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학

[스크랩] 열린예배

수호천사1 2014. 10. 19. 07:16

열린예배

 

연구자 / 김광호 이석윤 박노성 김훈

 

 

I. 들어가는 말

한국의 대학생들의 90퍼센트 이상이 전도를 받아왔다고 한다. 그

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교회에 나가지 않는 이유가 두 가지로 조사된 바 있다.

첫째는 기독교인의 행위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이고, 둘째는 교회의 활동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이다.

그들이 종교를 선택할 경우 기독교는 거의 하위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은 그 심각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또한 한국교회는 교회를 이탈하는 교인들 중 40대 이상의 장년층에 비해 청소년과 청년 그룹이 4배에 달한다는 보고서를 본 적이 있다.

이러한 통계가 가리키는 것은 앞으로 10~20년 사이에 한국교회가 젊은이들을 끌어안을 수 있는 어떤 계기를 마련하지 못한다면 한국교회의 미래는 암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왜 젊은이의 교회 이탈자의 수가 장년에 비해 4배에 달하는 것일까? 그것은 40대 이상의 장년 그룹은 비교적 전통에 쉽게 적응하는 편이지만 청소년과 청년 그룹은 그들과는 판이하게 다른 문화에 젖어있기 때문이다.

젊은 사람들의 문화는 하루가 다르게 변해 가는데, 일반적인 교회들은 장년부 중심으로 그의 수십 년 간 똑같은 스타일의 예배를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볼 때 데니스 레인 목사가 95년 9월 26일자「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국교회를 위기의 상황으로 지적한 것과, “미래를 내다보고 젊은이들을 감동시킬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한다”는 것은 시기적절한 진단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한국의 많은 청소년, 청년 목회자들의 고민은 “어떻게 하면 청소년들과 청년들에 맞는 효과적인 사역을 할 수 있을까?”라는 것이다.

이에 대한 대답으로 장년 위주의 전통주의 스타일을 고집하지 말고 젊은 사람들의 문화에 맞는 사역을 개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하면 믿음의 선배들이 오랫동안 고소한 것인데 개혁이 좋다고 하지만 전통은 지켜야하는 것이 아닙니까?라는 대답을 하게 된다.

고린도전서 9장 19~22절은 사도 바울이 그의 사역의 대상에 따라 철저히 그들의 문화에 맞춘 모습으로 접근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사실 우리가 믿고 있는 복음은 어느 시대, 어느 민족을 막론하고 목숨을 걸고 사수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시대에 따라 바뀌어질 수도 없고, 또 바뀌어져서도 안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 복음을 전하는 방법은 그 시대, 그 민족의 문화의 옷을 입고 나타나야 한다.

다시 말해 복음은 불변하는 것이로되 그것을 전하는 방법은 세대에 따라, 문화에 따라 계속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교회는 그동안 이러한 문화적인 부분에서의 접근을 거의 외면해 오다시피 했다.

전통 자체를 마치 성경의 가르침인 양 고수해왔고, 때로는 전통에 대한 변화를 복음의 타협과 동일한 것으로 간주해온 것이다.

그러다보니 예배 스타일은 백여 년 동안 변하지 않았고, 대부분의 교회들이 사역의 대상에 관계없이 거의 똑같은 모습의 천편일률적인 사역만 해오고 있는 것이다.

사도 바울식의 어법으로 표현하자면 우리 주변에는 전통을 선호하는 장년이나 구세대만 있는 것이 아니고, 신세대도 있고 X세대도 있고 권위를 싫어하는 세대도 있는데 교회는 그동안 전통적인 장년 위주의 사역만 추구해온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열린예배가 교회의 관심영역으로 들어 온지는 오래되지 않았다.

그런데 열린예배에 대한 한국교회의 반응은 마치 한때 한국교회 전체가 경배와 찬양모임이라는 열병에 휩싸였던 것처럼 붐이 일어나는 징조가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열린예배에 대한 관심이 청년들이나 교회안의 불신자 혹은 초신자들을 겨냥하고 있는 것은 바람직한 모습이지만 동시에 적지 않은 문제들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열병처럼 번질 조짐이 보이는 열린예배를 우리는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 또한 어떤 문제점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지를 정리할 필요하다.

 

Ⅱ. 열린예배의 기원과 배경 - 윌로우크릭 교회를 중심으로

 

1. 열린예배의 기원

열린예배를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미국적 배경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미국의 교회는 침체상황에 있다.

교회의 감소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세대는 베이비 부머들이다.

이들은 1946-1964년 사이에 태어난 세대로 많은 권리 향유하며 살아왔기 때문에 삶에 대한 기대치가 매우 높다.

이 세대들의 이혼율이 50%대에 달하는 것은 이 사실을 잘 반영해 준다.

이들은 교회에 대해서도 자신들이 가질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선택의 기회를 기대하기 마련이다.

이런 변화된 위기의 상황 속에서 하나의 대안으로 등장한 것이 소위 ‘사도적 교회’이다.

이 교회들은 기독교 부흥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는데 오늘날 미국 및 북 아메리카에서 주목받고 있는 교회 중 대표적인 교회는 윌로우크릭 교회, 새들백 교회 등이다.

특히 본격적인 구도자 예배 즉 열린 예배의 기원을 연 것은 윌로우크릭 커뮤니티 교회의 빌 하이벨스 목사이다.

‘최대 공연 구도자 예배’(High Performance Seeker service) 혹은 ‘구도자 예배’(Seeker's Worship)라고도 불리는 열린예배(Open Worship)는 빌 하이벨스(Bill Hybels) 목사가 1975년 미국 일리노이 주 남부 배링턴(South Barrington)지역에 윌로우크릭(Willow Creek Church)을 세우면서 시작되었다.

엄밀하게 보면 하이벨스의 열린 예배는 이미 그가 20대 초반 사우스 파크 교회에서 성공리에 수행했던 청소년 사역을 그 기반으로 한다.

하이벨스가 기존의 예배와는 다른 열린 예배를 시작하게 된 동기를 한 마디로 요약하면 전도이다.

말하자면 하이벨스는 복음전도의 비전을 품었고 이 비전을 수행하는 한 축을 바로 열린 예배에서 찾았던 것이다.

그는 기존의 예배형태가 용어 분위기 동작 등에서 모두 불신자들에게 낯설기 때문에 그들을 교회로 인도하기 어렵다는 판단 하에 주거지역 주민들 중 불신자를 대상으로 그들이 교회에 나오지 않는 이유를 조사하였다. 그 결과 다음과 같은 내용들이 조사되었다

 

1. 교회는 언제나 돈을 요구하는데 그것이 얼마나 요긴하게 사용되는지를 알지 못 한다

2. 예배가 지루하고 생명력이 없다.

3. 예배가 매우 단조롭고 똑같은 것을 매번 반복 한다 .

4. 설교가 일상생활과 매우 동떨어져 있다.

5. 예배 참석자로 하여금 죄의식을 느끼게 하고 무지하다는 생각을 갖게 함으로서 결국

집에 돌아갈 때에는 교회에 들어올 때보다 더 참담한 심정을 갖게 한다.

 

이런 장애요인을 분석한 후 하이벨스는 교회가 위치한 지역 주민 중 25-50세까지 전문직업에 종사하는 비 기독교인을 대상으로 어떻게 하면 불신자들이 과거에 교회에서 얻은 부정적인 경험과 그들이 가진 교회에 대한 선입견을 제거할 수 있으며 또 기독교 메시지를 가지고 어떻게 그들에게 접근할 수 있을까 연구 끝에 새로운 형식의 예배를 기획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말하자면 열린 예배이다.

그는 이 예배를 기획하면서 그 필요성과 가이드라인을 다음과 같이 정리 한다.

1. 세계 복음화에 대한 성서의 명령을 현재 교회가 위치한 지역으로부터 이루어 나간다는 믿음

2. 모든 사람을 하나님 나라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열정이 있어야 한다. 즉 현대적이고도

창의적인 헌신이 있어야 한다.

3. 구도자의 익명성을 최대한 보장해야 한다.

4. 구도자들이 신자가 되기로 결단하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함으로 너무 조급하게 결과를

강요하지 말고 과정에 충실 한다.

5. 모든 예배의 진행을 뛰어나게 하며 특히 하나님의 성품과 본성을 표현하고 전달하는데 유의한다.

6. 사람들은 교회가 자신들의 동기를 정직하고 성실하고 훌륭하게 다루어줄 때 비로소

시간과 재능과 물질을 들여 헌신한다는 것을 인식한다.

7. 기독교를 구도자들의 일상생활과 연결시켜서 복음을 제시하려는 헌신이 있어야 한다.

 

또한 불신자라는 회중에 대한 고려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사항으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구도자들이 교회에 들어왔을 때 느낄 수 있는 낯선 감정을 최대한 제거하려는 노력이다. 예컨대 교회당에 있는 기독교적 상징들을 일체 제거하고 기독교적 용어를 사용하지 않으며 성례전도 실시 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로 불편을 느끼지 않도록 일체의 예배행위를 인도자들이 맡는다. 구도자들은 말하거나 행동할 필요 없이 단지 앉아 있기만 하면 된다.

둘째, 예배를 구도자들의 문화에 맞추려고 시도한다. 그들은 예배당 건물의 외관이나 또는 내부를 구도자들의 취향에 맞게 설정하고 예배중 음악도 그들의 취향에 맞게 배려하며 매 예배에서 드라마나 밀티미디어 사용한다. 모든 열린 예배는 그 마지막 비중이 설교에 모아져 있는데 설교의 내용은 주로 회중들의 일상과 밀접하게 연계된 주제를 다룬다.

이상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미국적 상황에서 처음 열린 예배가 기획되었을 때 그것은 기존 예배의 갱신이라는 차원보다는 불신자들을 대상으로 한 전도의 한 방법으로 고안된 것임을 알 수 있다.

 

2. 미국식 열린 예배에 대한 평가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윌로우크릭 커뮤니티 교회를 시발로 미국 교회에서 자리잡아 나가고 있는 열린 예배는 기존의 전통적 예배와는 다른 파격적인 형식과 진행으로 인해 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켜왔다.

그러나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앞에서도 살펴본 것처럼 미국에서의 열린 예배는 변화된 사회 변화된 인간들을 대상으로 소극적으로는 교회가 생존하기 위한 전략적 차원에서 그리고 적극적으로는 시대에 부합한 복음전도 방안으로 고안된 것이라는 사실이다.

첫째, 열린 예배의 복음적 동기는 그 자체로 사도바울적인 선교전략의 다양성을 표방한다는 점에서 보면 피할 수 없는 당위의 선택이다.

특히 열린 예배가 단순히 예배 그 자체로 끝나지 않고 양육과 제자화라는 온전한 그리스도인을 위한 노정의 한 단계라는 전략적 의미를 지니고 있는 점은 높이 평가할만하다.

일단은 모이게 하자! 라는 표어를 충족시키는 것 자체가 고민인 오늘이고 보면 열린예배는 미국적 상황에서 가치 있는 선택이라 할 수 있다.

둘째, 예배학적인 면에서 열린예배는 기존의 교회가 소홀히 해온 예배의 기쁨, 축제적 성격을 환기시켰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특히 평신도들이 적극적으로 예배의 스텝으로 참여하는 것은 지극히 바람직한 현상이다.

열린예배라는 새로운 방식은 적어도 미국적 상황에서 기독교의 부흥을 위한 고육지책이라는 면에서 전체적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는 것이 결코 무리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더욱이 열린예배를 시도하는 교회들이 이것을 불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전도방식으로 이해하고 있는 한에서 더더욱 그러하다. 비어가는 예배를 전통에의 집착 때문에 방치할 것인가 아니면 복음의 본질을 손상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획기적인 변화를 도입할 것인가 라는 이분법적 양자택일의 질문으로 열린예배의 문제를 몰고 갈 경우 우리가 무엇을 선택해야 할 것인가를 염두에 두고 보면 시사 하는바가 결코 적지 않다 할 것이다.

 

Ⅲ. 열린 예배의 실제

1. 열린예배의 시행 준비

열린예배를 시행하기 위해서는 치밀한 준비를 필요로 한다.

우선 예배에 대한 교회자체의 인식을 바꾸는 작업에서부터 교회 주변의 상황과 동시대의 분위기를 파악하는 작업에 이르기 까지 예배준비 전단계의 치밀한 조사를 필요로 한다.

갈보리 교회의 에드 답슨 목사는 열린예배가 신중하고 치밀한 계획 하에 디자인되어야 할 것을 주장하면서 다음과 같은 열린 예배를 위한 7단계 준비를 제시 한다

 

1. 교회의 풍토를 이해하라 - 교회의 풍토가 혁신과 변화에 열려있는 것이 중요하다

2. 진리와 행동의 수준에 대해 가르치라

3. 여러 전제조건을 생각하지 말고 먼저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체계를 발전시키라.

열린예배를 시작한다면 회심자 들에게 요구사항을 줄줄이 부과하지 말아야 한다.

주일예배 참석과 세례 및 교회 등록을 강요하는 것은 그들을 몰아내는 행위이다.

4. 모든 사람이 사역에 참여할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아 준다.

남녀를 동등하게 인정하는 문화적인 분위기를 만든다.

5. 전적으로 헌신하는 자세를 유지하라. 예배에는 반드시 담임목사가 참여해야 하며 열린 예배가 주일 예배만큼이나 중요하다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따라서 열린예배를 중심에 놓은 연후에 다른 행사를 가져야 하며 이를 위해 당회가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6. 장기간 열린예배의 가능성을 열어놓으라

7. 융통성을 유지하라

 

하이벨스는 구도자를 성도로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이 회중을 설득하는 것인데 이를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검증된 원리가 필요하다고 주장 한다.

1. 이해(Understanding) - 회중이 새로운 관점을 갖도록 설득하기 전에 그 사람에 대한 이해를 해야한다. 하이벨스와 동역자들은 불신자를 이해하려 노력 한다.

2. 프로그램 계획(Programming) - 주말 예배의 프로그램은 불신자로 하이블스의 메시지 를 준비하도록 고안 된다.

3. 신뢰성(Credibility) - 하이벨스는 불신자들에게 신뢰할만하고 의지할만한 대상으로

인식되기를 추구한다. 구도자에게 신실하고 정직하며 믿음을 보여주고자 한다.

4. 동질성(Identification) - 양자간에 문화적인 체인이 있음을 믿으며 이 공감대를 연결 하고 우리가 같다는 것을 구도자에게 확신시키고자 한다.

5. 상관성(Relevance) - 하이벨스는 구도자의 진정한 필요에 대해 언급 한다.

그는 기독교야 말로 이런 필요의 결핍을 만족시키며 풍성한 만족을 제공하는 최고의

수단임을 강조 한다.

6. 기독교신앙 101 (Christianity 101) - 기독교의 가르침이 구도자의 매일의 삶을 도울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기독교 신앙 101은 성경과 예증 그리고 실제적인 방법을 통해 제공 되어진다.

7. 복음(Gospel) - 하이벨스는 복음의 핵심을 설명한다. 그는 구도자에게 하나님과

인간 본성 그리스도에 대해 가르치며 구원을 위한 믿음에 관해 가르친다.

8. 헌신(Commitiment) - 하나님의 용서를 받아들이도록 촉구함

 

이러한 원리를 바탕으로 열린 예배를 위해 구성된 소위원회에서 예배를 기획하게 된다. 열린예배의 대상은 주로 20-40대의 불신자를 목표로 하며 이들이 복음과 교회에 대해 갖는 생경함을 완화시켜주기 위해 다양한 접근을 시도하는데, 불신자를 대상으로 이들을 연결할 수 있는 예배가 되기 위해 이들 교회에서는 그 기본 성격을 형식에 매이지 말 것, 현대적일 것(비전통적일 것), 참여나 헌신을 강요하지 말 것, 참석자들에게 필요하며 적절한 것을 다룰 것, 전체적인 구성을 빡빡하지 않고 편안하게 할 것, 시각적으로 호소할 것 등으로 정한다.

 

2. 열린예배의 핵심

여기서 열린예배의 핵심요소들이 무엇인지 살피기 전에 가장 먼저 생각해야할 것이 있다면 성장하는 많은 교회들 중에 전혀 멀티미디어나 문화적인 접근을 하지 않고서도 성장한 교회들이 있다는 점이다.

이런 경우들 때문에 어떤 목회자들은 열린예배적 접근을 거절하는 근거를 삼기도 한다. 우리는 먼저 이런 주장이 틀린 주장은 전혀 아니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사실 복음의 기초가 없이, 즉 기본이 없이 열린예배는 효과적이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즉 구도자예배 혹은 문화적인 접근보다 중요하게 준비해야 하는 것은 교인들의 형편과 위치에서 직접 부딪힐 수 있는 메시지와 리더십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사실 문화 혹은 구도자 예배적 접근은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하기위한 도구적 요소이지 그것이 목적이 될 수는 없다는 말이다.

 

3. 열린예배의 요소

그렇다면 열린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우리는 어떤 요소들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가? 첫째, 열린예배 사역은 반드시 복음 위에 서서 복음전도를 위해 디자인되어야한다. 무엇보다도 열린예배는 다양한 문화행위의 나열이 아니라 복음이라는 내용을 마치 한편의 드라마처럼 구성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모든 순서들, 찬양, 드라마, 슬라이드, 간증, 춤 등은 설교를 극대화하는데 집중되어야 한다.

둘째, 당연히 말씀이 강조되어야 한다. 열린예배에 새로운 신자들을 받아들이려 한다면 철저한 준비된 복음전도 설교자가 반드시 있어서 명료하고도 쉬운 복음이 증거 되어야 한다. 또한 철저히 복음이 용해되어 있는 전도설교이어야 한다.

셋째, 열린예배사역은 불신자들을 붙잡을 수 있는 전도 프로그램과 연결되어야 한다. 그래서 윌로우크릭교회의 경우 트리니티 복음주의 신학교의 전도학 교수인 로버트 콜만의 전도원리들을 중심으로 해서 만든 생활전도(Contagious Christian Ministry) 프로그램을 전면적인 사역 프로그램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넷째, 열린예배 이후 불신자들을 정착할 수 있는 사후관리 프로그램이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 간혹 다양한 소그룹으로 혹은 체계화된 제자훈련과정을 통하여 사후 지원할 준비가 있어야 한다.

다섯째, 열린예배의 성격이 지속적이어야 효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그러므로 단번에 윌로우크릭 교회와 같은 프로그램을 적용하는 것은 무리일 수밖에 없다.

오히려 오랜 시간동안 준비된 프로그램들 을 교회형편에 맞게 하나씩 적용해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여섯째 기존지체들의 영적생활과 신령과 진정으로 드릴 수 있는 예배를 반드시 가지고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기존 지체들을 위한 주일 2부 예배, 수요 제자예배 등이다.

전통적인 예배 스타일, 찬양, 중보기도, 강해설교에 이르기까지 이런 접근은 기존제자들이 예배를 통한 만족감을 주는 데에 분명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일곱 번째 충분히 영적으로 준비된 사역자가 있어야 한다.

열린예배도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이라는 점에서 당연히 그 예배를 감당하는 사역자들은 먼저 준비된 예배자이어야 한다.

이들은 제자훈련이나 소그룹으로 훈련받은 사람들로 구성 하는게 좋다.

여덟 번째 동일하게 필요한 것은 기능적으로 준비된 사역자가 있어야 한다.

우리가 대상으로 한 사람들이 세상문화에 길들여진 불신자라고 할 때 당연히 우리들이 가진 문화적인 역량은 수준급이 되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

그러므로 단순히 구색을 맞추기 위해서 기능적으로 준비되지 않는 사역자들을 세우는 것은 문제 있는 접근이라 볼 수 있다.

오히려 기능적인 부분들을 훈련시키는 계획을 세우고, 충분한 시간을 두고 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

아홉 번째 만일 충분히 준비된 사역자가 없는 경우에는 할 수 있는 한두 가지 사역을 집중하여 훈련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일정 기간 후 드라마팀이나 슬라이드, 영상매체에 대한 사역을 위한 훈련과 준비 하는게 좋다.

 

4. 열린예배 디자인

첫째, 열린예배는 타겟을 분명히 해야 한다. 이 말은 어떤 대상을 타켓으로 예배를 준비하고 있는가하는 물음이다.

영적인 어린아이인 불신자나 초신자들을 위한 예배는 그들에게 맞게 디자인되어야 한다.

그래서 미국 교회들의 경우 그 타켓이 베이비 붐 세대였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참고로 말하면 현재 우리가 논의해왔던 열린예배들은 학생, 청장년층에게 적합한 형태이다.

둘째, 열린예배는 철저히 준비되어져야 하는데 마치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것과 같은 내용의 연속성을 가져야 한다.

기존신자들과 달리 불신자들은 예배의 모든 순서에 익숙하지 않은 대상들이다.

그러므로 많은 경우 많은 순서들과 연관되지 않는 진행들 때문에 쉽게 지쳐버릴 수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예배 전체를 하나의 드라마로 보듯이 기승전결구조를 가진 예배로 준비해야하며 또한 전체를 디자인하고 진행해야 하는 예배 디렉터가 필요하다.

그래서 예배 디렉터는 예배의 시작부터 목사님이 축도로 끝나는 예배의 끝까지 한 가지 주제에 의해서 연속성을 가질 수 있도록 세심한 배려와 통제의 역할을 해야 한다.

이같이 예배 디렉터가 전체를 구상하지만 가장 중요한 핵심은 설교자이다.

일반적으로 교회에서 열린예배가 온전히 진행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설교자의 준비 없이 다른 부수적인 도구들인 드라마, 슬라이드, 찬양 등에만 관심을 갖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열린예배는 설교자가 가장 많이 준비하는 구조가 될 수밖에 없으며, 그런 관점에서 설교자는 예배 디렉터가 될 수밖에 없다.

셋째, 열린예배를 디자인하는 데 있어서 내용의 연속성 못지않게 준비해야 할 것은 시간의 연속성이다.

이를 위해서 먼저 교회는 열린예배를 지속할 수 있는 도구들과 자원들을 가지고 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많은 교회가 열린예배를 시도하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대부분의 이유가 충분한 자원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무작정 시작한 교회들이 자원의 빈곤으로 인해 예배가 곧 진지성이나 깊이가 상실되는 모습들을 보게 된다.

열린예배를 시작하려한다면 그만큼 충분한 준비와 자료비축이 필요하다.

넷째, 열린예배를 끌어가기 위하여 전체를 디자인하고 실행하는 위원회가 필요하다.

이처럼 기획회의가 필요한 이유는 이 예배가 매우 통합적인 예배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다섯 번째, 열린예배를 효과적으로 이끌기 위한 환경들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드라마, 작은 콘서트 외에 슬라이드와 간증, 춤 등의 요소들을 사용하며 예배전체에 비디오 프로젝터를 사용한 멀티미디어적 접근을 극대화하기 위하여 조명시설과 음향시설을 최선을 다하여 갖추도록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이미 앞에서도 충분히 설명한 것처럼 헌신되고 열려있는 설교자이다.

단적으로 말해서 사명을 가지고 준비된 설교자가 없는 교회에서는 열린예배를 드리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5. 열린예배 형식

1. 윌로우크릭 교회

1) 밴드의 전주(재즈그룹, 오케스트라 록그룹 혹은 컨츄리 밴드의 라이브 음악)

2) 환영의 인사

3) 보컬 그룹의 음악 연주

4) 드라마(이를 통해 그 날의 주제에 대핸 질문을 제기함)

5) 성경봉독(회중이 그날의 주제를 인식하도록 간단한 소개와 함께)

6) 밴드가 깃들여진 노래-헌금(구도자 제외)

7) 메시지(6-70분간 지속되는 예배 중 30-40분차지)

8) 토론 및 교제

 

2. 새들백교회

새들백교회(Saddleback Community Church)의 경우 주말 예배는 토요일 2회(5, 7시)와 일요일(8시 45분, 10시 45분)드려지는데 대략 다음과 같은 순서로 100분-110분에 걸쳐 드려 진다:

1) 예배를 여는 찬양(Opening Song) - 5분여에 걸쳐 찬양단(남 2 여4)이 등장하여 가스 펠송을 인도하며 기타 피아노 바이올린 신디사이저 트럼펫 호른 등의 다양한 악기가 동원됨

2) 환영의 시간 - 새신자 및 초신자를 환영하고 그들로 신상카드를 작성케 하는 시간

3) 함께 찬양하기 - 찬양시간으로 대략 13분-15분에 걸쳐 3곡 정도를 부르는데 이때

5개의 초대형 스크린이 적극 활용됨

4) 기도 및 성경읽기(Prayer & Bible Reading) - 짤막한 기도와 성경봉독 시간

5) 특송(Special Music) - 주로 찬양단원이나 복음송 가수가 부름

6) 설교(Message) - 설교시간인데 도중에 그 주제와 맞는 간증자를 초빙해 간증을

곁들이므로 전달의 효과를 높임(1시간 가량)

7) 폐회찬양(Special Music) - 조용한 음악이 흐르든지 독창이 이어지면서 헌금과 신상

카드를 회수함

열린 예배는 성도들을 위한 전통예배와는 달리 주기도문이나 축도 없이 폐회된다.

 

3. 꿈이 있는 교회(하정완 목사)

4. 온누리 교회

 

Ⅳ. 열린예배에 대한 논쟁

 

1. 열린예배에 대한 비판(반즈교수의 주장을 중심으로)

반즈(Peter Barnes) 교수 호주 장로교 신학교 교수이다. 그는 열린예배에 대해 여러 가지 이유를 제시하며 반론을 펼쳤다.

그는 첫째, "윌로우크릭 교회는 사람들을 각성시키는 복음을 제시하기보다 그들을 기쁘게 하는 공연을 베푸는데 강조를 두고 있다."고 비판했다.

반즈 목사에 따르면, 윌로크릭에는 십자가 형상이나 찬송가도 없다고 한다.

반즈 목사는 '온 교회와 이 일을 듣는 사람들이 다 크게 두려워하니라'는 사도행전 5장 11, 13절을 인용하며, "성경적으로는 불신자들의 존경을 얻는 것이 그들을 기쁘게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둘째, 반즈 교수는 "윌로크릭 교회에는 교회를 다니지 않는 자들이 구도자들의 느낌을 추구할 수 있도록 그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심사숙고한 시도들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하이벨스의 강조점은 거룩하시고 진노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올바른 사람이 될 것인가에 있기보다는 어떻게 보다 나은 관계를 완성하고 세울 것인가에 있다."고 언급한 후, "기독교는 하나님으로부터 도망치고 있는 죄인들을 하나님께 나아오도록 하는 것을 추구한다.

구도자의 존재를 인정한다는 것은 성령께서 하나님을 찾도록 이끌지 않는 한 죄인들이 하나님을 찾지 못한다는 사실을 간과하는 것이라고 봤다.

셋째, 반즈 교수에 따르면, '매체는 메시지' 라는 말에서 보듯 영상 매체는 중립적인 것이 아니다.

영상 매체를 과다하게 사용하는 것은 복음주의적 교리를 한쪽으로 치우치게 한다면서, 반즈 교수는 영상 매체를 통해 얼마나 많은 이들을 믿음으로 이끌 수 있겠느냐고 의문을 제기했다.

넷째, 반즈 교수는 "사람들을 기분 좋게 하는 것으로부터 마음에 찔림을 받게 하는 것으로 전환되는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만일 사람들이 교회에 나오는 것이 재미있는 교제를 나누고 아주 유쾌한 시간을 가지며 보다 나은 관계를 형성하고 자기 개발을 강조하는 모임 때문이라면, 어떻게 부정한 영혼이 하나님 앞에 바로 설 수 있겠는가?"라고 질문했다.

마지막으로 반즈 교수는 "교회의 첫 번째 임무는 전도가 아니라 성도들을 온전히 세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2. 반즈교수의 열린예배 비판에 대한 반론

반즈교수는 표면적으로는 빌 하이벨스 목사와 윌로우크릭교회를 비판하였지만 본질은 소위 열린예배(구도자 예배, Seeker Service)의 문제점을 지적한 것이었다.

반즈 교수의 논문에 나타는 열린예배가 문제가 있다는 논지를 보자면 크게 몇 가지로 살펴볼 수 있다.

첫째로 반즈교수의 의견을 요약하자면 예배는 인간을 기쁘게 하는 목적으로 드려져서는 안되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 최우선순위가 되어야 한다는 말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반즈는 "복음을 제시하기보다 사람들을 기뻐하게 하는 공연을 베푸는데 강조를 두고 있다"고 주장한다. 물론 이같은 주장이 틀렸다는 말이 아니다.

당연히 커버넌트 신학교의 예배학 교수 로버트 레이번(Robert G. Rayburn)이 예배에 대하여 정의한 것처럼 "성경이 분명히 밝히고 있는 것은 사시고 참되신 하나님에 대한 예배, 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드리는 예배는 오직 구속받은 자들만이 제대로 드릴 수 있다"는 것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래서 열린예배를 반대하는 이들은 절대로 "예배"라는 명칭을 열린예배에 붙일 수 없다고 주장한다.

물론 열린예배는 영적으로 성숙한 이들을 위한 예배가 아니라, 영적으로 미성숙한 이들이거나 아직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지 못하고 관심을 갖고 있는 이들을 위해 준비한 예배이다.

그런 의미에서 열린예배는 복음전도적인 관심에서 드려진다.

복음전도적 관심, 그것은 하나님이 인간이 되신 성육신의 모범을 좇아 복음을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 복음을 제시하기 위한 하나님의 선교를 따르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굳이 예배라는 명칭대신 전도집회라고 부르면 좋지 않은가하는 주장이 옳을 수도 있다.

당연히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지 않은 이들이 상당수 드리는 예배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주장하기를 원한다면 아직 육체적으로 미성숙한 영아부, 유치부를 비롯한 주일학교, 혹은 주님을 영접하지 않은 중고등부가 드리는 많은 형태의 예배들도 집회라 불러야 옳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는 그들이 잠재적인 예배자이기 때문이다.

엄밀한 의미에서의 예배는 아닐 수 있지만 그들의 마음이 하나님을 찾고 있거나 열려있기에 그들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예배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로 열린예배에 대한 문제에 대하여 반즈 교수는 사람들을 전도하는 목적에 지나치게 관심을 갖다보니까 복음의 거룩성이 상실되고 천박해지게 되었다는 의견을 피력한다.

"비신자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시도는 자칫하면 예배가 쇼로 흐르거나 하나님의 거룩이나 죄에 대한 심각성을 생각하지 않는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

만일 열린예배가 기성신자들을 위한 예배라면 당연히 이같은 주장은 옳은 주장이 아니다.

간혹 일부 교회들이 찬양집회 혹은 기성신자들을 위한 축하행사 등을 열린예배로 칭하면서 타협된 형태의 예배를 취하는 것은 일면 반즈교수가 지적한대로 사람을 기쁘게 하는 왜곡된 예배로 흐를 위험성이 있다.

하지만 열린예배는 기성교인들을 위한 예배가 아니다. 앞에서 말한 대로 영적인 어린아이나 비신자들을 위한 예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열린예배는 단순히 사람을 기쁘게 하는 예배가 아니라 영적인 어린아이들이 복음을 잘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기위하여 문화를 적용한 예배의 형태를 띠게 되는 것이다.

반즈 교수가 긍정적으로 지적한 것처럼 "교회를 다니지 않는 자들이 구도자들의 느낌을 추구할 수 있도록 그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심사숙고한 시도들"로 예배를 준비한다.

그런 의미에서 열린예배 만큼 잘 준비된 복음이 녹아있는 예배는 많지 않다.

윌로우크릭교회 구도자예배에서도 볼 수 있지만 예배 시작부터 설교가 선포되고 마쳐질 때까지 진행되는 복음이란 주제를 매우 정확하게 전달하려는 노력은 기성교회의 예배보다 훨씬 탁월하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기성교회의 예배가 더 큰 문제이다. 이미 오래된 교회의 강단은 그 메시지가 기존 신자들에게 중심을 둬서 선포된다.

상대적으로 청년, 청장년 세대라든지, 초신자 그룹에 대하여는 소홀히 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기성신자들에 큰 관심을 둔 설교는 현재 한국교회가 만나고 있는 청년, 청장년세대의 교회 이탈현상으로 가져왔고, 새로운 전환을 모색해야 하는 시점에 이르게 된 것이다.

셋째로 반즈교수는 열린예배를 비판하는 관점이 문화적인 방법인 영상매체 이용을 비판한다.

"열린예배가 사용하기 좋아하는 영상매체는 중립적인 것이 아니기에 과다하게 영상매체를 사용할 때 복음적인 교리가 한 쪽으로 치우칠 수 있다." 그래서 이렇게 묻는다.

"음악을 들으며 드라마 관람을 통하여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참 회개에 이르며 구원을 얻는 믿음으로 돌아오게 되었는가?" 이 같은 주장은 지금 이 시대가 이미 문자보다 영상이 익숙해진 비주얼 시대라는 점을 간과하기 때문에 나온 주장일 뿐만 아니라 얼마든지 문화 내용물에 복음을 집어넣으므로 전도의 효과가 극대화되는 예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오히려 거대한 음모로 다가오는 미디어산업 앞에서 다양한 미디어 접근을 통한 복음제시와 새로운 미디어 자원의 개발은 피할 수 없는 지상명령을 수행하는 중요한 요소가 아닐 수 없다.

더 이상 문자만을 가지고는 우리가 만나려고 하는 사람들, 특히 청년, 청소년 세대들과는 코드가 일치가 될 수 없고, 그만큼 교회는 스스로 복음을 담는 그릇을 제한하고 있는 것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미디어가 아니라 미디어에 담겨진 내용이 더 중요하다. 반즈교수가 인용한 맥루한(Marshall Macluhan)의 주장처럼 "매체는 메시지"이기 때문이다.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반즈교수가 지적한 것처럼 복음전도의 소극성과 주님의 지상명령을 교회의 첫 번째 임무로 보지 않는 관점에서 나온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반즈교수는 이렇게 주장하였다.

"교회의 첫 번째 임무는 전도가 아니라 성도들을 온전히 세움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다" 물론 종교개혁적 개념에서 교회의 존재이유를 "참된 예배"라고 규정하는 관점에서는 옳다.

물론 이 경우에도 교회의 존재이유는 거룩하게 세움받은 성도들이 세상에 영향력을 끼침으로 모든 민족이 구원에 이르게 되는 것이기도 하다.

즉 교회의 목적은 복음을 전파하고, 복음을 받은 이들을 통하여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라 이해될 수 있다는 뜻이다.

뿐만 아니라 하인리히 오트가 "신학해제"에서 많은 신학자들의 논의를 정리한 것처럼 교회의 존재이유가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세상의 빛과 소금(마5:13-16)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에서도 해석되어야 할 것이다.

이런 배경을 가지고 주님은 교회에게 지상명령을 내리신 것이다.(마28:18-20)

주님의 지상명령은 대상이 범 우주적이어야 하는 것은 두말 할 것도 없다. 결국 교회는 변해가는 문화적인 상황 앞에서 적절한 대안을 모색하고 방향을 제시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복음이 전해지는 것보다 복음을 어떻게 담을 것인가 혹은 복음을 담는 방법이 그 시대의 문화양식을 빌리는 것이 과연 성서적인가하는 물음들이 발생한 것이다.

물론 이런 논의들을 계속 논의하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그동안 교회 안에서만 논의 되어지는 동안 매우 빠른 속도로 교회는 세상과 유리되어갔고, 그 현상으로 청년들을 포함하여 교인들이 교회에서 이탈하는 현상을 가져온 것이다. 이것에 대하여 감리교신학대의 장성배는 이렇게 주장한다.

"전통적인 기독교는 하나님의 구원의 영역이 교회 안에 국한되어 있다는 것을 강조하다보니 하나님의 활동영역마저도 교회 안으로 축소시켜버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렇다면 선교 영역과 방법에 대한 논의가 교회 밖으로 벗어나서 논의할 수는 없는가? 하지만 해외선교만은 이미 교회 중심적 사고에서 탈피되어 논의되고 실행되고 있다. 결국 열린예배의 신학적 근거는 선교신학적 범주에서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선교신학적 범주에서 열린예배는 어떤 타당성을 가질 수 있는가? 그것은 선교의 주체가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라는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라는 데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즉 "하나님은 교회뿐만 아니라 세상 전체를 구원하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이 새롭게 해석된 것을 의미한다.

이런 관점에서 하나님의 활동영역은 전 우주와 그 안에 있는 모든 피조물에게로 넓혀지게 되는 것을 의미하며 지구상의 모든 인류와 문화가 하나님의 섭리와 관심의 대상이 되었음"을 말한다.

그러므로 교회 혹은 교단의 전통이나 교리 혹은 신학이 하나님의 선교에 방해요인으로 작용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욱이 현재 교회가 가지고 있는 예배 형식 또한 문화적인 옷을 입고 있는데, 그 문화양식 때문에 하나님의 선교가 막힌다면 크나큰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하나님의 선교를 방해하는 가장 큰 장애물은 복음의 내용이 아니라 문화적인 것이었다.

일반적으로 불신자들이 교회에 나오기 싫어하는 가장 큰 요소중의 하나는 문화장애물인 것이 사실이다.

조지 헌터는 이 문화 장애물의 본질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여 이렇게 말한다.

"교인들과 같이 되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이 되기를 반대한다" 그러니까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진리와 계명인 희생과 사랑을 삶 속에서 표출되기 보다는 해묵고 동떨어진 교회의 하부문화(subculture), 예를 들어 "동 떨어진 언어"나 "경건한 전문용어"를 사용하는 것에 의해서 신앙양식이 결정되어지고 복음과 깊은 상관관계가 없는 의복, 음식, 음악 혹은 건축양식에 이르기까지 외적인 요소들에 의해 신앙양식이 결정되어졌다.

한국에서도 술과 담배 문제가 구원의 기준처럼 제시되는 경우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사실 우리가 먼저 선교의 방법을 정할 수가 없다. 하지만 이 문화적인 장애물에 대한 해결방법은 하나님이 먼저 제시하셨다.

이 같은 하나님의 선교 사역의 핵심에 존재하고 있는 성육신 사건이 그 근거를 말한다.

"성육신 사건이야말로 하나님의 사랑의 넓이와 깊이를 보여주는 가장 구체적인 사건이다.

 하나님은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자신의 방법을 고집하지 않으셨다." 결국 우리 인간을 구원하기 위하여 이 땅위로 찾아오셨는데, 그 방법은 그 시대의 유대인의 문화의 옷을 입고 찾아오신 것이다. 일종의 문화적 동일시(cultural identification) 혹은 상황화(contextualization)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성육신은 구원의 내용이며 동시에 구원의 방법이다. 즉 성육신은 복음의 내용이며, 동시에 복음의 방법이 되는 것이다.

단순히 하나님이 인간으로 오신 성육신 속에서 우리에게 하나님이 말씀하고자 하는 내용을 깊이 있게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성육신은 하나님의 구원계획의 핵심이 들어있는 사건일 수밖에 없다. 결국 우리가 하나님의 교회로서 하나님의 구원사역을 이루어가고자 한다면 우리도 역시 성육신적 방법을 택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그러므로 열린예배의 신학적 근거는 결국 하나님의 선교, 그 핵심인 성육신에 찾을 수 있다.

모든 문화적인 장벽을 뛰어넘으시고 성육신하신 사건에서 우리의 사역의 열려진 가능성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오히려 구도자 청년들을 위한 열린예배가 과연 적합한 것인가를 묻기 전에 하나님의 성육신의 관점에서 볼 때 우리의 예배가 과연 문화적인 적응력이 이루어진 예배인지를 묻는 것이 옳을 것이다

 

3. 열린예배의 논쟁을 정리하며

예수님이 항상 화를 내고 청중을 저주하면서 그들에게 말씀을 선포하신 것은 아닐 것이다.

고통스런 세상에서 무거운 짐을 지고 한 주를 살아온 교인들에게 안식일날 축제 같은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위로와 평안을 전해줄 수 있다면, 그것이 그리 큰 잘못일까?

무겁고 점잖은 분위기에서만 경건한 예배가 나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열렬히 찬양하는 이들에게서 하나님 앞에서 힘을 다해 춤추었던 다윗 안에 있었던 순수함 같은 순수함이 보인다.

또한 그동안 사탄에게 빼앗겼던 미디어들을 교회가 다시 들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할 수 있다면 그것 또한 값진 일이라고 생각한다. (벤허 같은 영화는 훌륭한 선교 도구이지 않은가.)

사람은 들은 것의 95%를 72시간 내에 잊어버리는 냉정한 현실 앞에서 시청각 자료를 포함한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메시지를 쉽고 인상적이게 전달하는 것은 문명의 이기를 이용한 효과적인 복음 전달이 될 것이다.

그러나 반즈 목사의 주장대로 윌로크릭 교회에 십자가 형상이 없고 또 사도신경 암송도 실시되지 않고 있다면, 또 교인 중 많은 이들이 하나님과의 교제보다 사람과의 교제를 위해서 출석하고 있다면, 이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에게 즐거움과 유쾌함을 제공하는 것 자체가 죄는 아니지만, 그것이 문화적으로 유연하게 행하며 복음을 더욱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차원을 넘어 오히려 복음을 세상과 타협하는 차원에 이르게 된다면, 그것은 큰 문제다.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는'(행 2:47) 하나님의 도우심 없이 교회는 부흥할 수 없기에, 윌로크릭 교회가 부흥한데는 그 안에 하나님을 향한 나름의 순수한 신앙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만, 지금 윌로크릭 교회는 자신이 안고 있는 문제점들을 직시하고 해결을 위해 나서야 할 시점에 처해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사실 윌로크릭 교회를 비롯한 대중적인 교회들의 문제들은 그들만의 문제로 끝나지 않고, 이들을 본받고자 하는 세계 수많은 교회들의 문제들로 확산될 위험성도 지니고 있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이에 썩은 부분이 있다고 무조건 그 이를 뽑아버려야 하는 것은 아니다.

썩은 부분을 적절히 치료하면 그 이가 제대로 기능할 수 있는 것처럼, 여러 문제점들을 지니고 있는 윌로크릭 교회를 포함한 현대적 감성을 추구하는 교회들도 적절한 치료의 과정을 거치면 오늘날 여러 교회들의 훌륭한 모델 교회로 작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 한다.

 

V. 한국적 상황과 청년을 위한 열린예배의 올바른 적용

 

한국적 상황에서 열린예배는 구도자를 대상으로 한 새로운 예배 신설인가 신자를 대상으로 한 기존 예배의 갱신인가라는 양자택일의 문제가 가장 시급한 현안의 문제이다.

작금의 한국교회에서 행해지고 있는 열린예배는 거의 대부분 대상의 구분을 구체화하지 않고 또 전문적인 준비 없이 전도라는 목적보다는 기존 예배에 식상한 회중들에게 무언가 색다른 것을 제공하고자 하는 의도 하에 행해지는 것이 엄염한 현실이다.

물론 개중에는 분명한 철학을 가지고 열린 예배를 성인예배에 도입하기도 하고 청소년 예배에서 시행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주일 오후 예배의 한 대안으로 ‘우리식’의 열린예배를 시행 하는게 현실이다.

 

한국적 상황에서 소위 열린예배의 형식을 가장 먼저 대중화시킨 것은 온누리 교회의 목요 찬양집회인 경배와 찬양이 그 효시라 할 수 있다.

온 누리 교회의 경우 현재 열린 예배를 대상별 시간별로 보다 세분화하여 드리고 있으며 그 내용 역시 미국 교회에서 시도하는 것처럼 다양한 악단 및 유명 인사의 초청, 연극 영화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시도하고 있다.

반면 창천 감리 교회의 목요집회는 모임의 성격을 완전 탈종교화 하여 간접적인 전도로 성과를 거두기도 한다.

또 사랑의 교회에서는 매주 토요일 오후 교회가 아닌 ‘약속의 땅’이라는 교회 기관이 운영하는 레스토랑에서 교회의 인적 자원을 동원한 불신자초청 열린 예배를 드린다.

그러나 이러한 몇몇 경우를 제외하면 엄밀한 의미에서 전도를 목표로 대상을 불신자로 국한한 열린 예배는 거의 찾아보기가 쉽지않다.

이것은 모든 국민에게 기독교가 친숙한 바탕을 이루고 있는 미국적 상황과 비교해 볼 때 개인적으로 또는 자발적으로 교회에 찾아오는 불신자들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한국의 다종교적 사회분위기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보여 진다.

반면 교회 안에 있는 기신자들은 변화와 생기 그리고 감격이 없는 기존의 예배에 대해 식상해 있는 실정이다.

그러다 보니 많은 교회들은 전도를 위한 열린 예배를 기획하기 보다는 당장 기신자들을 교회에 묶어두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예배의 갱신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면서 주일 오후나 저녁 예배를 ‘열린예배식’으로 바꾸어 보려는 양상을 보이게 되었다.

말하자면 미국식 열린 예배의 기본 정신은 사라진 채 그 형식의 일부만을 모방한 예배가 한국교회에 접목되어 있는 것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예배의 갱신을 청소년부 예배나 청년부 예배에 접목시킴으로 교육기관을 활성화시키고자 하는 적극적인 시도가 널리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이 경우에도 ‘열린 예배’라기 보다는 전통 형식을 파괴한 ‘현대적 예배’(contemporary worship)가 보다 적합한 표현이라 할 수 있는데 이중 하나의 모델로 제시할 수 있는 것이 사랑의 교회 청소년부 예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교회 고등부를 이끌고 있는 이 찬수 목사는 YY부흥보고서(서울: 규장출판사,1999)라는 저서를 통해 사랑의 교회 학생회 예배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1, 무사회자 2. 이동식 보면대를 강대상으로 사용 3. 한 주에 한 주제를 다룸(성경공부와 설교가 같은 주제) - 영상화면을 통해 주제제기 - 드라마 팀의 운영(설교시간의 신축적 운영)

이 목사는 청소년을 위한 예배가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사항들에 주의를 기울 일 것을 제안 한다: 1. 먼저 십대들의 세계를 파악하라 2. 사회자가 없는 예배를 만들라 3. 한 주일에 한 주제만 다루되 영상물을 이용하라 4. 권위의식을 버리고 낮아지라.

 

열린예배의 시행 및 세부 프로그램과 관련하여 우리가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기독교적 바탕을 근거로 한 미국의 종교 환경 및 그들의 멘탈리티는 다종교적 배경의 우리와는 다르다는 사실이다.

우리 민족에게서 보이는 권위 존중적 요소는 여전히 이 사회의 주류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자유분방한 미국적 상황과는 분명히 구분되어야 한다.

이러한 상이한 요인들이 고려되지 않고 교회부흥의 매카니즘이 앞서는 예배관은 결코 건전한 기독교를 보장해 주지 않는다.

우리보다 열린 사고를 가진 미국 교회에서도 성도들을 위한 예배에 열린예배를 접맥하는 것에 극도로 조심하고 있는 것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무분별한 열린예배의 도입은 자칫 혼란만 가중시킬 뿐이다.

이런 맥락에서 열린 예배 혹은 현대적 예배와 같은 예배의 갱신을 기획할 경우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항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첫째는 열린예배 본연의 목적처럼 한국교회에서도 불신자들을 전도하기 위한 전도의 한 방편으로 열린 예배를 적극 도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원론적인 면에서 기독교의 침체현상이 심화되는 현실이고 보면 예배를 전도의 한 매개로 사용하려는 시도는 미국 교회 못지않게 우리에게도 시급한 발등의 불이다.

각 교회마다 사정이 다르기 때문에 일률적인 열린예배의 전형이 존재할 수는 없으나 복음전도에 대한 온 교우의 열정과 헌신적 희생이 있다면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에드 답슨 목사는 규모가 작은 교회에서 열린예배를 시행할 경우 다음과 같은 사항들을 유념하도록 조언 한다.

제일 중요한 원리는 문화적으로 적절한 방법을 통해 복음을 불신자들과 연결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불신자들과 접촉하는 일과 그들이 수용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는 용어로 복음을 전하는 민감함이 필요하다.

1) 매주 하지 않는다. 계획을 세워 한번 하고 성과가 있으면 몇 달 후 다시 한 번 하라.

2) 적절한 주제를 선택하라. 불신자들이 공감할 수 있고 인도자가 소화할 수 있는 주제를 선택하라.

3) 밴드의 연주가 없다고 해서 속 태우지 말라. 녹음된 음악을 활용하여 반주가 가능하다.

4) 연극 반원을 모집하여 훈련시켜라.

5) 간증할 수 있는 사람을 찾으라.

6) 비디오를 사용하라.

7) 교인들이 직접 사람들을 초청할 수 있도록 힘쓰라.

8) 다 끝난 뒤에는 간식을 제공하라.

 

둘째, 열린예배를 구도자를 위한 목적으로 삼지 않을 경우라 하더라도 예배갱신의 한 방향으로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즉 각 예배를 특성화하고 차별화하는 차원에서 우리 실정에 맞는 ‘현대적 예배’를 기획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더욱이 주일 아침예배에 이어 곧바로 드려지는 오후예배가 심각한 고사의 위기를 맞고 있는 실정에서 예배 내용과 형식의 개선은 실로 시급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현재 성도들의 대다수가 주일 아침예배에만 출석하고 있으며 성도들을 교육시킬 수 있는 그룹별 성경공부 역시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주일 낮 예배와는 차별화되는 축제적, 교육적 그리고 교우들 간의 동질성을 확인할 수 있는 예배를 시행함으로 ‘주일 목회’를 더욱 강화하여야 한다. 주일목회의 성공 없이 ‘주중목회’의 성공은 기약할 수 없다.

현재 대부분의 회중들이 일주일에 한번 예배에 참석하는 상황에서 주중의 예배는 극히 일부의 ‘적극적 그리스도인들’만이 참여할 뿐이다.

단 한 번의 예배로 그들을 온전한 그리스도인으로 양육할 수 없음이 불문가지의 사실이라면 그들이 자발적으로 예배에 참석할 수 있는 대안을 교회는 제공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목회자 자신이 먼저 예배가 지니는 ‘시대적응성’에 대해 열린 자세를 가져야 하며 예배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아이디어’의 수용에 적극적이어야 한다. 나아가 교회 내에 예배를 위해 머리를 맞대고 연구하는 예배연구 위원회를 구성하여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목회자의 머리에서 예배의 형식이 불변의 매카니즘으로 고착되어 있는 한 예배의 갱신은 요원할 것이다.

셋째, 현대적 예배를 위한 개방성에도 불구하고 그 개방성은 교회가 전통적으로 이해해온 예배관의 신학적 테두리를 준수해야 한다.

기독교의 역사를 보면 예배의 형식은 시대와 상황에 따라 변해 온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예배를 하나님의 계시에 대한 인간의 응답이 교호되는 장으로 이해해왔고 여기에 기독교 예배의 권위를 부여해 왔다.

동시에 이 예배관은 하나님의 봉사로서의 설교 성만찬 인간의 응답으로서의 고백과 기도 찬양과 봉헌 그리고 코이노니아라는 구체적인 순서를 통해 구형시켜왔다.

따라서 개방성에 대한 관심과 시도가 시대적인 필요임에 틀림없지만 동시에 예배신학적인 고려 없는 개방성은 교회의 실존적 근거양태인 예배를 인간들의 유희로 전락시켜 버릴 위험성이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회중이 속한 사회의 문화적인 흐름을 읽고 그 수단들을 탄력성 있게 적용함으로 예배의 대중성을 확보하며 변화하는 시대가 제공하는 각종 매스커뮤니케이션 매체의 수용 그리고 실용성(Utility), 단순성(Simplicity), 유동성(flexibility) 친근성(intimacy)을 염두에 둔 예배환경의 조성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면서도 그런 환경 속에서 되어지는 예배가 예배하는 기쁨과 감격 성도의 하나 됨을 확인할 수 있는 ‘기독교적’ 예배이어야 한다는 당위 안에 머물러야 한다.

 

출처 : 행복†충전소
글쓴이 : 행복충전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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