 점은 이해한다. 그리고 이런 점에서 예배, 즉 성령이 인도하시는 사건(event)을 잃어버리고 만다는 것이다.” 머레이에 의하면 “로이드 존스는 세차를 하거나 마루를 닦는 상황 등에서 설교 테이프를 듣는 것과 같은 일을 두려워한 것이다. 물론 그런 상황에서도 바른 마음으로 설교를 경청할 수 있겠지만, 설교가 예배와 분리될 수 있는 위험이 있는 것이다. 로이드 존스는 설교를 들을 때면 예배의 한 부분으로서 여기고, 전화를 받는 등의 방해를 받지 말고, 우리 자신 전부를 설교에 집중해야 한다고 믿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매우 높은 관점, 즉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계시다는 것을 뜻한다.” 제임스 패커(J. I. Packer)는1950년 대에 웨스트 민스터 채플을 방문해서 로이드 존스의 설교를 들을 때면 하나님의 심오한 영적 임재를 느낄 수 있었다고 말한 바 있다. 머레이에 의하면 로이드 존스는 예배의 시작에는 항상 하나님의 본성(nature)을 선포하는 찬송을 선택했으며, 초청 찬송(invitational hymns)으로 예배를 마쳤다. 때로 회중이 찬송을 부르는 도중에 찬송을 멈추게 하고 심령을 다해 찬송을 부르라고 회중을 독려하곤 했다. 캐서우드에 의하면 삶의 마지막 시기에 이르렀을 때 로이드 존스가 가족들에게 한 말은 이것이었다. “나를 붙잡으려 하지 마시오!” [ 김홍기 목사(Ph.D., D.Min.)의 글과 동영상 메시지들은 교회부흥성장연구원장(www.21church.com)에서 볼 수 있으며, 유튜브(www.youtube.com)에 ‘신천지 교리를 교정한다’ 동영상 메시지 31편이 게시되어 있다. / 편집자 주 ] ⓒ 교회와신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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