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학

[스크랩] 바른선교 길라잡이 (윤순덕)

수호천사1 2014. 9. 29. 21:45

바른선교 길라잡이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적 은혜와 축적된 자원들의 헌신적인 드림으로 인하여 우리의 선교가 짧은 기간에 획기적인 성장을 이루었다. 우리는 그동안 2/3세계 중에서 자국인 선교사를 주로 배출한 인도를 제외하고 가장 많은 선교사를 보냈다. 10/40창 내에 위치하면서, 문화적인 거리가 가장 가까운 이 지역에 다수의 선교사를 파송할 수 있는 특별한 전략적 위치에 있고, 문화적으로 고립되었다고 스스로 생각한 우리들에게 뜻밖에 언어학적, 인종학적으로 가까운 많은 미전도 종족을 발견하면서 새로운 가능성들을 발견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선교가 너무나 급히 달려 온 취약점으로 인해, 선교의 하중을 견디어 주어야 할 기초가 너무 약해 여러 곳에서 허물어지는 아픈 교훈을 얻고 있다. 약한 기초 위에 과시적으로 너무나 많은 것들을 연결하고 올려놓아 결국은 견디지 못하고 무너진 선교사역의 현장이 있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선교의 훌륭한 사례가 아니라 우리의 선교적인 삶을 실제적으로 어떻게 시행해야 하는지 그 모범이 필요한 것이다. 우리가 수요와 공급의 원칙에서 현장이 어떠한 사역자를 요청하는지, 우리 교회들이 어떠한 유형의 일꾼을 만들어 내야 할 것인지, 또 남은 선교를 위해, 우리의 교회가 현장이 필요로 하는 그런 일꾼을 지금 만들어 내고 있는지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우리가 새롭게 많은 선교사들을 얻어 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어렵고 힘들게 시간과 물질과 다양한 자원을 드려 한 선교사가 만들어졌는데 타문화 현장에서 견디지 못하고 돌아와 버린다면 심각한 일이다. 이처럼 선교사역이나 선교사의 개인적인 삶에 있어서 효과적인 선교건축(mission building)이 되지 못했다.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가? 이것은 바른 선교 길라잡이가 우리 가운데 안타깝게도 없었다는 것이다. 이런 정황 속에서 바른 선교에 대한 갈증이 해결되고, 무엇보다 선교적 삶을 통해 주님의 왕국을 섬겨가기를 원하는 모두에게 감격적인 선교적 사건이 많이 나타나길 기대한다.


첫째, 바른 선교 비전을 구축하라.


효과적으로 선교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선교헌신에 따른 바른 선교 비전를 세워가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나라 사람은 우뇌(右腦) 중심적인 문화를 가져서 즉흥적이고 감각적으로 선교를 감당하려고 한다. 이런 문화의 약점은 다른 사람의 간접경험을 통해 배우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책도 많이 읽고 다른 정보도 많이 경험해야 한다. "진품 명품"이란 프로그램에서 그림이나 골동품을 감상하는 것에 짧게 도움을 주는데 그것이 보는 눈을 만든다. "알면 보인다"는 말이 실감된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선교를 감당할까? "그냥 하면 되지"가 아니라 안목을 가지면, "이렇게 감당하면 더 효과적이겠구나" "좀더 청지기적인 방법이 있구나"하는 바른 선교를 체감하는 축복을 누린다. 가끔씩 "나는 교회에는 헌신하지 않았지만 선교는 하겠다"라는 말을 듣는다. 이것은 선교를 바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나오는 말이다. 반대로 "나는 교회에 헌신했고 선교에 헌신하지 않았다"는 것은 교회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성경이 말하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민족교회나 지역교회가 아니다. 우리가 교회에 헌신한다는 것은 완성되지 않은 그리스도의 몸에 헌신한다는 의미이며, 그 몸의 완성이 선교의 온전한 성취가 된다.


일반적으로 총론이 강하고 각론이 약하다는 것이 우리 문화의 취약점이지만 사실 총론도 건강하지 않다. 참으로 가슴이 아픈 것은 이런 신중함이 없이 선교를 시행한다는 것이다. 선교에 있어서 많은 갈등과 혼란은 바로 선교에 대한 바른 비전이 구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선교역사에 감격적이고 놀랄만한 사건을 만나는 것은 바로 바른 비전을 꾸준히 키워 간 결과이다.


둘째, 언제나 배움과 훈련 가운데 자신을 두라.


특별히 선교사적인 삶을 사는 사람에게 훈련은 절대적이다. 전쟁에 필요한 사람은 총알받이가 아니라 훈련된 군사를 필요로 한다. 손창남 선교사님은 그가 사역하던 인도네시아에서 40년 이상 사역한 영국 선교사를 만났고 사역지에 도착한 지 2년이 지났을 때, 그 선교사가 선교지에서 아주 유명한 선교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단다. 어느 날 그 선교사를 만났을 때, "어떻게 하면 당신처럼 유명해집니까?" 하고 물었더니 그 선교사는 아주 짧게 "선교지에 오래 계세요."라고 했단다. 그분의 말처럼 사역의 연속성이 전문성과 비례할 수 있다.


그러나 선교지에 오래 있는 것과 성숙함과 언제나 정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오랜 선임 선교사들 가운데서 영성이 망가져서 사역을 계속하려다가 결국에는 중도에 실패하는 선교사들도 가끔 있는 것이다. 선교지가 자동적으로 우리의 신앙을 강화시켜 주지는 못한다. 선교지는 정서적으로도 많은 에너지 낭비를 하게 된다. 때로는 화가 많이 나서 짐 싸 가지고 돌아오고 싶을 때도 있을 것이다. 선교지에서 도둑이나 강도를 만나고, 믿던 현지인들에게 속임을 당하고 때로는 그들의 공동체와 종교심으로 돌아가 믿음을 부인하는 것을 당한다고 생각해 보라! 우리 나라에서도 얼마든지 당할 수 있는 일이지만 선교지에서는 더욱 견디기가 힘들다. 자신의 감정을 오늘 여기에서 절제하기 어렵다면 내일 그곳에서는 더욱 힘들다. 이곳에서부터 감정처리, 인간관계, 섬김의 자세, 성숙한 삶의 양식이 한결같은 배움과 훈련을 통해 다져져야 할 것이다.


셋째, 기다림과 준비도 사역이다.


지금 이 세상은 포스트모더니즘과 종교의 사유화, 그리고 진리의 공유화를 외치며 십자가를 단 무당들이 활개를 치고 있다. 그런데 이들을 변화시켜야 할 교회가 이들에 의하여 침투당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고 보면 위기감이 든다.


이제는 주님의 가르침보다 "도올 김용옥"의 말이 더 설득력이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세상의 논리와 세속주의와 다원주의가 먹혀들고 있는 것이다. 이런 세상을 향해 준비된 사람이 일차적으로 필요하다. 선교의 부름 앞에 있는 자들은 "ARE WE READY?"를 늘 확인하고 깨어 있어야 한다. 졸고 있다가 급하게 전달된 바톤을 받아들고 반대쪽으로 달리면 되겠는가?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잃어버리지 않고 주변을 맴돌지 않도록 해야 한다. 사역의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구체적으로 자기를 준비해 나가는 과정을 못 견디는 것이 우리 문화의 특징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향해 꾸준히 자기를 준비시켜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기다림과 인도함은 하나님이 우리를 만들어 가는 시간이다. 재미가 없어 보이지만 가장 소중한 시간이다. 바울이 다소와 이곳 저곳에서 야인으로 있으면서 자기의 과거를 생각하고 주님의 은혜를 되새기는 13년의 세월이 없었다면 어떻게 그의 사역과 바울 서신 13권이 나왔겠는가? 완숙시키는 단계, 이것은 바로 하나님의 사역이며 우리도 이렇게 준비되고 인도받는 것이 또한 사역이다. 영적, 정신적, 감성적 강인성을 훈련함으로 준비하고, 시간이 더디더라도 잘 준비된 이것이 우리가 전하는 메시지만큼이나 중요함을 꼭 기억하라.


넷째, 교회 안에서 객관적인 검증이 요구된다.


우리의 문화가 주관적인 성향이 강하기에 주관적인 확신에 침묵하지만, 그러나 우리가 불완전한 존재가 아닌가? 잘못된 확신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객관화된 검증이 요구된다. 즉 신앙공동체로부터 선교적인 소명을 확인받는 것이다.


마이클 그리피스는 "한 개인이 할 수 있는 최대의 것은 자신의 '헌신'을 표현하는 일이다. 다른 주위의 사람들은 그의 '선교사로서의 자격'을 결정해 주어야 한다. 개인은 자유롭게 갈 수는 있으나 그가 정말로 가야 할 사람인지의 여부는 오직 그의 교회만이 알 수 있기 때문이다."고 했다. 너무나 당연한 지적이다. 그러므로 타문화권 사역에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은 스스로 그 "소명"을 확인함과 동시에 자기가 속한 공동체에 의해서도 그 부르심이 인정되고 확인될 수 있어야 한다. 교회와 선교단체가 선교사 후보자를 조심스럽게 심사한 후 인정하고 파송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따라서 선교사 지원자는 선교준비의 초기단계부터 소속된 지역교회와 긴밀한 관계를 맺어야 한다. 실제적인 문제로, 먼저 소속교회의 목사님이나 당회 앞에서 자기의 부르심을 간증하고 앞으로의 계획에 대한 조언과 충고를 받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다.


신학적인 훈련을 받는 일과 실제로 교회의 사역에 참여하는 문제를 생각하면 이것은 더욱 중요한 일이다. 때때로 지원자가 속한 교회가 선교에 대하여 냉담하다고 해도 교회 안에서 선교를 위한 기도운동을 먼저 시작함이 옳다. 선교 지원자는 자기 훈련뿐 아니라 교회의 선교교육과 기도운동까지도 담당해야 할 책임이 있는 것이다. 지혜롭고 슬기로운 섬김으로 지역교회를 선교적인 교회로 바꾼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물론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여러분이 정말 하나님의 교회를 사랑하고, 그리고 세계선교에 대한 사명이 있다면 여러분이 몸담고 있는 교회를 위해 긍정적인 역할을 감당함이 당연한 것이다. 이 때 바로 개인을 향한 부름이 교회를 향한 부름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다섯째, 삶과 행동으로 선교를 시행해 가라.


찰스 시므온은 1779년 캠브리지 대학에서 부활절을 맞아 받아 든 계란을 앞에 두고 고민 중에 있을 때 찾아오신 주님을 만난다. 그리고 졸업과 동시에 왕립대학의 특별 연구원이 되었으며 같은 대학의 성 삼위일치 교회(Holy Trinity Church)에 목사로 54년을 사역한다. 그 당시 다윈의 진화론으로 인하여 교회가 겪은 고통은 엄청났지만 그는 자신의 집과 학교에서 성경공부와 기도회를 쉼없이 가지며, 학생들로 그리스도와의 인격적인 관계를 맺게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고 생활에 적용하도록 했다. 이러한 가르침은 학생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인으로 삶을 증거하며 살도록 했고 주님의 능력을 경험토록 한 것이다. 결국 이 모임을 통해 전세계에 학생운동이 퍼져 나갔고, 노예가 해방되는 법이 개정되었으며, 성경번역 작업의 기초를 만들었다. 이들이 자신의 비전을 삶과 행동으로 세계를 향하여 시행한 결과가 유수한 선교사역을 동원함으로 나타난 것은 우리에게 의미하는 바가 크다.


선교 앞에 노출된 우리들이 선교에 대한 성경적, 세계적인 인식을 가지고, 나아가 선교를 실천적인 나의 일로 받아 들였다면, 기꺼이 이 일에 헌신됨을 통해 내가 섬기고 있는 가정과 교회 그리고 직장에서 주님께서 주신 그 비전을 삶과 행동으로 끊임없이 시행함이 중요하다.


존 스토트는 "21세기 선교의 진정한 과제는 지경을 넓히는 것이 아니라 복음의 가시성이다"라고 했다. 십자가도 구부리면 절이 되고 절도 펴면 십자가가 되지 않는가? 이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진정한 도전은 복음의 가시성이다. 참으로 필요한 것은 들려주는 복음보다 보여주는 복음인 것이다. 우리의 전도와 선교가 뒤틀린 기독교를 말하고 또 우리의 미숙함이 뒤틀린 기독교를 보여주기에 잘못된 기독교가 남는 것이다. 이제 복음으로 인한 우리의 출중함을 우리 삶의 현장과 선교지에서 삶과 행동으로 꾸준히 시행한 결과를 열매로 보고 싶다.


우리의 세대에 흐느껴 울면서 자기의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유약한 뺑소니들이 많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선교의 부름 앞에 바른 선교 비전을 구축하고 꾸준히 하나님께서 나를 만들어 가는 과정을 누리며 우리 가운데 있는 복음의 출중함을 삶과 행동으로 시행해 가는 탁월한 복음주자의 진득한 경주와 감격적인 사역현장을 보고 싶다.


윤순덕 목사/ 선교대구 대표

출처 : 내 사랑 중국 ♡ MyLoveCh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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