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단(나쁜신앙)

[스크랩] 신사도운동의 악영향

수호천사1 2014. 3. 24. 19:59
신사도운동의 악영향

신사도운동의 영향으로 인하여 성도의 신앙과 삶에서 나타나는 위험스러운 변질의 형태는 주로 다음과 같다.
신비체험과 거짓계시로 성경을 약화시키고, 경배와 찬양을 강조한다.
존 윔버는 원래 록음악 밴드에서 활동하였던 음악가였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잘 아는 룩 음악을 가사만 바꾸어서 찬양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빈야드 운동이 드럼, 베이스 기타, 전자 키보드 등의 악기를 동원하는 찬양사역으로 유명해진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다.
이런 찬양으로 사람들은 감정적으로 몰입하면서 열광하기 시작했고, 특별히 가사를 빈번하게 반복하면서 찬양하는 기법이 이때부터 유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 IHOP에서도 이런 찬양이 주를 이루고 있다.

더불어 사도와 선지자들이 성경을 통하지 않고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말씀과 계시를 받아 나른다는 신사도운동가들의 주장과 행태로 인하여 기독교 신앙이 심각하게 변질되고 있다.
그러나 당장 겉보기에 더욱 기도하고 선교하고 찬양하는 모습이 강하게 나타나므로 혼동하게 되지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참 신앙과는 점점 멀어질 뿐이다.
귀신들을 성령이라며 환영한다.

신사도운동으로 인해 교회가 당한 최악의 비극은 신사도운동에 문호를 개방하는 교회들이 각종의 귀신들이 장난하는 놀이터로 변해버린다는 것이다.
이는 신사도운동 집회들에서 나타난 기괴한 현상들을 보면 동의할 것이다.
낄낄거리고, 미친 듯이 뛰고, 구르고, 웅크리다가 용수철처럼 튀고, 짐승처럼 소리지르고 ...
이러한 기막힌 현상들을 성령의 역사라고 보았다는 사실 그 자체도 하나의 신비이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존 윔버는 바로 그런 것들이 새로운 형태의 성령의 임재의 증거들이라고 주장했고, 피터 와그너는 그런 사탄의 장난을 성령의 제3의 물결이라는 거짓 신학으로 포장하여 교회들이 안심하고 빗장을 풀도록 유도하는데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다.
아마도 피터 와그너의 성령의 제3의 물결 이론은 2000년 교회사에서 신학자가 신학으로 교회에 자행한 최악의 만행으로 기록될 것이다.
신사도운동가들의 집회를 통하여 교회가 심각한 사탄의 공격을 당하고 있고, 분별하지 못하는 성도들이 사탄의 장난감이 되고 조롱당하고 있다.
그런데 피터 와그너는 신사도운동에 반대하는 교회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탄의 교회라고 정죄한다.

신사도운동이 교회에 미치는 또 다른 중대한 악영향은 불균형적인 병든 선교운동에 매진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복음을 땅 끝까지 전파하여 그리스도의 교회를 온 세상에 세우는 선교를 지향하지 않고, 궁극적으로 예루살렘에 교회를 세우고 이스라엘을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것에 비정상적인 열심을 보이는 것이다.

최근 이처럼 불건전하게 예루살렘 회복을 강조하는 신사도운동 성향의 선교단체들의 공격적인 활동이 급증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많은 목회자들과 성도들이 분별하지 못하고 그런 분위기에 동참하고 있다.
문제는 단순히 예루살렘에 대한 그릇된 자세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그런 단체가 주관하는 기도모임과 각종의 영성훈련을 통하여 신사도운동의 영에 사로잡혀간다는 것이다.

신사도운동가들에게 성령의 임재는 오직 기적, 예언, 환상, 은사, 치유 등의 나타나는 표적이다.
보이지 않는 더 소중한 일을 하시는 성령님에게는 별 관심이 없다.
그리스도를 닮게 하시고, 하나님의 자녀의 형상을 회복하도록 인도하시는 하나님이시기를 그들은 원하지 않는다.
그들이 기대하고 늘 원하는 성령은 예언과 환상과 각종의 은사를 보여주는 분이다.

그래서 실제로 신사도운동에서의 성령님의 주특기는 금이빨과 금가루를 순식간에 만들어 내신다.
한쪽 팔을 잘 늘리신다.
전쟁의 징후와 적이 사용할 무기의 종류도 잘 파악하신다...
성령님에 대해서 신사도운동가들의 또 하나의 신기한 현상이 있다.
성령을 그들의 사역에 고정시키고 붙들어 매어 놓는 재주가 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성령을 “방출한다”고 대 놓고 말하며 집회를 인도한다.
그런데 절대로 성경이 가르치는 성령과 함께하는 자들이라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에 강림하신 보혜사 성령님과 동행하는 자들이라면 절대로 그런 이해를 가지고서 그렇게 말할 수가 없다.

이러한 정체불명의 성령운동이 도처에서 일어나 확산되고 있고, 성도들은 분별하지 못하고 치유와 기적과 은사가 더 풍성하게 나타나는 신령한 집회라고 환영하고 있다.
이러니 참된 목양은 더 어려워지고 있고, 성도들의 영혼을 복되게 하는 진리의 말씀의 목양은 오히려 초라하게 취급당하게 되었다.
그런데 더욱 안타까운 것은 목회자들이 스스로 알아서 성도들을 이끌고 그러한 집회에 참석하며 맛을 보고 맛에 취하고 맛을 따라가고 있다는 것이다.

사도란 헬라어로 ‘보내심을 받은 자’, ‘전달자’를 의미한다.
보내신 자는 그리스도시며, 보내심을 받은 자들은 사도들이며, 사도들에게 주어진 메시지는 구원의 복음이었다.
신약에 사도란 명칭은 약 80회 나타난다.
사도들은 신약 초기에 있었던 공적인 직분상의 명칭으로 복음을 전파하고, 교회들을 설립하고, 조직하는 특별한 사명을 수행하기 위하여 주께서 친히 선택, 임명하시고 철저하게 훈련을 시켜 특수한 목적들을 수행하기 위하여 보내심을 받은 자들이었다.
사도들의 수(數)는 처음에는 12명이었다.
엄격한 의미에서 사도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선택하신 12사람과 바울이다.

사도들은 복음 사역의 초기에는 연약하고 이해가 부족하고 실수도 많이 하였으나, 오순절 날 성령의 능력과 영적 은사들을 받은 후에는 복음 사역에 큰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교회의 중추적인 위치에서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였다.
그들은 반대와 위협, 핍박이 엄습하는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의 능력이 그들과 함께 하시므로 사도의 직무를 충실히 감당할 수 있었다.

사도들은 그리스도의 사역의 증인들이 되도록 특별히 선택된 자들이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례받은 날로부터 승천하실 때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산 증인들이었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후에도 그리스도를 목격하였다.
그러므로 그들은 말하기를 우리가 그리스도의 산 증인들이라고 하였다.

사도들은 그들 시대의 교회와 오고 오는 모든 시대의 교회들을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구두로 또는 기록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계시 전달의 특별한 도구들이었다.
그러나 이 특별 계시가 그의 거룩한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성령으로 나타나신 것같이 다른 세대에는 계시되지 않았다(엡 3:5).
그 이유는 계시가 문서로 완성되었기 때문이다.

후대의 모든 하나님의 사역자들은 사도들처럼 하나님께로부터 계시를 직접 받는 것이 아니라, 사도들을 통하여 이미 받은 계시를 증거할 따름이다.
도직은 세상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이고, 세상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는 그러한 권능을 받았다(마 16:19).
이 직무는 교회 역사에 있어서 그들에게만 주어진 비상대권이었다.

사도직은 그 시대에 그들에게만 제한된 비상직분이요, 영구직분이 아니므로 사도들의 후계자란 존재하지 못한다.
그리고 사도들에게 주어졌던 초자연적 능력이 후대의 사역자들에게는 주어지지 않는다.

사도들이 세상을 떠난 이후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직접 듣거나, 그의 육체적 부활체를 직접 목격한 사람이 없고, 사도들과 같은 고유한 은사들을 받은 자도 없으며, 사도들의 특별한 직무를 수행한 자도 없으며, 그리스도께서 직접 선택 임명하거나 초대교회가 승인한 바도 없다.
그러므로 사도직은 사도 시대 이후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오늘날 복음사역자는 사도가 아니라, 사도적 사명을 수행하는 자들이다.

사도시대에는 선지자들이 있었다.
아가보, 바나바, 시므온, 루기오, 마나엔, 사울, 유다, 실라 등은 이 반열에 속하였다.
사도시대에 선지자직은 일시적 직분이었다.
선지자들은 말씀의 은사를 많이 받았으며, 그들은 이따금 신비한 비밀의 말씀들을 계시하며, 장차 되어질 일들을 예언하는 기구들로 사용되었다.
아가보는 흉년이 들 것을 예언하였으며(행 11:28), 바울은 예루살렘에 가기 전에 자신이 결박당함을 미리 보았다(행 21:10-11).
유다와 실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함으로써 성도들을 온전케 하기 위하여 많은 말씀으로 형제들을 권면하였다(행 15:32).

그들은 사도들과 더불어 초대교회의 중요한 사역을 담당하였으나 그들의 임무는 목사의 사역으로 이전되었다.
그리고 오늘날 목사의 사역은 성경에 기록된 예언의 말씀을 선포하는 일이다.

구약시대 선지자와 신약시대 선지자는 무엇이 상이한가?

구약의 선지자들은 국가적 지도자들, 애국자들, 개혁자들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구두로 선포할 뿐만 아니라, 문서로 기록하였으며, 선지 사역의 기간도 장기간이었다.
그러나 신약의 선지자들은 구약의 선지자들과는 대조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구두로 받아 선포는 하였으나 문서로 기록하지는 아니하였으며(바울 제외) 선지자로서의 자격도 구약시대 선지자들보다는 미흡하였으며, 선지사역 기간도 매우 단기적, 일시적이었다.
선지직은 사도직과 같이 신약성경이 완성되었을 때 초대교회 시대에 끝났으므로(고전 13:8) 그 이후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칼빈(Calvin)은 말하기를 선지자들은 “신적 의지의 모든 해석자들을 의미하지 않고, 특별한 계시로 뛰어난 자들을 의미하나니 지금은 이같은 사람들이 존재하지 않으며 또는 그들이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 이유는 신구약 성경이 문서로 완성되었기 때문이다.
출처 : 행복†충전소
글쓴이 : 김종일목사 원글보기
메모 :