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성장의 의미
신학적 배경
교회성장의 의미
신학적인 움직임으로서의 '교회성장운동'은 1955년 도날드 맥 가브란이 「하나님의 다리」(Bridge of God)라는 책을 발간함으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 후에 「교회성장의 이해」 (Understanding Church Growth)로 이론적이고 실제적인 기초를 세운 이후로 계속해서 세계의 복음주의 교회에 영향을 미치는 움직임으로 발전해 왔다.
피터 와그너(Peter Wagner)는 1980년에 들어서 쓴 「교회성장과포괄적인 복음」(Church Growth and the Whole Gospel)이란 책에서 세상 속에서의 새로운 교회의 역활과 책임을 인정 하면서 교회성장 운동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였다.
교회성장이라고 하는 말은 역사적으로는 'Mission','Evangelism' 등으로 말 하다가 최근에는 'Body Evanger'라는 말로 쓴다. 이 말은 맥가브란(D.A. McGavran)이 "주의 몸된 교회가 성장 하는것 이 바로 Mission이 되는 것이고 Evanger가 되는 것이다"라는 데서 부터 나와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아더 글래서(Author Grasher)에 의하면 성경에는 우리를 향한 두 가지 명령이 있는데, 하나는 '문화명령'(Cultural Mandate)이고 또 하나는 '복음명령'(Evangelical Mandate)이라고 정의 한다.
문화명령이란 "땅을 정복하라" 곧 창세기 1장 28절의 말씀으로, 아담과 하와가 타락하기 전에 최초로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명령이다. 이웃 사랑, 부의 분배, 자연계의 균형, 결혼과 가정, 인도적인 정치, 평화의 유지, 문화의 보존,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번영과 증진을 축복하시는 것이 문화 명령이다.
빌리그래함도 「하나님과의 화목」(Peace with God)에서 "우리 전도자는 한 손에는 중생의 복음을 들고 한 손에는 냉수를 들고 사회에 대하여 도덕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다.
또 하나의 명령인 복음 명령은 타락한 인간을 구원해 내는 하나님의 명령이다. 이 명령은 마태복음 28장 19-20절 말씀으로, "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이 다.
교회성장은 이 중에서 복음 명령과 관계된다.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고 하신 그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 교회성장이라는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다.
복음명령에는 3P가 필요하다. 우리가 현존해야 하고 대면해야 하는 Presence, 선포인 Proclamation, 그 다음은 Persuasion 곧 설득이다. 교회성장이란 구체적으로 장로교인을 만들거나 감리교인을 만들거나, 신자를 만들거나가 아니라 제자를 삼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 하도록 대면하고 선포한후 이들을 교회로 인도하여 교회 공동체에 참여하여 예배를 드리고 교육을 받고 봉사를 하게 하며 한걸음 더 나아가 책임지는 교인이 되게 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신학자들이 말하는 교인(conversion)과 교회성장 학자들이 말하는 교인(discipleship)은 다르다. 교회성장이란 구체적 으로 개인이 구원을 얻을뿐만 아니라 그들이 교회에 들어와서 훈련을 받고 제자가 되어 책임있는 교인으로 서는 것이다.
교회성장의 성경적 기초
성장은 하나님의 뜻이요 그분의 역사이다.
고린도전서 3장 5-7절을 보면 바울은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고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라고 했다. 교회성장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이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다.
성장은 그리스도교 본래의 성격이다.
예수께서 모퉁이 돌이 되시고 사도와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워진 교회의 본래 성격이 성장이다. 이것이 에베소서에 나타난 교회론이다.
성장은 복음의 본질이다.
복음이란 전파된 그 날부터 열매를 맺으며 자라게 되어 있다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의 작은 씨가 땅에 떨어지고 자라서 새들이 깃들이는 큰 나무가 되는 것처럼 복음의 씨앗은 떨어지면 성장해서 열매를 맺게 된다.
성장은 신약 교회의 특성이다.
사도행전을 주의 깊게 연구해 보면 교회가 성장하는 데에는'문제'가 성장의 계기로 작용하기도 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문제가 생겨 교회에 충격을 주자 초대교회에서 그것은 갱신과 성장의 기회가 되었다. 또 후에는 지도력의 문제가 발생 했다. 제자들에게 전도 하는 일과 기도하는 일 외에 히브리파 유대인과 헬라파 유대인의 과부를 돕는 일에 관해서 문제가 생긴 것이다.
그러자 그 문제를 통해 교회는 평신도 지도자를 세워서 다시 성장하 는 계기를 맞는다. 문제를 통해서 그것을 해결하는 과정을 통해 신약 교회는 끊임없이 성장했다.
교회성장과 하나님 나라와의 관련성
교회성장이 곧 하나님 나라의 성장이냐 하는 문제를 논구하려면 먼저 교회와 하나님 나라와의 관계를 정립해야 한다. 이 관계 를 보는 시각은 세가지로서 완전한 일치, 완전한 분리 그리고 양자의 절충인 부분적인 일치로 보는 것들인데 이중 세번째 견해에 많은 학자들이 동의하고 있다.
교회는 이름뿐인 그리스도인들, 예배에 참석하지도 않을 뿐더러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습을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사람들을 교인 명부에 올려 놓고 있다. 이렇게 볼 때 교회는 절대로 하나님 나라와 일대일의 일치를 이를 수 없다. 그러나 바로 이런 교회가 성경에는 그리스도의 신부요, 하나님 의 집(The household)이라고 묘사된다.
그 구성원들은 성도(롬 1:1) 이며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 이라고(벧전 2:9) 불리운다. 그렇다면 교회를 하나님 나라와 완전히 결별시키는 것 또한 잘못일 것이다.
하나님 나라는 교회를 만들어 내지만 그 역은 성립하지 않는다. 하지만 교회는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는 그 나라의 도구이다.교회는 완전하지 않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이 세대에게 하나님 나라의 해설자(The interpreter)로서 하나님께서 세우신 다른 대행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교회의 성장에는 네가지 영역이 있는데 숫자적인 성장, 유기적인 성장, 관념적인 성장, 그리고 성육신적인 성장이 그것들이다.
교회성장운동을 비판하는 학자들은 성경이 교회성장을 강조하고 있지 않다고 비판한다. 네슬리 뉴비긴 감독이나 칼 바르트 그리고 알크라스 등이 이런 비판을 하는데 그 주요 내용은 서신서를 아무리 연구해 보아도 숫자적인 교회성장에 대한 관심이 전혀 표출되지 않으며, 또 정말 주님께서 교회가 성장하는 것을 의도 하셨는가 하는 질문을 진지하게 던져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 비판에 대해 두가지를 지적할수 있다
첫째는 그런 견해가 전도 명령과 그 목표에 대한 성경적 이해에 충분히 미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가령 로마서의 주제는 "영원하신 하나님의 명령이 모든 민족으로 믿어 순종케 하시려고 그들에게 알려졌다"(롬 16:26)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내가 전파하는 복음"(롬 16:25)이라고 바울은 단언한다.
복음을 듣고 믿어 순종하게 된 사람들은 교회 안에서 발견되어져야 한다 따라서 전도 명령이 수행되고 남녀들 이 믿어 순종케 될 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다.
둘째로 교회의 개념에 대한 이해 차이이다. 비판자들은 교회성장 운동이 그리스도 중심적이기 보다는 너무나 교회 중심적이지 않느냐는 의문을 제기 한다. 모든 교회성장이 다 하나님 나라의 성장일 수는 없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 성장이 긍극적인 과제이며 교회의 성장은 전도 명령과 관련된 그 이전 단계의 과제임에 비판자들과 견해를 같이 한다.
교회성장 운동을 비판적으로 보는 사람들은 대체로 세상 속에서의 교회의 책임을 강조하면서 성장 자체의 의미를 축소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살아있는 교회, 생명이 있는 교회는 성장할 수 밖에 없다.
교회성장의 원리
1. 교회성장의 이해
(1) 질적 성숙에 대한 이해
피터스(Georgy Peters)는 퓰러의 교회성장학이 수적 확장에 치중한다고 불만을 표시하면서 교회가 교회 안에서 예배와 교제를 잘 가질 뿐만 아니라 문화에 적응하면서도 사회에 기독교의 영향력을 끼치고 온 세계에까지 복음을 전하는것 이 성장이라고 정의 한다.
파디라(C. R. Papilla)는 교회성장에 수에 대한 지나친 강조는'우상'이 된다고 했으며, 또한 '통계학적인 성공의 철학'을 반대했다. 그러나, 질적 성숙을 측정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질적으로 성숙하는 교회를 반대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이를 어떻게 측정할 것인가가 문제이다.
완전한 측정기준은 될수 없겠지만 다음과 같은 요소들로 측정한다면 대략적인 성숙의 기준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로, 매년 등록된 교인에 비해 출석하고 있는 교인의 숫자나 세례교인의 숫자를 비교하는 방법,
둘째로, 문화적 및 복음전파의 위임에 할당된 교회예산의 비율.
셋째로, 주님을 위하여 자원하여 바치는 교인들의 시간비율.
넷째로, 교인들의 개인적인 헌금비율.
다섯째, 출석교인의 균형있는 연령분포.
이외에도 찬양과 성경공부 참석률, 각종집회 참석률, 소구룹 활동정도, 전도와 양육 정도 등을 측정함으로서 얼마나 성숙된 성장이 이루어지고 있는가를 대략적으로 알 수 있다.
(2) 양적 성장에 대한 이해
도날드 맥가브란(D. McGavran)은 교회는 셀 수 있는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고, 사람들을 헤아리지 않는 일이 특별히 영적인 의미가 있는 것이 전혀 아니기에 숫적인 연구방법은 교회성장을 이해하는데 있어 필수적이다고 한다. 또한, 하나님을 영화롭게하는 성장을 목적으로하는 객관적 수치사용은 필요한 것이다.
하나님 계시 전체는 구원받은 자의 수를 헤아리는 것을 전제한다. 하나님의 계시는 은혜가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확장될 때에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감사는 증가한다는 것을 믿는다고 주장함으로서 실제적으로 교회성장은 숫적인 성장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숫적인 교회성장과 질적이며, 영적인 교회성장이 동반자적인 입장임을 주장한다.
(3) 종합적 성장에 대한 이해
티펫(Alan Tippett)은 '교회가 실제적으로 건강하게 성장하는 방법은 질적이며 양적이며, 또한 유기체적 성장사이에 어떤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제시하였다. 유기체적인 성장이란 교회내에 있는 조직이나 각종 모임의 성장과 관계가 있다. 유기체적인 성장이라는 말은 올란드 코스타스(Orland Costas)도 주장 하였다.
그는 가장 중심적인 인물은 교회가 은총적으로 성장하여야 하기에 숫자적인 성장에 대한 강조에 첨가하여 교인들 간에 내적관계인 유기적 확장, 교회의 성격과 이 세계에 대하여 선교에 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 관념적 확장, 그리고 교회가 주변의 사회참여도를 의미하는 성육적 성장을 일으키자고 주장한다.
유기체적 성장을 주장하는 많은 학자들의 견해를 보면 몸으로서의 교회가 바람직하게 성장하는 길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하나의 이론으로 스쳐가기 쉽다. 그러므로 균형있는 종합적인 성장을 가져와야 한다. 여기에서도 어느 것이 먼저 성장해야 하며 어떠한 성장에 교회가 관심을 쏟아야 하는지가 문제이다.
여기에는 정답이 있을수 없다. 그것은 환경과 시대적 흐름, 그 교회를 이끌고 가는 지도자의 능력과 달란트, 사회적 요구 등 많은 변수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2.성장과 쇠퇴에 대한 이해
(1) 성장의 원리
교회성장이 지역이나 문화, 사회적 조건들의 영향을 받는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보아서 같은 문화, 같은 지역, 비슷한 구성원을 가진 교회들 가운데서도 어떤 교회는 성장하고 또 다른 교회는 성장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러한 원리를 배우기 위해서는 성경에 나타난 원리나 교회성장학에 대한 서적을 통해서 배울뿐 아니라 실질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교회가 어디며 교인수가 늘어나고 새신자가 생기는 곳이 어디며 사람들이 그 공동체에 들어가면 변화되어 교회와 사회에 책임있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곳이 어디인지를 살펴보면 된다.
성장의 일반 원리들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담임목사와 교인들이 반드시 교회가 성장되기를 원해야 한다. 그리고 성장하는 교회의 지도자들의 성품과도 대단히 밀접하며, 그들의 역량에 따라서 성장한다. 성공적인 목사는 사업을 정하고, 목표를 세우고, 댓가를 지불함으로써 진정한 지도력을 갖는다.
둘째, 교회는 성경적 원리를 존중할 때 성장한다.
셋째, 교회성장이 하나님의 뜻이며 하나님께서는 교회가 날로 확장될 수 있도록 힘을 주신다고 확신한다. 그리고 복음 전도의 목표가 제자삼는 것임을 교회가 동의해야 한다. 넷째, 전도대상의 민족성에 맞고 문화적으로 토착적인 전도방법을 개발할때 교회는 성장한다.
다른 교회의 프로그램을 자기교회에 그대로 도입하려는 태도는 지양하며 무작정 교회사업만 많이 하려고 하지 않는다.
다섯째,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과 지역사회를 옳게 분별할 때 성장한다. 분석을 위해서 과거의 기록들과 현재의 상황을 분석하고 새로운 교회성장 계획을 수립함에 있어서 통계와 도표를 신중하게 도입하며 사회학과 문화 인류학 등을 도구로 사용한다. 기독교 운동을 확장하려는 계획에 필요한 사실적 자료를 얻기 위하여 실제적인 조사연구를 강조한다.
여섯째, 새로운 사람들을 위한 그룹과 가입 창구를 통해 인원을 확보해 나갈 때, 즉 다양한 종류의 단위기관(구역, 성가대, 선교회, 각종집회 등)을 증가 시킬 때 교회는 성장한다.
일곱째, 교회는 치명적인 병을 가지고 있지 않아야 한다. 이 병은 내부적일 수도 있고 외부적 일수도 있다. 조기에 발견하여 대처해 나가야 할 것이다.
여덟째, 교회는 평신도들이 제자화 될때에 성장한다.
아홉째, 성장체제를 갖추고 성장을 위한 모험을 할때에 성장을 한다. 믿음이 증진되지 아니하면 성장을 위한 계획에 진지한 노력이 수반되지 아니한다. 대부분의 교회에는 현재의 성취수준 보다 훨씬 더 큰 효과를 낼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 그러므로 목사와 평신도 지도자들이 교회성장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비젼을 가지고 행동해야 한다.
열째, 교회는 우선순위를 지킬때에 성장한다. 교회는 그 머리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 완전 헌신하는 것을 우선해야 된다. 교회는 효과적인 복음전도에 최우선권을 부여할때 성장하지만 이를 바꾸어 사회봉사를 우선순위로 채택할 때에 교회는 감소 정체한 다.
이외에도 교회가 교회를 개척하며 선교할 때, 교회론이 확고할때, 교회의 지도자들이 참다운 회개를 경험하며 교인들이 성령충만한 삶을 갈구할 때 성장한다.
이상과 같은 원리들은 복합적인 관계성을 맺고 성장하기도 하며 교회의 속성에 대한 종합적이면서도 균형있는 발전이 성장을 가속화시켜 나간다. 어떤 교회는 한 가지의 특성만을 가지고 급성장을 이루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지극히 불안정하며 계속적인 성장을 이루기가 어렵다고 볼 수 있다.
(2) 쇠퇴의 원리
교회가 치명적인 병에 걸리는 것에서 잘 예방하려면 병에 걸리기전 초기 징후를 발견할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장하지 않는 교회의 공통적인 이유를 알 필요가 있다
첫째, 교회가 현상태 유지에만 관심을 가지면 성장하지 않는다.
교회성장이 단지 우연히 발생하는 것으로 생각하며 근시안적인 지도력을 가진 교회는 성장하지 못한다.
둘째, 교회가 고도의 생산적인 선교 방법에 관심을 가지지않고 효율성이 저조한 선교방식에 관심을 기울인다. 그들은 토착화 되지 못하였고 교회에 호의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과만 교제를 나누려 하였다.
셋째, 교회의 분위기가 너무 단조롭고 지루하며 건축물도 우중충하고 어떤 감흥을 일으키는 분위기가 없다. 목회자의 언어가 세상과 분리된 신학적, 학문적이며 과도하게 전통적이다. 믿음, 소망, 사랑 그리고 기쁨 대신에 공포, 미움, 그리고 분노를 강조 하는 부정적인 감정이 지배하는 교회는 성장하지 못한다.
넷째, 그들은 대부분 교회가 큰 것은 나쁘다고 믿는다. 교회가 이미 너무 크다라는 말을 하지만 그들은 무엇을 위해서 너무 큰가는 말하지 않는다. 또한 영적인 무관심 때문에 그들은 비젼과 선교에 대한 의식도 잃어 버렸다.
다섯째, 새신자에 대한 강한 집착이 없고 단지 이주해 오는 교인들로 인한 자연적 성장만을 기대하는 교회는 성장하지 않는다.샬러(Lyle E. Schaller)는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가 주와 구세주라는 복음으로써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접근하면서 새교인들이 비활동성에 빠지지 않도록 할수 있는 방법 중의 하나로서 "우리는 누구를 배제하고 있는가?"를 진단해 보아야 한다.
"고 하였다.
여섯째, 빛에 대한 지나친 공포 때문에 교회가 역동적으로 변하는 것을 포기하는 교회는 성장 할수 없다. 물론 순자산액을 감소시킬 정도로의 차용도 하여서는 안될 뿐더러 20년 안에 갚을 수 없는 돈을 빌리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으나 재정적 부채는 종종 교회성장에 박차를 가한다.
일곱째, 하나님의 실재와 성경의 권위에 대한 확신이 결여된 교회는 성장하지 못한다.
한국교회성장
한국교회는 해방 이후뿐만 아니라 선교 초기에도 지속적 성장을 하여 세계교회의 이목의 대상이 되었다. 영국의 부흥 운동 연구가 에드윈 오어(J.Edwin 0rr)는 한국개신교의 1906-1910년간의 7,922명의 새신자 획득수는 일본개신교가 50년 동안 얻은 신자보다 더 많으며 중국의 개신교가 80년 동안 얻은 수의 2배가 된다 고 지적하였다.
그러면 이제 한국교회성장의 배경을 각각 자세히 살펴 보기로 하겠다.
1. 종교적 배경
바빙크가 지적한 것같이 실향(Paradiselost)을 회복하려는 인간의 본능은 구원에 대한 갈급함이 있다. 독일의 신학자 구스타프 바르넥은 학개 2:7의 "만국의 보배"를 '이방의 사모함'으로 해석하여 이방인들이 여호와의 구원을 갈망하는 본능이 있다고 역설하고 이것을 선교의 동기로 삼았다.
프랑스 신부 달레는 조선 사람들은 무신론자요, 현실 위주의 사람들이요, 동시에 가장 미신적이라고 하였다. 달레는 한국인을 무신앙적이요 가장 미신적인 흑암에 처한 이방인으로 묘사했다.우리 민족이 다른 민족보다 더 종교적이냐 아니냐에 대해 선교사들도 의견을 달리한다.
1653년에 한국에 표류했던 하멜은 한국인은 종교가 없다고 하였으며 멕켄지, 이소벧, 비숍 등도 같은 견해를 가졌다. 그러나 언더우드는 정반대의 견해를 가졌다. 그는 가는 곳마다 복음을 사모하는 조선인들을 만났었고 이러한 사실을 세계에 소개하였다. 유진 나이다의 표현을 빌리면 한국인의 종교는 다원적 종교(multireligion)라 함이 적절할 것이다.
유교는 사회적으로 조화와 질서의 개념을, 불교는 현실보다 내세관을 정립시켜 주며 도교는 현실의 삶에 대해 나름대로의 방향을 제시한다. 특히 한국은 무속교(shamanism)가 성행한다. 이것은 종교적 심성이 합리적으로 표현되지 않았을 뿐이고 가장 종교적임을 의미한다.
자연숭배의 다신론적인 샤머니즘은 여러면에서 기독교에 유리하게 작용했다고 팔머 교수는 지적한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 사회가 기독교를 쉽게 받아들이는 반면에 기독교를 무속적 기독교로 만들 위험이 있었다
2. 영적 배경(부흥운동)
한국교회성장의 원인을 분석함에 있어서, 부흥운동을 빼놓을 수 없다. 부흥운동 연구가 오어에 의하면 한국교회에는 세 차례 의 부흥운동이 있었다. 첫째는 1906∼1910년까지의 감리교 선교사 하등이 원산에서 기도를 함으로 시작된 것이요, 둘째는 1920년대 말 이용도 목사가 시작한 부흥운동이요, 셋째는 1947년 장 대현 교회에서의 운동이다.
부홍운동은 한국교회의 기반을 다지는 계기가 되었거니와 한국 교회의 신앙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새벽기도, 말 씀에 대한 전념, 정열적인 봉사 등은 부흥운동의 결과이다. 부흥운동의 목격자요 인도자 중의 한 사람인 William Blair(방위량 선교사)는 부흥운동은 회개운동, 정화운동, 선교운동을 가져왔다고 지적한다.
한국판 부흥운동이 참 성령 운동이라면 한국교회의 성장은 불가피한 결과일 것이다. 선교 역사에서 부흥운동은 항상 전도 운동을 가져왔으며 이로 인하여 교회는 성장하였다. 1907년의 대부흥 운동으로 100만인 구령 운동의 대전도 운동이 일어났다.
3. 신학적 배경
교회성장에는 신학적 요소를 중요시해야 한다. 초기 한국교회는 지나치게 축자주의, 문자주의, 분리주의라는 비난과 우려를 받아 왔다. 그러나 보수적 한국교회가 많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성장하고 있다.
보수교회가 성장할 수 있는 요소는 성경 말씀에 대한 강한 호소력과 거기서 생명을 얻으려는 진지한 노력이다. 비교적 보수주의 교회는 성경의 영감과 권위를 그대로 인정하고 이 성경적 권위에 복종하면서 교회를 부흥시키려는 진지한 자세를 견지해 왔다.
한국교회 강단에 성경 해석과 강론에 문제점이 없는 바는 아니나 일반적으로 과거의 한국교회는 보수신학의 입장에서 말씀의 능력에 크게 의존하였다. 초기선교사들의 강한 보수 신학과 전도열이 교회성장의 원인이 되었으며 이 보수주의 신학은 처음부터 성경을 강조했다.
4. 선교전략적 배경
한국선교 초기에 있어서 장로교 성장과 자립, 자치, 자력전파의 네비우스전략은 한국교회에 큰 공헌을 하였다. 알렌 클라크 박사는 한국교회성장의 원인을 네비우스 전략에 돌리면서 다음과 같이 부언한다.
"필자는 한국에서처럼 네비우스전략이 채용되고 확대된 것은 세계 어느 선교지에도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동일한 시간에 동일한 예산과 시간을 바쳐서 이만큼 성과를 거둔 것은 세계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현상이다. 인간적으로 말한다면, 네비우스 전략이 한국에서 이룩한 결과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말하는 것이 공평할 것이다.
"
70년대에 와서 한국교회성장의 전략적 요인을 든다면 구역제도일 것이다. 순복음중앙교회가 구역단위를 중심으로 성장한 대표적인 예이다. 살아서 성장하는 모든 물체는 세포 조직을 통해서 존재하며 세포분열을 통해서 자라는 것같이 교회도 세포 분열을 통해서 성장, 발전해야 한다는 이론을 도입한 순복음교회는 다섯 가정을 한 구역으로 하여 다섯 구역에 한 조장을 두고 70구역을 한 교구로 한다.
5. 신앙적 배경
한국교회가 성장하기까지는 한국교회의 뜨거운 신앙의 정열이 있었다는 것을 결코 과소 평가할 수 없다. 어느 외국인은 초기의 한국교회를 기도하는 교회, 전도하는 교회, 열심히 모이는 교회라고 평가하였는데 이것은 적절한 관찰이다. 소열도(Stanley Soltau) 선교사는 한국교회성장의 비결을 전도, 성경연구, 기도, 바치는 것, 핍박이라고 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복음적 신앙과 평신도들의 적극적인 참여는 교회의 놀라운 성장을 초래하였다.
초대교회의 성장이 평신도에 의한 자발적 운동이었던 것 같이 오늘날 한국교회도 이 원리를 잘 적용하고 있다. 특히 서울과 같은 대도시의 성장하는 교회는 평신도 전도자를 훈련하여 성공을 거둔 사례가 많거니와 과거의 심령부흥회를 전도와 선교집회로 전환하는 것도 현재의 두드러진 경향 중의 하나이다.
6. 토착화 원리
'자립 원리는 한국교회에서 토착화의 모퉁이돌'이라 지적한 백 낙준 박사의 말은 정확한 견해이다.윤성범 박사는 네비우스 정책을 한국 토착화의 시초로 보고 초기 한국교회 선교사들은 네비우스의 영향으로 한국의 문화와 습관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 고 지적한다.
팔머 교수는 한국교회가 서구 선교사들이 복음을 한국 문화와 일체화하려는 노력을 성공으로 이끌었기 때문에 성장하였다고 강하게 주장하는 대표적 인물이다. 그는 한국에서는 샤마니즘의 하나님 사상이 기독교와의 접촉점이 되었다고 한다. 이 외에도 샤마니즘과 기독교간의 유사성이 선교에 중요하게 기여했다고 주장한다.
팔머는 샤마니즘을 기독교의 준비종교로 보는 오류를 범했지만 토착화로 선교가 활발해졌다는 그의 이론을 부정할 수만은 없다. 토착 원리가 강한 민족주의로 발전한 셈이고 교회에서 일어난 민족주의는 한국교회성장에 큰도움이 되었다는 것이 맥가브란 교수의 지론이다.
1919-1921년 한국교회는 크게 성장했기 때문에 그 이론을 부정 할 수 없다.
7. 사회적 배경
사회상황과 교회성장은 함수관계가 있음이 명백하다. 한국교회의 성장은 1897년에서 1907년까지 크게 성장하였으며 1919년을 전후하여 성장하였으며 해방 이후는 특히 70년대 초 많이 성장하였다.
라토렛에 의하면 한국교회는 1904∼1905년간의 노 ·일 전쟁과 1910년의 한일합방 때 신자가 크게 성장, 1897년 530명의 신자가 1909년 26,057명으로 증가하였다고 한다.
그는 한국교회가 성장한 원인으로 선교사들의 정열, 비기독교의 약화, 정치적불안에서 절망감, 민족주의, 더 좋은 문화의 동경이라고 지적하였다. 현재 한국교회성장 역시 불안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여건이 작용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특히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우리의 상황에서 정치, 경제마저 안정되지 못하여 언제 큰 일이 날지 모르는 위기 의식이 민중들의 심층에 내재해 있어 종교에서 위안을 찾으려 한다.
19세기 말 국가 위기는 기독교에 대한 한국인의 태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었다. 즉 한국인들은 여러가지 재난에서 '심리적 구원'의 수단으로 기독교를 택했다고 팔머 교수도 지적한다. 위기의식으로 교회부흥의 역사가 일어남은 과거나 현재나 동일하다. 아울러 현재 한국교회성장의 중요한 사회적 원인 중 하나는 도시화이다.
급속한 도시화의 현상으로 농어촌 교회는날로 약하여 가는 반면,도시 교회는 날로 성장하고 있다.
맥가브란 교수는 "기독교는 다윗의 도시에서 탄생했고 시저의 대도시에서성숙했다"고 했고 도시가 농촌보다 교회가 성장함은 세계적 경향이거니와 고금을 막론하고 기독교는 도시를 정복하는 종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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