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떠한 일을 진행하기 전에 이치에 맞게 계획을 세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한국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 두 기업이 공단을 세울 때 있었던 일이라고 합니다. 마침 같은 공단을 건설하게 된 연고로 두 기업이 경쟁하는 분위기로 진입하게 되었습니다. 한 기업은 열심히 공단을 건설하는 반면에 다른 한 기업은—삼성은—차분하게 도로부터 시작해서 건설 환경을 조성 하더랍니다. 그러니 당연히 삼성이 진도가 느립니다—한참 느립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날씨가 궃은 날도 있고 등등….. 그러다보니 도로와 건설 환경이 없이 진행된 공단 공사는 자재 운반 및 공급에 차질이 생겨 지연에 지연을 거듭 합니다. 그러나 도로와 건설 환경이 조성된 삼성은 날씨 등의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공단 공사가 계획대로 순조롭게 진행이 됩니다. 그래서 삼성이 훨씬 빨리 공단 건설을 마쳤다고 합니다. 그래서, 삼성의 예처럼, 어떠한 일을 진행하기 전에 이치에 맞게 계획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치에 맞게 공사를 진행하는 모습이 느헤미야에게 나타납니다—성벽부터 짓습니다. 느헤미야 당시의 치안 수준은 치안이 열악한 현재의 삼세계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벌건 대낮에 약탈, 강도, 등의 범죄가 서슴없이 자행 됩니다. 치안만 보장이 된다면, 위에 예로 든 삼성의 경우처럼, 도시를 짓기 전에—즉, 예루살렘을 재건하기 전에—도로와 건설 환경을 조성하면 됩니다. 그러나 당시에는 치안 보장이 안되었기 때문에 도로와 건설 환경을 조성하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있었습니다—치안을 확립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느헤미야는 성벽을 먼저 지었습니다. 그렇게 이치에 맞게 공사를 진행하는 모습이 느헤미야에게 나타납니다.
그런데 그렇게 이치에 맞게 예루살렘을 재건하려면 성전은 성벽이 완성된 후—그래서 외부의 적으로부터의 치안이 보장된 후—지어져야 합니다. 그러나 ‘의외로’ 성전이 가장 먼저 지어졌습니다—정확히는, ‘재건’ 되었습니다. 그것도 예루살렘의 죄악으로 인해 하나님께서 명하셨던 진노의 기간이 다 끝나기도 전에—그래서 예루살렘이 아직도 진노의 땅일 때—재건되었습니다. 그렇게 성전은 진노의 땅에 재건되어 외부의 적으로부터 무방비인 상태로 느헤미야에 의해 예루살렘 주위로 성벽이 지어질 때까지 외롭게 홀로 방치(?) 되었던 것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끝나지 않은 땅에 외부의 적으로부터 무방비하게 그리고 홀로 외로이 서있는 성전을 보면서 저희의 죄악을 담당하신 예수님을 연상하게 됩니다.
죄없는 성전이 외부의 적으로부터 무방비한 상태로 방치 되었습니다—내어 준 바 된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께서는 저희를 위해 내어 준 바 되셨습니다.
죄없는 성전이 하나님의 진노가 끝나지 않은 땅에 홀로 서 있습니다—하나님의 진노를 홀로 담당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죄없으신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진노를 홀로 담당하셨습니다.
그러나 다행이(?) 그 성전은 다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흐르고 흘렀습니다—그 동안에도 다행이(?) 성전은 다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그 성전에 좋은 일이 생겼습니다—분봉왕이 된 헤롯이 그 성전을 리모델링 한 것입니다 (그래서 헤롯성전이라고 일컫게 됩니다).
그런데 어느날 그 성전을 헐라는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놀랍게도 그 사람은 바로 예수님이셨습니다—다른 사람도 아닌 예수님께서 헐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요 2:19)
그래서 외부의 적으로부터 무방비한 상태로 방치되어—즉, 내어준 바 되어—하나님의 진노를 홀로 담당했던 성전이 드디어 무너지게 되었습니다—그렇게 내어 준 바 되셨던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진노를 홀로 담당하시고는 죽음을 맞이하게 되셨던 것입니다.
다 저희의 죄 때문입니다—성전이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의 죄 때문에 무너지게 되었듯이, 예수님께서 저희의 죄 때문에 죽음을 맞이하게 되셨던 것입니다.
다 저희의 죄 때문입니다.
다 저희의 죄 때문입니다.
다 저희의 죄 때문입니다.
……
……
……
그런데 예수님께서 사흘만에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성전을 사흘(삼천년?) 동안에 일으키십니다 (계 21장; cf. 요 14:2 – 3).
그리고 저희를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 하실 것입니다.
주여 오시옵소서—속히 오시옵소서!
※ 성전을 삼천년 동안에 일으키신다고 본 이유 (신학적 해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수난을 겪으신 지 이천년이 지났고 그래서 육천년의 인류역사가 곧 끝이 나고 닥아오는 천년왕국이 문자적으로 천년(정도) 지속 된다고 하면, 십자가의 수난으로부터 새예루살렘이 천년왕국 끝에 나타날 때까지 삼천년(정도)가 걸립니다. 그래서 성전을 삼천년 동안에 일으키신다고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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