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학

[스크랩] 네팔의 역설적 소망

수호천사1 2015. 12. 12. 20:53

 네팔의 역설적 소망


- 권순웅 목사 (동탄 주다산교회)  



흥부전에 보면 놀부의 행태가 있다. 똥 누는 아이 주저앉히기다. 최근 네팔에 가보았다. 네팔의 형국이 주저앉혀진 모습이다. 지진은 놀부와 같았다. 수많은 사상자가 나왔다. 지금도 흙더미 속에 끄집어내지 못한 시신이 많이 있다고 한다. 수도 카트만두에서도 금이 간 건물을 쉽게 볼 수 있었다.

 
네팔은 죽음을 별로 두려워하지 않는 것 같다. 갠지스 강 상류에 있는 카트만두 바그마티 강변의 파슈파티나트 힌두사원에 가보았다. 이곳에 화장터가 있다. 시신을 장작더미 위에 올려놓고 태운다. 온종일 연기와 불꽃이 솟아올랐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 화장터에는 우는 사람들이 없었다. 기쁨의 눈물도 슬픔의 눈물도 없다. 천국환송의 자리도 아닌 것이다. 윤회사상을 가지고 있으니 천국에 대한 소망이 어디에 있겠는가.


네팔의 경제는 말이 아니다. 그들에게는 바다가 없다. 수송수단이 제한돼 있다. 공장이 별로 없다. 시장은 있지만 생산수단이 없다. 많은 인력이 해외로 빠져나간다. 특히 우리나라로 온 네팔 근로자가 많다. 그들이 돈을 벌어 자국으로 돌아가서는 투자할 대상이 없다. 혹시 한국에서 배웠는지 모르겠으나 부동산 투자만 한다. 카트만두의 땅값은 천정부지로 뛰고 있었다. 삶의 질은 형편없었다. 대관령 산길 같은 고갯길이 쉴 새 없이 이어진다. 가끔 버스를 만나면 버스 위에 사람들이 타고 있었다. 도시에 들어서면 교통체증이 심하다. 러시아워 때는 진풍경이 펼쳐진다. 버스 뒤에 아이들이 서커스를 하듯 매달려 학교를 간다. 


필자는 주유소 옆에 갔을 때 깜짝 놀랐다. 자동차 줄이 끝이 없었다. 오토바이 줄은 하도 길어서 어디가 시작이고 끝인지 보이지 않았다. 가스통 주입을 위한 줄도 고갯길을 이루었다. 네팔의 연료 보급망은 인도다. 그런데 네팔 안에 있는 인도인들이 데모를 하고 있었다. 지금은 폭도로 변하여 인도와 네팔의 길을 막고 있다고 하였다. 방해된다고 여기는 차는 유리창을 부수었다. 버스나 대형트럭은 앞 유리창이 없는 차가 많았다. 인도로부터 들여와야 할 기름을 비롯한 많은 물자가 중단됐다는 이유에서다. 


이런 절망적인 네팔에서 소망을 보았다. 우리 한국 선교사들이다. 네팔에 지진이 일어났을 때도 그들은 네팔을 떠나지 않았다. 무너진 땅을 찾아가서 구호물자를 전달했다. 세계 어느 선교사들보다도 발 빠른 움직임이었다. 우리 교회에서 파송한 선교사는 침술 교수다. 치료가 열악한 현장에서 수없이 침을 꽂고 또 꽂았다.


특히 희망을 보게 된 것은 네팔 ‘소망의 집’이었다. 20년 전에 부부 선교사 팀이 네팔 고아를 위해 헌신했다. 호랑이의 공격으로 아버지가 죽은 아이, 공산당에 부모가 죽임을 당한 아이, 홍수와 지진 때문에 부모를 잃은 아이, 쓰레기 더미에 버려진 아이들을 자식으로 삼았다. 선교사 자신들은 불임수술을 했다. 그렇게 부부 선교사는 ‘소망이’의 아빠, 엄마가 됐다. 


그런데 그 아이들을 그냥 돌본 것이 아니다. 필자는 그들의 새벽을 보았다. 그들 모두는 새벽을 깨워 기도하고 있었다. 네팔의 절망이 그들에게는 소망으로 변해 있었다. 한국의 크리스천 다음세대는 이 편한 세상에서 기도를 도둑질 당하고 있지는 않는가. 그러나 네팔 소망의 집 아이들은 그들의 상처가 그리스도 안에서 네팔의 별이 되어가고 있었다. 안나푸르나 밤하늘의 별과 같이 초롱초롱한 눈빛들이 소망을 노래하고 있었다. 이것은 네팔의 역설적 소망이다. 

      
- 출처 : 국민일보

출처 : 은혜동산 JESUS - KOREA
글쓴이 : 임마.누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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