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학

[스크랩] 1. 성경의 방식대로 기도하라.

수호천사1 2014. 12. 4. 03:51

1. 성경의 방식대로 기도하라.

교회에 오면 기도하기를 종용받는다. 그렇지만 우리가 배우는 것은 교회에서 정한 기도회에 참석하여 기도하는 모습이 전부이다. 어떻게 기도행하는 지, 무엇을 기도해야 하는지 정확하게 가르쳐주지 않는다. 기도해야 할 목록은 교회에서 정해주는 내용을 포함해서 자신의 문제해결에 필요한 응답을 요청하는 것이 전부이다. 그렇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성경에 기록한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하는 것이 아닌가? 기도하는 내용을 포함해서 기도하는 태도 역시 성경대로 기도해야 하나님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교회에 와서 성경적인 기도에 대해 배우기보다, 교회지도자들이나 신앙선배들이 하는 모습을 보고 따라하고 있다. 그렇지만 그러한 모습이 성경적이 아니라 관행적인 기도에 불과하다면 아무런 효과가 없을 것이다.

필자가 이 책을 쓰는 이유도 교회의 관행대로 따라했던 평신도 시절의 기도가 아무런 열매가 없었기 때문이다. 기존의 관행이라 해서 잘못된 것도 아니고 나쁘지도 않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면 헛수고일 뿐이다. 예수님 시절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기도를 열심히 했다. 그들은 옷 술에 성경구절을 수놓고 다니며 견고한 믿음을 보여주었으며, 시장어귀 등의 사람이 많이 다니는 곳에서 큰소리로 기도하기를 즐겼다. 율법에 정한 것은 아니지만, 그 당시 경건한 유대인들은 하루 3번씩 정해진 시간에 기도하곤 했는데, 그들 역시 성실하게 따라했다. 그렇지만 그들의 기도행위는 예수님으로부터 심한 책망만을 들었다. 남에게 보여주려는 기도행위는 가증할 뿐이라고 말이다. 우리도 그 당시의 서기관과 바리새인처럼 남에게 보여주려는 자기만족의 기도행위를 답습하고 있지는 않은가? 성경에는 기도하는 행위에 간절한 마음을 실어야 하며, 기도의 동기나 목적 역시 하나님의 뜻에 합당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즉 성경대로 기도하지 않는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성경에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기도의 방식에 대해 적지 않게 밝혀놓고 있다. 어두운 동구 밖에서 지갑을 잃어버렸는데, 밝다는 이유만으로 가로등 밑에서 지갑을 찾고 있다면 어리석은 행위일 것이다. 쉽다고 관행적인 기도를 따라하는 것이 아니라 어렵더라도 성경적인 기도를 해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기도응답을 받고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방식이다.

2.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라.

요람에 누운 아기가 자신의 소망을 이루는 유일한 방법은 오직 큰 소리로 우는 것뿐이다. 우는 소리를 듣고 황급하게 다가온 엄마는 배가 고픈지, 아님 옷이 축축한지 살펴보고 즉각 문제를 해결해준다. 인지능력도, 언어능력도 없는 아기에게 오직 격렬하게 우는 능력이 생존의 비결인 셈이다. 아기가 우는 행위는 엄마를 부르는 신호인 것처럼, 기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부르는 게 아닌가? 그러나 우리는 기도할 때 하나님을 부르는 것을 생략하고 본론으로 들어간다. 아니, 들어주는 사람이 없는데 큰 소리로 말한다면 정신이 나간 사람이 분명하다. 기도를 시작하면 가장 먼저 할 것은 하나님을 부르는 것이다. 그것도 형식적으로 부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올 때까지 계속해서 불러야 한다. 예수님이 가르쳐준 주기도문의 시작도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시여”라고 부르지 않은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형식적이 아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자신의 마음에 들어올 때까지 줄기차게 불러야 한다. 하나님의 영인 성령이 마음에 들어오는 느낌은 사람마다 다르고 기도할 때마다 차이가 있다. 처음 성령이 내주할 때는 감정이 격앙되지만 어느 정도 기간이 지나면 평안한 마음으로 채워지게 된다. 그러나 그 평안한 마음은 오랜 시간 기도습관이 되어야 비로소 분별할 수 있다. 어쨌든 기도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기도를 시작할 때 하나님의 이름을 지속적으로 불러야 한다. 필자는 규칙적으로 아침과 밤 시간에 기도한다. 각각 1시간~ 1시간 30분가량 기도하는데, 기도를 시작하면 2~30분간은 오직 성령이 내주하시기만을 기다리며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으로 일관하다. 낮에는 방해받지 않고 길게 기도하는 게 어렵다. 그래서 틈만 나면 기도를 시도하는데, 이때는 대부분 하나님을 부르는 것으로 일관하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면 성령이 마음에서 느껴지는 게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 없다.

기도의 승패는 얼마나 오래 기도하느냐 보다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하느냐에 달려있다. 아무리 오랫동안 열정적으로 기도했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이 들어주시지 않는 기도라면 헛수고에 불과하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다양하다. ‘하나님’이라는 단어를 반복할 수도 있고, 성령이나 예수님의 이름으로 불러도 상관없다. 모두 같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자신이 가장 선호하는 방식으로 부르면 된다. 그러나 하루 종일 틈만 나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그분을 찾아야 한다. 성경적이지 않은 관행적인 기도방식은 무용지물이다.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렘29:13)이나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다.”(잠8:17),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 중략..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눅11:9~13) 위의 성경말씀에서 하나님을 만나려면 줄기차게 그분의 이름을 부르며 찾으라고 일관되게 말씀하고 계시다. 필자가 10여년 전 기도훈련을 시작할 때, 무조건 성경적인 기도를 하자고 마음먹고 성경을 이 잡듯이 뒤지자 이 말씀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를 습관을 들이기 위해 적지 않은 훈련기간이 필요했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정확했다. 그 방식의 기도로 성령을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3. 하나님을 간절히 찾으라.

하나님을 만나는 기도습관을 들이지 못하는 이유는 성경적으로 기도하지 않기 때문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뜻을 밝힌 책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존재를 성경에서 드러내셨다.(요1:1) 그러므로 성경대로 기도하여야 한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밝힌 하나님을 만나는 방식은 무엇인가? 그것은 간절히 기도하는 것이다. “만일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그를 찾으면 만나리라”(신4:29),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렘29:13)이나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다.”(잠8:17)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라는 말은 בכל־לבבך ובכל־נפשך׃ (버칼 러바버카 우버칼 낲세카) 라는 히브리어를 번역한 것으로 ‘마음을 다하고 영혼을 다하여’라는 뜻이다. 이는 ‘전심으로’나 ‘간절히’ 라는 말과 같은 뜻이다. 즉 간절히 전심으로 마음을 다해 기도하라는 것이다. 이렇게 기도하면 성령을 만날 수 있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 수 있다. 응답이 신속히 내려오며 각종 문제해결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당신은 기도할 때마다 간절히 기도하고 전심으로 기도하고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보라. 그렇지 않다면 그렇게 해야 한다.

예수님이 승천하시고 나서 사도들과 제자들은 마가요한의 다락방에서 성령이 임하시기를 기다리며 오로지 기도하기에 힘썼다.(행1:14) 이때 ‘오로지’를 번역한 헬라어는 προσκαρτεροῦντες(프로스카르테룬테스)라는 단어이다. 기독교에 입교한 수많은 교인들은 사도들에게 기도하는 법을 배워 똑같이 ‘오로지’ 기도하기에 힘썼다.(행2:42) 이때도 사용된 단어가 προσκαρτεροῦντες(프로스카르테룬테스)였다. 그뿐 만이 아니라, ‘기도에 항상 힘쓰며’(롬12:12), ‘기도를 계속하고’(골4:2)에서 사용된 ‘항상 힘쓰며’나 ‘계속하고’에 사용된 단어도 역시 προσκαρτεροῦντες(프로스카르테룬테스)였다. 이렇게 이 단어는 공통적으로 사도들과 바울이 기도하는 방식에 사용되었다.

기도에 전념하고, 간절히 기도하며, 오로지 기도하는 것은 기도에 적용되는 같은 태도를 말한다. 우리가 기도하는 시간이 많거나, 금식기도나 새벽기도처럼 희생적으로 기도하더라도 간절히 기도하는 태도가 없다면 무용지물이다. 짧게 기도하더라도 간절히 기도하여야 한다. 그러나 아직도 간절히 기도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면 응답은 기대하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

4. 기회가 나는 대로 기도하라.

바울의 유명한 ‘쉬지 말고 기도하라’(살5:17)라는 말씀을 모르는 크리스천은 별로 없을 것이다. 이 말씀의 헬라어 단어는 ἀδιαλείπτως προσεύχεσθε(아디아레이프토스 프로슈케스데)이다. προσεύχεσθε(프로슈케스데)는 ‘기도하다’라는 단어이고 ἀδιαλείπτως(아디아레이프토스)는 ‘끊임없이’라는 뜻이다. 즉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성경말씀은 끊임없이 기도하라는 뜻이다. 물론 그 말의 번역은 별다른 차이가 없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우리가 받아들이는 의미의 차이는 적지 않다. 쉬지 않고 기도하는 말은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수 있겠지만, 끊임없이 기도하는 뜻은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틈을 내서 기도하고 기회가 나면 기도하는 모습이다. 이처럼 바울이 기도방식으로 제시한 것은 전념을 다해 끊임없이 기도하라는 말이다. 사실 이같은 방법은 바울만 말한 것은 아니다. 예수님도 항상 기도하라고 하였고(눅18:1), 고넬료도 항상 기도하다가 하나님의 감동을 얻게 되었다.(행10:2) 사무엘도 기도를 쉬는 죄를 범치 말하고 한 말씀으로 보아(삼상12:23), 그가 일상의 삶에서 끊임없이 기도했다는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는 교회에서 정한 기도회에 참석하여 기도하는 게 전부라고 여기는 크리스천이 적지 않다. 일상의 삶에서 끊임없이 기도를 하려면 기도회의 기도만으로 만족시킬 수 없다. 끊임없이 기도하는 것은 무시로, 기회가 나는 대로 기도하는 것을 말한다. 업무나 학업과 같이 정신을 몰두할 때를 제외하고 쉬거나 누군가를 기다리거나 운전을 하고 있을 때 등 느슨한 시간에는 얼마든지 하나님을 찾으려 기도할 수 있다. 그렇게 기도하지 않는 것은 그런 기도습관을 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새벽기도회에 참석했는지를 묻지 않으며 하루에 몇 시간 기도할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다만 틈만 나면 자신을 부르며 찾는 태도를 보고 계신다. 적당히 기도하더라도 응답이 없고 기도의 열매가 없다면 허망한 법이다. 많은 이들이 열심히 기도를 하지 못하는 이유는 기도할 시간이 없다기보다 아무리 기도해도 기도응답이 없었기 때문에 중도에 포기하고 마는 것이다. 강한 자가 이기는 것이 아니라 이기는 자가 강한 자라는 말과 같다. 가장 좋은 기도방식은 하나님을 만나고 응답이 내려오는 기도일 뿐이다. 아무리 희생적으로 기도하더라도 응답이 없는 기도방식이라면 빨리 그만두어야한다.

5. 집중력을 가지고 기도하라.

기도란 공부처럼 육체의 힘이 아니라 정신력을 가지고 하는 행위이다. 학생이 공부할 대 잡념이 들고 공상에 젖어있다면 학습효과가 없을 것이다. 기도도 마찬가지이다. 정신을 하나님께 집중시키고 이에 몰두해야 한다. 그래서 효과적인 기도를 하려면 기도훈련이 필요한 이유이다. 정신집중은 쉽게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가에 노는 어린 아이를 둔 엄마는 다른 일을 하면서도 눈은 아기에게 가 있다. 혹시 무슨 일이 생길까봐 아기에게 집중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다급한 문제가 있으면 기도에 쉽게 집중한다. 그렇지만 일반적인 기도는 문제해결 이전에 하나님과 교제하는 행위이다. 하나님의 영이시기 때문에 육체의 눈으로 보이지 않는다. 다만 기도라는 영적 행위를 통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 그러므로 오랫동안 기도에 몰입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 하나님과 깊게 교제할 수 있으면 그분의 마음을 읽고 능력을 얻어낼 수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기도를 시작하자마자 통성으로 기도한다. 방언이든지 아님 음성이든지 통성으로 기도할 때는 침묵으로 기도하는 것보다 집중이 잘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통성으로 기도하는 것은 오래 할 수 없으며 교회나 집 등 방해받지 않은 장소에서 가능하다는 한계가 있다. 침묵기도는 마음으로 기도하는 것이기 때문에 오래 기도가 가능하면 시간과 장소에 상관없이 기도할 수 있다. 그렇지만 아쉽게도 침묵기도는 고도의 정신집중을 요구하기 때문에 기도훈련을 필요로 한다. 많은 교회에서 이러한 기도훈련을 하지 않기 때문에 교인들이 성경적인 기도에 무지하다. 집중력을 가지고 기도하는 능력은 이에 탁월한 영적 지도자가 개인적인 코칭을 해준다면 훨씬 수월할 것이다. 그렇지만 그런 환경이 아니더라도 실망할 필요는 없다. 소를 우물에 끌고 갈 수 있더라도 억지로 물을 먹일 수는 없는 것처럼, 스스로 열심히 하려고 하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성령이 내주하는 기도를 하려고 애쓰면 성령께서 도와주신다. 성령은 돕는 영이시기 때문이다. 어째든 능력 있는 기도를 하고 싶다면 고도의 집중력을 길러야 한다.

쉰목사

 

출처 : 보좌로부터흐르는생명수
글쓴이 : 하늘산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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