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좀 하겠다고 맘먹고 두꺼운 신학 책을 샀는데 아무리 읽어도 잘 이해되지 않는 문장이 있어 머리를 쥐어뜯으며 좌절한 경험, 신학생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있을 것 같습니다. 

강원도에 사는 한 목사가 비슷한 경험을 겪다가 번역에 문제가 있음을 알게 되었는데요. 알고 보니 잘못된 번역이 한두 권이 아니었습니다. 왜 유독 신학 서적에 오역이 많이 발생하는 걸까요. <뉴스앤조이>가, 기독교 출판사가 해외 서적을 번역해 출판하는 과정을 취재했습니다. △현재 문제되고 있는 오역 사례 △잘못된 관행을 벗지 못하고 책을 내는 출판사 △오역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는 출판사 △출판사가 오역을 줄일 수 있는 방안 등을 차례로 연재합니다. - 편집자 주

최근 <마가복음 상 ― WBC 성경 주석 34> 번역이 잘못됐다는 문제가 제기되자, 사람들은 이 문제가 기독교 출판사가 갖고 있는 잘못된 관행에서 비롯된 거라고 지적했다. 출판사가 원서를 제대로 검토하지 않고 주석을 출간했다는 것이다. 번역도 책에 나온 역자가 한 게 아니라 실제로 번역한 사람은 따로 있다는 말도 나왔다. (관련 기사: [기획1] 오역 빈번한 신학 서적들)

왜 이런 논란이 생겼는지 알기 위해 이 책을 출간한 ㅅ출판사를 취재했다. 출판사 직원들 중에는 이 책이 나온 그때 상황을 아는 이가 없었다. 대표는 지방 출장 중이라며 연락이 안 됐다. 그러던 중 현재 해외에서 선교를 하고 있는 이 책의 책임 편집자 채 아무개 목사가, 페이스북 '번역이네 집'에 글을 올려 출판 과정을 설명했다.

채 목사는 1991년 ㅇ출판사가 출간한 'WBC 성경 주석'을, ㅅ출판사가 다시 작업해 2001년에 출판한 것이라고 했다. 기존 책의 내용 중에 잘못된 표현만 수정했다고 했다. 원서를 모두 다시 번역한 게 아니었다. 채 목사가 쓴 글을 읽은 사람들은 이를 문제 삼았다. 그건 번역이 아니라 번역 표절이라고 지적하는 이도 있었다. 하지만 채 목사는 당시 그게 최선이었다고 했다. 논란이 커지자, ㅅ출판사 대표는 책을 더 이상 판매하지 않고 다시 출간하겠다고 독자들에게 알렸다.

이런 문제가 비단 ㅅ출판사만의 일인지 확인하기 위해 여러 출판사 대표, 편집장, 번역가 들을 만났다. 이들은 모두 80~90년대 기독교 출판사들이 일반 출판사보다 편집과 번역 능력이 부족했다는 말에 동의했다. 이번 오역 문제도 이러한 관행 때문에 생긴 일이라고 봤다.

지난 30년 동안 기독교 출판 분야에서 편집자, 출판사 대표, 전업 번역가 등으로 활동해 온 한 번역가를 만났다. 기독교 출판사가 지금처럼 많지 않았던 80~90년대에는 출판사 사정이 어땠느냐고 물었다.

"80년대 말, 90년대 초에는 기독교 출판사 안에 능력 있는 편집자가 그렇게 많지 않았습니다. 대학교에서 관련 학과를 전공하거나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은 드물었죠. 생명의말씀사를 제외하고는 대다수가 영세했고 직원들 급여나 복지 혜택 수준이 낮았으니, 특별한 사명감을 갖지 않고서는 인재들이 오기에 어려운 여건이었습니다. 상황이 그러니 번역서를 검토할 때 편집자가 하는 일은 맞춤법에 어긋나는 말, 잘못 쓴 말, 빠진 말을 검사하는 수준이었죠."

그 역시 80년대 중반부터 10년 넘게 출판사 대표로 지내다가 지금은 옛 동료들과 작은 출판사를 새로 차려 운영하고 있다. 번역도 하고 있는데, 지금까지 자기 이름으로 번역한 책이 100권이 넘는다.

"당시에는 제대로 된 번역가도 구하기가 어려웠어요. 신학을 배우고 영어만 할 줄 알면 일을 맡겼죠. 구약학, 역사신학 등 전문 분야의 책을 낼 때에는 학자나 교수를 찾아갔고요. 본문을 여러 개로 쪼개 신학생들에게 200자 원고지 1매에 1,000원을 줘 가며 번역을 부탁한 적도 있어요. 전문 번역가가 번역해도 막상 책을 출간할 때에는 역자 이름이 유명한 대학 교수 이름으로 나오는 경우도 있어요. 지금 활동하는 전업 번역가들에게는 모두 이런 경험이 있을 겁니다. 모든 출판사가 그런 건 아니었지만 대부분이 이러한 관행을 갖고 있었습니다."  

  
▲ 80~90년대 국내 기독교 출판사들은 전문 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도 해외 신학 서적을 내려고 노력했다. (사진에 나온 책과 출판사는 기사 내용과 관계없음.) ⓒ뉴스앤조이 박요셉

관행은 많이 줄었지만, 빈틈은 여전히

대다수 출판사 관계자들은 지금은 다르다고 했다. 80~90년대에 있던 소위 '날림' 편집과 '짜깁기' 번역은 많이 개선되었다고 했다. 하지만 취재 과정에서 들은 몇몇 출판사의 경우는 편집과 번역 과정에서 잘못된 번역을 제대로 걸러 낼 수 있을지 의심 가는 부분이 있었다.

그중 가장 문제될 만한 것이 '원서 대조'다. 어떤 출판사는 '원본 대조', '원본 참고'로 말하기도 하는데, 여기서는 '원서 대조'로 통일하겠다. 출판사는 외국 서적을 번역 출간할 때 먼저 번역가를 선정해 원고를 맡긴다. 번역가가 초고를 가지고 오면 이때부터 편집자들이 교정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문제는 편집자들이 원서를 어느 정도까지 참고하며 검토하느냐는 것이다.

ㅂ출판사는 편집자가 초고를 읽다가 문맥에 이상한 부분이 있을 때만 원서를 대조, 문제되는 표현을 고치는 방식으로 번역본을 교정한다. ㄱ출판사도 비슷한 절차를 두고 있다. 총 3차에 걸쳐 교정하는데, 1차는 책임 편집자가, 2차는 역자가 교정하고, 3차는 편집부장이 검토한다. 이때 편집부장은 원서를 보지 않고 번역본만 본다. 헬라어, 히브리어, 라틴어 등을 번역한 원고는 100% 역자에게 의존한다고 한다.

제대로 번역됐는지 원서를 직접 대조하지 않는 것도 문제지만 출판사가 교정을 빠른 시간 내에 끝내려는 것도 문제다. 1년에 120종을 출판하는 ㄱ출판사는 한 달에 약 10권을 출판한다. 편집자는 12명이다. 한 명이 1년에 10권씩 내는 꼴이다. ㄱ출판사 대표는 편집자들이 하루에 최소 A4용지로 70쪽 이상을 교정해야 한다고 했다. ㅂ출판사도 1차 교정 때 하루 40~50쪽을 처리하지만, 2차부터는 80~100쪽을 검토한다고 했다. 편집자가 이 분량을 채우려면 원서 대조에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없다.

핵심 메시지만 전달되면 끝?

어느 출판사는 오역을 막기 위해 문장 단위로 원서와 번역본을 대조한다. 또 다른 곳은 편집자부터 대표까지 대여섯 번 교정하며 오랜 시간을 걸쳐 책을 낸다. 그런데도 잘못된 번역이 나오는 경우가 생겨, 이 출판사 대표는 때마다 원서 대조를 꼼꼼히 하라고 편집자에게 강조한다. 그런데 앞서 말한 두 출판사는 그 정도까지는 원서 대조를 하지 않는다. 출판사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ㅂ출판사 편집장은 번역가와 편집자가 각자 할 일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편집장은 "번역은 번역가가 할 일이고 편집자는 교정·교열만 잘하면 된다. 편집자가 번역문을 원서와 일일이 대조하며 볼 필요는 없다. 어색한 부분, 잘못된 문장, 맞춤법 등만 고치면 된다"고 했다. 오역을 막기 위해서는 결국 번역가가 제대로 번역하면 된다는 게 이 출판사 편집장과 대표의 생각이다.

ㄱ출판사 대표도 오역에 대해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다. 이 대표는 책을 빠른 시간 내에 출간해야 하기 때문에 번역의 완성도는 85%면 충분하다고 했다. 책의 주요 메시지만 독자에게 전달할 수 있으면 된다고 했다.

1년에 발간하는 책의 수를 줄이고 교정·교열에 힘을 더 쏟으면 안 될까. ㄱ출판사 대표는 국내 기독교 출판 시장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그럴 수 없다고 했다. "해외에서 반응이 좋은 책도 국내에서는 잘 안 팔리는 경우가 많다. 어떤 책이 수익을 낼지 모른다. 그래서 출판사는 최대한 책을 많이 내려고 한다. 번역서 출판은 일종의 투기다."

ㄷ출판사 대표도 오역 문제에 대해서는 출판사 입장을 생각해 줘야 한다고 했다. "해외에 있는 좋은 책을 국내에 출간하려면 선인세·번역료 등으로 많은 비용이 든다. 돈이 많지 않은 작은 출판사가 제작비를 줄이다 보니 이런 오역이 나오는 것이다"고 했다. 이 대표는 좋은 책을 한국에 있는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게 더 의미 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 종로에 있는 한 서점의 종교 분야 신간 서적들이다. 국내 도서 수가 이전보다 늘었다고 하지만, 해외 서적이 차지하는 비중은 여전히 크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오역 문제가 불거지면 사람들은 대개 그 이유를 번역가가 원서를 잘못 번역하고 편집자가 이를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출판 책임을 맡고 있는 대표나 편집장도 오역 문제에 책임이 있다. 맨 끄트머리에 있는 편집자가 교정·교열을 제대로 하려고 해도, 출판사 대표나 편집장이 국문으로 읽어 문제될 때만 원서를 참고하라고 지시하기 때문이다. 교정할 분량에 비해 주어진 시간도 부족한 실정이다.

위 출판사들이 번역서를 출간하는 과정을 들은 한 출판사 대표는, 책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받아들일 수 없는 말이라고 했다. 그는 "음식을 예로 들면, 고객에게 상한 음식을 주는 것 아니냐"고 했다. 87년부터 전업으로 기독교 출판 분야에서 120여 권의 책을 번역한 한 번역가도 "과거에는 거의 모든 출판사가 잘못된 관행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었다. 독자들이 요구하는 수준도 점점 높아지고 있다. 그런데 아직도 구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다음 기사에서는 잘못된 번역을 줄이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출판사들의 모습을 소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