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의론 때문에 한국교회가 망했다고?
한국에서 종교개혁의 칭의론이 이중으로 수난을 당한다. 칭의론이 심각하게 왜곡되어 방종을 조장하는 변종 복음으로 둔갑하였다. 그래서 초래된 한국교회의 윤리적인 타락을 이제는 종교개혁의 칭의론 때문이라고 돌을 던진다. 올바른 칭의론이 제대로 전파되지도 못하고 한국에서 내몰릴 판이다.
그동안 칭의론이 왜곡된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복음의 핵심인 칭의론 자체를 이같이 배격하는 것이다. 칭의론 때문에 한국교회가 망했다는 말을 심심찮게 듣는데 신학교수의 입에서까지 이런 말이 나올 때 심히 당혹스러움을 느낀다. 그것은 종교개혁의 칭의론과 한국에 만연해 있는 해괴하게 변질된 칭의론을 구분조차 못하는 무지를 드러내는 말이다.
오직 믿음으로, 오직 은혜로 구원받는다는 종교개혁의 가르침을 거룩함의 열매가 없어도 믿기만 하면 구원은 따 놓은 당상이라는 식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것은 심각한 복음의 변질이다. 종교개혁자 칼빈이 가장 염려했던 것이 바로 칭의론이 이런 식으로 오해되는 것이었다. 칼빈은 칭의의 교리가 이렇게 남용될 수 있는 위험을 막기 위해 세심한 노력을 기울였다. 기독교 강요에서 그는 칭의에 앞서 그리스도와의 연합, 회심과 성화를 먼저 다룸으로 성화의 중요성을 간과한다는 로마 가톨릭의 비난을 원천에서 봉쇄하였다. 성화를 전략적으로 칭의보다 앞세운 것이다.
칼빈은 칭의를 그리스도와의 연합의 바탕 위에서 다루었다. 칭의와 성화는 그리스도의 연합으로부터 흘러나오는 두 가지 혜택이다. 신자는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새 사람이 되고 끊임없이 옛 자아를 부인하고 십자가에 못 박는 삶을 통해 거룩함을 이루어간다. 그러므로 우리를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하는 믿음은 회개와 성화를 동반함 없이 칭의의 효력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 믿음은 행함 없이 존재하지 않는다.
칼빈의 논리에 의하면, 성화 없는 칭의로만 구원받을 수 없다. 왜냐하면 칭의와 성화는 결코 분리될 수 없는 단일한 은혜의 두 면이기 때문이다. 곧 단일하면서도 이중적인 은혜이다(One grace yet two-fold grace). 칭의와 성화가 구별되는 것은 단지 우리의 생각에서 뿐이지 우리의 경험에서는 아니다. 아무도 둘 중 하나만을 체험할 수 없다. ‘성화 없는 칭의’나 ‘칭의 없는 성화’만을 체험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만약 칭의가 참된 것이라면, 이는 필연적으로 그리고 지체 없이 성화가 수반되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다함을 받은 이는 동시에 반드시 거룩해 진다. “그리스도께서는 거룩하게 하지 않고서는 누구도 의롭다고 하지 않으신다.” 그것은 칭의와 성화는 그리스도의 인격 안에서 영원히 분리될 수 없는 연합으로 엮어져 있기 때문이다.
칭의와 성화에 대한 종교개혁자 칼빈의 가르침은 놀라울 정도로 부요하고 치밀하다. 칼빈은 칭의론이 왜곡될 위험성을 정교하게 발전된 논증을 통하여 철저하게 봉쇄하였다. 칼빈은 칭의를 인간의 거룩함에 근거시키는 율법주의적인 오류에 대응하여 칭의와 성화를 날카롭게 구별하는 동시에, 칭의론이 성화의 중요성을 약화시키는 무율법주의로 흐를 수 있는 위험을 막기 위해 칭의와 성화를 긴밀하게 연결시켰다.
이렇게 칭의와 성화의 구별성과 연결성을 균형 있게 강조함으로써 양극단적 입장을 효과적으로 물리치는 전략적인 논증이 개혁주의 구원론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이런 종교개혁의 핵심교리에 대한 이해가 현저히 결여되어있다는 사실이 한국교회 강단에서 전파되는 메시지에 그대로 드러난다.
한국교회의 영적인 침체와 윤리적인 타락은 종교개혁이 정립한 칭의와 성화의 복음이 제대로 전파되지 않은데서 기인한다고 진단할 수 있다. 그럼에도 종교개혁의 칭의론 자체에 결정적인 문제가 있어 한국교회에 윤리적인 해이와 방종을 불어왔다고 오진하는 것은 칭의론의 왜곡보다 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진귀한 신앙의 유산이 그 진가도 모르는 이들에 의해 자칫 잘못하면 폐기처분 될 위기에 처하게 된 것이다. 이는 한국교회에 만연한 잘못된 구원론이 얼마나 종교개혁의 가르침과 거리가 먼지조차 분별할 수 없을 정도로 종교개혁의 유산에 대해 무관심하고 무지한지를 보여주는 방증이다.
칭의론은 개혁교회를 태동시켰을 뿐 아니라 지난 500년 동안 개혁교회를 굳건히 지탱해온 진리이다. 이 교리가 바르게 전파될 때마다 교회가 생명력으로 왕성해지고 건강하게 성장하고 부흥하였다. 개혁교회에서 칭의 교리는 구원 메시지의 심장이며 심오한 영성의 바탕이고 복음의 젖줄이며 고통당하는 양심의 위안이었다. 또한 칭의의 복음이 타락한 교회를 돌이키는 강력한 은혜의 방편이며, 영적 회복의 바탕을 제공한다.
교회가 부흥할 때마다 다시 부활했던 메시지가 타락한 당신의 백성이 돌이키면 단번에 그들의 죄를 사하시고 그들을 의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무궁한 사랑과 은혜를 전하는 칭의의 복음이었다. 그러므로 진정한 부흥을 고대하는 한국교회에 가장 절실히 필요한 것도 칭의의 복음이 부활하는 것이다.
-박영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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